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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일상의 깊이
혁명 반쯤 남은 툭 가을밤 감알 하나 엄니와 고양이 노모(老母) 바람의 경전 불알친구 박씨전 생각 한줌 겉과 속 좋은 하루 참 좋은 하루 좋은 밤 왈(曰) 목련 물의 살점 눈썹과 눈 사이 2부 사랑은 그리움 폭설(暴雪) 그대뿐이다 춘몽 미풍해장국 그러나 벚꽃 7번 국도가 끓는 소리 그저, 안녕 두꺼비집 잊혀지는 것 인과(因果) 내가 사랑한 사람 소월(小月) 고통이 흔한 것처럼 나는 시를 꿈꾸지 않는다 들꽃, 바람에 부치는 편지 안부 시간의 북쪽 해 질 무렵 화장 묘한 질서 3부 스스로 있는 것들 어떤 결심 나비가 죽다 칠 년의 이명(耳鳴) 가을엔 끝 개들의 노하우 개의 탄생 귀를 꺾으며 민들레꽃이 피었다 눈발 말의 반성 완전변태 못 구멍 빗방울 소나타 조용필 직선의 깊이 반추동물 점의 생(生) 지렁이 4부 오후의 깨달음 붓꽃 천천히 뛰는 가슴 무지 왼손 아무것도 아니어서 나누고 싶은 비밀 생각벌레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인다라망(因陀羅網) 범부중생(凡夫衆生) 상선약수(上善藥水) 잘 되지 않는다 꽃밭을 만들어 꽃을 망치지 마라 그늘의 문장 너라는 글자와 너는 얼마나 다른가 나머지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나이 통증 가을소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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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불을 버리려고
툭, 던져 놓았는데 잊어버렸던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의 엄마도 잠들어 있다 웅크린 모양새에 울컥하여 장롱 문을 닫았다 아빠 바보, 아빠 바보 울지 말라고 장롱 너머에서 까르르 웃는다 안과 밖이 이렇게 멀다고 눈물이 말했다 ---「툭」중에서 (전략) 아버지와 식사를 마치고 몇 마디 식은 말들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가 불쑥 둥글게 깎은 감알 하나를 내밀었다 입가심이여 나는 무심코 예, 하였지만 이 무심해질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난감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나 나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중략) 어쩌면 내가 믿는 그것은 본래부터 크기와는 무관하지 않았을까 문밖을 서성이던 모든 말들이 붉은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감알 하나」중에서 (전략) 그 고양이들은 지난봄 막 꽁지깃이 생기기 시작한 병아리들을 잡아먹었고 엄니는 약사에게 독한 쥐약을 달라했다 (중략) 약사는 고양이를 함부로 죽이는 일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그것은 큰일이라 하였고 큰일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하여 빈 손으로 돌아오셨다 뭔가를 해치려는 마음 자체가 상처다 엄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남은 밥에 비린 것들을 더하여 고양이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중략) 바야흐로 그놈이, 그놈이 되어버렸다 (중략) 살진 고양이들이 아지랑이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다 ---「엄니와 고양이」중에서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사랑한다 말해 달라네 저 눈만 봐도 아득한 감옥인데 어떻게 너를 빠져나가랴 ---「폭설(暴雪)」중에서 꿈에 네가 보였다 내 가슴은 뛰었지만 자꾸 아내 생각이 났다 꿈인 줄 알았다면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다 ---「춘몽」중에서 (전략) 너를 향하면 저주가 될 것 같아 누구도 섞이지 않은 나에게 오로지 나에게만 질문을 하였는데 (중략) 그 많은 뒷걸음질이 얼마나 많은 나를 살렸나 별처럼 그대가 깜박거리고 속아준 거짓말이 진실처럼 빛나고 비로소 숨이 트이고 ---「인과(因果)」중에서 (전략) 나의 전부를 주마 헌것도 새것도 아닌 처음의 나를 다오 처음의 내가 생각나질 않아 내가 섞이지 않은 나 처음의 나를 다오 ---「두꺼비집」중에서 볼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어느 날 꺾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심해지기로 했다 ---「어떤 결심」중에서 (전략) 더딘 걸음으로 누이는 멈춰버린 생이라고 주검을 정의했다 나는 누이의 정의에 저것은 존재가 남긴 외피이며 더 큰 자유가 남긴 상징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누이는 슬픔이 많은 사랑이 치유가 된다고 믿었고 존재는 사랑이며 사랑에는 치유가 필요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후략) ---「나비가 죽다」중에서 (전략)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 모든 질문이 울음 속으로 사라졌고 소리가 사라진 암컷의 몸에 나 같은 궁금증 하나를 더 낳았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울음도 죽음도 단숨에 쏟아져 내렸다 왜에 왜에 왜에 왜에 왜… ---「칠 년의 이명(耳鳴)」중에서 가을엔 마음 단단히 먹고 움켜잡았던 것을 놓는다 나였다가 전부였다가 나만 남게 된 나無 가을엔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무너지는 거예요 무너지면 알게 돼요 남은 것도 떠난 것도 나라는 사실 내가 남아 나를 추억하는 일 떠나간 그가 나를 남기는 일 그리하여 드러난 직립 하나라는 나無 ---「가을엔」중에서 (전략) 먹이를 준다 먹이를 주지 않는다 주인을 물면 죽인다 그렇게 누대를 거쳐 야성은 사라지고 개는 결국 주인을 물지 않게 되었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개가 되었다 개의 승리다 ---「개의 탄생」중에서 뭐라도 된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꽃이 찬란하고 아무것도 아니어서 초록의 심연을 함께 했다 뭐라도 된 날엔 그것으로 넘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넘치는 그것마저 좋았다 그게 그것의 자유였다 ---「아무것도 아니어서」중에서 (전략) 모든 잎을 버리고 뿌리만큼 깊어진 가지들이 그늘의 뼈를 더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이 바람으로 흔들립니다 서로를 지우며 사라집니다 수십만 번을 그어도 그대로인 허공처럼 ---「그늘의 문장」중에서 (전략) 모를 일이지 내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몫을 뺀 삶의 나머지가 나인지도 겨우 반올림하여 기어이 넘어가도 맨 끝자리에 불과한 나머지가 나인지도 ---「나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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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은 시를 ‘안과 바깥을 이어주는 거대한 침묵 속에서 떼어낸 아주 작은 것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쓸모를 지닌 것’으로 바라본다. 윤관의 첫 시집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가 꼭 그러하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정황이라는 보편의 바깥을 가로지르는, 윤관의 안쪽에 드리운 특별한 감각은 일상어의 낯선 구성과 문장의 극적인 배열을 통해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고, 안쪽에서 자란 깊은 사유는 내밀한 감정의 소요를 치밀한 관찰을 통해 시세계에 담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쓸모의 다리를 놓아준다. 그런데 이는 윤관만의 것은 아니다.
윤관의 시에 흐르는 뚜렷한 정서이긴 하지만, 무릇 시인이라면 마땅히 발현하는 ‘문학’의 방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윤관을 읽어야 하는지, 왜 윤관을 시인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시정신을 ‘배제의 존재’에서 찾고자 한다. ‘윤관은 일기 쓰듯 시를 쓴다’는 최돈선 시인의 추천사에도 불구하고, 윤관의 시가 일기가 아닌 것은 바로 배제의 존재라는 시정신이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적 자아로부터 떠오르는 모든 것을 하나씩 배제해 간다. 가족, 욕망, 사랑, 이별, 우정, 찰나의 감각, 바람, 커피…. 이 배제하는 과정이 시로 태어나고, 결국 모든 걸 다 배제하고 난 나머지는, 무한한 우주 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존재로서 윤관 자신이다. ‘잊혀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 지고 알았다’ _「잊혀지는 것」 중에서 ‘꿈을 꾸었다 / 내가 깨끗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_「완전변태」 중에서 그리고 기어이 그러한 자신조차 ‘내가 섞이지 않도록’ 처음의 내가 되고자 무(無)를 향한 갈망을 쉬지 않고 염원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이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가 된 것이다. ‘두껍아, 두껍아 / 한꺼번에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어둠처럼 / 나의 전부를 주마 / 헌것도 새것도 아닌 / 처음의 나를 다오 // 처음의 내가 생각나질 않아 / 내가 섞이지 않은 나 / 처음의 나를 다오’ _「두꺼비집」 중에서 ‘가라앉은 그대의 속눈썹을 타고 / 깊게 깊게 들어가야지 / 더 이상 내가 / 나를 만들지 못하게’ _「눈썹과 눈 사이」 중에서 ‘마음 단단히 먹고 / 움켜잡았던 것을 놓는다 / 나였다가 전부였다가 / 나만 남게 된 / 나無’ _「가을엔」 중에서 이제 그는 ‘나조차 섞이지 않는 나’의 시선으로 우주를 둘러본다. 온통 귀하고 귀하다. 내 아내, 내 아이, 내 어미, 내 아비 그들의 작은 마음조차 귀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것이다. 이십 년 노래하고 1집 가수가 된 김성호, 부적보다 마음을 잘 쓰라는 무당 이종규, 노가다 김학삼은 물론이고, 약수터 돌무덤을 무너뜨리는 기독교인들까지 귀하다. ‘당신이나 나나 먼 데서 오는 / 우리가 모르는 그것이 아니라 / 바로 당신 앞에 서 있는 내가 /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이 / 전부라고 말해 주고 싶다’ _「나는 시를 꿈꾸지 않는다」 중에서 이 모든 것이 전우주의 나머지인 나의 밖에 있는 것이고, 결국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를 제외한 우주의 모든 것이기에 그 존재 자체로 귀한 것이다. 모두 한 번뿐인 것들이기에. ‘삶은 한 번뿐이고 / 순식간에 / 사라진다고’ _「바람의 경전」 중에서 나를 제외한 전체와 전체에서 배제된 나, 전체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바로 인연. 윤관은 아무리 소소하다 하더라도 인연을 깊이 바라본다.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리움조차, 여전한 갈등조차 인연의 마음으로 깊이 바라본다. 거기서 오래도록 성숙한 깨달음이 연꽃처럼 환하게 떠오른다. 윤관에게 인연은 바로 안과 밖을 이어주는 것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쓸모인데, 그의 시가 바로 윤관의 내면과 세상을 이어주는 인연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하루」에서 반전을 만난다. 윤관의 시가 쉽게 읽힌다는, 또는 반면에 깊은 사유와 깨달음 담은 시라는 양쪽의 편견을 불식한다. 개성 있는 시어, 반짝이는 문장을 넘어, 글이 흐르는 리듬과 사유의 충돌이 빚어내는 말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시간은 늘 흐르고 / 멈춘 채 흔들린다, 나는 / 깊어지는 고요를 감당할 수 없어 / 입자 고운 커피를 내리고 / 그대에게 편지를 / 그 편지는 기억이 겪어야 하는 미래 / 당신은 과거를 찢어내고 있겠지’ _「좋은 하루」 중에서 자칫 길을 잃을 것 같은 현란한 사유의 행보 속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감각의 향연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시를 지었을까 싶은 순간에 물 흐르듯 흐르는 언어의 리듬으로 속도감을 부여하고, 과감한 생략으로 시적 엇박자를 부여하며 흥미를 이끈다. 한 연으로 구성한 시 속에 이 엇박자를 배치한 것 자체가 뛰어나다. 시라는 것이 어떤 문법에 의해 구축된 의미의 완성이라기보다 시적 미학의 구체적이고 정교한 표현이라고 했을 때, 독자로 하여금 추상과 구상 사이의 절묘한 긴장을 체험하게 하는 이 감각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시적 자아로서 부끄러움 뒤에 숨는 윤관은 실제로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좋은 하루」에서 슬쩍 자신감을 드러내는데, 사실 시집 곳곳에 자존의 자락을 안개처럼 깔아놓았다. ‘다만 내가 좋아 나를 쫓았고 / 내가 쓴 나는 /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아 / 누군가를 속일 일도 사라져갔다’ _「생각벌레」 중에서 ‘말이나 글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으며 / 표현하지 못한 것들의 서러움이 밀려온다’ _「나는 시를 꿈꾸지 않는다」 중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힘을 가진, 그리고 오래도록 생각의 층위를 다지며 사유와 실천의 인연을 이어온 자의 당당함이다. 그의 생각 어느 하나라도 순간적으로 떠오른 게 아니다. 오래오래 익은 것들이다. 윤관은 그 무르익은 것들이 썩어서 그 어떤 사소한 것의 거름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많은 뒷걸음질이 얼마나 많은 나를 살렸나 / 별처럼 그대가 깜박거리고 / 속아준 거짓말이 진실처럼 빛나고 / 비로소 숨이 트이고’ _「인과(因果)」 중에서 우리가 윤관을 시인이라 부를 때, 그것은 진실이 되고, 숨이 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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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공감입니다. 공감하는 시는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뒤적이게 합니다. 윤관은 일기 쓰듯이 시를 썼습니다. 담담했습니다. 마치 이야기 일기를 읽는 듯하였습니다. 깔끔한 그의 시를 읽으면 산골짜기 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 납니다. 자연을 응시하는 윤관의 눈엔 자연의 이치와 소소한 일상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것들이 화두로서 우주적 물음을 던집니다. 참으로 깊은 마음입니다. 이런 시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윤관의 시를 읽으면 저는 누군지도 모를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 최돈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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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진정은 시인의 의무이겠지만 그 길에서 실족하지 않기 참 어렵다. 시인 윤관은 시인의 자세를 타고났다. 절대로 허튼 길을 걷지 않는다. 바르고 곧은 언어는 세상의 때를 입지 않은 것이다. 시인 윤관이 베푸는 높고 낮은 음성은 이 나쁜 시대에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귀한 시인이 나왔다. - 류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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