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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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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말씀
추천사_이제는 참으로 물을 수 있다는 안도감
옮긴이의 말_이 책과 저자에 대하여
저자 서문

제1장 담장과 이웃: 초기 유대교에 관한 몇 가지 윤곽
제2장 비교에는 주술이 살고 있다
제3장 성스러운 지속(持續):경전의 재(再)서술을 위하여
제4장 의례의 벌거벗은 사실
제5장 알려지지 않은 신: 역사 안에서의 신화
제6장 값비싼 진주와 한 바리의 dia: 상황적 부정합성에서의 한 연구
제7장 존스 씨 안에 있는 악마

부록
후주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조너선 스미스(Jonathan Z. Smith)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오 앤더슨 인문학 석좌교수(Robert O. Anderson 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 1975년부터 시카고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대종교학의 흐름을 이끄는 통찰력 넘치는 글을 발표해왔다. 그의 연구 분야는 방대하여, 의례이론, 헬레니즘 종교, 마오리족 의례, 그리고 존스타운의 인민사원 사건 등을 포괄한다. 그가 종교연구에서 강조하는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종교 이론의 중요성, 둘째는 교육의 중시, 셋째는 공공 담론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다. 특히 그는 학부 교육 및 인문학 커리큘럼이 대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끊임없이 강조한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자라나, 펜실베이니아 주 하버포드 대학을 나왔고,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처음 보기에 서로 관련이 없는 현상이나 자료를 심도 있는 연구로 서로 연결시켜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계에서 종교연구 방법론과 비교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그의 공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인 이 책에 버금가는 것은 최근에 나온 ≪종교 연결하기≫(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2004)이다.
역자 : 장석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비평학회 회장. 옥랑문화재단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관심 분야는 한국의 근대 종교,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 몸 인식의 변화 등. 2010-2011년 독일 루어대학의 펠로우. 최근 쓴 글로 〈종교와 동물, 그 연결점의 자리〉(2012), 〈‘종교’를 묻는 까닭과 그 질문의 역사: 그들의 물음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2012), 〈일제시대 종교 개념의 편성〉(2013), 〈한국에서 종교-세속 이분법의 형성〉(2013)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35g | 152*223*30mm
ISBN13
9788972784210

출판사 리뷰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서문에 등장하는 “인간,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구인이 종교(religion)를 상상해 온 것은 지난 몇 세기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문장, 그리고 바로 이어서 던지는 다음과 같은 주장일 것이다.

“종교 그 자체에 해당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단지 학자들의 연구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종교는 분석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학자가 비교와 일반화라는 상상적 행위를 하면서 창출된 것이다. 종교는 학문세계를 떠나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조너선 스미스의 이런 주장은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학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커다란 자리만큼이나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저절로 제기된다. 종교의 역사를 다루는 모든 개론서에서 종교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하여 심지어 구석기 시대에도 종교가 존재하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호모 렐리기오수스” (Homo religiosus)라고 널리 알려진 말은 이미 인간의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종교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저자는 서문을 쓴지 6년이 지난 후 발표된 논문에서 좀 더 부연 설명한다. 그는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 그리고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와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것이 경험적인 범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종교라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총칭하는 이차적인 추상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고향(home)이란 항상 누군가의 고향일 뿐이지, 절대적이고 일반화된 고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버트 핑가레트(Herbert Fingarette)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구체적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을 종교라는 범주로 포괄하고 그 안에서 온갖 구분을 하는 것이 바로 연구자 집단이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라는 것은 “문화”나 “언어”처럼 만들어진 범주이며, 연구를 위해 기능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개념을 판단할 때에는 단지 그것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유용한가에 달려있다. 이런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천문대를 방문한 어느 귀족부인과 다를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녀는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많은 별을 보고 난 다음에 이렇게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놀랍군요! 과학자들은 어떻게 저 많은 별의 이름을 발견했을까요?”
물론 지금까지도 스미스의 이런 주장을 두고 계속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학문의 영역 이외에 선교사, 상인, 식민지 관리 등이 종교 개념의 형성에 기여한 바를 그가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 개념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났으며, 일정한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
종교연구가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해서도 남다른 열정을 지닌 조너선 Z. 스미스의 이 책은 논문 한편 한편마다 잘 다듬어진 보석과 같은 글들로 이루어졌으며, 종교학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진지한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깊이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추천평

이 책은 종교를 탐구하는 학술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는 조너선 스미스의 발언은 이른바 ‘학문’이든 ‘종교’든,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듣는 한 마치 성상파괴가 자행되고 있다고 짐작할 만한 그러한 것으로 독자에게 전해질 수 있다. 학문도 종교도 모두 ‘파괴’된다고 느낄 만한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종교의 ‘본질’을 진지하게 ‘학문적 전통’에 따라 성실하게 추구하는 학자라면 더욱 또는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한 반응은 자연스럽다. 저자는 종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실재란 없으며, 있는 것은 다만 학자의 상상력이 빚은 ‘종교’라는 것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울 지어 특권을 부여할 어떤 사물도 없다고 하는 저자의 발언에서 혹자는 쾌재를 부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종교를 상상하기를 요청하는 간곡한 권유는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종교적 도그마나 학문적 권위의 질식할 것 같은 공간에서 마침내 자유로운 호흡을 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도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답에 이른 물음’의 견고한 전승 속에서 그것을 학습할 뿐 그 물음을 되물을 수 있는 어떤 자유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실한 정통적인 학도들이 종교와 학문의 붕괴를 지레 예상하면서 이 책에 담긴 발언들에 대한 경각심을 방어적으로 강화할 필요는 없다. 그는 사물을 상상하기, 곧 종교를 상상하는 일은 종교에 대한 인식을 고양하기 위한 것임을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종교인식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의도하는 계기에서 그러한 상상하기가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도 길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은 그가 조금도 ‘전통적인 학문의 풍토’에서 일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실한 정통적인 학도들의 그만큼 성실한 우군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스스로 정직하게 자기 물음을 물어도 탓하지 않는 우군을 얻었다고 감동하는 ‘변두리 학도’들이 그를 반기는 일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상상이 허공을 노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상의 주체가 상상한다는 자의식을 간과할 수도 없다면 그 현실에서 우리가 인식을 위한 사물을 선택하는 일, 곧 종교라는 자료의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그때 선택이 수반해야 할 조건은 그 사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 사물을 상상하는데서 말미암을 이론, 패러다임, 근본적인 문제, 핵심요소를 마련해 내는 일, 그리고 그 사례가 적합성을 지니고 그러한 결과물들과 이어져있는지를 다른 것과 관련하여 견주는 일들이다, 저자는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요청이 역설적으로 상상을 저해하는 일은 없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에 담긴 그의 발언이 이 두 자리의 딜레마를 ‘넉넉하게’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뜻밖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서둘러 짐작한 첨예한 긴장과는 달리 ‘종교에 학문적으로 다가서는 일’에서 갈등하던 제각기의 자리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에 서는 자기 발견의 ‘안도’를 겪는다. 그러나 그 안도는 인식의 완성에 이르렀다는 사실 때문에 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참으로 물을 수 있다는 정직성의 회복을 확인하는 데서 이는 안도이다.
이 책은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 유려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독자든 이 책을 읽으면 이제까지 스스로 익숙했던 ‘버릇’을 벗어나 낯선 ‘인식을 위한 모험’을 감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이른바 기존의 인식을 축적하는 데 바빴던 학도가 아니고, 종교를 참으로 묻고자 고뇌한 학도라면 이보다 더 읽기 쉬운 저술도 흔하지 않다. ‘임금님은 발가벗었다’는 외침의 여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 책의 역간은 한국의 종교학도뿐만 아니라 학문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역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정진홍(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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