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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아마존 몰리 매듭짓기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관광객 문제와 그 대책 재시작 버튼 과학상자 사건의 진상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 뮤즈와의 조우 전쟁은 끝났어요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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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동결건조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승객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리란 티코의 가설에는 분명히 잠재력이 있었다. 회사에도 승객들에게도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서 아이스크림의 행방을 결정할 잠재력이.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자모카는 바닐라향을 정밀하게 구별할 수 있다. 전자기 폭풍 속에서도 자모카의 후각 센서는 고장 난 적이 없다. 스칼렛은 자모카와 다른 모델의 센서를 쓰고, 캔디스는 센서를 안 달고 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다른 음식으로 착각했으리란 해답을 밀어붙이기 위해선 먼저 이 모든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 p.48 미칠 지경이 돼 가지고는, 수소문하고 매일같이 연락 넣고, 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여자를 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뭡니까? 학계에서도, 뭐 기업체에 아는 친구 선배 후배들한테 물어봐도, 도대체가 단서라고는 없었습니다. 어디 연구실이든 회사든 소속이 되어 있으면 한 명 정도는 알아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정말 이상하고 이상해서 견디지를 못하겠더군요. --- p.85 자신들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의 범위를 깨달은 순간, 한때 본사 소속의 군사생명공학자였던 이들은 지금껏 조용히 꿈꿔 오기만 했던 일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본사가 아닌 자신들의 이름을 자랑스레 내걸었고, 그런 다음에는 전술적 효율성이라는 속박을 말끔히 벗어던진 온갖 해괴한 생물병기를 마구잡이로 디자인해댔으며, 생산 라인에서 뿜어져 나온 따끈따끈한 흉물들은 최전방으로 실어 보내는 대신 무절제하게 주변에 풀어놓았다. 곧 지금껏 존재한 적 없는 생태계가 과거의 전선 곳곳에 곰팡이처럼 무럭무럭 피어났다. 그때까지도 버려진 채 허망하게 전선 주위를 떠돌던 병사들은 그런 지역을 ‘정원’이라고 불렀다. --- p.114 팔레르모 소령과 케슬러 중위가 탑승한 신형 유인우주선 ‘BMAX’가 다섯 번째로 추락하기 시작할 때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혔음을 비로소 눈치챘다. 상식선에서 쉽게 다다를 만한 결론은 아니었다. 똑같은 위기 상황이 네 번 되풀이되는 동안만 해도 둘은 이것이 악몽이나 환각, 혹은 기묘한 형태의 주마등 같은 것이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 p.183 “초등학교에도 있을 줄이야. 하긴, 그맘때라도 필요한 애들은 있겠지.” “네, 네? 뭐가 필요한데요?” “이거 말이야. 신기동력. 구세주 기계.” 무슨 기계라고? 농담하는 건가 싶었는데, 책상에 놓인공작물을 가리키는 수빈 선배의 얼굴에선 농담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 앞에서 나는 더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기는커녕 이제는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내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을 읽었는지 선배는, 도로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직전에, 아주 짧게 덧붙였다. “방과 후에 시간 되지?” --- p.225 15년 전 참사의 원인은 석촌호수 일대의 기존 놀이공원을 최고 성능의 가상현실 테마파크로 업그레이드하겠단 거대 기업의 과욕이었다. 원하는 성능을 실현하려면 멀리 떨어진 위성이 아닌 지상에서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고, 기업은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어겨가면서까지 놀이공원 바로 옆의 초고층 탑 전체를 사이버스페이스 연산장치로 개조했다. 그리하여 대망의 개장 당일, 역대 최다 입장객이 기다리는 가운데 ‘탑’은 당당히 가동을 시작했고…. 다음 순간 파괴적인 전산 돌풍의 형태로 폭발해 놀이공원 전체를 먹어치웠다. 예상 이상의 인원수를 처리하려던 시스템이 탑의 부피 이상으로 폭주한 결과였다. --- p.260 박사의 지적은 장난스럽지만 정확하다. 니알루켐바에 과학자들이 모이는 이유는 결코 침팬지를 연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침팬지는 거울이다. 인간은 침팬지들의 전쟁으로부터 스스로의 피투성이 역사를 읽는다. 침팬지들의 폭력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아내고 그 해결책을 통찰하려 한다. 컴퓨터 모델링으로 무리 사이의 갈등이 진화적으로 최적화된 선택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진화생물학자도, 이곳 침팬지들의 표정과 몸짓 데이터를 수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동물행동학자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침팬지로부터 인간을 추출해낸다. 생화학자인 나의 작업 또한 동일한 맥락 위에 있다. 죽은 아기 침팬지의 몸속에 있던 분자들이 나의 체내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인간의 감정만이 고유하고도 신성한 방식으로 동작하리라는 환상은 생화학의 불길한 가마솥 속으로 녹아 사라진 지 오래다. --- p.340 |
2018년, 2020년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2023년 SF어워드 장편소설 우수상 과학적 엄밀성과 장르적 탁월함으로 무장한 작가 이산화가 선보이는 열 가지 다른 가능성의 세계! SF 어워드 장편 우수상 수상, 중단편 우수상 2회 수상… 발표하는 소설마다 SF 독자들의 지대한 주목을 받는 작가, 이산화의 소설집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가 출간되었다.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에서 작가는 물질적 환경이 전혀 다른 현실에 대한 사고를 꾸준히 밀고 나가는 동시에, 다종다양한 장르적 센스를 이야기 속에 결합한다. 우주선 속 사라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생태계의 법칙이 전혀 다른 정원에 갇힌 병사, 기이한 믿음을 가진 과학자와의 인터뷰, 외계인이 방문하는 관광지, 정글 속 침팬지를 연구하는 연구 집단, 예언적인 만화를 잡지에 꾸준히 실어온 만화가, 매듭 속에 감춰진 어두운 진실, 미스터리한 과학상자와 아이들의 소원, 특정한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우주선, 사이버펑크 시대의 폐쇄된 놀이공원…. 기대를 뛰어넘는 열 가지의 단편소설이 찾아온다. 열 가지의 서로 다른 가능성의 테마파크로 초대합니다!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속에 실린 소설들은 낯선 사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곁들여졌다. 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 소설로는「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를 꼽을 수 있다. 어느 정글에 고립된 사이보그 병사들은, 정글 속 생물들이 상식적으로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매커니즘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사들은 이 정글의 생태계가 누군가의 실험에 인공적으로 주조되었음을 깨닫는데…. 이 소설은 인생의 목적성과 그 상실에 관해 생태계 환경과 연결 지음으로 SF 소설 특유의 경이를 선보인다.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 역시 낯선 환경으로의 모험을 중심 삼는다. 사이버펑크 세계관 속 한국, 유명 테마파크가 사이버 스페이스 오류로 인해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이 되어 폐쇄되었다. 헌데 테마파크 중심부에 위치한 ‘성’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물이 있다는 소문으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그 소문을 이루기 위해 놀이공원에 들어서지만… 온갖 놀이기구들이 괴물처럼 변해 공격해오는데…. 이 소설은 ‘영웅의 여정’이라 불리는 서사 구조를 모태 삼는다. 물질적 환경이 상식을 배반한 세계로의 여정이 영웅적 여정의 구조와 결합하면서, 독자들은 사이버펑크 세계관 속에서 설화적 모험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표제작인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역시 낯선 환경이 대한 다중의 관점을 제공한다. 우주로 향하다가 전자기 폭풍의 영향으로 고꾸라져 되돌아온 우주선, 탑승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 적재되어 있다고 공지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없다.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기업은 이에 중대함을 느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실려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된 걸까? 전자기 폭풍의 영향 때문에 무언의 일이 벌어진 걸까?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줄거리를 이끈다. 특히 이 소설은 서로 다른 관점에 서 있는 사람들(종군 기자, 사이보그 솔저, 기업 관계자, 과학자…)의 개인사까지 담아내는 탄탄한 군상극이며, 미래의 한 시점을 배경을 두고 벌어지는 SF 추리극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소설을 한 가지씩 읽어내려가면서, 마치 전에 즐겨보지 못한 놀이공원 속으로 초대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열 가지의 서로 다른 가능성의 테마파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다종다양한 장르적 센스와 유머, 풍자의 기막힌 조화! 이산화 작가는 과학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장르적 사사를 펼쳐내거나, 혹은 풍자를 곁들이는데 탁월함을 발휘한다. 이를테면「아마존 몰리」에서는 한 과학자의 폭력적 행동을 촉발시킨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호기심과 긴장을 증폭하는데, 결말에 이르러 남성중심적 질서에 일격을 가하는 풍자를 선사한다.「과학상자 사건의 진상」과 같은 청소년기에만 겪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회의와 중대한 상실에 관한 이야기, 타임리프 서사로 출발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위기에 대한 통렬한 경고로 마무리되는「재시작 버튼」, 고전 잡지 속에 연재된 만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에 뒤얽힌 대담한 반전을 준비한「뮤즈와의 조우」등 다종다양한 장르적 센스가 곁들여진 소설이 독자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