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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 바꾸기
양장
김지승
낮은산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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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잡았다가 잡히는 우리의 세계 속에서] 김지승의 신작 산문집. 사물에 깃든 기억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며 빚어내는 이야기들은 삶과 삶을 가로질렀다가, 우리 사회의 ‘타자들‘에 이른다. 우연이 빚어낸 유연한 글쓰기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으며 낯설었다가 다정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산문집. - 에세이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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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의자_움직이는 여성성의 거처
모빌_연결이 균형이 되는 감각
수건_기억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항상 술래였다
가위_서로를 벨 수 없는 두 개의 칼날
모래시계_이야기의 시간
단추_불안을 여미는 방식
돌_아무리 울어도 깨지지 않는
비누_우리가 ‘우리’ 밖으로 씻겨 내려가
가발_어디까지가 나인가
지도_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안경_어느 날 눈을 벗을 때
백지_바람과 바람이 만나는 공간
비석_쇠락과 쇄락 사이
설탕과 얼음_부재라는 강력한 존재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경계 안팎의 유동적 위치성을 체현하는 작가이자 독립연구자. 문학,문화이론,정신분석학을 공부했고 비영리단체 사업 기획 및 매체 업무를 통해 다양한 삶들을 만났다.현재 제도 밖에서 여성적 읽기-쓰기의 공간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아픈 몸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어쩔 수 없이) 탐색 중이다. 불편과 불안을 지탱하는 언어에 관심이 많다.저서로 『100세 수업』, 『아무튼,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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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64g | 117*188*20mm
ISBN13
9791155251669

책 속으로

“K가 누군데?”
“네 앞자리.”
“쟤야. 얼굴 잘 봐 둬. 헷갈리면 안 돼.”
“왜?”
내 질문에 그들은 내 뒤에서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일제히 어떤 힘을 좇는 것처럼. 내가 뒤돌아 물었다.
“넌 아니? 왜 K가 술래인 거야?”
반장으로 불리던 그 애는 더없이 모범적인 표정으로 내게 너무 애쓰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수건」중에서

“여기 두 칼날이 교차하는 부분을 고정하는 얘, 이름 알아요?”
“사북요.”
“이거 아는 사람 잘 없던데. 어떻게 알았어요?”
“엄마한테 들었어요.”
사북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북이 잘 고정되어야 두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칠 뿐 서로를 베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니까 어떤 엄마와 딸은 사북을 잃거나 애초에 갖지 못한 가위의 양날이었던 건 아닐까.
---「가위」중에서

그때 사우나실 한가운데에 앉은 몸이 탁, 하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 소리로, 정확히는 그 행위로 사우나실의 기류가 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 포함 사우나실을 꽉 채운 여덟 명의 시선을 한 번에 집중시킨 모래시계의 권력자, 옥상집 형님이라 불리는 그가 모래시계를 뒤집자 무슨 큐 사인을 받은 것처럼 몸들이 차례차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제 미미슈퍼 앓아누운 게 그 여자가 다녀가고 나서란 거잖아요, 형님?”
웬만해서는 외면할 수 없는 도입부였다.
---「모래시계」중에서

다시 메두사 이야기로 돌아오자. 낯선 세계에서 돌 만드는 여자였던 메두사의 이름이 여성노인들 입에서 정확하게 불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연필로 또박또박 쓰기도 하고, 구불구불 뱀 머리를 살려 그리기도 했다. 이해도는 그 이상이었다.
“메두사도 사연이 기구했네.”
“나이가 많나?”
“아니 왜 내가 참고 참다가 죽기 살기로 빽! 소리 지르니까 영감이 돌처럼 굳어가지고…… (웃음) 대충 비슷한 거 아니겄어?
---「돌」중에서

“차갑고 귀찮은 거네.”
본다는 건 차갑고 귀찮아지는 일이기도 하다고, 점점 윤곽이 흐려지고 곧 사라질지 모를 누군가의 얼굴 앞에서 굳이 모질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살아가도 괜찮다고, 미선 씨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기어이 들렸다.
---「안경」중에서

그 시절에는 어떻게 사람을 찾았을까? 신주쿠의 흔한 비즈니스호텔 방에서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간혹 상상해 보곤 한다. 세 살 때 헤어졌다고 했으니 35년 만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들과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않고 침대 위로 하얗고 두툼한 봉투를 툭, 던지듯 내려놓더라 했다. 이것 때문에 굳이 나를 찾은 게 아니냐 되묻듯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낮게 하는 말들을 들으며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말과 말 사이,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다. 잠든 척에 능했던 여섯 살쯤, 신체 어딘가가 찢기는 슬픔이 내게 전해졌다. 누군가의 슬픔을 알게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백지」중에서

그곳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이누이트’라고 칭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이누이트. 노인이 그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군요. 사람. 녹아 사라진 얼음 같은 그 이름들을 향해 가고 있다. 다 녹기 전에, 늦기 전에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설탕과 얼음」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물이 세계를 품었다 뱉는 아주 우연한 순간,
당신과 나의 자리가 바뀌는 찰나

“이제 당신들이 술래다!”

시치미, 침묵, 거짓말과 과잉으로 빚어낸
‘김지승이라는 장르’의 마술적 글쓰기


연필을 향한 애호의 마음을 “잘 부서지는 존재”들에 포갠 『아무튼, 연필』, 아픈 몸의 여성이 언어를 입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을 내밀하게 써내려간 『짐승일기』의 저자 김지승이 이번엔 사물들이 토해내는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술래 바꾸기』는 사물에 깃든 기억을 술래처럼 찾아다니며 “하나의 사물이 세계를 품었다 뱉는 아주 우연한 순간에” 흘러나온 이야기를 밀도 높은 사유와 위트로 꿰어낸 산문집이다. 의자. 모빌. 수건. 가위. 모래시계. 단추. 돌. 비누. 가발. 지도. 안경. 백지. 비석. 설탕과 얼음. 저자는 사물들이 연결되고 분열되다가 결국 각각 동등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그리하여 세계가 잠시 오작동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 삶에서 저 삶으로, 이 존재를 저 존재로, 이 시선에서 저 시선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위계와 이분법에 균열을 내는 유쾌한 시도.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치미, 침묵, 거짓말과 과잉”으로 빚어낸 마술적 글쓰기는 우리 자신이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이 세계 역시 단일한 무엇이 아님을 매혹적으로 펼쳐낸다.

“사실만으로는 그러니까 시치미, 침묵, 거짓말과 과잉 없이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문제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모빌을 어떻게 시치미, 침묵, 거짓말과 과잉 안에 고정하여 담을 것인가였다. 우선 시치미 뚝 떼고 입 싹 닫고 모르는 척 거짓말을 시도해 보기로 하자.”
- 〈모빌〉에서

내가 룰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켜진 순간,
아주 잠깐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수건〉이라는 글에서 시간차를 두고 술래가 되었던 두 개의 경험을 병치하며 김지승은 이 세계에서 누가 술래이며 술래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 수건돌리기의 술래는 언제나 K라는 아이이다. ‘술래’가 한 사람으로 고정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힘의 흐름”이 개입된다는 사실을 ‘나’는 자연스럽게 간파하게 된다. 전학생의 규칙으로 놀이를 해보자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딱 한 번 돌아가며 술래를 했던 날, 아주 잠깐 세계는 다정해진다.

“돌아가며 술래를 하는 것. 내게는 그게 수건돌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룰이었다. 그때가 내가 룰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켜진 거의 유일한 순간이었다. 아주 잠깐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 〈수건〉에서

하지만, 곧 K가 전학을 가고 힘의 흐름은 좀 더 잔인한 쪽으로 바뀌어 K를 대신해 ‘내’가 졸업 전까지 술래가 된다. 그곳을 떠난 지 오랜 후 “K와 내가 차례로 술래였던 그 도시에” 가려던 ‘나’는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낯선 고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노인들 틈에 휩쓸려 엉겁결에 얼굴도 모르는 치매 노인을 찾아다니게 된다. 여성노인들과 ‘공동 술래’가 된 셈이다. 수건돌리기에서 맡았던 술래와 사라진 노인을 찾는 술래, 두 술래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술래는 주체일까, 타자일까?”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 독자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장이다. 술래는 숨는 사람을 찾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숨고 피하는 ‘타자’이기도 하다. 자기 의자를 들고 다니고, 돌을 만들고,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비석을 밟고 선 여자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술래의 정체성을 허물고 해체하며 이 세계의 규칙과 질서를 재조립한다. “술래 바꾸기”는 “돌아가며 술래를 하는” 룰의 필요는 물론이고 ‘술래’의 의미를 교란하는 가능성까지 담은 중의적 메타포인 셈이다.

술래여도, 술래 아니어도 재밌는
시적이고 윤리적인 관계 맺기


상실과 소멸,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응시는 여전하지만 『술래 바꾸기』에 이르러 김지승의 시선은 한층 더 확장된 듯 보인다. 저자가 선언하듯 밝힌 대로 “이 책에 관해서라면 타자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꿈과 현실,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가로질러 도착하는 장소는 노인, 외국인, 미혼모, 왕따, 차학경, 메두사 등등 ‘타자들’이다. 특히 이 책에 가장 많이 할애한 타자는 김지승이 글쓰기 수업 및 인터뷰로 만나온 ‘여성노인’들인데, “직선의, 인과적인, 정량화된 시간선상”에서 벗어난 이들이야말로 술래 바꾸기의 명수들이다. 여성노인들의 명랑한 촌철살인은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들조차 낯설게 만드는 동시에, 객채화된 존재, 사물화된 존재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세우고 연결하며 끝내 회복시킨다. 몸을 낮추고 누군가의 중요한 무언가를 함께 찾고(〈단추〉), 아무리 울어도 안 깨지는 돌 같은 거 “애기들 맘에는” 안 쌓이기를 기원하고(〈돌〉), 안경을 쓰는 대신 타인의 실수를 못 본 척하는(〈안경〉) 여성노인들을 통해 독자들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는 일에 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고 유동적인 몸으로 비인간, 사물과 만난다. 내게는 몇몇 여성노인들이 그런 존재로 남았다. 한 사람이 술래를 오래 한다 싶으면 일부러 잡히거나 들켜 주는 것도 그들이었다. 술래는 잡으러 다니며 재밌고, 술래 아니면 잡힐까 봐 두근두근 재밌고.”
- 〈에필로그〉에서

추천평

김지승 덕분에 나이 듦이 기다려진다. ‘쇠락’과 ‘쇄락’이 가깝듯이 당신과 내가 가깝고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 양효실 (여성학자)
페이지를 펼치면 닿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다정하고 안전한 품. - 유진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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