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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피서하는 나무
디어 프루던스
기억하는 밀림
스킨 플랜트
고사리태엽
식물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전 여자 친구를 설득하는 편지
인형초
시조 독말풀
춤추는 소나무
벚꽃 낙원
샤베란

남은 씨앗-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2

호시노 도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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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yuki Hoshino,ほしの ともゆき,星野 智幸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는 작가.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세 살 때 일본으로 귀국, 도쿄 인근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198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 후 2년 6개월간 산케이신문 기자로 근무했고, 1990년대 초 멕시코로 유학을 떠났다. 1995년에 귀국한 뒤에는 자막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마지막 한숨』으로 제34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00년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로 제13회 미시마유키오상, 2003년 『판타지스타』로 제25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 『오레오레』로 오에 겐자부로상, 『밤은 끝나지 않는다』로 요미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는 작가.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세 살 때 일본으로 귀국, 도쿄 인근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198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 후 2년 6개월간 산케이신문 기자로 근무했고, 1990년대 초 멕시코로 유학을 떠났다. 1995년에 귀국한 뒤에는 자막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마지막 한숨』으로 제34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00년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로 제13회 미시마유키오상, 2003년 『판타지스타』로 제25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 『오레오레』로 오에 겐자부로상, 『밤은 끝나지 않는다』로 요미우리문학상, 『호노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주문』, 『어수룩한 사람』 등이 있다. 대표 소설집 『인간은행』, 『디어 프루던스』 등이 국내 출간되었고, 『식물기(植物忌)』를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일본 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잇는 유망한 젊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 『책이여, 안녕』(2008)에서 자신의 소설적 후계자로 호시노 도모유키를 지목하며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을 덧붙여 화제가 됐다. 문학평론가 모리 다쓰야는 호시노의 소설이 '위화감'이라는 감각에서 시작했다고 보면서 '이단의 위치에서 사회를 조망'하는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일본 작가 중에서 드물게 전체소설(全體小說)을 몽상하는 작가다. '전체'나 '체계'를 지향하는 것이 어렵게 된 이 시대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체나 체계를 상기시키는 문제적인 작품을 펴내고 있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다른 상품

오사카 대학에서 김사량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권력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배타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식물기』, 『인간은행』,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등을 번역했고, 최근에는 아티스트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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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148*210*20mm
ISBN13
9791188375363

책 속으로

그 좁은 틈을 빠져나오는 순간이 오노나무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오노나무와 마주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고, 그러니 나는 존재해도 좋다는 긍정적인 기분을 느꼈다. 오노나무는 착실히 늘어났다.
--- pp.49~50

그런 식으로 상상하여 번식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났다. 잃은 자식을 새로 만드는 부모. 앞세운 반려자를 번식하는 파트너. 천수를 누린 부모를 이 세상에 다시 불러내는 자기중심적인 자식. 이상적인 친구를 번식하는 완벽주의자. 사원을 번식하는 욕심 많은 사장. 물론 아기를 번식하는 커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탄생한 사람들에게 진짜 피와 살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p.60

시리고미짱도 사실은 사람을 좋아하지? 하지만 아무도 믿지 못하지? 더 이상 배신당하는 건 이제 견딜 수 없으니까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거잖아. 어두운 방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렇게 음습한 자신을 넘어서려는 거라면 더더구나, 다른 생명체가 되는 게 깔끔할 거 같지 않아? 나는 그런 망설임을 반복하다가 애벌레가 되었어. 그러니까 시리고미짱도 민들레 씨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 p.62

“식물 좋아하세요?”
분위기를 진전시켜 보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소라히코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틈을 두다, ‘아뇨’라고 대답했다.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마다 화분을 하나씩 샀어요. 그랬더니 너무 많아져서 시들면 안타까울 것 같아 열심히 돌볼 뿐입니다.”
--- p.75

소라히코의 혼이 히스의 잎에 머무는 걸까? 언제나 가까이 있던 소라히코의 기척을 히스가 기억하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히스가 소라히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소라히코도 식물의 이 힘을 알고 있어서 화분을 길렀겠지.
--- p.85

‘타투 플랜트’와 ‘헤어 플랜트’를 합쳐 ‘스킨 플랜트’라 부르면서, 그것은 유행의 범주를 넘어 일상의 멋내기로 정착했습니다. 손목에 팔찌 같은 넝쿨을 차거나, 배꼽에 피어스처럼 싹을 심거나, 이끼로 눈썹을 디자인하는 순수한 패션으로부터 시작해 뜨거운 여름날 뙤약볕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머리에 토란잎을 우산처럼 키우기도 했습니다. 세일즈맨이 뺨에 미모사를 심어 풀과 함께 인사를 하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 머리에 무순이나 알팔파를 상비하고 수시로 수확해 식탁에 올리는 실용적인 사용법도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급자족’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신의 몸을 영양분으로 기른 식물은 자신의 일부이므로 그것을 먹는 것은 자신을 먹어 자신을 살리는 자가당착일 뿐이며 영양 섭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 머리에 난 풀을 먹으면 되지 않나, 그것은 타인의 인육을 먹는 게 아닌가 등등 논쟁은 끊임없이 들끓었고, ‘도대체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나는 식물인가?’ 하는 철학적인 물음으로까지 번졌습니다.
--- p.89

이 우주 정거장에서 지구가 알록달록한 사람꽃으로 덮이는 광경을 언젠가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바라보는 일은 소소한 행복일 테지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무리겠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행복한 꽃의 아이들이니까요.
--- p.99

간호사는 그렇게 설명하더니 호시노가 입은 연두색 환자복 상의에 손을 쑥 넣고 가슴을 펼쳐 젖꼭지를 꼬집어 돌렸다. 가슴의 피부가 문짝처럼 열렸다. 한가운데 텅 빈 곳에 고사리태엽이 있고, 태엽이 풀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더 안쪽에는 연동하는 꽃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돌고 있다.
--- p.102

볕을 쬐면서 기운이 넘쳐흐르는 걸 실감했다. 몸에 근육이나 지방이 축적되어 가는 것을 여기저기 가려운 것으로 알 수 있었고, 양분을 듬뿍 옮기는 초록빛 유액이 혈관이 아닌 잎맥을 따라 흐르는 기세와 소리를 피부로 느꼈다. 광합성이란 기분 좋은 것이다.
--- p.108

감정에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봄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 p.115

일흔 살이 되어 식물전환수술을 받아도 늦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확실한 식물전환 기술이 확립되어 있을 테지요. 그렇게 되면 함께 너도밤나무가 됩시다!
--- p.119

“난 아직 인간으로 살고 싶어.”
“나도. 아직 인간인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몹쓸 건 아니라고 생각해.”
두 개의 새싹이 된 기코와 미즈토가 웃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 p.133

독말풀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면, 더 이상 멈출 길이 없다. 비틀비틀 다가가게 되고, 짙고 달콤한 향기와 함께 꽃가루를 마시게 된다. 꽃가루가 코의 점막에 붙으면, 독말풀의 나팔 모양 꽃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음악이나 시 낭송 등으로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들린다. 소리가 절정에 이르면 사람은 극도의 행복을 느끼며 죽는다.
--- p.136

인간은 이미 식물을 모시는 쪽이 되었다. 혁명은 이미 이루어졌다.
--- p.142

“이 솔방울의 비늘 하나하나가 신이야. 말하고 보니 신들의 다세대 주택이네.”
--- p.155

하지만 어째서 사람이 벚나무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아진 인간을 나무가 잡아먹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옛날에는 온 지구가 사람으로 넘쳤다고 하니까요. 어떤 생물에게도 가장 가까이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인간이었을 겁니다.
--- p.173

지금 내 몸에서는 벚꽃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겨드랑이 아래, 목 주변, 발가락 사이, 팔꿈치 안쪽에서 초록 싹이 돋습니다. 뿌리가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겠지요. 그때까지 나는 새로운 장소를 정할 생각입니다. 이 공터와는 다른 어딘가에 나를 심겠습니다.
--- p.176

“중고 식물…. 왠지 기분 나쁜 말이네요.”
“새로운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합니다. 낡았는가 새로운가는 시간 차이일 뿐이고, 심지어 식물은 더 커다란 사이클을 반복하며 살기 때문에 어느 때든 커다란 생의 흐름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치로 말하자면, 어느 쪽도 가치는 마찬가지. 아까 가격 이야기와 마찬가지예요.”
--- p.181

씨앗이 튀어나올 때 ‘쟝’ 하고 징글벨을 울리는 봉숭아, ‘딴!’ 하고 피아노 소리를 내거나, 큰북의 합주 소리를 내거나, 세상에 도장 찍는 소리나 스마트폰 알림 소리도 나왔습니다. 꽃이 피는 순간 사방으로 튀듯이 큐우-팡, 하고 파열음을 내는 도라지. 총소리가 나는 나팔 백합. 달빛을 받으면 늑대 소리를 내는 달맞이꽃. 흐드러지게 핀 네모필라 군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쏴아 파도 소리를 옮기는데 마치 말 전하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꽃이 피면 짙은 향기와 함께 깊은 한숨을 쉬어대는 백서향, 분홍 재스민, 금목서. 숨을 불어넣으면 웃음소리를 내며 꽃이 빨갛게 변하는 취부용과 수국. 쭉 뻗은 넝쿨에 바람이 불거나 잎이 부딪힐 때마다 아코디언 같은 풍금의 음색을 연주하는 수세미, 여주, 스위트피와 완두콩 등의 콩과 식물. 라벤더는 방울 소리의 대 합주. 잎이 두꺼운 팔손이는 박수를 쳐서 아무리 복잡한 리듬이라도 새길 수 있습니다.
--- p.193

개발을 진척시키면서 다른 식물과 능력 차이를 발견한 게 난이었습니다. 꽃을 피우는 동안으로 한정되지만, 말을 걸면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 p.199

샤베란에 빠진 사람은 화분을 몇 개씩 사서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상태가 아니면 견딜 수 없어집니다. 말을 걸면 여러 개의 꽃이 제멋대로 대답을 하는 게 기분 좋은 것입니다. (...) 그리고 깨닫습니다. 의사소통 따위 굳이 안 된다 해도 어떻게든 통한다는 걸. 오히려 구체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면 서로 어긋나는 게 분명해져서 용서할 수 없는 기분이 솟아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 p.200

바다에서는 중력과 달의 인력과 바람과 해류 등 여러 힘이 복잡하게 작용해 파도가 솟아오르고 너무 솟아올랐다 싶으면 무너집니다. 거기에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 파도의 메커니즘과 마찬가지로 노래하는 억새가 태어났고 노래하는 억새가 자생하는 평원에서 인간은 조금씩 변화하는 것입니다.
--- p.204

소리가 자라는 거야, 소리 합성이구나!
나는 소름이 돋거나, 그렇게 외칭구. 그 히때, 싹은 눈에 니에무 속도바치 모빌로즉.
아아, 우리는 틀렸구나, 하고 생각이 미쳤습니다. 인간을 벗어나, 이윽고 다른 생명이 되쓰이요누쿠라왁무노샤. 왜일까, 알 수가 마리쿠듸.

--- p.210

출판사 리뷰

호시노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현실의 관념과 규범을 훌쩍 뛰어넘는 실험과 상상으로 가득한 식물소설집


「피서하는 나무」에서 “개와 사람이 나뉘지 않았던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유리오와 나쓰소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개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개(오노농)와 나무(오노나무)와 나무의 씨앗과 꽃과 열매를 퍼뜨리는 사람(유리오와 그의 가족, 나쓰소)은 서로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공식(共食)”으로 연결된 존재들이다. 유리오의 반쪽이었던 오노농이 죽은 뒤 땅에 묻은 자리에 심어 자란 오노나무는 유리오의 감정이 머무는 유일한 곳이 되고, 유리오와 나쓰소는 개의 언어로 둘이서 이야기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비틀즈의 곡 ‘디어 프루던스’에서 영감을 받아 쓴 「디어 프루던스」는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겪은 우리 모두에게 호시노의 유쾌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전하는 위로의 작품이다. 전염병의 시대를 견디기 위해 애벌레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 정원에서 풀을 갉아 먹으며 지내는 예순일곱 아줌마. 고립과 외로움 속에 틀어박힌 옆집 소녀 시리고미짱에게 애벌레 아줌마가 말을 걸기 시작하고, 시리고미짱이 민들레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올라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 필요했던 건 오로지 절박한 상상의 힘. “상상하는 내가 존재하는 한, 항상 똑같은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나는 변화하고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기억하는 밀림」은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히스 언덕으로 떠난 위로 여행에서 만난 소라히코와 나의 이야기.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화분을 하나씩 사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 소라히코, 열 번째 화분은 소라히코 자신의 것이 되고 나는 소라히코의 히스 화분을 가지고 와 히스 밀림을 이루려고 한다. 소라히코의 기억을 축적하고 있는 히스의 초롱 같은 꽃등이 켜질 때마다 소라히코를 출현시켜 줄 것이기에.

「스킨 플랜트」는 호시노의 첫 단편집인 『인간 은행』을 통해 소개되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는데, 번역을 좀 더 다듬어 『식물기』에 재수록한 작품이다. 생식 기능을 포기하고 꽃을 선택함으로써 새롭게 탄생한 인류, ‘행복한 꽃의 아이들, 플라워즈’의 이야기는 즐겁고 기발한 상상력과 읽는 것만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고사리태엽」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식물전환수술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SF소설이다. 식물전환수술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한 호시노(저자와 이름이 같다!)가 식물전환수술을 받은 직후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심장은 유리 디캔터 안에서 뿌리와 잎으로 자라고, 호시노의 가슴 속 텅 빈 공간에는 고사리태엽이 돌아가고 있다. 고사리태엽 아래로는 꽃의 태엽들이 복잡하게 얽혀 도는데... 인간에서 식물로 전환을 감행한 호시노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기발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식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호시노의 이야기 다음 작품은 「식물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전 여자 친구를 설득하는 편지」다. 「고사리태엽」을 읽으면서 일말의 안타까움이나 걱정을 품을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호시노가 마련한 재치 있는 엽편소설이다.

이어지는 두 작품 「인형초」와 「시조 독말풀」은 인간 세계를 향해 반란을 일으키는 식물들을 제압하는 네오 가드너들의 이야기다. “식물의 혼에 감응할 수 있는 신세대 가운데서 극비리에 선발”된 네오 가드너들은 식물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은 식물에게 조종당하거나 식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네오 가드너 리더로서 식물 반란 진압을 훌륭하게 성공시켰던 기코는 식물 쪽으로 돌아선다. “인간으로 있어도 자유의지 따위 환상이고, 뭔가에 조종당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런 것보다 나는 이제 그냥 그곳에 자라는 풀이니까 줄기로 이어져 있는 커다란 풀의 일부야.” 기코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향해 기코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한 게 아니야. 인간이 더 살아남기 위해. 너도 풀이 돼 보면 알 수 있어.”라고. “인간은 이미 식물을 모시는 쪽이 되었다. 혁명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인형초」와 「시조 독말풀」은 식물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선언한다.

「춤추는 소나무」는 새해 기도를 하러 간 신사에서 친구들이 행방불명된 사건을 계기로 호기심을 가진 친구 넷이 사건이 벌어진 신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그 신사의 이름이 ‘춤추는 소나무’라는 뜻의 오도리마쓰 신사.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케일 아주머니’를 통해 “솔방울의 비늘 하나하나가 신이고, 너희 넷도 모두 각각의 신이란다. 모든 게 신이라는 것과 신이 어디에도 없다는 건 어떻게 다를까?”라는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 그들에게 바람의 신이 나타나 모두 함께 빙빙 돌면서 춤추는 소나무와 하나가 되어 가는 이야기는 “영혼의 존재 방식이 다를 뿐” 존재하는 세상 만물이 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모두가 신이라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친구 넷 중 하나인 가사마쓰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서로 협력해서 희망 사항을 이루어 주자는 거야? 모두가 신이란 건 그런 뜻 아니야?”라고.

「벚꽃 낙원」은 벚꽃이 만발한 시절이면 누구나 꽃구경을 갔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나와 미쓰야가 가모가와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벚나무 숲을 만나러 가는 작품이다. 벚나무는 결국 사람의 화신임을 확인하게 된 나는 미쓰야 벚나무에 달린 달콤한 열매를 먹고 그 씨앗을 삼켜 자신의 몸에 벚나무 싹을 틔우고 새로운 장소에 자신을 심겠다고 결심한다. “언제나 사람의 기척으로 일렁이는... 새로운 벚나무 숲의 시작”을 기다리며.

「남은 씨앗-에필로그」에서 호시노는 『식물기』의 핵심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라시야(시든 꽃집이라는 뜻)’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식물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지, 그것을 이야기의 감각으로 재현해 보고 싶었던 작가로서의 속엣말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 전한다.

마지막 작품 「샤베란」은 방울벌레의 울음소리에서 시작해 ‘노래하는 억새’가 탄생하고 뒤이어 등장한 ‘말하는 난초(샤베란)’에게 인간의 말이 잠식당하는 이야기다. “난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버린” 호시노는 “인간의 말은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영원히 쓸 수가 없다.”고 「남은 씨앗-에필로그」에서 고백한 뒤 「샤베란」을 마지막 작품으로 전하는데, 『식물기』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억새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내가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주제넘은 생각이에요. ... 식물은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 덕에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보살피는 것도 아니고요. ... 멋대로 살아 있는데도, 내가 숨을 불어 주면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람이 부는 곳에 내놓으면 음을 연주하죠. 억새의 생각과 관계없이요. 그러니까 나는 단지 바람과 같은 겁니다. 자신이 단순한 바람이라든가 햇볕이라든가 그런 현상과 같은 수준이라고 느끼면, 굉장히 편해져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노래하는 억새는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지구의 환경이라는 힘에 의해 태어났고 그에 의해 땅의 생물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의미가 아니라, 균형의 작용이라는 걸.”

인간이 절대적으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식물에게
소설로 바치는 찬가


「샤베란」에서 호시노가 말하듯이 거대한 자연의 세계에 의미는 없다. 여러 힘들이 이루는 균형의 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의미를 따져 묻고 가치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뇌와 심장을 가진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그런 인간은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자존감이 높아져 있지만, 존재의 근간인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족을 살상한다. 인간이 저지른 폭력은 부메랑이 되어 인간 문명을 위협한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식물은 인간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이 없다면 금세 죽고 말 것인데 과연 인간은 식물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인간이기를 그만두고 식물이 되고 싶다는 호시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인간인 채로 식물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경지를 향한 절박한 호소이고, 『식물기』는 호시노만의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서사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쾌한 유머 코드를 통해 그 절박한 호소를 아름다운 문학의 언어로 만들어 전하는 것이다.

식물기라는 제목에 대하여

이 소설집의 제목을 들으면 『파브르 곤충기』처럼 식물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거나, 식물의 시대를 뜻하는 게 아닐까 짐작할 것이다. 물론 식물의 이야기와 식물의 시대를 알리는 이야기도 이 소설집에 들어 있다. 그러나 실제 제목은 죽은 자를 기리는 의미를 가진 한자 ‘忌’를 쓰고 있다. 일본에는 ‘문학기’라는 것이 있는데, 작가가 죽고 나면 그의 기일에 대표작 이름을 붙여 기리는 것이라고 옮긴이 김석희는 말한다. 그러니 이 소설집의 제목 ‘식물기’는 어느 작가의 기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식물기』 전체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 인물 ‘호시노’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하필이면 ‘호시노’일까, 그 대답은 독자들을 향해 열어두고 싶다고 옮긴이 김석희는 덧붙인다.

저자 호시노 도모유키와 옮긴이 김석희

두 사람의 인연은 십 년이 넘었다. 호시노가 한국에 머물던 시절 알게 된 인연으로 김석희는 그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고, “전자동 상상력과 문학의 깊이”에 매료되어 호시노의 첫 단편집 『인간 은행』을 엮어 옮기기도 했다. 이전에도 호시노의 소설이 출간되기는 했으나, 아마도 『인간 은행』 출간이 호시노의 이름을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식물기』 번역도 기꺼이 맡아 준 김석희는 화가로도 활동하는데, 『식물기』의 표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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