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민중에 의해 신으로 추앙된 고승제1장 서론제1절 연구의 목적과 선행 연구 검토1. 연구의 목적2. 선행 연구 검토제2절 연구의 범위와 서술 방향제2장 범일의 탄생과 입당 유학제1절. 범일의 탄생과 붓다와의 연결 검토1. 탄생의 신이성과 붓다와의 연결2. 「범일전」의 신이성과 붓다화제2절. 범일의 출가와 입당 유학1. 범일의 출가 배경과 경주행2. 범일의 입당 시기와 초기 행적제3장 범일의 남종선 사법과 귀국 후 행적제1절. 범일의 남종선 사법과 회창법난1. 범일의 마조계와 석두계 계승2. 수도행과 회창법난의 관련 기록 검토제2절. 입당의 마지막 행적과 진귀조사설의 문제1. 육조탑묘 참배와 귀국 연도 문제2. 진귀조사설의 의미와 범일의 제창 의도제3절. 백달산 연좌와 명주도독의 굴산사 초빙1. 백달산 연좌 기록의 내포 의미 검토2. 굴산사 초빙과 40여 년 주석의 강조 의미제4장 범일의 굴산사 주석과 명주불교로의 확대제1절. 명주도독 김공의 범일 후원과 성격1. 명주군왕 김주원과 명주도독 김공의 관계2. 명주도독 김공과 사굴산문의 후원 세력 변화제2절. 범일의 정취보살상 봉안과 오대산 주석 등1. 낙산사 정취보살상의 봉안 기록 검토2. 범일의 오대산 주석과 사굴산문의 관계3. 잔존하는 범일의 불사 기록과 흔적제5장 범일의 강릉단오제 주신으로서의 확립 과정 검토제1절. 강릉단오제의 특징과 국사성황신 성립 기록1. 중국 단오제와 강릉단오제의 차이와 특징2. 대관령 산신과 국사성황신의 관련 기록 정리제2절. 이승의 존재와 범일로의 대체 가능성1. 이승과 승·속이신의 ‘승’에 대한 판단2. 자장에서 범일로의 변화 가능성과 타당성제3절. 명주 지역의 범일 신격화와 민간 신앙화1. 민간 신앙의 범일 수용과 신격화 시기2. 범일에게서 확인되는 민간 신앙적 구조3. 강릉단오제에서의 주신 확립과 범일제6장 결론참고문헌범일 연표
|
一雨 玆玄,일우자현
자현의 다른 상품
|
아직 숙제로 남아 있는 범일국사의 생애를 복원하고유네스코 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밝히다! 인간은 때로 인간을 신으로 섬긴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상업과 전쟁의 신으로 섬기듯 말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신이 최고의 대상이 아니므로, 고승을 붓다나 보살로 여긴다. 당나라 때 유학 온 신라 승려인 김지장을 지장보살로 추앙하는 것이나, 의상대사를 금산보개여래의 화신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에는 특이하게도 ‘신’이 된 고승이 있다. 바로 범일국사이다.범일국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선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선종의 뿌리를 심은 고승이다. 특히 그가 연 사굴산문은 구산선문의 대표 산문으로, 이후 순천 송광사의 보조지눌과 양주 회암사의 나옹혜근 등 거목들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런 선승이 민간 신앙 제례로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추앙된다는 점이다. 우리 불교사에서 생불(生佛)이나 신이승(神異僧)으로 평가받는 다른 고승(高僧)들과 달리 민간 신앙적 변형을 거친 독특한 경우이다.그렇다면 그는 어떠한 이유로 민중들에 의해 신이 되었을까?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추적하는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 자현 스님의 연구서이다.아직 숙제로 남은 범일국사의 생애를 복원하다저자는 먼저 범일국사의 탄생과 출가, 입당 유학 시기는 물론 귀국 이후의 행적을 정리한다. 이는 시기적으론 810년 1월부터 889년 4월에 이르는 80여 년의 기간이 되며, 옛 명주 지역에서 중국 대륙에 이르는, 지역적으로도 매우 광범위하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태어났다고 전하는 한 고승의 생애를 다시금 복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로써 ‘범일국사에 관한 후대의 설화적 윤색(강릉 굴산사지 일대를 배경으로 한 범일국사의 탄생설화 등),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추앙되는 부분과 관련된 더욱 명확한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우리 불교사에서 범일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매우 크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연구가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강릉 굴산사지 발굴에 따라 간접적이긴 하지만 범일의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또한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서 그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다만 저자는 범일에 관한 초기 연구는 상대적으로 치밀함이 적었고,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연구는 대체로 연구 용역에 관한 결과물이 다수를 차지해 연구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평가한다.그런 아쉬운 측면을 고려한 저자는 현존하는 옛 기록으로 〈(굴산)통효대사 연휘탑비〉 비편, 이 비문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당집』(952) 권17의 「명주굴산고통효대사」, 범일의 사법제자인 낭원개청의 비문과 낭공행적의 비문, 범일에 관한 단문과 삽화가 실린 『선문조사예참의문』 등을 1차 자료로 삼는다. 나아가 기존의 연구 성과, 그리고 중국의 지리적 측면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그의 생애를 복원한다.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밝히다다음으로 저자는 앞서 복원한 범일의 생애를 바탕으로 명주 지역 신격화 및 민간 신앙으로의 확대 수용과 변형, 그리고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확립되는 과정에 대해 살핀다.앞서 이야기했듯 범일국사에게서는 ‘선승이자 사굴산문의 개창자’라는 역사적인 측면과 ‘대관령 및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민간 신격화’라는 이중 구조가 발견된다. 이에 따라 다시금 복원한 범일의 생애를 기반하여 민간 신격화 과정과 관련된 분석을 위해 현존하는 옛 기록을 살핀다. 그 중심엔 『고려사』 권92의 〈왕순식〉과 『임영지』 「전지」가 있다.전자의 자료는 대관령 신앙과 관련된 승려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자료는 범일의 신격화와 민간 신앙적 변형이 늦어도 조선 전기에 존재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물론 두 자료는 기록된 시기나 구성면에서 차이가 크지만, 대관령을 아우르는 명주 지역에 국한된 전승이란 점에서 강릉단오제 주신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 두 자료의 관계를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한다. 그리하여 범일이 자장 이래 신이승적 면모를 계승하는 민간 신앙적 측면에서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더 분명하게 밝힌다.이 책에 담긴 저자의 주장은 기존에 있던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조선 후기에 김유신에서 범일로 변화했다는 주장이나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국사’가 범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산신이나 성황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 등과는 다른 관점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범일은 불교적으론 국사이지만, 민중에 의해서는 대관령을 관장하는 국사성황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기도 한 강릉단오제의 주신의 역할도 맡고 있다. 사찰에 갇힌 고목(古木)이 아닌, 민중의 요구에 의해 신이 된 범일의 모습은 민중에 발맞추어 나아가는 진정한 고승의 면모를 잘 나타내 준다.우리 고대사에 속하는 인물로서 관련한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범일국사. 하지만 강릉단오제를 통해 그의 탁월한 수행력과 실천적 측면은 지금도 여여히 흐르고 있다. 어쩌면 범일국사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우리 불교의 대표 고승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