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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상품설명

목차

교역의 신학
1. 문제의 중요성
2. 교역의 신학의 정립
3. 교역 구조의 정립

목회적 교육 과정
4. 하나님 세계의 문화 창달
5. 하나님의 집을 돌봄
6. 하나님의 말씀 가르침
7. 하나님의 사람 훈련

교역의 지도력 개발
8. 인서의 발달
9. 신앙의 발달
10. 도덕의 발달
11. 습성의 발달
12. 직업의 발달
13. 영서의 발달
14. 지도력의 발달

교역의 상황적 인간
15. 환경적 인간

저자 소개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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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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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형태
서울신학대학,총회신학교 졸업, 샌프란시스코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전공, 피츠버그대학교 종교교육학 전공,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학자, 연세대학교 교목 겸 신과대학 조교수, 장로회신학대학 교직과 교수,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 샌프란시스코신학교 목회학 박사원 협동교수, 현재 연동교회 원로목사, 목회교육연구원 이사장, 종교교육한국협의회 회장

저서 : 『기독교교육의 기초』『정의, 평화, 일치를 향한 교회』『연동교회 90년사』『기독교육의 학습 이론』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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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7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2만자, 약 3.9만 단어, A4 약 76쪽 ?
KC인증

책 속으로

목회적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전적 삶이다. 이것은 규형의 삶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언행이 불일치한 사람을 사기꾼이라 하며, 정신적으로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미친 자라 하는데, 종교적으로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은 사이비라 칭한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공동선 사이에 균형을 바르게 잡지 못하는 시민, 공과 사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공직자, 내면적 신앙과 외면적 행동 사이에 균형이 잡히지 않고 있는 신도, 그리고 보편적 신앙(복음)과 특수한 상황(문화) 사이에 불균형을 이루고 잇는 목회자 등은 모두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가 신학 교육을 통해 얻은 신념과 역할이 목회 현장에서 등장하는 교인들의 기복 신앙과 목회자에 대한 역할 기대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목회자의 고민과 압박감은 영성의 문제와 깊이 관련 되어 있다. 이것은 목회자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주관적인 소명 의식과 객관적인 직업적 타성 사이의 갈등인데, 근본적으로 교회(종교)와 국가(정치) 사이의 이념적 충돌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개인의 존엄성, 사회의 민주화, 민족의 평화적 토일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교회(교단)과 국가(정부)가 각기 다른 견해를 주장할 때 발생하는 충돌 같은 것이다.

---p.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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