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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
Miriam To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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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남아서 싸울 것인가, 떠날 것인가 가해자들이 돌아오면, 몰로치나의 여자들에게는 이들을 용서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모두 다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만약 여자들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피터스는 말했다. 여자들은 바깥세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도. 여자들이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서 정리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_21쪽 고립된 메노파 공동체인 몰로치나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은 언젠가부터 몽롱한 머리에 피 흘리는 몸으로, 강간당해 아이를 밴 상태로 깨어난다. 그러나 이 끔찍한 폭행은 귀신과 악마의 소행이자 여자들이 몰래 벌인 죄에 대한 벌이라고 간주되며 공동체의 주교 피터스 또한 모든 일이 “여자들의 터무니없는 상상”일 뿐이라며 외면한다. 마침내 이 마을의 남자 여덟 명이 동물용 마취제를 사용해 여자들의 의식을 잃게 한 후 벌인 일이라는 게 밝혀진다. 주교를 비롯한 마을의 원로들은 가해자들을 용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단 이유로 여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다른 남자들은 체포된 가해자들을 풀어주기 위해 보석금을 내러 전부 도시로 떠난다. 그렇게 여자들은 폭력으로 쌓아 올린 공동체의 잔혹한 진실을 직면한다. 여태 살아온 방식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 이들은 남자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앞으로의 행로를 결정해야 한다. 선택지는 세 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남아서 싸우기, 떠나기.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장 생생하고 아름다운 기록 이 소설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메노파 공동체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 자신이 메노파 공동체 출신이었던 작가는 언젠가 이 일에 관해 써야 한다는 부채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생애 처음 자기결정에 이르기 위해 헛간에 모인 여자들의 치열한 논쟁은 비밀 회의록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전개된다. 논쟁의 주제는 마을을 떠나는 경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부터 믿음, 책임, 사랑, 권력, 죄책감, 용서에 관한 심오하고 논쟁적인 화두까지 다채롭게 뻗어나간다. 여자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의문들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에게 묻는다. 가해자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억지로 하는 용서는 더 큰 죄가 아닐까? 아이들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 떠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반하는 일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 이미 공동체의 규범을 익힌 소년들을 믿을 수 있을까? 여자들의 믿음 자체가 누군가의 해석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게다가 우리는 어쨌든 남자들을 용서해야만 해. 신께 용서를 구하고 천국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려면 말이야.” 마리케가 말했다. “하지만 억지로 한 용서가 진정한 용서일까?” 오나 프리센이 물었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건 용서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 아닌가? _49쪽 괴리되고 분열하는 오늘날의 세계가 응축된 이야기 그러나 메노파 신자 여성들이 집단 강간을 용인한 그들의 공동체를 떠날지 남아서 싸울지를 논의한 기록인 이 책을 천천히 넘기는 동안, 우리 사이의 거리는 훌쩍 좁혀졌다. 그들이 당하는 이례적 폭력에 나머지 세계의 일반 모순이 증류된 형태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_김혜리(〈씨네21〉 편집위원) 이들의 질문과 논쟁 과정에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와 그 해결에 관한 논쟁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로 인한 괴리와 대립은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다. 예컨대 여자들은 공동체의 폭력적인 규범에 익숙해진 남자들을 다시 교육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첨예한 토론을 벌인다. “모든 사안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개척하는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소설”이라는 감독 세라 폴리의 표현처럼, 나이도 성향도 제각각인 여자들은 현재 우리가 지닐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대변하며 모든 논의가 간단히 봉합되지 않는다는 것,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상호 되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속 여자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우리 사회의 “공동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미지의 것에 대한 희망이 익숙한 것에 대한 증오보다 나아.” 듣고 말하고 상상하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더 나은 세계라는 가능성 미리엄 테이브스는 이 소설이 “실제 사건들에 대한 소설적 대응이자 여성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라고 썼다. 이는 잔혹한 범죄를 통해 드러난 공동체의 폭력적인 구조에 대한 자각을 그저 “터무니없는 여성의 상상”이라고 치부하는 세계에 대해 여성의 상상을 통해 쓴 소설로서 대응하는 것이다. 나아가 작가는 듣고 말하고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더 나은 세계라는 가능성에 참여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유일한 남성 동료 아우구스트가 그랬듯이, 다채로운 목소리들의 불협화음에 귀 기울여 받아 적는 것, 기존의 언어로부터 배제된 목소리를 생생하게 복원하여 세상에 다시 펼쳐놓는 것, 그리고 함께 웃는 것이. 『위민 토킹』은 강요된 침묵을 깨고 발화하기 시작한 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러한 행위들이 변화를 향한 작은 불꽃이 될 수 있음을 강렬하고 아름답게 증언한다. “우리는 목소리 없는 여자들이야.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도 붕 뜬 존재이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나라 말도 하지 못해. 우리는 고국이 없는 메노파 신자들이야.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몰로치나의 동물들조차 제 보금자리에서 우리 여자들보다는 안전하게 살고 있어. 우리 여자들이 가진 건 우리가 꾸는 꿈뿐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는 몽상가들이야.” _91쪽 추천의 말 미리엄 테이브스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들에게 언제나 자유를 선사할 길을 찾아내는 탈출의 예술가다. _〈뉴요커〉 이 엄혹한 걸작은 시의적절하게 정의와 힘이란 개념을 예리하면서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_〈에스콰이어〉 신랄하며 자유분방한 풍자 소설. 『위민 토킹』은 악의 본성, 자유의지, 공동체의 책임, 문화와 인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질문하며, 무엇보다 용서를 대해 이야기한다. _〈뉴욕 타임스〉 『위민 토킹』처럼 작가가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이 자란 공동체의 근본주의와 위선을 정확하게 겨냥해서 쓴 소설은 없었다. 테이브스 특유의 반항적인 재치가 빛을 발해 비뚤어진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_〈뉴욕 타임스〉 부드럽고, 분노하게 하며, 씁쓸한 재치가 넘친다._〈타임스〉 날카롭고 파괴적이다. 여성의 집단적 목소리의 힘에 대한 강렬한 증거. _〈버즈피드〉 믿기 힘든 이야기. 여기 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고양되면서 기이한 희망을 품게 된다. _〈뉴스데이〉 고통스럽지만, 독자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뿐더러 기이하게 아름다운 보석 같은 소설이다. 수많은 #미투에 힘입어 의의가 큰 작품이기도 하다. 복잡한 관계로 빚어진 여자들의 개성이 생생하게 표현됐다. _〈보스턴 글로브〉 믿음, 고통, 권력, 용서가 골치 아프게 뒤섞인 놀라운 소설인 『위민 토킹』은 무시할 수도 없고 쉽게 잊어서도 안 되는 여성의 고통과 격노에 천둥 같은 목소리를 부여한다. _〈버슬〉 폭행 이후 여성들의 선택지 하나하나는 암울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테이브스는 여성들에게 전반적인 맥락과 미묘한 뉘앙스에서 유머 감각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있을지는 모르지만, 웃음으로 화합하는 여성의 오랜 전통을 이어간다. -〈타임〉 미리엄 테이브스는 회의록이라는 이야기 장치를 지극히 효과적으로 사용해, 『앵무새 죽이기』 수준의 법정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_〈뉴욕 저널 오브 북스〉 최근에 읽은 것 중 가장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_〈일렉트릭 리터러쳐〉 『위민 토킹』은 미리엄 테이브스의 여러 재능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테이브스는 절박하고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여자들에게 장엄함과 자기성찰을 부여하는 동시에 풍부한 유머와 경쾌함을 이 작품에 쏟아부었다. _〈제즈벨〉 우리를 무명의 사람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들의 생존이 우리의 생존인 것처럼, 중요하고 위태롭게 느끼게 만든다. _〈워싱턴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