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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 9옮긴이의 말 ― 504추천의 말 ― 511특별 부록 ―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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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학의 제왕, 맨부커상 수상 작가줄리언 반스의 죽음에 관한 가장 솔직한 에세이『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개정 증보인간의 영원한 숙제, 죽음에 대한 유쾌한 한판 수다!작가이기 전에 인간일 수밖에 없는 그, 줄리언 반스. 예순을 넘긴 시점에 그는 고민에 빠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결론, 죽음에 대하여. 그에게 죽음의 공포는 기정사실이다. 그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때로는 죽음이 극화된 악몽에 시달리다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인 줄리언 반스와 영국 문학의 제왕으로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죽음을 면밀히 파헤친 줄리언 반스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다. 죽음이라는 엄혹하고도 막막한 주제를 줄리언 반스 개인과 주변의 경험을 토대로 윤리, 예술, 과학까지 종횡무진하며 폭넓게 사유한다. 특히나 그의 부모는 그가 ‘임상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한 죽음의 사례다. 반스는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부조리 극작가 같은 시선으로 우습고도 황폐하게 그려낸다. 줄리언 반스의 가족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훌륭해 보이기까지 하다.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 프랑스 성애적 고상한 품격을 갖춘 할머니, 온화하고 관대한 아버지, 노동당 출신의 어머니, 철학과 교수인 형까지.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반스의 가족은 괴팍하며 쩨쩨하고 뒤틀린 면 또한 있다. 우리의 가족이 그러하듯이. 자기 가족의 계보를 “점잖지만 덜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가족이라고 냉정하게 평했고, 그들을 벗어나고자 평생을 노력했지만, 그는 역시 죽음에 다가갈수록 그들의 일원임을 자각한다.가족과 함께 반스가 수집한 또 다른 죽음의 사례는 예술가들이다. 과량의 진정제가 없다면 헛소리를 지껄이다 죽었을 필립 라킨, 내세가 없다는 소신을 유수 철학자에게 인증까지 받을 정도로 철두철미했으나 말년에 소파 뒤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누는 것으로 절멸의 공포에 투항한 서머싯 몸, 자신이 작곡한 곡이 연주되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죽은 라벨, 그 밖에도 그가 각별히 존경하는 작가 쥘 르나르, 스탕달, 플로베르, 괴테,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로시니 등 일화와 인용문을 잡다하게 펼쳐놓고 누구도 죽음의 공포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쥘 르나르, 쇼스타코비치, 몽테뉴, 플로베르, 스탕달…… 역사 속 위인들의 경구를 통해 깨닫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작가, 작곡가 등 역사적 위인들의 한마디를 되새긴다. 죽음에 대한,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 할 만한, 작가나 작곡가가 아닌 일정한 생의 주기를 마무리할 운명에 처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내뱉은 한마디를. 그는 자신의 이런 작업의 이유를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의 말로 대신한다. “죽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책에 의지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반스는 작가와 작곡가들이 남긴 기록을 샅샅이 파헤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한 예로, 줄리언 반스는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죽음과의 대화』의 한 장면을 든다. 인간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냐고 묻는 비행사에게 케스틀러는 “난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죠”라고 답한다. 이에 반스 또한 죽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자기 부모처럼 될까 봐 두렵다고 고백한다.반스는 샤를 뒤보스의 ‘르 레베일 모르텔’이라는 문구를 ‘죽음의 숙명을 알리는 모닝콜‘이란 말로 옮긴다. 이는 낯선 호텔 방에서 이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리는 바람에 야심하기 그지없는 시간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나 암흑과 공포 속에 내던져진 채, 현세가 잠시 세 들어 사는 세계임을 통렬히 자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몽테뉴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줄리언 반스는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삶을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예전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편이었다. 죽음과 장차 맞이하게 될 인생이 아니라, 죽음과 절멸의 이야기 말이다. 이에 반스는 플로베르의 한마디를 빌려 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망의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운명을 감당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운명처럼 무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군! 그런 거군!’ 하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발아래 놓인 검은 구덩이를 응시함으로써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이다.” _본문에서한밤중 갑자기 걸려 온 전화처럼 찾아오는 죽음,그 죽음에 대한 줄리언 반스의 가장 솔직한 에세이죽음은 줄리언 반스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다. 소멸에 대한 생각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소년이 등장하는 그의 첫 소설, 『메트로랜드』부터 죽음은 작가로서의 그의 의식을 사로잡아 왔다. 이후 노년을 주제로 한 단편집 『레몬 테이블』, 자살과 기억의 문제를 소재로 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별과 살아남은 삶의 슬픔을 다룬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죽음이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강령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에세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반스의 ‘죽음의 계보’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죽음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작가뿐만 아니라 그 개인과 주변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작가로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우리가 예술을 탄생시키는 이유는 죽음을 무릎 꿇리려고, 안 되면 최소한 반항이라도 해보기 위해서일까?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서? 죽음에게 제 분수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 취향은 변한다. 진실도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모든 예술의 형태들은 사라진다. 심지어 죽음을 뛰어넘은 위대하기 그지없는 예술의 승리조차 실소가 나올 정도로 단명한다. 소설가는 다음 세대의 (운이 좋다면 2세대나 3세대의) 독자들에게 희망을 걸지 모르며, 그러는 것으로 죽음을 비웃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사형수 독방의 벽을 긁어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러는 이유는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여기 있었다, 라고. _본문에서영국 문학의 제왕으로 불리며 맨부커상, 메디치상, 구텐베르크상 등 명망 있는 상을 줄줄이 받아온 그도, 결국은 작가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산다는 말이 있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언젠가 찾아올 절멸을 상상했을 때 두렵긴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는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한 번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고백한 죽음에 대한 솔직한 에세이인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우울하고 무겁기보다는 유쾌하고 우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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