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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들어가는 글 1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 1. 용두동과 상계동에서의 성장 과정 2. 어려운 집안의 ‘귀한 아들’ 3. 아주대 공대 입학 2장 아주대 탈춤반 활동과 기청연합팀 활동 1. 아주대 탈춤반 참여 1) 탈춤반 활동 2) 학습과 의식의 전환 3) 1979년 10월 첫 탈춤 공연 4) 1979년 10?6 사태 2. 기청연합팀: ‘진영’ 활동 1)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새문안교회 연좌 농성 2) 민주노조에 탈춤반을 만들다 [내가 만난 이훈구] 민경서, 유영란 3장 노동현장 투신과 인천지역 정치서클 활동 1. 노동현장으로의 존재 이전 준비 2. 인천지역의 정치서클 활동 1) 인천지역 정치서클의 형성 과정 2) 「113」문건 작성과 다른 지역 제파PD 그룹의 반응 3) 인천 조직 내부의 분열과 활동 정리 3. 1980년대 활동에 관한 문제의식 4장 운동의 새로운 모색과 휴지기 1. 마산창원지역 현장운동의 시도 2. 전노협 백서 작업 참여와 운동의 단절 시기 5장 노동자의 힘 1. ‘노동자의 힘’ 결성 2. 조직위원장의 활동 1: 투쟁 활동 1) 2001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 2) 근골격계 투쟁: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 3) 2002~2003년 ‘에바다 비리 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투쟁 3. 조직위원장의 활동 2: 조직사업 4. ‘노동자의 힘’ 상근자인 이훈구 1) 상근자들의 활동 조건과 관계 2) 이훈구의 조직 중심성 5. 2003년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1) 투쟁의 준비 과정 2) 전국노동자대회, 마지막 폭력투쟁 3) 구속, 수배, 도피 생활 4) 투쟁에 대한 문제의식 6. ‘노동자의 힘’ 활동에 대한 문제의식과 탈퇴 [내가 만난 이훈구] 박성인, 김재광, 전주희 6장 결혼생활과 이훈구 1. 연애와 결혼 2. 인천에서의 결혼생활 3. 수유스낵 운영과 다시 현장으로 4. 생활경제의 의존성 5. 별거 그리고 이혼 6. 부부관계에서의 이훈구, 가부장적인 남성 7. 감정, 부부관계에 관해 새로이 주목하는 이훈구 7장 노동안전보건운동 1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창립과 활동 방향 1.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의식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참여 계기 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결성 3. 한노보연의 활동 방향: 현장성?전문성?계급성 4. 한노보연 결성 초기 상황: 소장과 사무처장의 도피 2절 한노보연 운영과 문제의식 1. 2004년 ‘교대제’ 현장세미나와 현장 프로젝트 사고 2. 2005년 한노보연 운영 체계의 정비 1) 집단지도 체계로의 운영 체계 전환 2) 2005년 ‘상근자 파동’과 연구소 재정 문제 3) 한노보연 상근자들의 일상 활동 3. 2006년 ‘4대 실천 의제’ 설정과 노동자계급 주체 형성의 문제 4. 2007년 ‘4대 실천 의제’와 네 가지 과제 5. 2009년, 반자본주의 노동안전보건운동과 ‘1회원 1과제 실현’ 1) 경제 위기와 ‘노동시간 단축 및 생활임금 쟁취’ 주장 2) ‘1회원 1과제 실현’: 회원을 주체로, 회원들의 ‘필요’에 기초한 운동 6. 2011년 ‘중장기 전망모임’ 7. 2013년 사회화 방안 모색과 2018년 ‘열린 조직’의 지향 [내가 만난 이훈구] 김정수, 공유정옥, 손진우 3절 현장 프로젝트 1. 초기 근골격계 투쟁 1) 대우조선 집단 요양 투쟁과 근골격계 문제의 사회화 2)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운동으로서 근골격계 투쟁이 가능했던 이유와 의미 2. 현장 프로젝트의 방향과 개별화된 노동자들 1) 현장 프로젝트 방향: 노동자를 주체로 2) 총자본의 대응과 개별화된 노동자들 3. 현대자동차 노조 프로젝트 1) 2004년 주간연속 2교대제 연구 2) 2005년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 연구 4. 두원정공 노조 프로젝트 1) 근골격계 프로젝트 2) 주간연속 2교대와 ‘3무 원칙’ 5. 사례 확산을 위한 실천 방향 찾기 1) 2008~09년 다양한 업종의 사업장 프로젝트와 현장 프로젝트의 방향 모색 2) 2016년 실천 사례를 만드는 새로운 모색 [내가 만난 이훈구] 권영국, 이기만 4절 지역 활동 1. 부산연구소에서 부산사무소로의 변화 2. 경기지역 사무실 개설과 지역 연대 활동 1) 경기지역 연대 활동의 의미 2) 수원 촛불과 수원지역 운동포럼 3.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의 결성 1) 2014년 동희오토 산재 인정 투쟁의 결합 2) ‘행복한 서산을 꿈꾸는 노동자 모임’과 노동자 건강권 모임 3)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의 결성 [내가 만난 이훈구] 이숙견, 최진일 5절 연대 활동 1. 한노보연의 공동투쟁·공동활동 모색과 실천 1) 의제에 따른 전국 공동투쟁의 시도 2) 2006년 노동안전네트워크 구성과 활동 3) 2011년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준)과 2013년 이후 노동안전보건 단체 간담회 4) 최근 연대운동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 2.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과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논의, 공동실천, 공동책임의 모범 3. 반올림 투쟁: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새로운 전형 만들기 1)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 2) 반올림의 큰 그림을 그리며, ‘신명’ 나게 투쟁하는 이훈구 3) 정세 속에서 투쟁 방향을 찾도록 이끈 이훈구 [내가 만난 이훈구] 이종란 8장 이훈구의 돌아보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운동”을 꿈꾸며 1. 처음 맞은 안식년, 그리고 개인의 특성 1) 안식년 보내기: 경전 읽기와 연찬 프로그램 2)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3) 혁명가의 꿈과 아쉬움으로 남은 것 2. 노동안전보건운동에 관한 소회 1) 20여 년, 가장 많이 변한 것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2) 현장 중심성에 대한 평가 3) 다양한 운동과의 교류와 섞임, 그리고 다수화 전략 4) ‘계급성·전문성·현장성’을 새롭게 쓸 필요 5) 향후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주목해야 할 것 3. 하고 싶었던 일, 했으면 하는 일 4. 활동의 개인적 의미 1) 활동의 동력 2) 한노보연 활동의 개인적 의미 3) 한노보연에서의 이훈구 5. 운동의 삶으로의 확장, 삶을 사는 사람들의 운동 이훈구 연혁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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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계엄령 속에서 아주대 탈춤반도 기청연합팀도 제대로 모이지 못했다. 대학별로 유인물을 배포하는 과정에서 당국에 적발돼 수배당하고 도망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새문안교회에서 강연을 내세운 집회가 기획되었다. 당시 기독교 교회 가운데 제일교회, 경동교회, 새문안교회가 사회 참여를 많이 했다. 새문안교회에서 목사의 강연을 기화로 학생운동가들이 모였다. 이미 경찰들이 교회를 에워싸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참여자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 시위를 하려 했으나, 경찰이 교회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어 나가지 못했다. 이에 이훈구는 선배들이 말리는데도 “싸워서 교회 밖으로 나가 시위를 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 p.60-61 1987년에는 조직 규모가 더 확대되었으나, 이 서클의 현장활동가들은 현장 진입기 혹은 정착 단계였기에 그는 정치서클의 이름을 내세운 공식적인 지역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이 일어나자, 인천지역에서는 부평시장을 중심으로 가두투쟁이 일어났다. 그는 취업 준비 중이던 구성원들을 모아 오토바이로 전투를 위한 돌을 날랐다. 항쟁이 격화해 백골단과 투쟁을 벌이는 날이면, 이훈구는 투쟁에 대한 나름의 조직 지침을 만들어 집단으로 항쟁에 참여하게 했다. 한편, 당시 제파PD 그룹은 당 건설 문제인 조직 노선에 대해 단정적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위당의 건설은 대중투쟁의 고양 속에서 그 토대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지도력에 따라 경로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향만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다산보임 사건으로 그룹의 중심 역할을 담보할 조직이 해체당하면서 각 지역 차원에서 새롭게 조직운동을 만들어 가야 했다. --- p.86 이훈구는 전야제가 진행되는 중앙대의 한 장소에서 화염병을 만들고 각목을 준비했다. 그런데 노힘에서조차 화염병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활동가를 섭외했다. 마침 부산에서 올라오는 노힘 회원들도 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화염병이 다 만들어질 즈음, 이훈구는 노힘 상근자들에게 중앙대에서 나가라고 했다. 혹여 모를 상황, 즉 화염병 제작 문제가 노힘 조직으로 연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 문제는 화염병과 막대를 다 만든 새벽녘, 이것을 대회 장소로 옮기기로 했던 다른 정치단체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p.152-153 그리고 노동안전보건이라는 문제가 결국 현실 노동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거잖아요. 우리 몸, 신체, 특히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명의 문제이기도 하고.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바닥에 있는 문제, 거기에서부터 자기가 기본적으로 가졌던 가치를 어떻게 현실화시키는가를 고민하는 거예요. 거꾸로 얘기하면 현실 정치운동이든 이런 부분들이 노동현장에서 그 문제까지를 현실화시켜 내지 못하면 그거는 민주주의도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가장 아래로 내려가 가장 직접 인간의 몸 문제로 보는 거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가장 래디컬하게 나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요. --- p.171 155일간 지속한 이상관 투쟁은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체로 현장 노동자를 어떻게 세워낼 것인가, 노동조합의 힘으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남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건강사업단(이하 ‘노건단’)은 새롭게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형성할 주체 세력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다. 더욱이 기존 산재운동 단체, 특히 노건연/재단법인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원진녹색병원(이하 ‘원진’) 쪽이 전문주의에 근거해 교섭 중심, 결과 확보를 중시하는 활동 방식으로 다른 산재운동 단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에 대항할 새로운 주체 형성은 이들에게 시급한 과제였다. --- p.207 훈구 형은 그냥 말로 혹은 머리로만 활동하신 분이 아니고 본인의 온 존재를 다 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라고 하는 게 있으면, 그런 존재 전체, 삶 전체를 다 활동에 담그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정도로 형은 삶의 대부분을 운동이나 활동이나 세상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까,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쏟아 부으신.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은 선배인데도 후배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도 있고. 현장 활동을 할 때도 거의 지방 현장에 내려가서 살다시피 했고. 같이했던 활동가들이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형의 진정성을 느끼고, 그러면서 형이 생각하는 방향을 받아들이게 되는. 또, 그런 방향을 같이 추구하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씨앗’ 같죠. 이런 ‘활동이나 운동의 씨앗’ 같아요. 우리 주변에서 저도 제일 존경하는 선배였고요. --- p.270-271 노동시간도 마찬가지예요. “노동시간이 OECD 1위다” 길이만 얘기해. 근데 사실은 배치도 중요하거든요. 노동자가 쉬는 시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노동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기획은 연구나 사측이 하고, 이들은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이런 게 아니라 “노동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 배치권이 자기한테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나는 한 달 동안 쭉 일하고, 한 달 동안 연속 휴가를 보내고 싶어” 이런 필요 말이에요. 자본은 어떻게 시간 기획을 하고 있는가, 노동자는 자기 시간 기획을 어떻게 할 건가. 당연히 공장에서 확장해서 일터뿐 아니라 삶터, 지역이나 세상에 대한 확장으로 가야 요구나 공감이나 이런 게 넘나들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셈법의 전환’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 p.302-303 훈구 동지는 교육할 때도 “자기 삶의 주인장이 돼야 한다”라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셨거든요. “그게 아마 너의 몸이 가져야 할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그리고 지금 당신의 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깊이 한번 관찰해 보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기 몸에 대한 주인, 건강권에 관한 이야기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문제가 아니라 “정말 본질적이고 직접적인 문제, 내 몸에 관한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시작 아니겠냐”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하셨고, 그런 차원에서 연결돼 있었던 것 같아요. --- p.379 반올림은 2008년 피해자 조직화와 사회적 이슈화를 위해 활동했는데, 한노보연은 각종 실천 프로그램, 전문가 지원 조직화, 언론 및 사회화, 국제연대 등 거의 모든 활동의 기획과 집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한노보연은 반올림이 중장기적인 조직 전망을 세워가도록 추동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책위에 참가한 이훈구는 초기 반올림 투쟁을 이끌어 온 주체 중 1인이었다. “삼성과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세간의 시선이 있었고, “쓸데없는 거 한다”라는 시선도 있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했다. 한노보연은 이 투쟁에서 새로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전형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 p.412 지금이 되게 중요한 시기예요, 지금이. 왜냐면 제대로 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할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 사람들이 중요한데 적어요. 현장이나 지역이나 이런 쪽은 특히 더 어려워요. 이 부분을 어떻게 섞이고, 아우르고, 보완해서 할 건가가 향후 10년, 20년을 가늠하게 해요. 만약 이 사람들을 잃어버리잖아요? 그럼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해요. 현재는 초입부, “뜻을 세웠다” 뜻을 만질 정도. 제대로 된 노안 활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런 변화,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개별화되지 않도록 공을 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 p.442-443 그동안 이훈구는 총자본과 총노동이 부딪히는 격렬한 시기, 그리고 그 시기에 공장점거 투쟁이라는 상을 통한 주체화 과정 이외에 일상에서 노자 간의 모순이 드러나는 공간은 주목하지 않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런 한계를 이훈구는 한노보연 활동을 통해서 조금 더 접근하고, 바라보고, 제대로 알아가려 노력하고, 실천하려 했다. 그 과정을 그는 ‘자기실현 과정’,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인식했고, “제대로 봐야 한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행동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인식 바탕에 ‘휴머니즘’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제대로 보면서, 그는 “이윤과 노동자의 몸과 삶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구체적인 주체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근거한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p.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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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현장으로, 노동자에게로, 세상 속으로 섞여 들어
‘빌어먹으며, 거지발싸개 같이’ 살고자 한 활동가 이훈구의 생애 이 책의 주인공 이훈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9년부터 2020년까지 40여 년간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이훈구는 1979년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2005년경 정치조직운동을 정리할 때까지, 그리고 2002년부터 2020년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노동보건안전운동을 매개로 사회 변혁, 나아가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되는 ‘삶으로서의 운동’을 꿈꿨다. 이 책은 긴 사회변혁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이훈구의 문제의식과 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정리했다. 이훈구는 대학 탈춤반에서 사회과학을 학습하던 시기에 1979년 10.26사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지나며 신군부정권을 규탄했고, 이후 노동 현장으로 이전해 공장에서 일하다 1985년부터 인천 제파PD 그룹에서 지역 활동을 했다.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1989년에 조직 내분으로 정치조직 활동을 중단한다. 그는 1980년대의 지나친 이념 지향성과 대리운동 방식, 민주적 소통과 훈련의 부족, 자기 검열과 헌신의 강요에 문제의식이 있었고, 전노협 백서 작업, 한국노동정치이론연구소 세미나 등에 참여하며 인식의 변화 과정을 가졌다. 1999년부터는 정치조직 ‘노동자의 힘’ 창립에 참여해 조직위원장, 연대사업위원장 등을 지내며 투쟁 전반을 담당했다. ‘조직 중심주의’로 평가될 만큼 계급정당 결성 실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나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처리 문제를 계기로 2005년 탈퇴했다. 이때 이훈구는 계급적 주체를 형성하려면 현실 문제에 천착해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현장에서부터 이를 시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구체적인 나의 몸과 노동과정으로부터 시작해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된다는 것 이훈구가 삶의 마지막까지 노동안전보건운동에 매진한 것은 이윤과 노동자의 몸과 삶이 부딪히는 경계, 즉 실제 노동과정에 주목해야 노동자계급 주체 형성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훈구가 초대 소장을 지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 2003년 출범)는 기존 단체의 전문주의, 산업재해 인정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노동과정을 강조해 산업재해의 원인 해결에 집중하면서 현장 노동자의 투쟁을 통한 건강권 쟁취를 중시했다. 한노보연의 현장 프로젝트 사업과 노동조합 실천단 지원은 현장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기획이었고, 작업 방식과 노동시간을 개선하는 여러 성과를 남겼다. 나아가 이훈구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며, 따라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서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건강 문제, 보건의료 영역과 섞이며 사회복지, 사회 공공성 문제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운동을 어떻게 삶으로 확장할 것인가”에 관한 이훈구의 끈질긴 고민이 잘 드러난다. ‘죽은 노동’이 아닌 ‘산 노동’을 한다는 것은 현장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삶의 주체, 노동의 주체로서의 정치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운동은 “혁명을 꿈꾸는가 아닌가”의 차원이 아닌 “노동, 노동시간을 자본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관장하며 주도해 나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같은 세대의 운동가들이 보수 기득권이 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공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섞여야 한다, 넓혀야 한다”고 당부한 이훈구의 생애를 통해 한 노동운동가의 사상과 실천을 엿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운동과 더 나은 삶을 전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