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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004
간행사 · 008 책을 펴내며 · 016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 021 제1부 평화순례 제1장 중국 34년 전, 처음 동포들을 만났던 감동과 추억들 · 036 34년 전 기록들 · 041 | 처음 중국 땅을 밟다 · 041 중국에서 맞은 둘째 날 · 043 | 중국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다 · 044 연길행 비행기를 타다 · 048 | 송강으로 가며 본 풍경들 · 050 백두산의 원시림과 쭉쭉 뻗어 있는 길 · 056 | 해란강이 있는 용정을 가다 · 059 연길 성당에서 목이 쉬어라 우리말 성가를 함께 부르다 · 064 조선 중학교를 방문하다 · 068 | 김대건 신부님께서 첫 미사드린 곳을 가다 · 069 제2장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만난 민족의 상처 · 076 일본에서 쓴 사목 단상들 · 081 | 이방 속의 한국, 한인 성당 · 081 향수병 전문의 · 083 | 한 지방 두 살림의 조화 · 087 타향 같은 고향 · 091 | 기도, 화해, 일치에 인색함을 반성하자 · 094 해방 50년을 맞는 한국과 일본 · 097 | 종군 위안부 앞에 일본 정부는 ‘벽창호’ · 101 뉴스마다 ‘북한 핵’ - ‘한복 수난’ · 104 묵주 100개 선물 “너무 고맙다” 북한 천주교인 대표단 방일 이모저모 · 109 고베의 폐허 속에 교회는 한 줄기 희망 · 112 30년 만에 다시 떠난 일본 평화 순례 · 114 | 조선인 마을 · 116 조선학교 · 117 | 조세이 탄광 수몰지 사고 현장 · 120 히로시마 방문 · 122 제3장 사할린 동토(凍土)에서 지킨 신앙 · 128 | 동양인은 모두 우리 동포 · 130 동포 집 응접실에서 여장을 풀다 · 134 | “고향 사람 좀 보자” 문전 성시 · 139 이것은 틀림없는 은총이다 · 141 제4장 북한 나의 고향, 우리의 반쪽 · 148 | 나의 고향 평양 · 148 처음으로 하는 북한 방문 · 153 | 대련에서 순안까지 · 153 평양 거리를 달리며 · 156 | 가까이서 만난 사람들 · 158 거리의 인상 · 162 | 없는 게 너무 많은 나라 · 168 지방 길을 달리며 · 171 | 그리운 금강산 · 175 장충 성당에서 · 179 | 다시 또 하고 싶은 이야기 · 185 우리 가족 이야기 · 189 | 17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 세 번째 방문 · 195 17년 만에 만난 북한 신자 대표들 · 197 | 시설 방문과 밤 9시 기도 · 199 장충 성당에서 드린 미사 · 201 | 결실과 과제 · 203 제2부 평화 메시지 제1장 강론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 210 ‘주교 영성 모임’ 미사 · 218 | ‘한일 여자 수도자 장상 총회’ 미사 · 223 2023년 세계평화의 날 미사 · 227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 233 JSA 성당 봉헌식 축사 · 238 | 남북 정상회담 성공 기원 미사 · 241 6월에 북녘의 교회를 생각하며 · 246 | 설맞이 이산가족 위령미사 · 250 ‘적군 묘지’ 미사 · 254 | 민족화해센터 봉헌 미사 · 259 통일 전망대 성모의 밤 · 265 제2장 강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주교회의 간 협력 · 272 끝나지 않은 전쟁 · 281 |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와 화해의 임무 · 294 2019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 · 304 | 평양 장충 성당과 북녘 신자들 · 310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북한 신자들의 세례 · 313 제3장 인터뷰 ‘DMZ 평화의 상’ 수상 소감 · 326 6·25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인터뷰 · 330 2018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한계 · 340 제4장 평화 단상 밤 9시 기도는 계속됩니다 · 348 빨간색의 편견을 지우며 평화의 여정에 함께합시다 · 352 종군 위안부, 김군자 할머니 · 356 이기헌 베드로 주교 약력 · 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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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민족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우리 가족이 겪은 이러한 6·25전쟁과 분단 체험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컸던 것은 전쟁과 분단이 만든 적대감과 분열이 남북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성장에 걸림돌과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에 못잖게 내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끼고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갖게 해준 것은 신부가 되고 나서 하게 된 사목 체험이었습니다.
--- p.17, 「책을 펴내며」 중에서 의정부교구장 직무 외에 나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꽤 오랜 기간 맡았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북정책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지는 어려움은 있지만 이런 변화에도 변함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운동’이고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교육’임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밤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 바치기’ 운동과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하여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 여정에 함께 하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지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가 우리 교구 안에 있어 여러 관련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일은 교구장인 나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 p.30,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중에서 금산이가 찾아와 각별한 인사를 나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가 보다. 금산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모습을 많이 엿볼 수 있었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속에서 제대로 자란 한 인간의 모습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가 특별히 나에게 신앙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못해 맘에 걸렸는지 그는 “많은 변화된 느낌, 좋은 느낌은 있었고 종교에 대한 매력은 있지만 이곳에 발붙여 살기 위해 나는 아직 종교를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내게 진지하게 하였다. 그가 공산당원임을 밝히면서…. 그러나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 p.73, 「중국 방문기」 중에서 되돌아보면 우리 민족 가운데 일본의 재일 조선인 외에도 러시아의 고려인이나 중국의 조선족도 어두운 민족사 속에서 고향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곳보다 차별과 멸시 속에 힘들게 살아왔던 대표적인 우리 민족 집단이 일본에 사는 재일 조선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우리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이번 여행을 한반도 평화순례라 이름 붙이고 평소 가기 힘든 우리 민족의 설움과 회한이 서린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들을 순례지로 정하였다. --- p.115, 「30년 만에 다시 떠난 일본 평화순례」 중에서 신 베드로 씨를 보면서 나는 북한보다 종교가 사라진 지 더 오래된 사할린에서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통해 북한에도 그렇게 사는 신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하느님께서 지혜와 깊은 신앙을 갖게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신 베드로 할아버지는 분명히 천국에서 편안히 쉬실 것입니다. 이런 추억을 간직한 신 베드로 씨와 함께 지냈던 사할린의 날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 p.129, 「동토(凍土)에서 지킨 신앙」 중에서 북녘의 교회에 대해 부족함을 말하기보다 존재하고 있는 그 상황과 모습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고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신자들 가운데 아주 거룩한 모습으로 미사를 드리고 입으로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이 눈에 띄는 것이 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북쪽에 남아 있을 순교자 집안의 후손인 열심한 두 누나와 친척들 그리고 그렇게 열심했다는 많은 교우들이 이 장충 성당을 찾아오는 날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문득 200년이나 사제 한 명 없이 신앙을 지켜오고 전수해온 일본 큐슈 지방의 신자 발견 사건이 떠 올랐다. --- p.203, 「북한 방문기」 중에서 우리는 평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적개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도 지난 긴 세월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가장 무거운 걸림돌이자 족쇄인 ‘적대감’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 적대감에서 생긴 갈등과 분열은 오랫동안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심지어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왔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었지만, 정치와 문화 그리고 국민 삶의 질은 뒤처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 p.215,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강론」 중에서 이번 세계평화의 날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전쟁을 규탄하시면서 “전쟁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죄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더 비싸고 더 발달한 무기로, 더 많은 살상력을 가진 무기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세상에서,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진정한 회심이 필요합니다. --- p.232, 「2023년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 중에서 교회는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전쟁의 참혹함 앞에서 용서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이러한 고통은 갈등 당사자 모두의 진실하고 용기 있는 참회를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참조) 이어 정의와 진실이 화해에 필요한 실질적인 조건입니다.(518항 참조) 저는 그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화해를 위한 용기있는 출발이 될 것입니다. --- p.290, 「강연 “끝나지 않은 전쟁”」 중에서 이처럼 전쟁으로 깊어진 분단 70년은 남북의 이질화를 가져왔고 두 민족화로 인해 민족공동체 의식도 약화되고 있습니다. 70년이란 세월이 남북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아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이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두 민족 사이를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물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민족도 아닌 한 형제들 안에 있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물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과제는 동족 간 적개심을 버리고 최근 악화되는 한반도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어 노력하는 것입니다. --- p.331, 「6.25 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인터뷰」 중에서 할머니는 “죽기 전 소원은 일본의 사과를 받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 마음에는 일본이 하는 사과의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듯합니다. 사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몇 차례 사과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한 사실이나 사과를 표현하는 단어 때문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위안부 인신 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부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 끌려가 한생을 불운하게 마친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행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나치가 저지른 일에 무릎을 꿇어 사과한 서독의 빌리브란트 수상이 보여준 독일의 모습과 일본은 얼마나 다른지…?. --- p.359, 「평화단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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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다. 가히 한반도 분단역사와 함께 한 삶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전쟁 전 평양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두 누님을 북에 남겨 둔 채 부모님과 함께 3세 때 월남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이 두 딸을 끝내 만나보지 못한 채 얼마 전 영면하였다. 그가 이산가족으로 살아 온 신산한 삶과 이 과정에서 가졌던 기억이 평화,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관심과 활동으로 이끌었다. 그의 이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이 일제 강점, 강대국 분할 점령, 6.25 전쟁으로 인해 남의 땅에서 외로이 살아가게 된 동포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끌었다. 이 책 ‘제1부 평화 순례’에는 그의 이들에 대한 연민과 역사와 화해하는 여정이 잘 드러난다. 제2부에는 그가 의정부교구장으로서, 주교회의에서는 세 번의 임기를 역임하게 된 최장수 민족화해위원장으로서 하였던 강론, 강연, 인터뷰 결과, 틈틈이 써둔 평화 단상이 수록돼 있다. 그의 이 평화 메시지에는 그가 그동안 숙성해 온 식민지,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에 대한 신학적, 영성적 통찰이 담겨 있다. 단순하지만 통찰이 빛나는 그의 평화 사상에는 분단을 넘어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고 동북아에는 평화가 실현되는 종말론적 미래에 대한 비전이 들어 있다. 평생 일관되게 한 길을 걸어온 사목자만이 보여줄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비전이다. 그의 평화 신학과 평화 영성은 이 책 제목인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에 함축돼 있다. 여기엔 네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첫째, 이 말에는 그를 평생 이끌어 주었고 그가 기꺼이 삶을 의탁해 온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둘째, 이 말에는 민족 화해와 일치에 평생 투신해 온 사람이 아니면 고백할 수 없는 탄식이자 기도가 들어 있다.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아도 끝내 마주 서게 되는 거대한 벽 앞에서 신앙인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주도권을 넘겨드리려는 겸손의 표현이다. 이는 ‘평화 영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셋째, 이 말에는 이산가족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안타까움, 회한이 담겨 있다. 이런 아픔은 당사자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희망은 포기가 아니라 좌절과 실망을 딛고 끊임없이 가능성과 미래를 향하는 불굴의 의지를 표상한다. 이 이상 그의 평화 신학과 영성을 잘 대변해 줄 말이 없다. 이 책에는 그의 평화 신학, 평화 영성도 들어 있지만 그의 삶의 기록도 담겨 있다. 짧지만 그의 삶 전체가 하느님이 주신 소명을 실현하는 과정임이 잘 드러난다. 신앙인은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며 이끌어가는 하느님의 손길을 섭리라 고백한다. 확실히 그의 삶은 섭리가 이끌어 왔다. 신앙인은 대체로 만년에 이르러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데 이 글에서도 이런 그의 고백과 소회를 읽을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평화와 민족 화해를 평생의 과제로 삼고 일관되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이는 매우 드물다. 그는 이런 삶을 산 신앙인이자 사목자였다. 단연코 그는 이 길에서 독보적이다. 독자들은 한 사목자의 삶의 기록이자 한 평생 그가 추구한 평화 여정의 기록에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