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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05
제1부 눈보라 15 / 잔혹동화를 읽다 16 / 허생의 넋두리 17 / 껌 18 /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19 / 마녀사냥 20 / 페르소나 21 / 떠도는 귀 22 / 토끼의 간 23 / 종이컵 24 자기소개서 25 제2부 게 누구냐? 29 / 대명사들 30 / 어떤 진술 31 / 그때 그 소년 32 / 여전히, 오월 33 / 부푸는 저녁 34 / 서울, 2016년 겨울 35 / 광마우스 36 / 국선생麴先生의 취중진담 37 / 공방孔方의 갑질 38 / 춘향의 비밀 39 제3부 눈먼 자들의 도시 43 / 마감뉴스 44 / PM. 11:00 45 / 놀부보쌈 46 / 동에 번쩍, 홍길동! 47 / 햄버거 48 / 정글의 법칙 49 / 금 간 시간의 화법 50 / 대출됩니다 52 / 비의 문장 53 / 문득 54 제4부 엄마의 시간 57 / 카프카와 악수를 58 / 스팸 메일 59 / 데자뷔 60 / 암전 61 / 소나기 62 컵, 깨어지다 63 / 사랑의 유통기한 64 / 이동식디스크 65 / 링반데룽 67 / 뫼비우스 띠 68 제5부 월식의 종류 71 / 노을의 귀가·2 72 / 거울 73 / 시간의 문 74 / 모래의 여자 75 / 타로점 76 / 글루미 선데이 78 / 개기 일식 79 / 이메일 80 / 이중섭의 방 82 / 거미 83 해설 시적 언어의 우정, 그 미약한 촛불에 대하여 | 김학중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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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히 갑옷 입고 시비를 가리겠노라
그 누가 나를 감히 무장공자(無腸公子 )라 했느냐 얼굴엔 번지르르 금가루 바르고 여우 털을 두른 네 속셈이 무엇이냐 안 보이는 손으로 민심의 목을 치고 백성들 주머니 털어 호의호식 하는 놈들 부드러운 말로 꼬셔 살랑살랑 꼬리 치며 단물만 다 빼먹고 문밖으로 내쫓는, 네 놈들의 시커먼 속에 들어앉은 속임수들 옆으로 걸어가면서 남 탓하지 말지어다 --- 「게 누구냐」 그들과 저들 사이 내 자리는 따로 없다 부여의 사출도(四出道)인가, 개돼지로 불리면서 때 되면 밥 먹여주니 웅크리고 입 다물라 떠도는 유언비어 속 현행범이 되었다가 천하디천한 우리는 말 한 마리 값도 안 되고 그녀가 읽어가는 수첩 속 문장에선 우리는 또 저것들과 이것들로 흥정되고 이름을 잃은 우리는 대명사로 불린다 --- 「대명사들」 너희들의 이름은 고려 때부터 화려했지 주색 짙은 녀석들은 늘 그를 불렀지 모임마다 잎새주로 주가를 올렸지 수많은 주주들의 환심을 등에 업고 불타는 금요일엔 달리고 달리자 이 밤의 끝을 잡고 지화자 좋은데이! 술상을 두드리며 오늘도 처음처럼! 청하한 표정 속에 은밀한 유혹의 말, 참이슬 내릴 때까지 늘어지던 넋두리 술독에 빠진 길들이 내 발목을 붙드네 --- 「국선생(麴先生)의 취중진담」 바다는 오늘 밤도 온몸을 뒤척인다 닮아진 운동화 뒤축을 만질 때마다 쓰다만 공책 한 권을 넘겨 볼 때마다 먼지만 쌓여 있는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책상 옆에 홀로 놓인 책가방을 볼 때마다 흘러 간 유행가처럼 잊혀질까 두려운 이름, 그 이름 부르며 뜬 눈으로 지새던 밤, 부끄러운 세상에 갇힌 그 붉은 울음을 가만히 끌어안으며 팽묵항을 적시는 비 --- 「비의 문장」 신인가수 춘향이 변사장에게 불려가네 암행어사 이도령을 기다리다 다 늙겠네 턱 깎고 코 세우고 사랑가를 열창하네 단막극에 주연이 된 신인배우 추월이 봐라 휘모리장단에 맞춰서 덩실덩실 춤을 추네 거품 많은 말들로 채워진 맥주잔을 밤새워 기울이며 팔자 한번 고쳐보자 온다던 이몽룡도 다른 여자 꿰찼겠지 감춰진 엑스파일만 뒷골목을 돌고 도네 옥중에 갇힌 날들이 어둠 속에 묻히네 --- 「춘향의 비밀」 부모님 잔소리에 집 나온 지 어언 십 년 세 평 남짓 고시촌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오늘도 책상 위에 무거운 질문만 쌓여 수없이 읽어 봤을 문제들과 지문들 다섯 개의 보기 중에 정답이 있다던가 그 속에 틀어박힌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변씨 집 찾아가는 어둡고 긴 골목길에 갈피를 잡지 못한 별들만 총총하다 마흔의 고갯길에서 정답 찾아 떠도는 길 --- 「허생의 넋두리」 빚더미에 눌려서 납작해진 남자와 여자 바람의 목소리가 웅성대는 겨울 저녁, 얼어붙은 길목에 앉아 붕어빵을 굽고 있다 납작해진 시간 속에서 익어가는 한숨 소리 여자의 얼굴이 바삭하게 구워진다 그 까만 심장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온 길, 비좁은 골목으로 차곡차곡 밤은 쌓여 발목이 푹푹 빠지고 휘청거리는 남자와 여자 싸늘한 지붕 아래서 밤새 눈을 맞고 있다 --- 「마감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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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겨울을 끌어안고 보내지 못한 날들 그곳에서 들려 오는 깊은 소리를 받아쓴다 여전히, 거기 남아있는 뿌리들의 뒤척임 서평 우리는 ‘대명사’의 호명이 여는 부름에 이끌린다. 이때 주체는 파편화된 주체가 아닌 생의 추위로 인한 얼어붙음을 통해 순간일지라도 하나의 주체로 나타난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한 눈발이 퍼부은 날”에 “얼음이 되었다가 입 안에 머금은 채 울먹울먹 삼킨 말들 가루가 된 시간들을 탈탈 털어 마”시는 주체가 되어 “당신의 계절”(「눈보라」)이 여전히 나와 같은 추위 속에 있는 시간임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 순간의 주체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며 동시에 사라짐을 뒤로 하고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현현 속에서 당신의 지평을 주체가 함께 살아내는 계절로 불러온다. 이때에 호명되는 주체의 이름들은 그런 점에서 타자들과 교차하고 있다. 주체와 타자의 교차는 전통적 시간과 지금 여기의 시간의 언어를 틈입시키며 교차시킨다. 이송희의 이러한 이중적인 교차가 바로 이송희의 시설시조가 도달한 언어적 지평이다. - 김학중(시인) 해설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