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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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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4 서문
10 “정말 얘기 많이 했십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42 슈퍼스타 정주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74 쇠로 산다 박태준 박태준 포항종합제철 회장
102 달리는 총수(總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130 삼성 뉴 리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58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 ‘삼성 신(新)경영’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84 ‘섬유에서 석유까지’의 선경 최종현 SK그룹 회장
214 ‘양치기 회장’ 신격호의 괴력(怪力)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244 농부로 살아가는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278 “수성(守成)에 성공한 항공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싶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저자 소개 6

192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정주 소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1946년 2월에 월남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인천중학교 교사 등을 거쳤고,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1957년 10월 전역하기까지 8년 6개월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이즈음 많은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1955년 『신세계』에 단편 「귀신」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1957년 단편 「불꽃」이 『문학예술』 신인특집에 당선됨과 동시에 이듬해 제2회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1959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다시 언론계에
192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정주 소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1946년 2월에 월남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인천중학교 교사 등을 거쳤고,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1957년 10월 전역하기까지 8년 6개월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이즈음 많은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1955년 『신세계』에 단편 「귀신」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했고, 1957년 단편 「불꽃」이 『문학예술』 신인특집에 당선됨과 동시에 이듬해 제2회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1959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다시 언론계에 뛰어들었고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1986년 2월 정년 퇴임 때까지 언론계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986년 6월 12일에 뇌일혈로 타계했다. 「테러리스트」(1956), 「오리와 계급장」(1958), 「단독강화」(1959), 「깃발 없는 기수」(1959), 「십자가 없는 골고다」(1965) 등의 중, 단편과 『불꽃』(1959), 『반역』(1963) 등의 작품집, 그리고 『아아 산하(山河)여』(1960), 『사도행전』(1966), 『노다지』(1980) 등 다수의 장편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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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생. MBC 기자, 《조선일보》 월간조선부 기자, 《조선 일보》 사회부장 대우, 서울방송 보도국장, 정부 공보실장, 충북 청원군수 역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잉 어와 꼽추> 당선/저서로 《인터뷰 황제가 되는 길》, 《3김 과 노태우》, 《오효진의 인간탐험》, 《정상을 가는 사람들》 (전3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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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공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그해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공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그해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분사(分社)하면서 (주)월간조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2017년부터 시작한 <조갑제TV>는 한국의 대표적인 유튜브 방송이 되었다. 저서로는 《김대중의 정체(正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朴正熙(전 13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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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淳台

1945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1968년 서울대 중문학과 졸업 후 입대해 1970년 육군 중위로 예편했다. 1971년부터 <국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다. 1981년 한국해운정보센터 차장, 1983년 월간 <마당> 편집장, 1984년 <경향신문> 차장을 거쳤다. 1987년 <월간중앙>으로 옮겨 부장, 부국장, 주간(主幹) 및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2000년부터 <월간조선>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하다 2009년부터는 프리랜서로 집필 활동 중이다. <월간중앙>과 <월간조선>에 김옥균, 최명길, 정도전, 박지원, 정조, 의상, 왕건, 정약용, 류성룡, 이순신
1945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1968년 서울대 중문학과 졸업 후 입대해 1970년 육군 중위로 예편했다. 1971년부터 <국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다. 1981년 한국해운정보센터 차장, 1983년 월간 <마당> 편집장, 1984년 <경향신문> 차장을 거쳤다. 1987년 <월간중앙>으로 옮겨 부장, 부국장, 주간(主幹) 및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2000년부터 <월간조선>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하다 2009년부터는 프리랜서로 집필 활동 중이다.
<월간중앙>과 <월간조선>에 김옥균, 최명길, 정도전, 박지원, 정조, 의상, 왕건, 정약용, 류성룡, 이순신 등 역사인물 연구를 연재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신격호의 비밀(지구촌·1998)》 《김유신-시대와 영웅(까치·1999)》 《麗蒙연합군의 일본정벌(김영사·2007)》 《宋의 눈물(조갑제닷컴·2012)》 《이순신의 절대고독(조갑제닷컴·2014)》 등이 있다.

정순태의 다른 상품

1962년생. 《조선일보》 사회부 · 정치부 기자, 《월간조선》 편 집장, 특임장관실 특임실장, 대통령실 정무비서관, 국회의 장 비서실장,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등 역임.
1973년생으로 서울 신동초-경원중-현대고-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기자생활을 시작, 세계일보 경제부-산업부-문화부를 거쳐 2008년 월간조선에 입사했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정재계 리더들을 취재하며 그들의 기록을 꾸준히 남기고 있다. 2013~2017년 TV조선 정치 패널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월간조선 인터넷뉴스팀장으로 일하며 실시간 뉴스(월간조선 뉴스룸), 유튜브(월간조선TV) 등 새로운 플랫폼 출범을 주도했다. 2023년부터 월간조선 정치팀장으로 재직중이다. 공저로 <여성정치 대전환의 시작>(2022년, 한국여성의정), <거인의 어깨 위에서>(2023
1973년생으로 서울 신동초-경원중-현대고-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기자생활을 시작, 세계일보 경제부-산업부-문화부를 거쳐 2008년 월간조선에 입사했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정재계 리더들을 취재하며 그들의 기록을 꾸준히 남기고 있다. 2013~2017년 TV조선 정치 패널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월간조선 인터넷뉴스팀장으로 일하며 실시간 뉴스(월간조선 뉴스룸), 유튜브(월간조선TV) 등 새로운 플랫폼 출범을 주도했다. 2023년부터 월간조선 정치팀장으로 재직중이다. 공저로 <여성정치 대전환의 시작>(2022년, 한국여성의정), <거인의 어깨 위에서>(2023년, 조선뉴스프레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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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38*194*30mm
ISBN13
9791155784990

출판사 리뷰

지금은 전설이 된 창업주의 육성록(肉聲錄)을 담았다. 한 문장 한 문장 버릴 수 없는 어록들이 담겨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전설의 음성을 어디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 네까짓 게 무슨 반도체냐”

이병철(李秉喆, 1910~1987년) 삼성 창업주가 반도체 기술을 갖기 위해 노력한 세월을 그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거기에 쏟은 고민과 노력, 열정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다음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중 일부다. 아래 글은 『월간조선』 1984년 1월호에 실렸다.

〈이병철: 반도체 산업이 없다는 건, 이거 석유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가부간 이걸 맹글어 봐야겠다, 그것이 경영자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암매, 작년(1982년) 여름이었지.

그걸 하려고 여러 가지로 반도체 산업 실태를, 조사를 해보았는데 구라파는 아주 쇠퇴해서 문제가 안 되고 제일 기술이 발전한 곳이 미국이고, 양산 체제로 제일 이익을 많이 보고 있는 것이 일본이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 교섭을 해봤더니 설계 기술은 낼 수 있다고 해.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안 되제. 기업이 이익을 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양산 기술을 교섭하게 되었습니다. 반도체는 로봇, TV 등에 널리 쓰이는 데 이것을 기초로 해서 제2차, 3차 제품을 맹글지요. 그런데 이것이 모자라서 각종 전자제품 만드는 데 지장이 있습니다. 안 준다고요.〉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기술을 사려고 해도 일본 사람들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도입 교섭도 피했다. 기술을 안 준다는 이야기는 안 하면서 ‘지금 바빠서’라고 자꾸 피했다고 한다.

〈이병철: 지금 바쁘다는 데 언제 끝나느냐, 10년 걸리는가, 20년 걸리는가. 그랬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하는 데 속으로는 한국 네까짓 게 무슨 반도체냐, 냉소하는 것이 비쳐. 환하게 보이더라고. 지는 우리를 무시하고 나는 또 지를 무시한다, 그게 부딪쳤어. 애… 반년 이상 갔제, 아매. 더 적극적으로 나갔지.…〉

이병철 회장은 “대사관에 부탁한다, 일본의 정객(政客)을 동원한다, 각료 회담에 의제로 삼는다, 심지어 정상 회담에까지 정부에서 이 문제를 갖고 논의”했지만 반도체 기술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노력을 하면 길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누가 도와도 도와주는 이가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병철: 일본에 샤프라는 회사를 찾았제. 이 회사는 방침이 기술을 전부 공개하고 다른 데 파는 거예요. 돈 받고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기술을 널리 보급하자는 게 그 회사의 사풍인 겁니다. 기술을 사가지고 간 쪽에서 돈을 벌어야 좋아하고 안 벌면 싫어하는 이상한 회사라….〉

샤프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삼성이 있었을까. 아니 샤프가 없었다면, 또 다른 기업이 삼성을 도왔을지 모른다. 미친 듯이 일하며 방법을 찾다 보면 어떤 기회가 어떤 뜻밖의 도움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왜 그럴까. 왜 위기 때마다 의인(義人)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일까.

한때 사람들은 진화론을 먹이사슬의 관계로 보았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은 진화론으로 보면 ‘포식주의’를 의미한다. 강한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죽는다는 식이다.

그러나 고(故) 이어령(李御寧, 1933~2022년)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인류는 공생(共生), 상생(相生)의 관계로 진화해왔다. 포식에서 기생(寄生)으로, 기생에서 상생으로 문명은 발전해 왔다. 모든 생물은 서로 의존관계에 있으며 이런 의존은 생물학적, 진화론적 전략이다.

첫 쇳물이 쏟아질 때까지 흘린 뜨거운 눈물

『월간조선』 1986년 2월호에 실린 포항제철 박태준(朴泰俊 , 1927~2011) 회장의 인터뷰를 보면 저 포항에 지어진 제철소의 역사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첫 쇳물이 쏟아질 때까지 박태준은 세 번의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야 했다.

포항에서 중합제철의 부지조성 공사가 시작된 건 1968년 6월 15일. 그리고 본격적으로 1기 설비의 공장이 종합착공된 건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1970년 4월 1일이었다.

처음 부지공사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미국·영국·서독·프랑스·이태리 등 5국 8개사가 참여한 대한(對韓) 국제제철차관단(KISA)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해서 포항종합제철을 건설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중략) 그러나 이 KISA의 계획은 이듬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외채상환능력과 제철소의 경제성에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터는 닦고 있는데 공장을 지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낙담한 박태준 회장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일본에 들렀다. 신일본제철의 전신회사들인 야하다의 이나야마(稻山) 사장, 후지의 나카노(永野) 사장, 일본강판의 아카사카(赤坂) 사장 등을 만났다고 한다.

〈박태준: 그분들이 잘 되어가느냐고 묻길래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어떻게 잘 되어 가지 않겠느냐고 짐짓 태연한 답변을 하였지요. 5개국 8개사의 지원을 받을 경우 기술협력 문제, 의사소통 문제, 기술의 일관성 문제 등을 제철업의 대선배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더니. 이구동성으로 공장별 릴레이션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더군요. ‘그러면 이건 가정인데, 일본 그룹에서 공장 건설에 관한 협조요청을 하면 응해줄 수 있겠느냐’고 타진했더니, 고도의 정치적 문제이나, 어떤 면에선 동정도 가고 호의도 간다면서 양국 정부진에 기본적 합의가 된다고 하면 세 분이 같이 해주겠다는 언질을 주더군요.〉

일본 측의 호의적인 반응이 있었다고 해서 제철소가 그냥 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일청구권자금을 쓰려면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서 일본 측을 설득할 일본 제철회사들의 협조각서가 필요했다. 각서를 받기 위해 다시 사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포항 백사장 위에 제철소를 짓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하루에 3시간 잠을 잤으면 많이 잔겁니다”

기초공사 광경을 전부 사진 찍어 가서 “우리가 이런 공장을 짓는데 원료를 좀 미리 파놨다가 달라”고 했지만, 그쪽에선 “당신들을 믿고 막대한 돈을 들여 원료를 파놨다가 안 가져가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면서 포철을 신용하지 않았다. “공기가 6개월이나 1년 늦어지는 게 보통인데 무엇으로 당신들을 믿느냐”는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손해배상 각서까지 쓰고 10년 동안 유리한 조건으로 원료공급 계약을 했다.

막상 박태준이 공사 현장에 가니 공기가 석 달이나 지연돼 있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공기단축 비상령을 내리고 간부사원 전원을 동원해서 공사 감독조를 짜 현장에 투입했다. 그 자신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래펄을 펄펄 뛰며 독려했다.

〈박태준: 비가 올 때 이놈들이 움직이지 않겠지 하고 한밤중에 나가보면 길가에 레미콘 차가 서 있어요. 기사가 다 그 안에서 쿨쿨 자고 있는 거요. 앞차가 서니 뒷차가 서고, 서 있다 보니 졸려서 기사들이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쿨쿨 자고 있는 겁니다. 내가 그걸 돌아다니며 깨웠어요. 공사기간 동안 내가 하루에 3시간 잠을 잤으면 많이 잔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서 이 제철소를 건설했소.〉

“모든 걸 바꿔라”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큰 업적을 남긴 이건희(李健熙, 1942~2020) 삼성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모든 걸 바꿔라”라며 삼성의 질적 성장과 혁신을 선언했다.

올해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선언’ 30주년이 된다. 이 선언 이후 수년간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혁신은 ‘삼성 신(新)경영’으로 불리며 삼성을 국내 1위 기업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이후 삼성은 반도체 등 핵심 사업의 성장세를 이끌어냈고, 신경영 선언은 삼성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삼성 신경영과 급성장의 원동력이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었다는 점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회장은 신경영에 나서면서 전자, 중공업, 금융, 유통, 생활 등 모든 분야를 철저하고 꼼꼼하게 챙겼다.

〈이건희: 세계를 향한 전략을 짜야 돼.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보자고. 세계 1위를 하려면 업(業)의 개념을 잘 연구해야 돼. 반도체건 브라운관이건 전술은 있는데 전략이 없단 말이야. 전략을 세우고 업의 개념을 세우고 설계, 생산성, 인건비, 물류, 데이터분석까지 쭉 해야 돼. 그리고 삼성에서 떼어낼 업종은 뭐냐, 삼성이 더 깊이 들어갈 업종이 뭐냐, 그 업에서 내 위치가 어디냐 이런 걸 완전히 분석을 해야 되고. 그리고 인력은 기초가 있으면 좋겠어.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똑똑한 아이들 골라서 거기(우리 업에) 맞춰가지고 키워야 된다고.〉

“앞으로 우린 된다는 얘기야. 전략만 잘 세우면 된다고."

〈이건희:그리고 내가 늘 얘기하지만 100불짜리를 제발 80불에 팔지 말라는 얘기야. 80불짜리를 80불에 파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덤핑은 하지 말라고. 우리 철칙은 싼 물건은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말라는 거야. 정 하려면 철학이 있는 걸 해야지. 시계로 치면 스와치 같은 거, 플라스틱으로 만들지만 철학이 있는 저렴한 가격이거든. 싸게 많이 판다고 해도 철학이 있는 걸로 하자고. 될 수 있으면 삼성은 그런 건 안 하면 좋겠고. (신경영 선언) 1년쯤 지나니까 (사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앞으로 우린 된다는 얘기야. 전략만 잘 세우면 된다고.〉

〈이건희: 삼성은 삼성다운 걸 하면서 세계 일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야 돼. 이런 큰 전략을 만드는 회의를 일 년에 여섯 번쯤은 해야 돼. 틀만 만들어놓으면 그 방향으로 쭉 가면 되거든.
다들 5년 후 10년 후에는 뭘 할지 걱정은 하고 있나? 각 팀 각 부서에서 매일 걱정해야 돼. 시뮬레이션은 하고 있나?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 아냐? 일본 일류 회사들은 직급별로 내년에 뭘 할지를 다 파악하고 있어. 우리는 사장 중역들도 내년에 뭘 할지 모르고 있단 말이야.〉

『거인의 어깨 위에서』 에 등장하는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김우중 이건희 최종현 신격호 구자경 조양호의 육성록을 읽으니 이들이야 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한 머슴이자 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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