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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 Christmas Day · 7
12월 26일 - Boxing Day · 35 12월 27일 - The Last Saturday · 71 12월 28일 - The Last Sunday · 103 12월 29일 - The Day · 135 12월 30일 - New Year’s Eve Eve · 167 12월 31일 - New Year’s Eve · 193 1월 1일 - New Year’s Day · 199 작가의 말 · 210 |
Seo Su-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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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크리스마스가 보통 그러하듯 그해의 크리스마스 역시 무더웠다.
--- 첫 문장 한나와 경한은 나란히 서서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도은을 바라보았다. 도은이 깔깔 웃으며 후이한테 뭘 기대하냐고, 전날 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아직 잔다고, 올라가서 깨우라고 말하기를 기다리면서. 도은은 아보카도를 썰던 손을 멈추었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나와 경한의 얼굴에 머물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도은은 왜 대답하지 않는 걸까. --- pp.19~20 미아는 베스를 생각했다. 치매에 걸리면 가장 먼저 외국어를 잊는다. 그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치매 환자들에게는 모국어만 남고 그들의 외국 이름은 주인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주인이었던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캐서린을 캐서린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에는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몇 번을 불러도 그녀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테니까. --- p.44 그날 밤, 한나는 경한의 옆에서 잠들지 못하고 오래 뒤척였다. 그들이 깔고 자는 요는 얇아서 어떻게 누워도 몸이 배겼다. 경한은 부모가 한 달 정도만 머물 거라고 해서 제일 싼 요를 산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이 1년간 있을 거라고 했으면 두껍고 비싼 요를 샀을까? 아니다. 시부모와 그렇게 오래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으면 돈을 더 아꼈을 것이다. 돌침대에서도 잔다며 바닥에서 잤을지도 모른다. 어떤 가정을 한다 해도 한나와 경한의 삶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 pp.68~69 호주에서 자란 소위 성공한 아시아인들은 명문대에 진학하고 전문직이 되어 역시 성공한 아시아인 친구와 함께 그들이 정복한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티 달링하버의 식당을 찾는다. 성인이 되어 이민 온 아시아인들은 언어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같은 상황의 동포들과 어울리며 시티의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 등을 찾는다. 그들 중 누구도 헤비메탈이나 펑크 공연을 즐기러, 술집의 뒷마당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히피들과 어울리려 뉴타운을 찾지 않았다. --- p.74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한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되고, 그렇게 창대해지기를 바랐다. --- p.93 미아는 에이든을 대신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호주에서는 사과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매니저의 시선이 미아를 떠난 후였다. --- p.123 순간 하늘이 환하게 열리더라. 아, 이렇게 내가 죽고 드디어 천국에 가는구나 싶었어. 하지만 아니었지. 빛이 비치고, 모습을 드러낸 건 진리였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진리 말이야. --- p.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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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으로 얼룩진 일상을 문질러 닦는 여성들,
외면할수록 검게 불어나는 진실에 대하여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한나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되고, 그렇게 창대해지기를 바랐다. -93쪽 소설의 틀은 사라진 후이의 수상한 정황을 좇는 추적 스릴러이지만, 서사에 서스펜스를 더하는 것은 그의 실종을 둘러싼 이웃들의 사생활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은 각자 섹스, 도박, 마약 등에 깊이 중독되어 있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안일한 태도로 그들 곁에 머무는 여성 4인방의 삶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4인방은 서로가 겪는 환멸과 곤경을 의심하기만 할 뿐 꺼내어 나누지 않는다. “‘한국인은 한국인이 등쳐먹는다’라는 말을 들으며 주위를 경계하는 시기”를 거쳐 타국에서의 “실패와 고독이 불쏘시개가 되어” 단박에 가족 같은 사이가 된 이들. 빈부의 정도, 외양과 취향, 동거인의 국적도 모두 다른 도은, 한나, 애슐리, 미아를 묶어주는 얇은 실은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이다. 이들은 그 미약한 경계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기 위해 각자가 생각하는 정상성에 천착하거나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돌출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위선을 택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위태롭지만 결코 순진하지 않은 이 4명의 여성들이 그 위선의 대가를 알면서도 감수한다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경계 안으로 타인이 불쑥 침범할 때,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루함과 불안함을 얼마간 지우기 위해 시작하고, 그 존재에 익숙해지는 시기를 지나 없으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빠르게 피폐해지는 것이 중독의 과정이라면 도은, 한나, 애슐리, 미아는 믿음에 중독되어 있다.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지 않고 잠깐의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믿음, 그럼으로써 다음이 있을 거라는 믿음. 《다정한 이웃》은 단 일주일 만에 삶을 완전히 침식시키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것이 인도한 곳에서 자신의 민낯을 비추어 보고, 민낯을 비추는 거울까지 제 손으로 깨뜨리고야 마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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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 참 싫은 말인데 자주 하게 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이 철저하게 다르고 비명을 참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데도, 스스로를 안심시키느라 혹은 뾰족하게 솟은 불행의 디테일들을 잘 눌러 익히 알던 세계에 편입시키느라 그렇게 말하고 마는 것 같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불행의 목록에 서수진의 디테일이 첨가되는 순간 이야기의 그물은 견고해지고, 친친 감긴 나는 이야기 끝에 도사린 피비린내를 감지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잘 닦여 반짝이던 이민 여성 4인방의 일상이 단 일주일 사이에 산산조각 나고 그들 각자가 외면해 온 진실이 피투성이로 드러날 때, 또 하나의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서수진밖에 없다는 사실. - 박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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