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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I 1. 출생과 가문 2. 조혼 3. 영국으로 갈 준비 4. 종교를 알게 됨 5. 면허, 그렇다면? II 1. 레이찬드바이 2. 남아프리카로 갈 준비 3. 프리토리아로 가는 길 4. 소송 준비 5. 종교심의 발효 6. 인간이 제안하고 신이 처리한다 7. 3파운드의 세금 8. 종교의 비교 연구 III 1. 인도로 돌아옴 2. 국민회의 개회 3. 베나레스에서 4. 다시 남아프리카로 IV 1. 사랑의 노력은 허사인가 2. 아시아에서 온 독재자들 3. 자기반성의 결과 4. 권력과의 대결 5. 《인디언 오피니언》 6. 사티아그라하의 탄생 7. 단식 8. 고칼레를 만나러 9. 정신적 딜레마 10. 본국으로 V 1. 첫 경험 2. 푸나에서 고칼레와 함께 3. 샨티니케탄 4. 3등 승객의 비애 5. 쿰바멜라 6. 아슈람 창설 7. 계약노동제 철폐 8. 롤래트 법안과 나의 딜레마 9. 놀라운 광경 10. 히말라야적 오산 11. 《나바지반》과 《영 인디아》 12. 펀자브에서 13. 암리차르 국민회의 14. 국민회의에 입회함 15. 카디의 탄생 작별 인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Mahatma Gand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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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으로 편재해 있는 진리의 정신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서는 피조물 중 가장 비천한 생물까지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기를 갈구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어떠한 분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 제도의 부당성에 저항하고 공격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을 반대, 공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반대, 공격함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고, 또한 유일하고 동일한 창조주의 자녀들이며, 우리 속에는 신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힘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업신여기는 것은 그 거룩한 능력을 업신여기는 것이요, 따라서 그 사람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전 세계를 해치는 것이 된다. 3등 승객의 비애는 철도 당국의 오만한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승객들 자신의 무례함, 불결한 습관, 이기심, 무지에도 그에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옳지 못함, 불결함, 이기적인 행동을 그들 자신이 종종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모든 일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그 연유를 따지자면, 우리 ‘지식인’들이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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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
간디는 그의 자서전에 ‘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간디는 자기 자신을 진리의 실험대에 올려놓고 몸소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간디 자서전≫은 진리 실험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정열은 진리에 대한 정열이었다. 그는 겸손과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실천하고 실험했다. 중기의 우파니샤드인 ‘문다카 우파니샤드’는 “진리는 언제나 승리한다. 진리가 아닌 것은 그렇지 않다. 신에 이르는 길은 진리로써 포장되어 있다”고 진리의 추구를 강조했다. 간디는 이 진리를 몸소 실험하려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萬人)에게도 가능하다고 언제나 믿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각 응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 파멸로부터의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디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바로 훈련하면 누구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간디는 인도인의 마음에서 공포심을 제거했다. 영국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가난이나 고난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슴속에 불러일으켰다. 공포심의 제거에서 용기와 신념이 생긴다. 1914년경까지 인도는 침체했고, 위축됐고, 비겁했고,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1914년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1915년 1월에 2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인도인에게 새로운 정신적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는 인도인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신념을 주고, 자존심을 주었다. 좌절감과 절망과 무기력에 휩쓸린 분위기를 일소해 버렸다. 그래서 시인 타고르는 전 인도 민중을 대표해 간디에 대해서 ‘마하트마’라는 찬사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