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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크레마클럽 EPUB
eBook 이것도 제 삶입니다
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 EPUB
박채영
오월의봄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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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표지 설명
추천의 말

들어가며

1부 이야기의 시작
이야기의 시작
거식증적인 생각입니다
씹다, 삼키다, 토하다
몸이 커질 것 같은 공포
먹는 마음
이가 빠지는 꿈
어떤 이별
1부를 마치며

2부 나를 키운 여성들
금주
그날, 겨울
상옥
상분
기숙사가 키운 아이
냉장고가 꽉 찬 여자들
용서
2부를 마치며

3부 이런 삶이라도
RE-born
길 위에서
쉘 위 댄스
한국이 싫어서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 찾아왔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요리하는 사람
3부를 마치며

나가며

저자 소개 1

초등학교 졸업 이후 연달은 자퇴로 졸업장은 한 장, 그마저도 잦은 이사 도중 잃어버렸다.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이 한국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질병서사도 이력이 될 수 있을까. 방황도 경력이 될 수 있을까. 잘 아픈 것도 장기라면 장기라고, 사방팔방 부딪히며 뻔뻔하게 살아보고 싶은 30대다. 섭식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2023)의 주인공이며, 2023년 국내 최초로 열린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참여해 섭식장애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나눴다. 앞으로도 섭식장애를 가시화하고 사회화하는 작업에 성심껏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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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3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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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6.4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9.1만자, 약 3.1만 단어, A4 약 57쪽 ?
ISBN13
9791168730908

출판사 리뷰

허기진 여자들,
소화시킬 수 없는 여자들,
그럼에도 살아남은 여자들이 키운 아이


특히 이 책은 섭식장애와 긴밀하게 엮인 어린 시절, 질병과 함께 비틀거리면서도 세계를 확장해온 성장기와 함께 한 부를 통틀어 채영(저자)를 키운 여성들의 삶과 그들과의 관계를 기록하는 데 할애한다. 채영의 상처를 열고 들어가면 거기엔 엄마와 이모들의 상처가, 그들의 상처를 열고 들어가면 또 그들 엄마의 상처가 이어진다.

채영의 엄마 상옥은 과거에 노동운동가였으며, 지금은 사회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학생들이 모이는 대안학교의 교사이자, 1990년대에 ‘이혼녀’로 딸과 단둘이 한국사회를 헤쳐온 인물이다. 정의로운 시민, 현명한 교사인 그는 어려서부터 딸에게 혼자 밤길 다니지 말라고, 공중화장실 가지 말라고, 옷매무새를 잘하라고, 낯선 이들의 접촉을 경계하라고 이르는,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는 불안한 여성이자 엄마이기도 했다.

채영의 할머니이자 상옥의 엄마인 금주는 아마도 성인의 나이가 된 이후의 평생을 토하며 살아온 여성이다. ‘도라지’ 담배를 태우고,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당뇨를 앓는 남편을 진절머리 나는 얼굴로 평생 돌봤다. 남편의 자식들이 어린 자신의 딸들을 추행했다는 것을 훗날 알고도 “나도 몰랐지” 한마디만을 했을 뿐이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노상 소화제를 집에 두고 살았다. 화장실 변기 근처에는 언제나 구토를 하기 위한 칫솔이 놓여 있었다. 환자로 입원해서도 구토를 하려다 식도가 찢어지기도 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인 또 하나의 여성이었다.

채영에겐 그를 키운 이모들이 많았다. 엄마와 피를 나눈 이모도, 우정과 마음을 나눈 이모도 많았다. 그중 그의 둘째 이모는 어린 시절 그의 주양육자이기도 했다. 채영의 엄마가 유산 위기에 있을 때 전국 팔도를 뒤져 치료제를 찾아낸 것도, 분만실 바깥에서 채영 모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병원비를 내준 사람도 채영의 둘째 이모였고, 채영의 출산 후 채영 모녀가 들어가 살게 된 집도 채영의 둘째 이모네였다. 조카인 채영에게 더없는 신뢰를 보낸 그의 이모는 한편 자신의 딸에게는 불안하고 매서운 엄마였고, 오랜 섭식장애를 앓아온 딸의 증상을 외면해온 엄마이기도 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듯 냉장고를 꽉 채우는 또 다른 이모들 속에서, 화장품 냄새와 담배 연기가 뒤섞인 여자들의 공간에서 채영은 자랐다.

채영은 어린 시절 많은 언니들과 함께 자라기도 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튕겨 나온 10대들이 모여 있던 대안학교에 여자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게 된 엄마를 따라 채영 역시 기숙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언니들은 채영의 또 다른 자매가 되어 그를 키웠다.

채영은 이렇게 늘 조금 다른 여자들의 틈에서 자랐다. 조용하고 순종적인 여성을 요청하는 가부장제에, 성적과 권력이 서열이 되는 학교에 들어맞지 않은 여자들, 정상성에서는 언제나 조금씩 비껴 있는 여자들, 그래서 세상에 치이면서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쳐온 여자들이 그를 길렀다. 그를 기른 여자들이 그러했듯 채영도 이 땅에서 살아남은 조금 다른 여성이다. 생계 활동을 해야 하는 싱글맘의 딸로, 폭력적인 학교 공간을 견딜 수 없어 학교를 나온 청소년으로,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으로 현실를 살아내왔다. 고로, 그의 상처는 개인의 것이 아니며 그의 질병 또한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질환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켜켜이 쌓인 이 현실에서의 시간 속에서 발생한 증상이다.

채영과 채영을 낳고 키운 여자들이 아무리 곱씹어도 삼켜 소화시킬 수 없었던 것, 게워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저 음식이었을까. 그들의 허기는 냉장고를 아무리 채우고 폭식을 해도, 어째서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것일까. 왜 섭식장애는 여자들에게서 여자들로 이어지는 것일까. 사랑과 미움, 존경과 답답함이 뒤섞인 이 여자들의 관계와 삶을 읽으며, 우리는 가장 대표적인 성별화된 질환인 섭식장애의 발병에 깔린 사회적, 구조적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또한 몸과 질병은 그 몸이 놓인 세상과 맥락에서 독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렬히 확인하게 된다.

질병과의 관계를 살피며 확장하는 삶의 기록

우울과 불안, 폭식과 구토를 오가는 삶을 두고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게 사는 거냐’고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이것도 삶”이라고 담담히, 힘주어 답한다. “증상과 발맞추어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면서 사는 것도 삶”이라고 말이다. 질병을 가진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그 역시 직장 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어떤 존재를 돌보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은 질병으로만 잠식되지 않는다. 그는 엄마와 수많은 이모와 언니들, 그러니까 깊숙하게 스며든 가부장제 사회를 견디고 헤쳐온 여자들이 키운 아이, 폭력적인 학교 체제를 벗어난 탈학교 청소년, 춤과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동거묘들과 서로를 돌보며 사는 인간이다.

섭식장애는 여전히 그의 일상을 뒤흔들고, 여전히 그는 폭식과 구토로 자주 미끄러지곤 한다. 어느 때는 밀착되었다가 어느 때는 멀어진다. 질병이 삶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괴롭지 않다고,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은 섭식장애라는 질병의 증상과 치료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그 질병과 함께하는 삶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삶도 있다고, 그 역시 누군가에게 폄훼당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고, 질병과 함께하며 다져지고 발현된 또 다른 ‘역량’도 있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질병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느라, 삶을 미래로 유예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질병에 노출된 삶도 미뤄둘 수 없는 삶이지 않느냐고, 무엇이 정상이며 회복해야 할 기준이 무엇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섭식장애가 켜켜이 쌓여온 시간, 관계, 구조, 문화의 교차 속에서 발생한 것처럼, 오랜 기간 그와 함께해온 섭식장애라는 경험은 또한 그에게 다른 힘과 역량, 세계를 발생시켰다. 성별화된 이 질병은 페미니즘으로, 정상성에서 미끄러진 것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소수자성에 대한 관심으로 그를 이끌었다. 치료에만 몰두하는 삶, 다시 말해 질병에만 잠식당하지 않으려 했기에 나의 고통에만 빠지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게 내 몸뿐이었던 삶은, 오랜 기간의 섭식장애를 통해, 몸은 내가 쥐고 흔들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삶이 되었다. 자신의 취약함을 알기에 돌봄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이 하나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섭식장애의 모든 면을 이해할 수는 없다. 또한 섭식장애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정의할 수도 없다. 오히려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질병이란 진단명 혹은 진단코드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결코 동일할 수 없는 개인들의 삶에서 복잡하게 교차하는 경험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 기록에서, 그 삶에 녹아든 사회와 구조의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오늘을 살고, 질병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희망하는 이 이야기가, 숨어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맞닿아,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로 이어지기를 요청한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 누군가의 아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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