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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김구 중경 임시정부 주석 취임 *백범일지 광복군 창설과 국내 진공 실패 창씨개명 시행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 폐간 프랑스 항복과 필리프 페탱의 ‘비시 정부' *마지노선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취임 영국· 프랑스 연합군 됭케르크 철수 하워드 플로리?언스트 체인, 페니실린 정제에 성공 폴란드 ‘카틴 숲 학살’ 레온 트로츠키 피살 발터 벤야민 망명 실패 후 자살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일 암호 전쟁 미국의 2차대전 참전과 경제 회생 맨해튼 프로젝트 *로버트 오펜하이머 영화 ‘시민 케인’ 개봉과 오슨 웰스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 안타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체포 서정주 첫 시집 '화사집' 발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양주동 '조선고가연구' 발간 *오구라 신페이 엔리코 페르미,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 성공 바르바로사 작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 버나드 몽고메리와 알 알라메인 전투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독가스 학살 *반제회의 알베르 카뮈 ‘이방인’ 출간과 카뮈· 사르트르 논쟁 안네 프랑크와 '안네의 일기'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출간 [1943년] 조선인 강제징병 김영옥 미 장교로 2차대전 참전 이윤재 옥사 앨런 튜링 ‘콜로서스’ 컴퓨터 개발 셀먼 왁스먼, 항생물질 '스트렙토마이신' 발견 바르샤바 게토 봉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출판 레너드 번스타인, 미 뉴욕 필 지휘자 데뷔 뮤지컬 ‘오클라호마’ 초연 프랭크 시내트라 'All or Nothing at All' 대히트 [1944년] V 로켓 발사와 베르너 폰 브라운 노르망디 상륙작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드골 정부, 나치 협력자 대숙청 오스카 신들러 ‘신들러 리스트’ 작성 가미카제 등장 *제로센 전투기 *B-29 폭격기 에르빈 롬멜 자살 *발퀴레 작전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출간 호르헤 보르헤스 단편소설집 '픽션들' 출간 이육사 옥사 주기철 목사 순교 [1945년] 8?15 해방 미· 소군 진주와 남북 분단 김일성 등장 *김일성 가짜논쟁 모스크바 3상회의와 찬?반탁 정국 여운형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 윤동주 옥사 정진숙 ‘을유문화사’ 설립 나치 독일 항복 히틀러, 에바 브라운과 결혼 후 동반 자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투 원자폭탄 히로시마 투하 일본의 항복 히로히토 허리 굽혀 맥아더 방문 브레턴우즈 체제 발효 유엔 발족 베트남민주공화국 수립 장폴 사르트르 ‘레탕모데른(현대)’지 창간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출간 디트리히 본회퍼,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 개최와 결렬 김규식· 여운형 주도의 좌우합작 운동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이승만의 ‘정읍 발언’ ‘9월 총파업’과 ‘대구 폭동’ 남조선 국방경비대 창설 *육군사관학교 시집 '청록집' 발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임원식 ‘고려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취임 경성부, 서울특별자유시로 개칭 세계 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존 폰 노이만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개정 *야스쿠니 신사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 에디트 피아프 ‘장미빛 인생’ 발표 *이브 몽탕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출간 제1회 칸 영화제 개막 혼다 소이치로 '혼다 자동차' 창업 미국의 첫 공개 원폭 실험과 비키니 수영복 조지 케넌의 ‘장문의 전보’ [1947년] 정주영 현대건설 설립 구인회 락희화학 설립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설치?활동 현대 한국불교의 기틀 ‘봉암사 결사’ 김기창?박래현 첫 부부전시회 현인 '신라의 달밤' 발표 쇼클리?바딘?브래튼, 트랜지스터 개발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 GATT 창설 인도· 파키스탄 분리 독립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 취임 사해문서 발견 *나그함마디 문서 크리스티앙 디오르 '뉴룩' 발표 잭슨 폴록 ‘액션 페인팅’ 정립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재키 로빈슨, 흑인 최초로 미 메이저리그 데뷔 테오도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출간 *프랑크푸르트 학파 윌러드 리비, 탄소14 연대측정법 개발 로즈웰 UFO 추락 사건 [1948년] 초대 총선과 제헌의회 구성 대한민국 헌법 제정 이승만 초대 대통령 당선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유엔총회, 대한민국 승인 *주미 한국 대사관 *유엔과 한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김구?김규식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방북 제주 4?3사건 *서북청년단 여수 14연대 반란 *숙군(肅軍)과 박정희 한국의 첫 하계올림픽 출전과 김성집 *새미 리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취임 신격호, 롯데 창업 이인선, 국내 첫 오페라 ‘춘희’ 제작?공연 이스라엘 독립과 제1차 중동전 *시오니즘 소련의 베를린 육로 봉쇄 요시프 티토와 코민포름 유고 축출 킨제이 보고서 '인간 남성의 성적 행동' 출간 앨저 히스 소련 간첩으로 판명 조지 가모의 '빅뱅우주론'과 우주배경복사 발견 [1949년] 반민특위 활동과 와해 김구 피살 *의혹들 국회 프락치 사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주은래 국무원 총리 겸 외교부장에 임명 동?서독 분단과 콘라트 아데나워 루드비히 에르하르트와 ‘라인강의 기적’ 아크멧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독립 *반둥 평화회의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초연 *엘리아 카잔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출간 *계약결혼 조지 오웰 ‘1984년’ 출판 콘스탄틴 게오르규 '25시'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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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탱의 프랑스 ‘비시 정부’(1940년)
…페탱을 기소한 검사는 1940년 6월의 항복(휴전)과 7월의 비시 정부 수립이 모두 불법이었다고 공격했다. 페탱과 변호인은 기존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페탱 측은 휴전협정과 비시 프랑스의 확보는 프랑스 전 지역이 적에 넘어가는 상황보다 분명히 나았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아프리카가 보전됨으로써 연합군에도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페탱이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히는 동안 런던에서 편안히 지내며 처칠과 골프를 치러다닌 드골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항변했다.… 맨해튼 프로젝트(1941년) …연구소 주변에는 울타리와 가시철망이 쳐지고 우편물은 검열을 받았으며 전화는 도청되거나 녹음되었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모두가 암호명을 갖고 있었고 로스앨러모스 지명은 대통령 명령에 따라 미국의 지도에서 사라졌다. 계획에 참여한 수천 명의 직원은 비밀을 지켜야 했고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관리되었다. 실제로 원자폭탄이 개발된 후에도 자신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들도 있었다.… 조선인 강제징병(1943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으로 끌려간 조선인 징병자 총수는 해군병과 보충병 등을 포함해 1944년과 1945년 각각 9만 5,000명씩 모두 19만 명이나 되었다. 일반지원병과 학도지원병까지 합하면 중국과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에 이르는 광범한 전장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은 약 24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미카제 등장(1944년) …군부는 가미카제 대원들을 '피어 있는 사쿠라 꽃'에 비유하며 죽음을 독려했다. 이들이 타는 비행기에 사쿠라 꽃을 새기거나 또 출격 때는 여학생들이 사쿠라 가지를 들고 나와 전송하기도 했다. 이들의 전사를 '산화(散華)'라고 한 것도 '사쿠라 꽃(華)이 지(散)듯'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의미였다. 오니시는 일제 패망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가미카제 영령들에 대한 사죄를 담은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8?15 해방(1945년) …36년 질곡에서 벗어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거리로 뛰쳐나와 부둥켜안고 감격의 만세를 부른 군중은 없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물결쳤으며 환호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는 훗날의 증언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날 서울의 큰 거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히틀러 자살(1945년) …히틀러는 입속에 총을 쏘았고 브라운은 독약을 입에 넣었다. 56번째 생일을 맞은 지 열흘 만이었고 독일의 총리가 되어 제3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12년 3개월이 흐른 뒤였다. 화장은 관저 뜰에서 집행되었다. 불길이 타오르는 곳을 향해 괴벨스는 오른손을 뻗어 나치스식의 고별 경례를 했다. 소련군의 집중적인 포화로 히틀러의 유골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의 항복(1945년) …천황은 종전 칙서를 통해 침략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이나 사과 대신 구구한 자기변명만을 늘어놓았다. 전국에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전범들의 자결이 줄을 이었다. 장교들도 집단적으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해군의 일부 전투기가 도쿄 상공을 날면서 “항복하지 마라. 천황의 조서는 가짜다”라는 전단을 뿌렸으나 마지막 발악일 뿐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출간(1946년) …조르바는 과거 게릴라와 광부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세상 일은 몽땅 내려놓고 사는 호쾌하고 농탕한 기인이다. 여자만 보면 앞뒤 재지 않고 미쳐 날뛰는 남자, 도자기를 빚는 데 걸기적거린다고 도끼로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린 그런 사내다. 윤리, 도덕, 규범 같은 잣대는 훌쩍 뛰어넘은 채 자기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진솔한 삶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멸종 위기의 ‘잡놈’이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뉴룩’ 발표(1947년) …좁은 어깨와 부풀린 가슴, 꼭 조이는 허리선과 풍성한 스커트를 특징으로 하는 뉴룩은 풍요와 평화를 연상시켜 전쟁으로 꿈을 잃고 욕망을 절제해야 했던 전후 여성들을 자극했다. ‘하퍼스 바자’지 편집장 카멀 스노가 혁신적인 디오르의 의상을 미국 소비자에게 적극 소개한 후에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디오르의 옷을 즐겨 찾았다. 그 덕에 바디라인을 강조한 대담한 뉴룩 디자인이 파리를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복귀시켰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1948년) …헌법안을 심의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결정되고 태극기가 우리 국기임이 확정되었으며 국방군은 국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1948년 7월 12일 제28차 본회의에서 전문 10장, 103조의 헌법안이 의원들의 기립 표결로 최종 통과되었다. 헌법은 7월 16일 통과된 정부조직법과 함께 7월 17일 국회의사당에서 성대하게 공포되었다.… 유엔총회, 대한민국 승인(1948년) …결의안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전국적 정부라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함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특히 6?25 때 유엔군의 참전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더없이 중요한 외교적 성취였다.… 킨제이 보고서 출간(1948년) …은밀했던 성이 까발려지고 ‘배꼽 아래’ 일상이 낱낱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2만 5,000권의 초판이 금세 매진되고 수개월 만에 25만 부가 팔려나가 킨제이는 일약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뉴스위크’지는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을 둘로 갈라놓은 이래 이보다 충격적인 과학서는 없었다”며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주은래 국무원 총리 겸 외교부장에 임명(1949년) …모택동의 변덕과 광기 속에서 주요 인재들을 보호하는 데 진력함으로써 모택동의 다음 시대를 여는 가교 역할도 했다. 특히 문화대혁명으로 5년간 쫓겨나 있던 등소평이 복권되어 미래의 중국을 구상할 수 있었던 데는 주은래의 역할이 컸다. 주은래와 등소평의 관계는 192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각별했다. 두 사람은 모택동의 폭압 정치 속에서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혁명의 동지이자 이념의 동반자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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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으로 1940년대 초반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대표된다. 일제는 중일전쟁(1937년)과 태평양전쟁(1941년)을 도발한 후 창씨개명(1940년), 강제징병(1943년),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 조선일보?동아일보 폐간(1940년) 등으로 조선인의 혼을 빼앗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단말마적 발악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이윤재, 이육사, 주기철, 윤동주 등이 순국했다.
1945년의 해방은 감격과 환희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북 양쪽에 주둔한 미?소군의 점령 정책으로 각기 다른 체제의 정부가 세워져 분단의 질곡으로 빠져들었다.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소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38선 획정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분단의 총체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 분단의 원인(遠因)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이고 근인(近因)은 항복 지연이다. 일제는 1945년 패색이 짙은데도 어떻게든 천황을 보호할 목적으로 항복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원자폭탄으로 두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자승자박의 형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복 지연으로 애꿎게 한반도를 분단케 한 것은 일제가 저지른 또 하나의 죄악상이다. 일제의 항복 지연은 조속한 종전을 통해 자국 군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미국으로 하여금 소련에 대일전 참전을 요청하게 했다. 전쟁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소련이 1945년 8월 한반도로 밀고 내려오자 미국은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 수중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부랴부랴 38선을 획정했다. 38선 남쪽에 주둔한 미국의 당초 목표는 5년간의 신탁통치를 거친 후 수립할 통일 국가였다. 하지만 북한에 공산 위성국가를 세우려는 소련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미국은 유엔의 힘을 빌려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반공 정권을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잇따랐다. ‘9월 총파업’, ‘대구 폭동’, ‘제주 4?3사건’,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일제하의 암울한 시대를 밝혀온 백범 김구와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운동을 추구한 몽양 여운형도 피살되었다. 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1948년 자유민주주의 선거에 입각한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했으며 대한민국 첫 정부를 수립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험난한 작업이었다. 혼란 속에서도 정주영의 현대, 구인회의 LG, 신격호의 롯데가 설립되어 1960~1970년대 산업화의 초석이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을유문화사(출판)가 설립되고, ‘청록집’(시집)이 발간되었으며 교향악단이 창단되었다. 김기창?박래현 부부가 첫 부부전시회를 열고 가수 현인이 노래로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세계적으로 1940년대 전반기는 전쟁으로 점철된 비극의 5년이었다. 유럽은 2차대전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은 태평양전쟁으로 살육의 장이 되었다. 유대인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수 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대전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거쳐 1945년 히틀러의 자살과 함께 막을 내렸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이오지마 전투를 거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나자 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에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대만, 이스라엘, 유고슬라비아 등이 독립했다. 더불어 세계에는 동서냉전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소련의 동유럽 점령, 이에 맞서는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 발표로 촉발된 미소 냉전은 급기야 독일, 베트남, 중국, 대한민국을 분단국가로 만들었고 동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시켰다. 그 와중에 세계 각국은 세계대전의 비극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유엔을 창설하고 GATT를 발족했으며 브레턴우즈 체제를 선택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 윈스턴 처칠(영국), 콘라트 아데나워(서독), 자와할랄 네루(인도), 요시프 티토(유고슬라비아), 주은래(중국), 아크멧 수카르노(인도네시아), 후안 페론(아르헨티나) 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20세기 중후반기에 활동한 각국의 지도자가 부상한 것도 1940년대였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문화는 꽃을 피웠다. 문학에서는 알베르 카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호르헤 보르헤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조지 오웰, 아서 밀러 등이 시대와 호흡하는 명작을 양산했다. 뉴룩과 비키니의 등장은 여성 패션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영화사적으로는 제1회 칸영화제가 개막하고 영화 ‘시민 케인’이 개봉했다. 대중음악적으로는 에디트 피아프가 ‘장미빛 인생’을 발표했으며 프랭크 시내트라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클래식에서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육 필 지휘자로 데뷔하고 마리아 칼라스가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