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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일 1
2007~2008년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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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_우리들의 510일 파업투쟁, 진정 아름다웠다(편찬위원)
머리말(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추천사(김소연, 김진숙, 부지영, 심상정)

들어가는 글_510일, 여성노동자들의 월드컵점 공동체와 연대의 역사

1장 까르푸 자본의 특징과 노동조건
1. 까르푸 자본의 특징
2. 매장의 구조와 노동과정
3. 노동자의 고용방식 : 불안정한 고용형태
4. 임금과 노동조건
5.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차별·성희롱
6. 높은 이직률

2장 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1. 1997년 일산점·둔산점의 노조결성
2. 2002년 임금인상투쟁과 단체협약확보투쟁(321일 간부파업)
3. 중동지부의 결성과 임금인상투쟁 및 주5일 근무제투쟁
4. 조직확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가입

3장 이랜드의 까르푸 인수와 이랜드그룹 3사의 공동투쟁
1. 까르푸의 이랜드 홈에버로의 매각과 3사 공동투쟁
2. 3사 공동투쟁본부의 활동과 이랜드-까르푸 노조의 통합
3. 이랜드일반노조의 활동과 2사 공동투쟁
4. 거세진 구조조정과 2사 공동투쟁

4장 월드컵점 점거농성 투쟁
1. 월드컵점을 멈춘 여성노동자들
2. 조합원들이 결정한 무기한 점거농성
3. 제1차 전국 이랜드매장 집중타격투쟁
4. 봉쇄된 농성장, 농성장에 갇힌 조합원들
5. 노동조합과 회사의 집중교섭
6. 공권력의 농성장 침탈과 끌려간 조합원들

5장 뉴코아 강남점·홈에버 면목점 점거투쟁과 매출제로투쟁
1. 월드컵점 침탈에 대한 항의투쟁
2. 뉴코아 강남점 매장점거투쟁과 각계각층의 지지연대투쟁
3. 민주노총 ‘1000인 선봉대’
4. 추석 매출저지 집중투쟁과 면목점 점거투쟁
5. 이랜드파업 ‘100일문화제’와 ‘박성수 구속’ 국회 앞 투쟁
6. 지역 총파업과 매장오픈 저지투쟁

사진으로 보는 저항과 연대

저자 소개 2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장,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를 거쳐 노동자 역사 연구와 노동자 교육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대학강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기 역사 쓰기와 구술사를 통해 역사와 사회에 ‘묻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찾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힘써 왔다. 『510일: 2007~2008년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제6회 강만길연구상 수상), 『아름다운 연대: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제4회 김진균학술상 수상)을 썼다. 함께 쓴 책으로 『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장,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를 거쳐 노동자 역사 연구와 노동자 교육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대학강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기 역사 쓰기와 구술사를 통해 역사와 사회에 ‘묻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찾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힘써 왔다. 『510일: 2007~2008년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제6회 강만길연구상 수상), 『아름다운 연대: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제4회 김진균학술상 수상)을 썼다. 함께 쓴 책으로 『민주노조, 노학연대 그리고 변혁』, 『전노협, 1990~1995』, 『현대자동차노조 20년사』,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등이 있다. 엮은 책으로는 『나, 여성노동자』,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여성‘노동자’들의 역사 및 현실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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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홈플러스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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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일반노조는 1997년 한국까르푸노조에서 시작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던 까르푸노조는 투쟁을 통해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했다. 까르푸가 이랜드그룹으로 매각된 이후 까르푸노조는 이랜드노조와 통합하여 2006년 12월 이랜드일반노조를 결성했다. 이어 2007년 6월 30일부터 2008년 11월 13일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510일투쟁’을 벌였다. 이랜드홈에버가 삼성테스코 자본에 매각되어 자본이 분리되면서 이랜드일반노조는 조직 분리를 해서 2008년 11월 홈플러스테스코노조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2016년
홈플러스일반노조는 1997년 한국까르푸노조에서 시작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던 까르푸노조는 투쟁을 통해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했다. 까르푸가 이랜드그룹으로 매각된 이후 까르푸노조는 이랜드노조와 통합하여 2006년 12월 이랜드일반노조를 결성했다. 이어 2007년 6월 30일부터 2008년 11월 13일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510일투쟁’을 벌였다. 이랜드홈에버가 삼성테스코 자본에 매각되어 자본이 분리되면서 이랜드일반노조는 조직 분리를 해서 2008년 11월 홈플러스테스코노조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2016년 홈플러스일반노조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어 활동하면서 조합원의 힘으로 2019년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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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782g | 150*220*27mm
ISBN13
9791190351362

책 속으로

그 직후인 8월 까르푸노조 간부들이 중동점을 방문해 매장선전전을 했고, 노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몇몇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 이후 노조는 11월에서 2003년 2월까지 5차례의 정기간담회를 진행해 현장상황을 공유했고,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2003년 2월 25일부터 조합원교육을 했다.
2002년 중동점장 기수드릴은 중동점에 발령을 받자 “나는 중동점에 인간 청소하러 간다”라고 했다. 그는 중동점에 와서도 회의 시간에 수차례 “나의 목표는 인간 청소다”라고 말했다. 점장이 만드는 살벌한 분위기와 직원들을 멸시하는 태도에 수모를 참다 못해 많은 이들이 일터를 떠났다.
--- 「2장 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중에서

까르푸의 서울지역 첫 매장인 면목점은 1999년에 오픈했다. 직영 직원만 250~300여 명의 대규모였고, 까르푸의 아시아 매장 중에 1위를 할 정도로 매출실적이 매우 높았다.
면목점에는 2인의 비공개 조합원이 있었고, 지부가 결성된 것은 2004년이었다. 노사협의회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시되고 주로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김경욱 위원장과 이경옥 사무국장이 면목점을 들러 계속 노조선전을 했다. 당시 회사가 주말에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의무로 하게 해서 노동자들이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에 수납주임 6인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캐셔들도 가입했다. 노조가입자 수가 20명이 넘자, 바로 지부를 결성하여 황옥미 지부장, 황은영 사무국장으로 집행부를 구성했다.

제가 2000년도 입사해서, 수납팀 대표로 노사협의회 참가를 했는데, 노동자들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아 한계를 느꼈어요. 당시 노조에서 면목점에 와서 선전전을 했어요. 그때 2명이 먼저 노조에 가입해서 비공개 조합원으로 있었죠. 그 사람들이 가끔 한마디씩 하는 거에 귀를 기울였고. (……) 제가 인터넷으로 까르푸노동조합에 들어가 보고, 좀 관심을 갖고 있다가 (……) 그때 근무시간이 주6일 48시간인데, 유통매장은 주말에 바쁘잖아요? 주말에 1, 2시간 연장을 의무적으로 하니까 몸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죠. (황목미, 면목)
--- 「2장 한국까르푸 노조의 결성과 노조인정투쟁」 중에서

결국, 이들의 계획대로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되던 7월 1일 0시, 월드컵점에는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밤샘 농성을 벌였다. 농성자들 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 다 잘려 나가고 나면 정규직도 나중에 잘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뉴코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캐셔로 일하고 있는데, 회사가 계산대 업무를 전부 외주화하겠다고 한 것에서도 확인이 됐다. 외주화 이후 정규직들은 부서이동이 되고 나중에는 인원감축도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비정규직법의 실상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기혼이었다. 특히, 캐셔들 가운데는 40대 이상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이혼하거나 사별해서, 또는 홀로 벌어서 생활하는 여성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한 달 일해 받는 80만 원이 유일한 생계비였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계약을 중단하고 퇴사시키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점거농성 하룻밤을 일부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즐겁게 보냈다. 어떤 이는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계산대를 멈췄다는 데에 자신감과 승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 「4장 월드컵점 점거농성투쟁」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거?) 계산대를 다 점거하면서 저쪽 너머로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하면서 막 대치하고 있는 위급한 상황, “온다”, “안 온다”막 이렇게 하는데, 그 공포심이 굉장히. (……) 그리고 교육을 많이 받은 게 “절대로 물건에 손대지 마라. 큰일 난다” 그래서 절대로 손 안 대고. 회사가 전부 사진 채증을 하니까.
(힘든 거?) 거기서는 털릴 때 힘들었고,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집안일 다 제껴놓고 거기다 신경 쓰는 것도 힘들죠. 또, 힘든 거는 옆에 있는 동료가 “나 허리 아프고, 어디가 아프고 그래서 내일 못 나올 것 같다”고 이런 얘기 듣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면 달래서 협박도 하고. 같이 가야 하니까.
(그만둘 마음은?) 저는 끝까지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젊으니까. 그중에 좀 젊었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부서에 다 얘기를 해놓고 나온 상황이라서 자유롭게 했어요. “언니들은 그냥 안에 있어라. 나는 나가서 하겠다” 아예 선포를 하고 나온 상태라서 편하게 했어요.
(제일 즐거웠던 거?) 밥 싸와 맛있는 밥 나눠 먹으면서 집안 얘기도 서로하고 속에 있는 얘기도 하고, 가정 얘기도 하고. 부서끼리만 움직이다가 거기서 제일 많이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됐고. 전국에 있는, 순천, 울산 사람들까지도 알게 됐죠. (김용임, 중동)

--- 「4장 월드컵점 점거농성투쟁」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은이의 말

“이런 문헌자료를 모아 연표를 세밀하게 재작성하여 510일투쟁과 전사의 흐름을 개괄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주체들의 구술작업을 진행했다. 구술작업은 39명 140여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노조의 분회(지부)마다 인원을 배정했고, 성별·연령별 안배와 투쟁참여기간의 차이 등을 고려해서 가능한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구술작업은 서울, 순천, 울산에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구술자는 510일투쟁에서 특정 시점들을 기억할 뿐이었다. 날짜도 장소도 많이 혼재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어떻게 510일을 낱낱이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구술자들은 월드컵점 점거투쟁 당시를 떠올리며 신나했고, 투쟁과정에서 받았던 상처가 살아나 감정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투쟁의 후유증으로 기억 자체를 제대로 못하기도 했다. 어쩌면 길고 지난한 투쟁과정 자체가 이들에게는 상처였을 것이다. 왜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는 분노와 함께…. 그 때문에 현장에 복귀했을 때, 이들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안도감, 510일투쟁을 했다는 당당함, 풀어내지 못한 분노 등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처럼 구술과정은 문헌자료에서 전혀 알 수 없었던 장기간 투쟁 속에서 조합원 개인의 상황, 지도부의 고민과 갈등, 노조 내부의 갈등, 투쟁 경험에 대한 생각, 투쟁 마무리 이후의 노조상황 등의 여러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510일: 2007~2008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지은이 인터뷰

1. 이 책은 2007~2008년 510일에 걸쳐 파업을 했던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의 이야기인데요, 10년도 훌쩍 지난 지금 이 ‘510일투쟁’을 책으로 내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투쟁은 노조지도부들이 해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투쟁하던 조합원들을 현장에 복귀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됐어요. 이 과정에서 노조지도부는 투쟁 이후 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지도부를 세우려 했고, 각 분회(현재 지부)를 복원시킬 수 있는 이들을 복직시키려 노력했어요. 그런데 노조지도부를 세우는 건 회사의 반대로 안 되어서 조합원들이 복귀한 이후 노조의 지도력은 약화하였고, 조합원들은 긴 투쟁으로 지치고 거기에 경제문제, 가족문제 등 쌓인 문제가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10여 년간 노조활동이 침체 되었죠.
그런데 다행스럽게 각 분회의 분회장들이 복귀했거든요. 그러면서 각 분회에서는 투쟁했던 이들이 분회를 복원시켰어요. 그 뒤에 이들 분회가 중심이 되어 2018년에 새로운 집행부를 세워냈고, 조합원들도 적극 노조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시 노조가 활기를 되찾아요. 그 결과로 2019년에는 노조가 파업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확보해내요. 510일투쟁에서 이뤄내지 못한 과제를 조합원들의 힘으로 실현한 거죠.
이 과정에서 510일투쟁에 대해 노조 차원에서 공유하거나 평가한 적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510일투쟁을 했던 이들 중에서 노조의 역사, 특히 510일투쟁에 대해 정리하자는 요구가 있었고, 노조가 역사 정리작업을 하기로 하고 저에게 제안한 거죠.
저는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오면서, 510일투쟁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기에 관심이 있었지요. 특히, 기혼 여성노동자들의 활동이라 더 관심이 있었죠. 거기에 510일투쟁은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법이 실행되기 전날인 6월 30일에 이들이 월드컵점 점거투쟁을 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노조의 제안으로 이 투쟁을 여성노동자들의 역사로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하려는 생각으로 책 작업을 한 거죠.

2. 직접 ‘510일’이라는 시간 파업을 했던 당사자 분들을 만나서 구술작업을 하시고, 이 책을 쓰셨습니다. 510일투쟁의 주체들을 만나셨을 때 선생님께서 받으셨던 느낌과 들었던 생각 등을 말씀해 주셔요.

구술자들은 대부분 투쟁을 끝까지 한 사람들이에요. 투쟁하다가 노조에 등을 돌린 사람들은 구술작업에 참여하려 하지 않아요. 구술자들은 대부분 510일투쟁과정은 힘들고 어려웠다고 하면서도 그 투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주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구술자들의 말을 인용하면 “나는 510일을 끝까지 다 참여했다”는 거죠. 그래서 현장에 복귀해서도 아주 당당했다고 하고 노조활동도 계속하고 있었어요.
2008년 11월 510일투쟁이 끝났을 때 보통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고 평가를 하더군요. 노조지도부가 해고된 것이나 완전한 정규직화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패배라면,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하고, 회사가 단체협약에도 있는 18개월 근무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투쟁으로 16개월 근무한 비정규직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등 고용조건과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은 절반의 승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현장 복귀하면서도 투쟁했던 여성노동자들은 당당했고, 오히려 회사나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원들이 이들의 눈치를 봤다고 해요. 현장에서 이들은 투쟁 이전에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던 모습과는 달리,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해서 확보해내기도 한 거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510일투쟁에서 배운 거죠. 투쟁과정에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노동자가 같이하는 투쟁의 힘, 노동조합의 힘을 알게 된 거였어요.
거기에 구술작업을 하면서 저도 알게 된 건데, 여성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게 되면서 노동조건도 많이 달라졌지만, 사회의 시선이나 소위 고객들이 마트 여성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해요. 투쟁 이전에는 갑질 고객들의 횡포도 많았고,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점원’ 취급하면서 무시했는데, 510일투쟁을 거치면서 이들도 인격을 가진 노동자라는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게 마트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구술자들은 긴 투쟁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투쟁 이전에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위축되고 관리자들 앞에서 주눅 들어 있었는데, 투쟁을 거치고 난 뒤에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어요.

3. 2007년 당시 홈에버 월드컵점을 20일간 점거했던 일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노동조합의 ‘노’ 자도 몰랐던 여성노동자, 그것도 대다수 기혼 중년 여성들이 1박 2일로 예정된 점거일정을 스스로 바꾸어 20일간의 점거를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까르푸가 이랜드자본에 매각되면서 여러 방식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는데, 거기에 더해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었어요. 그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던 거 같아요. 마트에서 일하는 게 노동조건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당시 40대 전후의 기혼 여성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물론 지금도 같은 상황이지만. 거기에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노동조건도 안 좋은 비정규직이라는 그 일자리가 중요했던 거죠.
그래서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거고, 이랜드노조, 뉴코아노조와 공동투쟁을 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같이 싸우는 것에서 자신들의 힘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랜드 자본이 지속해서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태도에 쌓인 분노가 표출된 거죠. 그래서 기혼여성노동자들인 조합원들이 1박 2일 월드컵점 점거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거죠.
거기에 6월 30일 회사 측의 방해에도 6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월드컵점의 계산대 사이사이에 박스를 깔고 앉아 매장을 점거했을 때, 자신들의 힘을 느낀 거죠. 보통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회사를 멈췄을 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현장의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거든요, 그런데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면서 바로 관리자들을 쫓아내고 매장을 점거하니까, 회사가 매장문을 닫아요. 그러니 여성노동자들은 정말 자신들이 매장을 움직여왔다는 걸 확인한 거죠. 거기에 다른 노동조합의 노동자들, 노동사회단체들, 진보정치인들이 매일 연대 오고, 더욱이 언론이 집중해서 보도하는 등의 상황도 여성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북돋워 준 거죠.
이렇게 점거농성 과정에서 또 다른 동력을 확보하는데, 수년을 일하면서도 서로를 알지 못했던 여성노동자들이 같이 밥 먹고 자면서 서로를 챙기는 일상을 공유하죠. 그러면서 서로의 삶과 현실,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을 알아가면서 강한 ‘동료애’가 형성된 거죠.
이렇게 일자리를 지키려는 요구가 투쟁동력이었고, 점거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동료애와 연대가 또 다른 중요한 투쟁의 동력이었던 거 같아요.

4. 510일투쟁을 정리하는 책을 내시면서 선생님께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요?

당연히 월드컵점 점거투쟁이고요. 특히 점거 다음 날에 조합원들이 스스로 무기한 점거투쟁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노조의 계획은 1박 2일로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나오는 거였고, 이 역시 노조간부들이 결의해서 결정한 거였어요. 그런데 노조지도부는 그조차도 가능할까 걱정하고 긴장했거든요. 조합원의 대부분이 기혼여성이라서 가정을 비우고 외박을 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던 거죠. 노조활동 경험도 없었고. 그런데 600여 명의 조합원이 일시에 월드컵점 점거에 성공하고, 많은 연대세력도 오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가진 거죠, 그래서 점거 첫날 잠을 자고 났는데 여기저기서 “계속 점거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술렁였던 거죠. 그러다가 이들이 먼저 노조지도부에게 점거를 계속하자는 요구를 한 거죠. 결국, 노조지도부는 분회별 토론을 거친 뒤 총회에서 계속 점거할 것을 결정한 거죠. 사실 조합원들이 투쟁경험도 없었고 노조지도부 역시 투쟁을 길게 할 준비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토론을 통해 내린 결정을 지도부가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죠. 그런 점에서 노조지도부 역시 대단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같이 510일투쟁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역사적 조건이 있어요. 한국까르푸 때부터 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개선을 위해 투쟁하다가 2005년에 비정규직노동자들도 노조가입을 할 수 있게 확보해낸 것 역시 인상에 깊게 남죠. 510일투쟁 이전의 노조 역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저도 몰랐어요. 대공장이나 대규모 사업장에서 정규직노동자들의 노조는 비정규직이 가입할 수 없어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따로 노동조합을 만들어왔거든요.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 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처럼. 이런 노동조합운동의 분위기하고 다르게 거의 조직력도 없었던 한국까르푸노조가 비정규직과 같이하려 했던 활동도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활동이 비정규직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들이 같이 510일투쟁을 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힘이기도 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많은 분이 여러 이유로 기억에 남고, 그분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시흥분회의 임재윤 조합원하고 울산분회의 이해욱 대의원이에요. 두 분은 510일투쟁 직전에 노조에 가입했고 510일투쟁을 끝까지 했어요.
임재윤 조합원은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고 정규직이었어요. 시흥분회에서 첫 비정규직 해고자가 나오면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요. 투쟁하면서 수입이 없고 집이 더 어려워지자 큰아들이 학비가 없어 학업을 중단하고 군대에 갔대요. 엄마인 임재윤 조합원이 아들이 군대 있는 동안 면회 한번 못 갔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투쟁하면서 아이들도 같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투쟁에는 빠지지 않고 끝까지 했죠. 자신이 빠지면 빈자리가 늘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 자신의 상황을 신뢰하던 분회장(직무대행)에게도 말하지 않고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호프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코피를 쏟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죠. 그렇게 자신의 상황은 어려워지는데 투쟁은 길어지고 이랜드 자본은 계속 노동자들을 무시하며 교섭을 하지 않자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고요. 자신의 마음마저 다칠 정도로. … 그래도 내가 옳고, 우리가 옳으니까 투쟁을 그만둘 수 없었대요. 자존심 때문에 투쟁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해요. 이 분은 투쟁 이후 마음치유를 해야 했어요. 구술작업을 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그래도 그 이후 자기 치유를 하기도 하고 노조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구술작업을 하던 2019년에는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울산분회의 이해욱 대의원도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더욱이 아프신 어머니를 매일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의 지지로 대의원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도 못하고, 대의원의 역할, 맏언니의 역할을 성실하게 했어요.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여성간부의 역할이 크거든요. 특히 울산분회는 분회장이 두 번이나 구속되어서 이 분의 역할이 아주 컸던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갈등을 깊게 겪었어요. 상처로 남을 정도로. 자신의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투쟁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과 투쟁현장에 가면 대의원으로서 계속 같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던 거 같아요. 또 그런 자기 내면의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솔직하지 못하다고 힘들어하고 스스로 생채기 내고 했던 거 같아요.
저에게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껴안고 긴 투쟁을 해야 했던 이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이랜드 자본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표출하면서 내상을 입은 거 같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내적 갈등을 계속 지켜보면서 내적 상처를 입는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두 분 다 같은 무거움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5. 이 책을 접하실 독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저는 이 책을 정리하면서 노동조합, 연대, 여성노동자, 역사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게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을 통해 기업주들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고 협상하기도 하죠. 이런 권리는 노동3권으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1970년대,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빨갱이’, ‘불순세력’ 운운하면서 탄압을 했거든요. 그런데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는 2000년대 전후에도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죠. 한국까르푸 노조가 그 예이기도 해요. 회사 측은 노조를 없애려고 노동자들을 매수하고 협박하고, 현장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하고 해고하고. 지금도 그렇잖아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모를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면 기업주 측은 탄압해서 와해시키려 하죠.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특히 510일투쟁을 경험한 뒤에 노동조합이 어떤 의미인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스스로 확인한 거죠. 510일투쟁 이후 복귀한 여성노동자들은 회사 측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다는 것이 공통된 얘기였거든요. 이들은 노동자들이 개인은 약한데, 노동조합으로 모여 목소리를 내면 그 힘이 무척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한 거죠.
지금은 아르바이트하는 10대부터 경비, 택배, 청소, 식당, 돌봄노동 등에 종사하는 50~60대, 아니 70대까지 모두 노동하잖아요. 일하는 영역은 달라도 일하면서 임금을 받기 때문에 모두 노동자예요. 그래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또 노동조합은 노동자 개인들이 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죠. IMF 이후 한국사회는 많은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쫓아냈고, 지금도 진행 중이지요. 그러나 그 어려움을 공감하고 연대하는 분위기가 약해졌었죠. 그런데 여성노동자들의 510일투쟁에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개인과 단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가 이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연대가 이 사회에서 모두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어요.

그리고 ‘여성노동자’에 대한 문제인데요. 510일투쟁을 이후 마트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기 시작했죠. 여성들이 하는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어 갔어요. 하지만 지금도 여성노동자들이 사회에 나와 일하는 것을 ‘반찬값’을 벌기 위한 것으로, ‘부업’으로 규정짓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있어요. 510일투쟁 주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들 중 다수는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일에 애정과 자긍심을 갖고 있었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회활동, 노동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거는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면에서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이 투쟁을 정리하면서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한 평가를 그 사건 자체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어요. 510일투쟁의 주체들을 통해서 이런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나요. 510일투쟁의 결과는 노조 지도부가 해고를 받아들이면서 분회장들과 조합원들을 복귀시켰잖아요. 처음에 저는 이 지점에서 멈춰 이 투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심했어요. 그런데 이 투쟁은 510일로 마무리되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다시 그 영향이 나타났어요. 물론 지금도 510일투쟁은 지속 중이고요. 그러면서 역사의 평가나 영향을 긴 시간 속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 거죠.

추천평

이랜드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긴 『510일』의 출간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희망이 어떻게 자라고 익어 우리의 삶을 바꾸는지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증거입니다. 힘겨웠지만 빛나는 우리의 투쟁의 시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비정규직 없는 일터, 노동자가 현장에서 주인 주체가 되는 시간을 누리는 힘찬 응원입니다. - 김소연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운영위원장, 전 기륭전자 분회장)
마트에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있음을 보여 준 510일.
태어나 가장 길었던 시간.
가장 많이 울었던 510일.
가장 많이 웃고 가장 사람다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510일.
찬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고 반찬 없는 식은 밥을 먹으면서 가장 당당하게 가장 인간답게 살았던 510일.
투쟁은 끝났어도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은.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여성노동자들 몇 분께 “이런 싸움을 다시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어떤 분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회사와 공권력의 압박과 회유와 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부당함에 저항하여 내 목소리를 냈던 싸움이었습니다. 오롯이 내 삶의 주인이었던 시간이었기에 상처만큼이나 자부심도 컸던 싸움이었습니다. 인생이 투쟁 전과 투쟁 후로 나뉘어 다시는 투쟁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 싸움의 주인공들에게 그 질문은 바보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510일의 시간 동안, 절망과 허탈과 무력감 속에서도 당당하던 노동자의 자존심과 빛나던 연대의 진면목을 확인하며 자주 코끝이 찡하고 관자놀이가 뻐근했습니다. - 부지영 (영화감독, [카트] 연출)
510일은 세월 속에 흩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마음속에 무한한 긍지로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책장을 넘기며 확인했습니다. 관리자의 부당한 지시에도 그저 “네”라고 답하고, 이름이 아닌 ‘무슨 아줌마’로 불리며 사측의 억압에 쉽게 움츠러들던 ‘점원’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 “우리는 아주 당당해!”,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함께 싸우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도 “우리 대신 고생해 준 동료들”이라고 품을 수 있는 존엄과 연대의 마음을 갖춘 ‘노동자’가 생겨났습니다. -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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