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연구 편
『바세』와 티베트불교 『바세』 5종 필사본에 보이는 ‘김 하샹’ 기록 비교 연구 2. 역주 편 바세 dba' bzhed/(티베트어 원문) |
조병활의 다른 상품
|
1. 『바세』는 어떤 책인가?
1. 『바세』는 어떤 책인가? 『바세』는 티베트 제37대 짼뽀 왕·황제의 티베트식 칭호. 치데쭉땐(대략 680-704-754)과 제38대 짼뽀 치송데짼(742-755-797) 부자 통치 시기에 있었던 불교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8세기 중·후반 당시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삼예사 건립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외래종교인 불교와 티베트 자생종교인 본교의 대립, 샨타락시타 스님과 파드마삼바바 스님이 티베트에 들어오는 과정, 삼예사 건립, 삼예종론宗論의 전개와 결말 등이 내용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부똔불교사』 bu ston chos ’byung. 부똔(1290-1364) 스님이 1322년에 펴낸 저서. 티베트불교에 관한 기록이 적지 않다. , 『붉은 역사[뎁테르말뽀]』 deb ther dmar po. 차빠꾼가도제(tshal pa kun dga' rdo rje, 1309-1364) 스님이 1346년에 펴낸 역사서. 서하, 몽고, 토번 등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 『왕조명경王朝明鏡』 rgyal rabs gsal ba’i me long. 사꺄소남갤챈(sa skya bsod nams rgyal mtshan, 1312-1375) 스님이 지었으며 그의 입적 후 보완되어 1388년 완성된 역사서. 기세간器世間의 형성, 인도의 역대 왕조,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생, 불교의 흥기, 티베트 고대 역사와 불교의 티베트 전파 등에 관한 역사가 차례로 기술되어 있다. 중국 학자들은 주로 『서장왕통기西藏王統記』로 번역한다. , 『두견가음杜鵑歌音』 dpyid kyi rgyal mo’i glu dbyangs. 제5대 달라이 라마 가왕로상갸초(ngag dbang blo bzang rgya mtsho, 1617-1642-1682)가 1643년에 지은 책. 고대 티베트의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 중국 학자들은 주로 『서장왕신기西藏王臣記』로 번역한다. , 『현자들의 즐거운 잔치[캐배가똔]』 mkhas pa’i dga’ ston. 이 책을 중국학자들은 『현자희연賢者喜宴』으로, 일본학자들은 『학자의 연宴』으로 번역한다. 필자는 『현자들의 즐거운 잔치』로 옮겼다. 빠오쭈락쳉와(dpa’ bo gtsug lag phreng ba, 1504-1566) 스님이 1544년에 쓰기 시작해 1564년에 완성한 방대한 역사서. 티베트 역사에 관한 기록은 제3장에 있다. 등 후대의 많은 티베트 역사서歷史書가 인용할 정도로 유명하다. 『바세』는 또 다른 이유로 주목받는다. 티베트불교의 앞날을 예견하는 김 하샹 티베트어 발음대로 표기했다. 의미는 ‘김 화상’과 같다. [김 화상金和尙]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 하샹이 언급한 티베트불교의 흥륭興隆에 대한 예언이 『바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김 하샹이 바로 신라의 무상無相 스님이다. 2. ‘김 하샹’은 누구인가? 『바세』에 등장하는 신라인 무상 스님에 대한 기록은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 『송고승전宋高僧傳』 권제19 「당성도정중사무상전唐成都淨衆寺無相傳」, 『원각경대소석의초圓覺經大疏釋義?』 권제3(하下) 등에 있다. 무상 스님의 생졸년은 『송고승전』 권제19 「당성도정중사무상전」에 나오는 “至德元年建午月十九日, 無疾示滅, 春秋七十七[지덕 원년(756) 음력 12월 19일 병 없이 입적하니 나이는 77세였다].”이라는 기록에 의하면 680-756년이 된다. 반면 『역대법보기』에 보이는 “寶應元年 … 五月十九日, … 大師時七十九[보응 원년(762) … 5월 19일 … 대사의 나이 79세였다].”(『대정신수대장경』 제51책, p.185a)에 의하면 684-762년이 된다. 무상 스님의 법맥은 『원각경대소석의초』 권제3하(『대장신찬만속장경大藏新撰?續藏經』 제9책, p.533c)에 자세하다. “본래 오조五祖 문하에서 나뉘어 나왔고 이름은 지선이며 바로 (홍인 스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사천성 자주 사람으로 뒤에 본주의 덕순사로 돌아와 가르쳤다. 속성이 당唐 씨인 제자 처적 스님이 계승했으며 처적 선사는 네 명의 제자를 두었다. 성도부 정중사 김 화상은 법명이 무상으로 (네 명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根元是五祖下分出, 名?智詵, ?十人中之一也. 本是資州人, 後却歸本州德純寺開化. 弟子處寂俗姓唐承, 後唐生四子. 成都府淨?寺金和?, 法名無相, 是其一也].”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덕순사 지선-처적[唐和上]-무상[金和尙·金和上]” 3. ‘삼예종론宗論’이란 무엇인가? 781년경 돈황敦煌 일대가 티베트 영토로 편입된 이후 785년경 ‘마하야나(대략 740-810)’라는 이름의 중국인 스님이 라싸에 들어가 가르침을 폈다. 마하야나 화상和尙·和上은 ‘마하연摩訶衍’으로도 불린다. 돈황敦煌에서 태어난 그는 선종 북종北宗의 영향을 받은 선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돈황 일대에서 가르침을 펴다 라싸에 들어갔다. 그는 인도에서 온 까말라씰라[연화계] 스님과 792-794년 삼예사에서 논쟁을 펼쳐 패배한 뒤 돈황으로 돌아갔다. 이것을 ‘삼예사에서 벌어진 불교 교리논쟁’, 즉 ‘삼예종론宗論’이라 부른다. 인도 불교학을 상징하는 까말라씰라 스님과 중국 불교학을 상징하는 마하야나 화상 간의 ‘논쟁’으로 보거나 점문파(漸門派, 까말라씰라 스님)와 돈문파(頓門派, 마하야나 화상) 사이의 ‘쟁론諍論’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삼예종론의 전말을 기록한 최초의 문헌이 바로 『바세』이다. 한편,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돈오대승정리결頓悟大乘正理訣』(왕석王錫 정리)에 마하야나 화상의 사상이 정리되어 있으며 『돈오대승정리결』에 마하야나 화상이 패배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846년 토번 왕조가 멸망하며 돈황 지배도 끝난다. 4. 『바세』의 가치 1)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된 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2) 티베트불교의 앞날에 대한 신라 무상 스님의 예언이 있다. 3) 티베트 역사에서 중요한 삼예사 건립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4) 적호(샨타락시타) 스님과 연화생(파드마삼바바) 스님이 티베트에 들어가게 된 배경, 활동 등이 기록되어 있다. 5) 삼예종론의 배경, 전개 과정, 결과 등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6) 티베트 자생종교인 본교와 불교의 사상적·정치적인 대결이 담겨 있다. 7) 고대 티베트인들의 습속과 문화를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