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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5
제1장 동시문학의 전개 방정환의 감성 해방운동과 동요 17 농경문화에서 도시서정으로 31 동시조는 융합의 문학이다 43 연작 동시, 어떻게 쓸 것인가? 56 일상성의 파괴, 그 쾌감과 자유로움 79 생활시에 나타난 일상성과 몇 가지 논의점 97 동시 문학에 나타난 죽음의 수용 양상 111 동시에서 ‘재미성’이란 무엇인가 138 ‘문학작품으로서의 동시’로 가는 길 151 제2장 시인을 찾아서 정지용 시인의 “동요류 및 민요풍 시편” 탐색 179 누나가 타고 간 붉은 가마는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198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222 말못하던어머님의 귀나울닐걸 275 절필과 월남 그리고 「구슬비」 281 「구슬비」이야기 · 하나 292 「구슬비」이야기 · 둘 299 제3장 동시 몇 편 깊이 읽기 ‘맑은 물’과 나뭇잎 배, 그 의미 탐색 311 포기할 수 없는 꿈, 어린이 공화국 322 전 국민의 자장가 「섬집 아기」 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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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이 어린이 운동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원리로 삼은 것이 ‘감성 해방운동’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 중 하나가 동요의 창작과 보급이다. 그는 1923년에 [어린이]를 창간하고 이를 중심으로 동요 창작과 보급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는데 그 결과 1925년에는 동요황금시대를 열기도 했다.
--- p.20 오늘날 한국 동시는 더 이상 농경문화 시대에 보고 듣고 느끼던 서정 양식이 아니다. 급변하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과 어린이의 생각과 감성을 담아내는 시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 빠르게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과도기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 p.40 동시조 문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창작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것은 격조 높은 동시조 작품이 많이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나 동시조처럼 진입 장벽에 낮아 보이는 장르일수록 문학작품으로서의 질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 문학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 동시조는 필연적으로 독자의 외면을 받다가 끝내 소멸의 길을 가게 된다. --- p.55 동시는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어린이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문학 양식이다. 이때 일상은 어린이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생활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생활 속에서 지속적ㆍ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와 사고내용, 즉 일상성을 살펴보는 일은 이 시대의 동시를 파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 p.97 결론적으로 말해서 동시에서의 재미성은 ‘시적 재미’를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적’이란 말속에는 시로서 갖추어야 할 특징과 요소를 총망라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시적 재미란 시의 리듬, 이미지, 메시지를 비롯하여 비유, 아이러니, 상징, 역설 등을 즐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흡인력 있는 감정의 총합이다. --- p.140 오장환 시인은 전통과 잘못된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 과정에서 어찌 고뇌가 없겠는가. 방황도 있었고 유랑의 삶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가 그리던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 p.220 ‘왜 동시를 쓰는가?’ 하는 물음은 동시를 쓰는 시인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동시인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묻는 물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기 삶 속에서 동시를 써야 할 필연적 이유를 찾아낸다면 일단 그는 시인이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평생을 바쳐 추구해야 할 문학적 지향점과 작품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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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나 역시 1980년대 초에 등단해서 오늘날까지 동시를 써왔지만, 한마디로 그 여정을 말하자면 문학작품으로서의 동시를 추구하기 위해 걸어온 먼 길이었다. 동시로 등단한 지 40년이 넘으니까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질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는 동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몹시 불편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러지?’라고 반문할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삿일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결론은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책을 묶고 보니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이 확연히 보인다. 힘들겠지만 기꺼이 뚜벅뚜벅 문학작품으로서의 동시를 추구하기 위한 길을 가고자 한다. 2023년 1월 전병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