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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Chapter 1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삶에 대하여 1.1 자기 자신이 먼저다 - 몽테뉴 1.2 고독이라는 ‘모닥불’과 살아가라 - 쇼펜하우어 1.3 오직 자기 자신을 신뢰할 뿐 - 랄프 왈도 에머슨 Chapter 2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에 대하여 2.1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 - 카뮈 2.2 오늘 하루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의미 - 빅터 프랭클 2.3 진정한 자유를 위한 여정 - 헨리 데이비드 소로 Chapter 3 물 흘러가듯 사는 삶에 대하여 3.1 인생은 잘 놀다 가는 것 - 장자 3.2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삶 - 노자 3.3 지금 당장 마음의 평온을 얻는 방법 - 에픽테토스 Chapter 4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삶에 대하여 4.1 죽음을 직시하고 삶을 가꾼다 - 세네카 4.2 나는 나의 선택이다 - 사르트르 4.3 그저 나 자신이 되어라 - 니체 4.4 혼자가 되어도 괜찮아질 수 있는 원리 - 아들러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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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스스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철학자 몽테뉴는 “나라는 존재를 아끼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건 성스럽고 숭고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주변에 사람이 많더라도, 갑자기 혼자가 되더라도 상관없이 우리는 나를 향해서 숭고한 일을 행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모닥불’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닥불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서 불을 쬔다. 몸을 따듯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모닥불에 지나치게 다가가다가 심하게 데인 뒤, 급히 물러나서는 추위 속에서 모닥불이 위험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위대해 보이는 사람들과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생명과학에서는 개인 간 유전자 차이는 0.3%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즉 다른 사람과 나는 99.7%가 똑같고, 0.3%만 다르다. 그래서 내가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 역시 위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반드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자유를 얻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소유하려 하기에 자유를 더 잃게 되는 것도 있다. 소로는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고 이를 설명 한다. 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항상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 것일까? 때로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대는 제물로 바쳐지는 소를 본 적이 있소? 오랜 기간 맛있는 여물을 먹이고, 비단으로 몸을 감싸놓은 그 소 말이요. 하지만 결국 제물로 바쳐지고 말지요. 이때 소가 발버둥 치고 본인이 뛰놀던 들판을 생각하면 무슨 소용이겠소. 마찬가지로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어서 돌아가고,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자유를 속박당하느니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놀고 싶으니 그저 나를 내버려 두시오.” 우리는 종종 문제가 생기면 내 인생 자체가 망가진 건 아닌지 생각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은 그저 스쳐 지나갈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내가 지금 지닌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상관 없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사건일 뿐이다. 세네카는 더 나은 사람이란 우울한 생각을 극복하는 법, 삶에 큰 시련이 왔을 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법, 좋은 배우자나 부모, 그리고 훌륭한 친구가 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세네카의 의견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삶의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에 있어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닫힌 방에 거울이 없다는 의미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내가 나를 만질 수 있어도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곳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라고는 닫힌 방에 함께 있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뿐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 니체는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어보는 사람에게 삶에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에게 건네야 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늘 나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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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로움은 안녕하신가요?’
연결된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우리들 우리는 오늘날 가장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서는 직장 동료들과 떨어질 새가 없이 함께 일하고,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대중교통 속에서 겨우 몸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서도 전화 한 통이면 어디서든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SNS에서는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시시각각 정보가 올라온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 속에서 지내며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만원 전철에서 이름도 모르는 타인과 부대끼는 순간에도,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 어플을 누르는 순간에도 외로움은 우리의 곁에서 아른거리며 마음을 괴롭힌다. 대체 이 모순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삶의 힘든 순간을 건너온 열세 명의 철학자를 만나다! 우리는 이처럼 연결된 삶 속에서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이란 결국 ‘의존’에서 비롯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느라 자기의 삶과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행위들이 도리어 나를 더 옥죄어 온다. 바로 이러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서 고민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고뇌를 안고 삶과 마주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물 흘러가듯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삶을 살기 위하여 고민해 왔다. 그렇게 열세 명의 철학자들이 마주한 ‘홀로서기’의 비결을 이 책에 담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홀로서기 철학자들의 삶은 과연 평온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30대에 아버지와 남동생, 평생의 친구와 첫 아이를 잃어야 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17세의 나이에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와는 평생을 좋지 않은 관계로 지내야 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8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며 결핵을 앓은 아내와도 이별해야 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설인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3년을 살아남아야 했다. 이처럼 철학자들의 삶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의 위기 속에서 타인이 아닌 자신과 마주했고, 깊은 고독 속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서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부디 독자들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세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저마다의 인생에서 우뚝 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