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_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책을 읽기 전에_ 위험한 네 가지 차별어1장 아예 쓰지 말거나 당장 바꿔야 할 노골적 차별어2장 구별과 차별을 구분해야 할 비대칭 차별어3장 무의식을 지배하는 관습적 차별어4장 의도와 맥락으로 구분해야 할 다의적 차별어맺음말_ 차별어 없는 세상, 차별받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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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어인지조차 모르고 쓰는 차별어부터은근히 차별을 부추기는 생활 속 차별어까지우리가 경계해야 할 네 가지 유형의 차별어 240여 개와 그 대안어 제시저자는 차별어를 “사회적 약자 또는 특정 대상을 직간접으로 부정하며 무시하고 경멸하거나 공격하는 낱말, 구, 문장 등의 모든 언어 표현”이라 정의한다. 그중에서 어휘를 중심으로, ‘이런 평범한 말에도 누가 상처를 받는다고?’ 싶은 차별어부터 ‘정말로 이런 못된 말까지 만들어 쓴다고?’ 싶은 차별어까지 두루두루 실려 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사회 저변에 뿌리내려 우리 감각을 마비시키고 차별어가 차별하는 대상을 비판 없이 차별하도록 부추기는 차별어들이다.1장에는 노골적 차별어들이 실려 있다. ‘노골적 차별어’란 말하는 사람이 분명한 차별 의도를 가지고 말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 누구나 차별어로 인식하는 말이다. 나이가 많다고, 젊다고, 어리다고 업신여기는 ‘늙은것, 젊은것, 어린것’,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개독교, 개슬람, 땡중, 점쟁이’가 그렇다. 특정 직업을 하찮게 여기며 무시하는 ‘노가다, 잡상인, 철밥통’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그 같은 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을 욕할 때도 쓰이는 ‘미친놈, 벙어리, 애자, 절름발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2장에서는 비대칭 차별어들을 다룬다. 그 자체로는 차별 의도가 담겨 있지 않지만 다른 어휘와 관계를 지으면 차별적인 의미가 드러나는 말들을 ‘비대칭 차별어’라고 한다. ‘남경, 남교사, 남배우, 남의사’ 같은 대칭어가 따로 없는 ‘여경, 여교사, 여배우, 여의사’가 이에 해당한다. 꼭 여성에게만 직업명에 불필요하게 성별을 드러내는 접두사 ‘여-’를 붙여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여성으로 먼저 보게 만든다. 여성보다 남성을 앞세우는 ‘신랑 신부, 아들딸, 부모’ 같은 말들도 비대칭 차별어이다. ‘친할 친(親)’을 쓰는 ‘친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바깥, 남 외(外)’를 써서 거리감을 두게 만드는 ‘외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전혀 균형적이지 않다. ‘댁’으로 존칭하는 ‘시댁’과 달리 ‘가’로 존칭하지 않는 ‘처가’도 다분히 차별적이다.3장 ‘관습적 차별어’로는 ‘미망인’,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정상인’, ‘선택 장애’ 등이 실려 있다.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인 ‘미망인’이 정말 ‘과부’를 높여 부르는 말일까? 남편은 아내의 동생을 ‘처남, 처제’라고 하대하며, 아내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고 존대하는 것이 어째서 자연스러울까? ‘장애인’의 반대말은 과연 ‘정상인’일까? 좀처럼 선택을 하기 어려울 때 “나 선택 장애인가 봐”라고 하필 ‘장애’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인을, 아내의 동생을, 장애인을 차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말들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은 예로부터 사회적 관습에 따라 습관적으로 써 왔기 때문이다.4장에서 다루는 ‘다의적 차별어’는 비차별적 의미와 차별적 의미가 함께 있는 다의어들이다. 차별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말하는 맥락에 차별의 뜻이 담기면 차별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흑진주’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여성들을 수식하는 별칭으로 많이 쓰인다. 찬사를 보내려는 마음뿐일지라도, 이 같은 맥락에서는 불필요하게 ‘흑’으로 피부색부터 강조하고 ‘진주’로 여성임을 부각한다. 그들의 재능, 성과, 업적은 피부색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가려지게 만든다. ‘외눈’도 편향적인 시각, 왜곡된 시선을 비유하는 맥락에서는 한 눈을 잃은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이나 한가지다. 두 눈 아닌 한 눈만 가지고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게이’나 ‘레즈비언’처럼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말들도 객관적으로 그들을 가리킬 때는 차별어가 아니다. 하지만 “어머, 저 사람이 게이(또는 레즈비언)래!”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조롱하는 듯 가리키면 차별어이다. 상대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여성스러운 남성에게 게이 같다고 하거나, 남성스러운 여성에게 레즈 같다고 하는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다.차별어 없는 세상, 차별받지 않을 권리오해와 편견으로 차별하고 혐오하며 배제하는 대신이해와 공감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함께할 시간‘라도’와 ‘개쌍도’, ‘전라디언’과 ‘경상디언’, ‘여혐’과 ‘남혐’, ‘김치녀’·‘된장녀’와 ‘개저씨’·‘냄져’ 등 서로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차별어들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있다. 대개는 오해와 편견 속에서 하나의 말이 먼저 만들어지면 그에 저항해 다른 말들이 또 생겨나는 식이다. 차별어 양산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그렇게 차별받고 싶다면 차별어를 쓰세요!”라고 역설한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나도 언제든 차별어 대상이 되어 차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어는 당연히 의도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재미로, 습관으로, 유행하는 말이라 던진 차별어도 남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차별어 대신 어떤 말을 대안어로 쓸 수 있을까? ‘개독교, 개슬람, 라도, 개쌍도, 전라디언, 경상디언’ 등 원래 형태를 왜곡한 비하어는 ‘기독교, 전라도, 경상도, 전라도민, 경상도민’ 등으로 기존 말을 쓰면 된다. 남성 대칭어 없이 ‘여경, 여교사, 여배우, 여의사’ 등 불필요하게 성별을 밝히는 직업명들은 ‘경찰, 교사, 배우, 의사’ 등으로 충분하다. ‘신랑 신부, 아들딸, 부모’ 등은 그 순서를 바꿔도 어느 한쪽 성별을 앞세우기는 마찬가지이므로 ‘신혼부부, 자식들, 양친·어버이’ 등 맥락상 적절한 대안어로 바꾼다. 부계 혈통에 유리한 ‘친가/외가, 친할머니·친할아버지/외할머니·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본가/어머니의 본가’, 똑같이 ‘할머니·할아버지’ 혹은 ‘거주 지역명+할머니·할아버지’로 부르면 좋다. ‘미망인’은 ‘고 ○○○ 님의 부인’,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는 ‘○○ 씨’, ‘정상인’은 ‘비장애인’, ‘선택 장애’는 ‘선택하기 어려움, 선택 어지럼증’으로 고쳐 쓴다. 신조어를 비롯해 대안어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차별어들은 대안어를 공부하거나 적절하게 중립적, 객관적으로 풀어서 표현해 준다.물론 차별어를 없앤다고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가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차별어가 문제의식 없이 쓰이는 한 차별은 분명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들부터 누군가를 차별하며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오해와 편견 대신 이해와 공감으로 상대를 조금만 배려해 말하면 모두가 존중받으며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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