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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영 …… 〈곽수산나와 경우의 수〉
서수진 …… 〈좋아하는 사이〉 서유미 …… 〈다른 미래〉 서장원 …… 〈잇팁은 죽지 않는다〉 성해나 …… 〈메탈〉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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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야, 불안할 때는 쫓기듯 뭘 결정하지 마. 널 부추기는 목소리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마. 헛수고를 예약하지 마.
---「기준영_곽수산나와 경우의 수」중에서 운동 30분 전에 카페인을 섭취하면 지방 연소율이 증가한다는 기사를 본 후로 나는 근 3년간 꾸준히 그렇게 운동해 왔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준영_곽수산나와 경우의 수」중에서 3년을 사귀었지만 결국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형구가 내게서 돌아서면서 말하길 ‘입바른 소리를 얄밉게 해서 정이 떨어진다’고 했다. 나는 이 유치하고 허무한 결말을 학구열로 극복해 보려 했다. 사람과 상황의 복잡한 속성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법을 익혀 ‘사랑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새로운 내 자산으로 품게 되길 바랐다. ---「기준영_곽수산나와 경우의 수」중에서 쓸모없는 관계. 비생산적인 만남. 진저리나게 반복되는 패턴. 현아는 이렇게 소모적이기만 한 관계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기만 했다. 발전적이지 않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현아답지 않았다. ---「서수진_좋아하는 사이」중에서 “나중에 호주 와서 같이 살면 좋겠어.” 유영의 말에 현아는 그러려면 언제 호주에 다시 오는 것이 좋은지, 영주권을 따려면 호주 대학원에서 무슨 전공을 해야 하는지, 대학원에 가려면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떠들었다. 옆에 붙어 누운 유영이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네가 있으면 걱정 없지.” ---「서수진_좋아하는 사이」중에서 밥이 되는 소리를 들으며 다이어리를 폈다.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남편의 사고 이전의 날짜와 기록한 내용들을 읽어보았다. 여름휴가와 희영이 대학 입학 후 처음 맞는 방학에 대해 쓴 몇 문장은 일상적이고 심상했다. 진은 한 페이지를 비워둔 뒤 다음 장에 볼펜으로 날짜를 쓰고 다른 미래, 다른 생활, 이라고 썼다. 진은 마흔일곱 살이었고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었다. 떠다니는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라 정리된 기록이 필요했다. ---「서유미_다른 미래」중에서 파도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최고의 파도는 계속 경신되었다. 비 오는 바다에서 파도를 맞는 건 살면서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비를 맞고 파도를 맞는 게 뭐라고, 좋아서 눈물이 났다. ---「서유미_다른 미래」중에서 소정은 영진 씨와 대화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무슨 얘기를 건네도 ‘아, 네.’ 이상의 대답을 하지 않고 좀처럼 뭘 묻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대놓고 면박을 줘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도 덧붙였다. ---「서장원_잇팁은 죽지 않는다」중에서 “언니, 나는 영진 씨가 하나만 했으면 좋겠어! 레즈비언이랑 잇팁 중에 하나만, 하나만 했으면 좋겠어!” ---「서장원_잇팁은 죽지 않는다」중에서 “과장님, 잇팁은 절대 안 죽는 타입이기도 해요. 제임스 본드는 절대 안 죽잖아요. 〈007〉 시리즈 끝날 때까지.” ---「서장원_잇팁은 죽지 않는다」중에서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바닷바람을 맞다 보면 서로를 향한 염오도, 부박함도 서서히 스러졌다. 아침이여, 나를 데려가지 말아요. 냉기에 뺨이며 손등은 얼얼해졌지만, 가슴은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메탈의 열기는 귓가로 흘러 들어와 온몸을 한 바퀴 훑고서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부도체 같은 그들에게 전류가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준 음악. 이 시절이 영원할 것처럼 그들은 짙푸른 밤을 내달렸다. ---「성해나_메탈」중에서 이 누추한 도주를 언젠간 용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림은 눈을 감았다. 먼 데서 고요히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성해나_메탈」중에서 |
혼란스러운 세계를 피하지 않고
적절히 맞서는 다섯 인물 F 유형 작가들이 상상한 T 유형의 세계를 따라 읽다 보면 이토록 꼿꼿한 이들의 삶에의 태도는 주변과 자신을 지키는 기제임을 알 수 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부푼 마음이 당신의 일상을 압도할 때, 사랑으로써 따끔한 말을 건네는 5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먼저, 기준영 작가가 그린 ESTJ는 늘 다음 걸음을 먼저 예측하는 미더운 친구다. 〈곽수산나와 경우의 수〉에서 ‘곽수산나’는 퇴사를 앞둔 어느 날, 기타 선생님으로 만난 은수에게 아버지 친구 집에 동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수산나는 계획에 없던 변수는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자신과 달리 속없이 다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은수에게만은 쉽게 곁을 내어준다. 결국 그는 처음 본 사람의 주거 공간에 들어가 휴일 한때를 보내게 되는데. 은수에게 품게 되는 이름 모를 감정에 깊게 빠져보고 싶기도, 그것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수산나의 인간적인 면모에 우리는 결국 애정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서수진 작가가 그린 ENTJ 인물, ‘현아’도 미래의 청사진을 촘촘히 설계하고 실행하는 든든한 친구다. 〈좋아하는 사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로 지내왔지만, 한결같이 동상이몽인 세 친구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그린다. 현아는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자기의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을” 노을과의 접점을 지우고 싶다. 혼자였다면 진작에 끝냈을 관계지만, 힘든 시기에 조건 없는 선의를 베풀어준 유영을 위해 마지막으로 노을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함께 클럽에 가게 되는데. 이들의 위태로운 우정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될까? 자신이 쌓아 올린 단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는 인물도 있다. 서유미 작가의 〈다른 미래〉에서 ISTJ 인물 ‘진’은 비 내리는 바다에서 파도를 맞는 손녀와 사위, 그리고 딸 ‘희영’을 난감하게 지켜본다. 20년 전, 남편의 죽음이 파도처럼 진과 희영을 갑작스럽게 덮쳤을 때도 둘은 아주 달랐다. 진은 남편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다시 궤도에 안착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희영은 그대로 슬픔에 침잠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둘은 서로의 다름을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왜 함께 놀지 않느냐고 채근하던 손녀가 파도가 무서워서 그렇냐고 하는 말에 진은 생각한다. “파도가 무섭냐고? 맙소사.” 위 세 인물과 달리, 미래를 계산하기보다 옳다고 믿는 길은 일단 건너고 보는 인물들도 있다. 서장원 작가의 〈잇팁은 죽지 않는다〉에서 화자 ‘나’는 사교성이 필수 역량으로 요구되는 회사 분위기에 ISTP인 사실을 숨기고 살다가, 신입인 ‘영진’이 자신과 같은 유형인 것을 알게 된다. 영진은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브런치 모임’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성이 영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주위의 원성과 영진의 사수 ‘소정’의 곤경에도 불구하고 영진의 태도에는 굽힘이 없다. 남이 생각 없이 던진 말의 행간을 헤아리는 일은 때로 얼마나 번거로운지. 타인을 대하는 영진의 단호하고 간결한 태도는 묵묵히 용기를 건넬 것이다. ESTP 인물을 그린 성해나 작가의 《메탈》은 따가운 소음으로 가득한 청춘의 주제가가 서서히 잦아드는 풍경을 포착했다. “아주 망하지도 않겠지만,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적요한 해안 동네, 고등학생 우림은 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조현과 시우를 만나 밴드를 결성한다. 세 사람은 한 오토바이에 욱여 앉아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내달리거나, 김빠진 맥주를 나눠 마시거나, 같은 도안의 타투를 팔에 새기며 무모하고 투명한 젊은 날을 함께 통과한다. 그 속에서 우림은 셋이 함께할 찬란한 미래를 그리며, “녹슬지도 썩지도 않을 꿈을 영원히 꿀 수 있을 것만 같은” 안온함을 느낀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각자의 현실을 살게 된 이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데.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제일 아픈 곳을 찾아 찌르는 이들의 우정은 ‘영원’의 모순을 쓸쓸하고 먹먹하게 역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