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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에나 박혀있는 못, 콤플렉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의 콤플렉스 치유 이야기.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인 보편적인 콤플렉스 18가지의 원인과 그 심리상태를 신학, 문학, 그림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우리 내면에 잠자고 있다 불쑥 튀어오르는 콤플렉스를 이해하고 나면 마음이 다독여진다.
2014.04.08.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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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콤플렉스, 또 하나의 나를 찾아서
1장 “무엇이 성공적인 삶이지?” 나와 세상 : 성공의 피라미드에서 맞닥뜨리는 나 “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다이아나 콤플렉스 : 남자 혹은 전사가 되고 싶은 여자들 “나는 왜 긍정적이지 못할까?” 트롤 콤플렉스 :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불평과 불만 “나는 왜 재미없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시시포스 콤플렉스 : 의미 없는 노동이 우리 삶에 주는 것들 “성공이 이렇게 허무한 거였나” 파우스트 콤플렉스 : 정상에서 맛보는 권태로움 “나를 뛰어넘겠다고? 용서 못해!” 휴브리스-네메시스 콤플렉스 : 오만함이 신의 경지에 이른 독재자들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지는 않겠어”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 : 아버지에게 불복종하는 지적(知的) 반역자들 2장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와 그 : 적이 되기 쉬운 삶의 동반자들 “그가 날 버리면 어떡하지?” 메데이아 콤플렉스 :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는 엄마들 “저 녀석이 언젠가 나를 이길지도 몰라” 크로노스 콤플렉스 : 청출어람이 두려운 초라한 가부장 “엄마는 왜 동생만 예뻐하지?” 카인 콤플렉스 : 생애 최초의 살의(殺意), 질투 “왜 사랑을 해도, 하지 않아도 허전할까?” 돈 주앙 콤플렉스 : 공허함을 잊기 위한 가짜 흥분 “다 알아, 뒤에서 날 비웃는 거” 파에톤 콤플렉스 : 인정 투쟁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흥망성쇠의 드라마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몬테 크리스토 콤플렉스 : 복수를 위해 성공하는 사람들 3장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돼?” 나와 나 : 나를 주저앉히는 삶의 약한 고리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지 몰라” 카산드라 콤플렉스 : 두려운 내일을 두려워하는 마음 “나는 왜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할까” 폴로니어스 콤플렉스 : 대중에 묻어가는 자의 편안함 “내가 사실 별 볼 일 없는 존재면 어쩌지?” 요나 콤플렉스 : 자신의 가능성이 두려운 사람들 “나는 고생해도 싸”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 :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 “내가 최고가 아니라고? 그럴 리 없어!” 노벨상 콤플렉스 : 완벽의 문턱을 넘지 못한 완벽주의자 “잘나가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을까?” 이카로스 콤플렉스 : 몰락을 자초하는 자아도취적 열망 에필로그 | 인간의 발달, 콤플렉스 그리고 치유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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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질리는’ 여자 상사들을 한 번쯤은 만나게 된다. 골드미스이건 직장맘이건, 그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일에 헌신하고, 매사에 똑 부러지며, 실력으로 승부하고 경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 피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들은 경쟁해서 승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승진도 당연히 빠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차다는 것. 관계보다는 철저히 과제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는 ‘좋은 게 좋은 것’이란 개념이 애초에 없다. 그러니 이들 앞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어쭙잖은 핑계를 댔다가는 국물도 못 건진다. 부하직원들이나 동료에게 무관심한 것은 물론, 상사에게도 결코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내가 실력 있어서 일 잘하는데 상사에게 아부할 필요가 있느냐는 태도다. 이처럼 뻣뻣하다 보니 교만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가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 잘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여성이라면 좀 더 부드럽게 대해주면 안 되나? 때때로 존경스럽고 성공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표정으로 목숨 바쳐 일만 하기는 싫다. 도대체 왜 저럴까? 자기가 여자인 게 싫은 걸까, 아니면 남자들 앞에서 여성스럽게 구는 게 싫은 걸까? 남자처럼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찰스 보두앵(Charles Baudouin)은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남성적인 속성을 따르려는 경향을 발견해 다이아나 콤플렉스(Diana Complex)라 명명했다. 이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맥락에서, 여자아이가 선천적으로 남성의 신체적 요소를 부러워하는 심리를 기반으로 한다. 다이아나는 누구인가?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는 여신이다.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와 티탄족 여신 레토가 낳은 쌍둥이 중 한 명으로, 아폴론의 누이다. 키 크고 사랑스러운 여신으로 묘사되는 다이아나는, 그러나 엉뚱하게도 ‘사냥’의 신이다. 그녀는 약식 군복인 튜닉을 입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요정들과 사냥개와 어울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사냥을 한다. 자상한 제우스가 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구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사냥개와 요정들과 함께 사냥하고 싶다고 하며 활과 화살을 구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영원한 순결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여신들과 달리 그녀는 처녀신으로서 결혼을 하지 않았고, 성적으로 남신들로부터 공격받지도 않았다. _다이아나 콤플렉스 : 남자 혹은 전사가 되고 싶은 여자들 전문가들은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일에 속박되는 생활패턴에 조금씩 균열을 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업무시간 외에는 컴퓨터 등 각종 스마트 기기를 멀리하는 것이다. 자기 책상에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지 말고 반드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습관이다. 또한 하루에 할 일의 가짓수를 정해두고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다섯 가지 업무를 하겠다고 했으면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끼어드는 일이 있으면 기존의 리스트에서 하나를 빼라. 일을 통제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던진 일을 모두 완벽히 수행한다는 게 아니다. 중심을 잡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 일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만약 당신의 가족이나 연인, 친구가 무시무시한 일중독자라면 그에게 그만 맞춰주자. 당신은 바쁜 그를 배려해서 그의 스케줄에 맞춰 시간을 조정해주겠지만, 결과적으로 일중독을 강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일중독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 해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일 대신 같이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서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이 좋다. 다만 조급함은 금물. 일중독자에게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일 좀 그만하라’고 화를 내는 것은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치지 않도록 자신만의 할 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안 된다면 과감히 치료를 권하는 것이 좋다. 일중독은 그냥 두고 봐도 될 만큼 사소한 병폐가 아니기 때문이다. _ 시시포스 콤플렉스 : 의미 없는 노동이 우리 삶에 주는 것들 채워지지 않는 보상심리는 현재의 환경을 따분하게 느끼게 한다. 뭘 해봐도 기대한 보상을 받기는 그른 것 같고, 현실을 헤쳐 갈 만한 적절한 대응법을 알지 못하니 지루함은 점점 삶의 질을 낮추는 치명적 요소가 된다. 파우스트 콤플렉스는 부나 지위의 많고 적음,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 패턴이지만, 자아도취적 성향이 강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델라웨어 대학교 심리학과의 마빈 저커맨(Marvin Zuckerman)은 감각을 추구하는 이들은 집단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으니, 리더 중에 파우스트 콤플렉스 유형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는 것이 괜한 선입견은 아닌 듯하다. 또한 성격에 관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회사나 집단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아도취적 성향이 강한 편인데, 이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이루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지루함을 잘 느끼며, 자극적인 감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파우스트 콤플렉스의 증상과 매우 비슷하다. 물론 이런 성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고여 있는 것을 못 견디는 리더들은 변화에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조직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다가는 자칫 알코올, 도박, 외도 등 비윤리적인 자극에 매달리게 될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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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를 통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알고자 하는 욕망만큼 집요한 것이 있을까? 각종 심리검사를 하거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곤 한다. 오죽하면 혈액형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겠는가. 이 책은 당신을 탐구하는 많은 방법 중 하필이면 조금 삐딱한 노선을 택하고 있다. 바로 ‘콤플렉스(complex)’를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나서 이 질문에 대답해주기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하나쯤 박혀 있는 마음의 못 신화, 문학 그림, 그리고 당신이 있는 ‘콤플렉스 심리학’ 하루를 멀쩡히 보내고 나서 홀로 거울 앞에 서면, 문득 내가 낯설다. 웃는 얼굴로 포장해가며 잘 눌러 참았던 두려움, 억울함, 의문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나는 왜 재미없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왜 사랑을 해도, 하지 않아도 허전할까?”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야?” “다 알아, 뒤에서 날 비웃는 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세상 사람들 모두 잘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든지 원망스러울 때도 많다. 세상이 내게만 가혹하게 구는 것 같을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 잠시 솔직해지자. 당신을 괴롭히는 것들이 외부요인뿐인가? 정말 싫은 것은 어쩌면 당신을 욱하게 하는 세상이 아니라, ‘별것 아닌 일에도 욱하는’ 변변치 못한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예전 같았으면 웃어넘기거나 무시했을 일에도 발끈해서 불같이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휘청거릴 때마다 ‘내가 왜 이러지?’ 하고 당황한 적은 없는가? 순간적 감정을 주체 못하고 과잉반응을 보일 때마다 자신이 정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바라는 나와 동떨어진 모습을 볼 때마다 누구나 당황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픈 마음이 들곤 한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면서 비정상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것이 있다.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고 있던, 혹은 알더라도 외면하고 싶은, 혹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곤 하는 자신의 못난 모습, 바로 ‘콤플렉스’다. 〈KB레인보우 인문학〉, TV조선 〈멘탈 콤플렉스〉 화제의 연재! 곽금주 교수의 콤플렉스 치유 이야기 심리학자 융은 “인간의 마음은 많은 콤플렉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즉 콤플렉스란 성격의 구성 요소라는 것. 서울대 심리학과의 곽금주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콤플렉스 18가지를 소개한다. 국민은행 〈KB레인보우 인문학〉, TV조선 〈멘탈 콤플렉스〉에서 콤플렉스의 깊은 내면을 밝혀 호평받은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콤플렉스의 유래와 원인, 내면의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신화 및 문학작품의 인물을 통해 한편의 이야기를 읽듯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는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양육자에게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다른 이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아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이때 생겨나는 것이 파에톤 콤플렉스다.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밖에서 낳은 자식’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처가 과도한 인정욕구로 분출되는 것. 부모의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콤플렉스가 달라지기도 한다. 여자의 경우 어머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메데이아 콤플렉스는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기억으로 자기 자식에게도 똑같이 분노를 표출하는 콤플렉스다. 자신이 당했으니 자기도 자녀를 학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크로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자녀의 가능성을 아버지가 꺾어버리는 이 콤플렉스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들이 호색한 바람둥이라면 부모도 책임을 통감해야 할 듯하다. 돈 주앙 콤플렉스는 아동기 시절에 부모와 잘못된 상호작용을 한 결과 생겨날 수 있다. 그 결과 자아가 손상되고 약해져서, 이를 잊기 위해 가짜 흥분을 만들어 스스로를 자극시키는 것이다. 가짜 흥분이란 물론 여자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다 보면 나조차 부정하고 싶었던, 혹은 잊고 살았던 나의 비뚤어진 욕망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에 가닿게 된다. 그런 점에서 콤플렉스를 탐험하는 것은 나의 이면(裏面)을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자, 그 자체가 나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이다. ‘내 콤플렉스는 이것이다’라고 인식할 때,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우리를 아프게 하는 못이 아니게 된다. 자신의 콤플렉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상처 입기 쉬운 ‘약한 고리’가 다치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써서 보호할 수 있기 때문. 나아가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콤플렉스라 하더라도 눈 크게 뜨고 읽어볼 일이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바로 그 콤플렉스의 지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니. 이처럼 콤플렉스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치유하는 것은 물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