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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08
1장 서해랑길 첫 번째 구간 강화로 가기 위해 서해랑길의 시작, 해남 땅끝에 서다 016 명량해협을 지나며 시작되는 진도 027 다시 해남으로 접어들어 해남 땅을 걷다 047 월출산을 바라보며 걷는 영암 서해랑길 053 유달산을 오른 뒤 무안으로 향하는 서해랑길 060 목포를 감싼 무안군의 서해랑길 071 천사(1,004)의 섬, 신안의 섬들을 걷다 083 함평천지를 부르며 걷는 서해랑길 096 칠산바다를 보며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를 걷다 100 2장 서해랑길 두 번째 구간 고인돌과 갯벌의 고장 고창 118 변산마실길을 지나는 부안 서해랑길 141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를 새만금을 보면서 걷다 170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군산의 서해랑길 177 3장 서해랑길 세 번째 구간 산 열리고 들 넓으니 푸른 하늘 나지막한 서천군 192 땅이 다함에 창망한 바다와 면한 보령시 204 서산 방조제를 걷는 서해랑길 218 포구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태안반도 225 가로림만을 건너서 걷는 서산 서해랑길 238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지는 당진 왜목마을 243 공세리성당이 있는 아산의 서해랑길 250 4장 서해랑길 네 번째 구간 경기도의 초입 평택시 256 화성 마산포에 남은 대원군의 발자취 262 시화방조제를 지나다 271 서해랑길은 인천시에 이르다 276 강화해협을 건너 서해랑길의 끝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 287 |
辛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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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는 이 나라 곳곳을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사물들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가 다 온전히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기 때문에 나라 사랑, 국토 사랑의 첩경이 걷기다. 특히 옛사람들이 걸었던 조선 시대 옛길과 우리 역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강 길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나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백방산 아래 백방마을은 간척이 되어 농경지로 변하기 전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포구였고, 신라에서 당나라로 조공을 가거나 제주도로 귀양을 갈 때 당시의 영암군에 속했던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와 읍호리 경계에 있는 백방산에서 배를 탔다.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내와 가족들은 이 산에 살면서 무사히 돌아올 것을 빌었는데, 그들이 살았던 방이 100칸이나 되었다고 한다. ---「1장 서해랑길 첫 번째 구간」중에서 바라볼수록 마애불과 잘 어울리는 한 그루 소나무를 뒤로하고 도솔암 내원궁으로 오른다. 깎아지른 절벽과 푸르른 잎새들이 손짓하는 듯한 정경 속 내원궁(內院宮) 안에는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선운사 지장보살 좌상이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만큼이나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지장보살은 관음전에 있는 금동보살과 크기나 형식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아름답다. ---「2장 서해랑길 두 번째 구간」중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 항구를 드나드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기 좋은 성을 쌓은 뒤 그 안에 호화로운 주택 3백여 채를 지었다고 한다. 그 성이 바로 안흥항의 뒷산에 있는 안흥진성이다. 명나라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이곳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성계가 임금이 되더니 조선이 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말을 듣기 위한 전시 행정이었던 것이다 ---「3장 서해랑길 세 번째 구간」중에서 1866년 9월 프랑스의 선박 3채가 수비가 허술한 틈을 타 영종도를 지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서강의 언저리 양화진까지 올라갔고, 뒤를 이어 미국과 여러 나라가 ‘조선의 문호를 연다’ 또는 ‘마실 물을 구한다’는 핑계로 몰려 수호조약을 체결했으며 결국 그 조약들은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항상 중심축을 형성했던 지역이 강화도였다. ---「4장 서해랑길 네 번째 구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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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닷가 길을 따라
만나는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 『서해랑길 인문 기행』은 해남 땅끝탑에서 시작해 인천 강화까지 닿는 여정을 총 4장으로 구성하였다. 13개의 서해랑길 코스를 걸으며 닿는 마을마다 품은 역사와 설화가 무궁하다. 서해랑길이 시작되는 강화에서는 진도와 해남 사이에 유리병의 목처럼 갑자기 좁아진다 하여 ‘울돌목’이라고 부르는 바닷길이 있다.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류의 세기를 이용하여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현장이다. 서천군에서는 백제 시대 탑으로 소문난 ‘비인리 오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몇 기 남아 있지 않은 백제 문화재 중 하나인 오층석탑이 마을 귀퉁이에 쓸쓸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백제가 받은 수난의 시간이 어렴풋이 가늠된다. 걷기를 멈추지 않고, 경기도 평택시에 들어서면 그 유명한 ‘원효대사 해골바가지’ 설화가 탄생한 포승면 원지리의 수도사에 닿는다. 해골바가지 속 물을 통해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말한 원효대사의 지혜를 기억하며 서해랑길의 마지막 코스가 되는 강화도까지 걷는다. 강화도의 초지진은 조선 중기 해상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19세기 후반 미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적지다. 이 진지에는 프랑스와의 병인양요, 미국과의 신미양요 등 나라를 지키기 위해 벌인 전투와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드넓은 갯벌과 일몰, 서해랑길이기에 볼 수 있는 풍광 서해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갯벌과 염전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바다생물들이다. 서해랑길 여정 중에 있는 신안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졌다. 신안의 섬 중 증도는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섬이다. 증도를 걷다 보면 태평염전을 만날 수 있는데, 매년 15,000t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태평염전은 그 규모가 단일 염전으로는 전국 최대 크기로 462m²의 거대한 소금밭을 자랑한다. 또 서해랑길과 변산마실길을 함께 품은 부안에서는 일몰이 아름다운 솔섬을 만난다. 외딴 섬에 자란 소나무와 섬 너머로 보이는 등대가 지는 해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 특별히 서해에서는 만조에 창창한 바다였던 곳이 간조에 걸을 수 있는 땅이 되는 놀라운 자연의 신비를 만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화성의 제부도가 있다. 말 그대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제부도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간조가 되면 많은 차와 사람이 드나든다. 제부도에서 보는 일몰 또한 ‘제부낙조’라 하여 화성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우리의 도시나 그 주변에는 보기는커녕 들은 적조차 없는 명소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소 플리니우스가 남긴 글처럼 우리는 우리의 도시 주변에 있는 명승지와 그곳의 많은 이야기를 놓치고 있다. 걸으며 만나는 서해의 풍광과 이야기는 지친 다리를 다시 일으킬 만큼 가치 있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미뤄두고 잠시 떠나고 싶다면, 이번에는 비행기도 차도 아닌 두 다리를 디디며 『서해랑길 인문 기행』을 들고 서해랑길 여정에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