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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문
2. 박은신 3. 벽돌 공장과 기와 공장 4. 태봉 5. 전쟁 6. 변화 7. 옆구리 세월 8. 인생 9. 박스 10. 배웅 11. 염습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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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정말 좋다니깐. 당신 몸 닦아 주는 동안 서로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참 좋단 거요. 어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이잖소. 당신도 좋지 않소?”
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짐짓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어서 하기나 하라구? 헛허허, 어련히 내 알아서 하겠소? 보채지는 마시구려. 내가 닦아 낸 자리가 시원치 않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구. 당신답지 않게 맘껏 성질부려도 좋소.” 거즈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아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쪼록 내가 성심을 다할 터이니 좋게 봐 주시구려. 그래 요, 은신이……. 당신은 이름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당신은 참 오랜 세월 이름 없는 듯 살아왔지만 난 당신 그 이름이 참 좋소. 지금 난 은신이, 박은신을 맘껏 부를 수 있어 좋은데 듣는 당신은 어떠하오?” 아내 맨몸을 가린 흰 천을 가슴 위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천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왼손을 조금 들어 올렸다. “아아…….” 이내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너무나 작았다.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웠다. 죽음은 원래 안에서 바깥을 최대한 힘껏 잡아당기는 것인가. 그래서 피돌기가 멎은 공간 안까지만큼 신체가 축소되는 것일까. 원래 이렇게까지 조그맣게 느껴지던 손이 아니었다. 처음 잡아 보는, 만져 보는 손 같았다. 그 감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가 죽은 아내 손을 만져 보는 첫 느낌은 그렇게 한없이 작고 가벼웠다. --- p.23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이처럼 왜소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던가. 그래서 사라지고 없어질 만큼 덜어 내고 끝끝내 비우는 과정이던가. 승민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아내의 손을 다시 한번 요모조모 애틋한 눈으로 살폈다. 다시는 못 보고 못 만질 손을 최대한 기억 속에 저장해 두겠다는 듯이. 살아오는 동안 그 손이 거머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려서 그런지 너무나 가벼웠다. --- p.24 아내 은신의 얼굴은 조그맣고 갸름했다. 차게 식은 이마며 희다 못해 연한 잿빛으로 가라앉은 듯한 감겨진 두 눈, 오뚝한 콧날, 보랏빛 입술이 얼굴 안에 담겨 있었다. --- p.33 당신 눈꺼풀을 닦는다. 살아 한 번이라도 거즈가 아니라 내 손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없다. 단 한 번도.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않았을까. 내 손으로 진작 눈물을 닦아 주었다면 당신 세상은 보다 평화로워지지 않았을까? 눈이 더 맑아져 세상의 기쁨을 더 많이 보았을 텐데. 어리석고 부끄럽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눈물이 나의 죄구나. 이렇게 당신이 죽어서야 몸을 닦아 준다는 것이 결국은 내 죄책감을 문질러 닦는 게 아닌지. 더께더께 쌓인 내 허물과 잘못을 닦아 내는 속죄의 행위가 아닐는지. --- p.88 느닷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가슴의 감정과 머리의 이성이 따로 놀았고 쉼 없이 으르렁거렸다. 아내와 내가 깊이 사랑한 것이 죄인가. (---)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들이 흔들림 없는 사랑을 하고 가족으로 결실을 맺은 게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 그토록 못마땅하고 언짢았는가. --- p.200 "당신이 너무 고마웠어. 나에 대한 당신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깊고 크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 됐어. 그래서 그 이후 내 삶은 전부 나를 믿어 준 당신에 대한 은혜를 갚는 거라고 여겼어. 당신에 대해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지. 물론 많이 부족했다는 거 나도 잘 알지만…….” --- p.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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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독자를 울린 순애보 문학의 전설
『국화꽃 향기』 김하인이 전하는 가슴 먹먹한 노년의 이별 “모두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귀하며 가장 따스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을 편안히 안아주고 등 두들겨주면서 하루하루 아늑하고도 아름답게 저물어지시길 기원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00만 독자들을 울린 감성 작가 김하인이 이번에는 노년의 이별로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둘이 하는 혼잣말 : 염습』은 아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고향 선배의 이야기로부터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때 그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이 본인이 아내의 죽은 몸을 직접 닦아 주었다는 내용이었다.”라며, 자신 또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되면 자신 또한 아내의 몸을 닦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당신 몸 닦아 주는 동안 서로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참 좋단 거요. 어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이잖소. 당신도 좋지 않소?” - 23P 사랑이 메말라 가는 팍팍한 시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귀하며 따스한 존재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단어 “아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접 닦아주며 남편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죽음은 아름답게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별의 순간조차 아름답고 숭고하게 만들어낸다.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시간과 슬픈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 마음이 먹먹해진다. 당신 눈꺼풀을 닦는다. 살아 한 번이라도 거즈가 아니라 내 손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없다. 인생은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승민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아내의 손을 보며, 아이를 낳은 이후 한 번도 이름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지막이 아내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무쪼록 내가 성심을 다할 터이니 좋게 봐 주시구려. 그래요, 은신이……. (중략) 내가 잘할 거라 장담은 못 하오만 미진한 구석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시구려. 그러고 보니…… 흐음, 그렇구려.” 손가락을 닦는다.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세월이 빠져나간다. 아내의 가는 목 아래 쇄골을 거즈로 닦는다. 이 가늘고 연약한 어깨에 무거운 몸을 걸쳐 지탱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사랑하는 아내여, 이제는 길고 그 고단함에서 비로소 깃털처럼 자유로워지셨는가? 그동안 수고하셨고 참으로 애 많이 쓰셨소.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리며 그의 혼잣말은 시작된다. 『둘이 하는 혼잣말 : 염습』은 회한과 고통, 슬픔과 좌절, 그리고 삶이 이루었던 기쁨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부부의 인생 이야기이자 먼저 떠나는 배우자에게 보내는 사모곡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하고, 떠나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깊고 묵직한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