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들어가며 회풍(檜風), 회 지역의 노래 1. 고구(羔裘) 2. 소관(素冠) 3. 습유장초(隰有萇楚) 4. 비풍(匪風) 「회풍」을 마치며 정풍(鄭風), 정 지역의 노래 1. 치의(緇衣) 2. 장중자(將仲子) 3. 숙우전(叔于田) 4. 대숙우전(大叔于田) 5. 청인(淸人) 6. 고구(羔裘) 7. 준대로(遵大路) 8. 여왈계명(女曰鷄鳴) 9. 유녀동거(有女同車) 10. 산유부소(山有扶蘇) 11. 탁혜(籜兮) 12. 교동(狡童) 13. 건상(褰裳) 14. 봉(丰) 15. 동문지선(東門之?) 16. 풍우(風雨) 17. 자금(子衿) 18. 양지수(揚之水) 19. 출기동문(出其東門) 20. 야유만초(野有蔓草) 21. 진유(溱洧) 「정풍」을 마치며 더 알아보기·『시경』 해석의 역사 ‘삼가시’(三家詩)의 전승|『모시』의 등장|『모시정의』 ‘소서’|‘모시대서’|「시집전서」 |
우응순 의 다른 상품
김영죽의 다른 상품
|
정 환공은 제후가 된 후에 다시 유왕의 사도(司徒)가 되어 왕실에서 근무합니다. 하지만 유왕과 포사(褒?)의 정치에 위험을 감지하고 봉지를 기내 밖으로 옮기려 하지요. 이때 괵(?)과 회(檜)에서 10개의 읍(邑)을 내놓아 이전 봉지의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다시 ‘정’이라고 합니다. 정 환공이 도성 호경(鎬京)을 떠난 2년 후에 그의 예상대로 견융이 주 유왕을 죽이고 이때 정 환공도 죽습니다(기원전 771). 이렇게 서주(西周)시대는 마감합니다. 제후의 자리는 환공의 아들 무공(武公)이 계승했는데, 그는 회를 정복하고 회수와 유수 사이 지역으로 도읍을 옮깁니다(기원전 769). 소동파는 ‘회시는 모두 정나라가 된 뒤에 지어진 작품으로 「패풍」, 「용풍」이 위나라 노래인 것과 같다’고 했답니다. 물론 주자는 소동파의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고 했지만요. 공영달은 서주시대 이왕(夷王: 9대), 여왕(?王: 10대) 때의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요.
--- p.18-19 회는 작은 제후국입니다. 서주(西周)는 봉건제 시스템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제후국들이 공존했지요. 천자에게 조회하고 평가받는 과정을 통해서 제후 연맹이 유지되었지요. 이런 시대에는 약소국도 주 천자의 권위에 의지해서 보호받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동주(東周), 춘추시대가 되면 천자의 보호막은 사라집니다. 제(齊), 진(晉), 초(楚)가 주변의 약소국들을 침략, 병합하면서 패자가 되었지요. 무력해진 천자는 패자의 지원으로 왕권을 유지하는 처지가 되었고요. 결국 회나라는 정 무공의 무력을 앞세운 팽창 정책으로 병합되고 말지요. --- p.45 ‘무절아수기’에서 ‘아’(我)는 작중 화자인 여인이지요. ‘기’(杞)는 ‘구기자나무 기’인데요. 주로 마을의 경계와 도랑에 심습니다. 지금 이 여인은 마을의 경계에 심어 놓은 구기자나무를 꺾지 말라고 하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꺾을 절’(折) 자가 의미심장하군요. ‘내 마음을 꺾지 마세요’, ‘내 마음을 훔치지 마세요’라고 읽히니까요. 그다음 ‘기감애지’의 ‘사랑할 애’(愛)는 여기서는 ‘아끼다’[吝]입니다. 아까워하는 것이지요.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나무 때문이 아니라고 하네요. 물론 그렇겠죠. --- p.69-70 〈숙우전〉의 내용은 이런 역사 기록과는 다릅니다. 왜일까요? 나중에 반란을 기도했지만 공숙단은 매력 넘치는 인물이었겠지요. 민심을 얻고 이런 노래가 전해질 정도로. 형과의 투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불의한 인물’로 기록이 남았지만요. 우리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당나라의 대학자 공영달은 공숙단은 ‘난을 일으킨 역적’[作亂之賊]이라고 단정합니다. 〈숙우전〉에서 그가 아름답고 어질다고 한 것은 그냥 나라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는 말일 뿐, 실제로 그가 대단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고요. 글쎄요? 저는 이렇게 역사 기록과 시의 내용 사이에 차이가 클 경우, 기록의 사실성을 인정하더라도 시 속에 역사 기록이 누락한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망명한 공숙단은 정나라로 돌아오지도 못했지만 한때는 어머니의 사랑과 나라 사람들의 선망을 독차지했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어쩌면 그는 음흉한 형의 계략에 말려들었고, 역사에 불의한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인물이었다고. 이렇게 시가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 p.81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를 걷고 진수를 걸어서 건너가겠다니, 그 열정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연애에 진심이군요. ‘건널 섭’(涉)은 걸어서 강을 건너가는 겁니다. ‘진’(溱)은 정나라를 흐르는 강 이름이고요. 그런데 다음 구절 ‘자불아사 기무타인’은 예상을 벗어나는군요. ‘자불아사’는 ‘만약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의 뜻입니다. ‘기무타인’, ‘나에게 다른 사람이 없겠냐’는 말이고요. 이 여인도 〈준대로〉의 소매를 붙잡는 여인과는 다릅니다. 그다음 ‘광동지광야저’는 맛깔나게 풀기가 어렵습니다. 주자는 ‘애인을 놀리는 말’이라고 봅니다. ‘교동’, ‘광동’은 애인에 대한 애칭이지요. 지금 이 여인은 애인에게 ‘네가 미쳤구나’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 같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다니, 나에게 집중하지 않다니, 지금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 있다, 정신 차려라, 내 사랑을 너무 믿지 마라, 그러다가 나를 놓칠 것이다…. 이 모든 격한 감정이 ‘광’(狂) 자 한 글자에 담겨 있습니다. --- p.144-145 전한(前漢: 기원전 202~기원후 8) 초기부터 ‘시’에 대한 다양한 판본, 주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해진 ‘시’의 판본은 하나입니다. 바로 『모시』입니다. 그럼 『모시』 이전에 ‘시’에 대한 전승은 없었을까? 당연히 이런 궁금증이 생기지요. 있었습니다. ‘삼가시’(三家詩)???‘제시’(齊詩), ‘노시’(魯詩), ‘한시’(韓詩)???라고 하는데, 적어도 3개 학파의 전승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사기』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한서』 권88 「유림전」(儒林傳)은 전한 시기에 문헌이 복구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진시황의 분서(焚書: 기원전 213)로 대부분의 서책이 사라졌었지요. 그 이후 두 자료를 통해서 전한 시기 학술 수준과 지식인의 계보???가승(家承)과 사승(師承)???를 알 수 있지요. 공자 이후 ‘시’의 계승, 전파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 p.204, 「『시경』 해석의 역사」 중에서 |
|
「회풍」과 「정풍」을 묶어 『시경 강의』 3권으로 내보냅니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가슴이 떨립니다. 「정풍」을 먼저 읽고 「회풍」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정풍」은 화창한 봄날의 사랑으로 가득한 발라드입니다. 꿉꿉한 장마에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지요. 「정풍」에는 망국의 불안, 불우한 지식인의 탄식, 버림받은 여인의 비탄이 없습니다. 오직 젊은 날의 사랑으로 가득하지요. 연인 사이의 다툼, 이별은 상처가 될 만큼 깊지 않습니다. 원망이 아닌 삐짐, 투정이니까요.
‘시’는 여름에 어울립니다. 서당에서도 여름에 『시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나무 그늘에서 부채를 든 두세 명이 소리 내어 낭송하면서 무더위를 보냈다고요. 시냇가 탁족에도 시가 함께했지요. 『시경 강의』 3권이 여러분의 2023년 여름과 어울리길 바랄 뿐입니다. - ‘머리말’ 중에서 ‘음란한 노래’의 대명사 「정풍」을 만나다! - 『시경』 경학사(經學史)를 정리한 「『시경』 해석의 역사」 수록 - ‘모시대서’, 주희의 「시집전서」 원문 및 해설 수록 친절한 강의와 함께 읽는 『시경』 완독 시리즈 세번째 책! 우응순의 『시경 강의 3』에서는 『시경』의 ‘국풍’(國風) 중에서 「회풍」(檜風), 「정풍」(鄭風)을 함께 읽는다. 이 시들은 모두 춘추시대 정나라 지역에서 불렸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회나라는 춘추시대 초기 정나라 무공에게 정복당하여 정나라로 흡수된다). 특히 「정풍」은 『논어』에서 공자가 ‘추방해야 할 음란한 음악’의 대명사로 언급하면서, 『시경』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게 된 부분이다. 공자는 “정성[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정성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기 때문이다”(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_『논어』 「위령공」)라고 「정풍」을 비난하였고, 이런 공자의 말을 받아서 주자는 아래와 같이 논평을 했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악은 모두 음란한 음악이다. 그러나 시를 살펴보면, 위나라 시는 39편 중에 음란한 시가 겨우 4분의 1인데, 정나라 시는 21편 중에 음란한 시가 7분의 5가 넘는다. 더구나 「위풍」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노래인데, 「정풍」은 모두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말로 되어 있다. 위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풍자하고 징계하는 뜻이 많은데 정나라 사람들은 방탕하여 전혀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기색이 없으니, 이는 정나라 음악의 음란함이 위나라보다 심한 것이다._주희, 『시집전』(『시경 강의 3』 195쪽에서 재인용) 이렇게 「정풍」은 『시경 강의 2』에 등장했던 「위풍」과 더불어 ‘음란한 노래’, ‘난세의 노래’라는 것이 전통시대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시경 강의』의 지은이인 우응순은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정풍」의 시들을 해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시를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모시』나 ‘시를 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석하자’[以詩讀詩]는 면에서는 혁명적이었지만, 지나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댄 주자와 달리, 오늘의 시각에서 시가 담고 있는 정서와 표현을 보자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이런 눈으로 볼 때, 「정풍」의 시들은 “화창한 봄날의 사랑으로 가득한 발라드”(「머리말」, 4쪽)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옛 사람들과 통하기 위해서 『모시』나 주희의 해석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것 역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회풍」은 왜 「정풍」 앞에 놓인 것일까? 통상 『시경』 ‘국풍’의 순서는 「주남」, 「소남」, 「패풍」, 「용풍」, 「위(衛)풍」, 「왕풍」, 「정풍」, 「제풍」, 「위(魏)풍」, 「당풍」, 「진(秦)풍」, 「진(陳)풍」, 「회풍」, 「조풍」, 「빈풍」의 순서로 알려져 있다. 이 순서대로라면 『시경 강의 3』에서 「왕풍」과 「정풍」을 다루어야 하지만, 이 책에서는 「회풍」을 「정풍」 앞에 배치하여 한 권으로 구성했다. 회나라는 정나라에 병합된 소국으로 「회풍」과 「정풍」이 같은 지역에서 불렸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멸망한 회나라의 노래는 4편밖에 전해지지 않고, 그나마 망국의 슬픔이 가득하다. 나태한 제후와 무너져 내리는 주나라 중심의 국제질서, 그 속에서 사회제도는 무너지고 백성들은 고통 받는 장면들이 4편의 시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시경』이라는 ‘경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후대의 학자들이 이 고대의 노래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정리하는 글을 실었다. 아울러 『시경』 이해를 위해 꼭 읽어야 하는 문헌인 ‘모시대서’와 주희의 「시집전서」도 원문과 함께 한 줄 한 줄 읽을 수 있도록 수록하고 해설하여, 독자들이 『시경』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