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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은교』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에서 시인 이적요가 꿈꾸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하는 불가사의한 이야기.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랑, 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4.05.02. 소설/시 PD

책소개

목차

작가의 얼굴
혼자 사니 참 좋아
둘이 사니 더 좋아
셋이 사니 진짜 좋아
에필로그

해설_유목민의 사랑법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외등』은 그가 글쓰기를 떠나기 전의 문학세계와 그 후의 문학성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해방 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같이 걸어온 주인공 서영우와 민혜주, 노상규 이 세 인물들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피빛 사랑을 그려내면서 해방 후 현대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러운 책상』은 특이하게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겪었을 젊은 날의 고뇌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처럼 평가받는다. "새벽이다. 무엇이 그리운지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지독하게 그리워서 나날이 흐릿하게 흘러가던, 그런 날의 어느 새벽이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작가 박범신은 이 작품으로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2003년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박범신은 그의 문학인생 못지않게 녹록치 않았던 남자인생 60년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외의 작품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빈 방』 『흰수레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나마스테』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5개월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라는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 소설은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봉(6440m)에서 조난당했다가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최강식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또한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인 은교에서는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박범신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4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46g | 128*188*20mm
ISBN13
9788957078013

책 속으로

2학년 소설 수업에서 발표한 그녀의 소설은 아주 특별했다. 제목은 ‘우물’이었다. 합평 수업에선 여러 악평이 나왔다. “이게 소설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학생은 지적했다. 반은 옳고 반은 틀린 지적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그녀만 쓸 수 있는 소설로서, 몽환의 덩어리였다. 보편성에 길들여진 시선으로 보면 일종의 암호 책 같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암호 책이면 왜 안 된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우물’을 읽은 모든 독자들이 어떤 불안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동료들의 질문에 오로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작가가 되고 싶니?” 내가 물었고 그녀는 명쾌히 대답했다. “아뇨. 그냥, 시집이나 가고 싶어요!” 웃어야 할 대답인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몸짓’으로부터 빠져나온 ㄱ이, 구체성을 획득하며 무한대로 확장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재직하고 있던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내가 혼자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 벌써 2년여 전이다. 가난한 밥상, 쓸쓸한 배회가 이곳에서 내가 사는 법이다. 그런데 쓸쓸했던 호숫가 나의 외딴집이 돌연 그 무언가로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시멘트 데드마스크’ 때문일 게다. 저 홀로 가득 차고 저 홀로 따뜻이 비어 있는 여기, 호숫가 나의 집.
이야기란 그렇다. 존재의 비밀스럽고 고유한 홀림 속으로 킬러처럼 소리 없이 걸어 들어가기.

‘섹스’가 아니라, ‘덩어리’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나-그는 때로 ‘덩어리’가 된다. 나-그 사이의 정적, 나-그의 몸뚱어리 속 가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자는데 암묵적인 동의를 전제한 ‘덩어리 되기’였다고 생각한다. 소유하지 않고 덩어리를 이루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덩어리로 인한 어떤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다. 피차 생의 가시를 촘촘히 내장하고 있었으므로.

ㄷ이 들어오기까지, 내가 ㄴ과 단둘이 지낸 것은 한 달 남짓이다.
그 사이 그와 내가 ‘멍청한 자유’로 맺어진 건 사실이지만, 한 침대에서 잠든 적은 없다. 덩어리에서 풀려나면 그는 아래층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좋은 꿈꿀 거예요.” 그는 속삭인다. “좋은 꿈 꾸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물처럼 나는 누워 있다. 그가 이불을 끌어당겨 내 알몸을 꼼꼼히 덮어준다.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가만히 앉았다가 떠나는 게 다음 순서다.
그가 언제나 섹스의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었으므로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잠들면 된다. 그는 벗어놓았던 자신의 옷가지들을 주워 가슴에 포개어 안은 채 문을 열고 나간다. 눈을 감고도 나는 그가 층계를 내려가는 걸 볼 수 있다. 층계는 어스레하다. 그는 거의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가 쓰는 아래층과 내가 쓰는 이층 사이엔 열아홉 개의 계단이 있다. 그는 발소리를 거의 내지 않지만 하나, 둘, 셋 하고 나는 입 속으로 그의 발걸음을 센다. 열아홉 번째에서 비로소 쿵 하고 거실마루를 딛는 발소리가 난다. “좋은 꿈 꿀 거예요.” 그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그 순간 다시 들린다. 눈물이 핑 돌 때도 더러 있다. 따라 내려가고 싶다. 이런 정적 속에서 가속적으로 늙으며 살았는데 왜 쌓인 욕망의 더께가 없겠는가. 그러나 바로 그럴 때, 더블백이 떠오른다. 매듭이 잘 맺어져 언제나 그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그 더블백.

덩어리질 때, 나는 가끔 ㄴ을 투명 인간처럼 느낀다.
가령 남자1과의 ‘섹스’는 늘 진군의 나팔 소리를 따른다. 남자1은 무찔러오고 나는 결정적인 상처를 피하려고 최대한 나의 감각 기관을 오그린다. 그런데 ㄴ과의 ‘덩어리 되기’는 향기처럼 스민다. 나가면 내가 나간 것만큼 부드럽게 구부러지고, 솟으면 내가 솟은 것만큼 가볍게 그는 상승한다. 세심한 배려 때문인지 감각의 유연한 조절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때쯤 당신의 눈가가 젖어들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수는 있었어요. 내 가슴 속에도 눈보라가 막 휘날리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혀로 당신의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었어요.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그 순간 그녀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신 위에 엎드린 내 날개를 떨리는 손으로 가볍게 만지다 말고, 그녀가 당신보다 눈물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들끼리만…너무해요….”
그녀의 말이 단순히 우리에게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을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해봐요. “자기들끼리만…너무해요….” “자기들끼리만…너무해요…” “자기들끼리만…너무해요…” 위의 하나는 ㄷ이, 다른 하나는 당신이,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주세요. 우물을 파고 있을 때, 트럭들이 구소소 낮은 지붕들을 무너뜨릴세라 질주하는 걸 내려다볼 때, 전문학교 뒷담을 따라 도열한 히말라야시다의 그늘이 내게로 진군해온다고 느낄 때, 나는 언제나 속으로 중얼거렸답니다. “자기들끼리만…너무해요….” 그렇게요.

---본문

출판사 리뷰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2014년 신작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

『은교』에서 이루지 못한 새로운 사랑 이야기!

한 남자와 두 여자,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은교』가 그러했듯, 『소소한 풍경』 또한 작가 박범신의 사랑론이다!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있다.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와 그리고 셋이서 함께. 삼각관계도 아니고 파트너를 추가하거나 맞교환하는 게임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이 사랑은 삼각관계라고 해도 좋은 것일까? 『은교』에서 은교를 두고 스승 적요와 제자 지우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파국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데 박범신이 새로 쓴 이 사랑 이야기는 저러한 사랑의 각본을 따르지 않는다. 이 사랑 이야기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의 치정극이 아니다. 한 남자가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한 여자가 남자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번민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상한 사랑 이야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모두 셋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하며 사랑받는 자, 오직 둘만 있다. 이상한 사랑이다.

작가 박범신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행복하고도 내밀한 순간에 세 몸은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니 셋이 동거하는 사랑은 욕망이되 욕망의 멸망을 향하는 욕망이며, 삼각형을 원으로 만든다는 데서 그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다. 그러면 이것을 여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도대체 그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랑, 이라고 소설가 박범신은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소소한 풍경』은 『은교』에서 시인 이적요가 꿈꾸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소한 풍경』은 『은교』에서 못다 한 작가 박범신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소소한 풍경』에서 소설가 ‘나’에게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의 존재를 알려준 여제자 ‘ㄱ’은, 『은교』의 이적요에게 은교가 이상화된 존재로 재탄생한 것처럼, 동시에 ‘나’가 상상하는 소설 속의 문학적 피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은교』가 그러했듯이 『소소한 풍경』도 작가 박범신이 펼치는 사랑론이자 소설론이기도 한 것이다. 『소소한 풍경』에서 스승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피조물인 제자와 그녀의 불가사의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소설 『소소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자신을 창조한 스승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갈 길을 찾는 제자의 욕망이 조금도 구현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남아 있다. 스승은 제자가 과거에 쓴 소설 「우물」에서 미래의 그 남자 ㄴ의 삶과 죽음의 필연성을 읽어내려고 하지만, 제자는 스승과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약간의 차이, 그것이 중요하다. “문장으로 반드시 당신을 이기고 싶다”는 말은 스승 ‘나’가 만든 텍스트의 일부이지만, 그 텍스트에서 제자 ㄱ이 스승에게 던진 도전적인 묵언(?言)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을 법한 ‘소소한 풍경’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나’가 만든 인물이더라도, 그녀 ㄱ은 자율적인 존재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로 제 몫의 삶을 살면서 소설을 쓸 것이다. 그 소설은 또 어떤 이야기일까. 벌써부터 박범신의 다음 작품이 슬쩍,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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