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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에게 듣다
그의 연주와 음악에 관한 심층 인터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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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글
들어가며

제1부
글렌 굴드 사진첩
제2부
조지 셀 망동(妄動)

[부록]
- 디스코그래피
- 캐나다 국영 방송사의 글렌 굴드 테이프 컬렉션
- 라디오 프로그램들
-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 필모그래피

옮긴이의 글: 글렌 굴드에게 듣는 글렌 굴드

저자 소개3

Glenn G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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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캐나다 토론토 태생의 피아니스트. 1955년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데뷔했다. 기존의 관습을 깨뜨리며 천재적인 기교로 독창적이고 담대한 곡 해석을 선보인 그의 연주들은 숱한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기이한 무대 매너와 은둔자 같은 삶 또한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1964년 서른둘의 나이에 공개 연주회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했으며, 이후에는 스튜디오 녹음과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전념했다. 재치 있고 도발적인 발언과 글쓰기로도 정평이 난 굴드는 자신의 음반에 붙일 라이너노트를 직접 집필하는가 하면, 여러 매체에 다양한 음악적 문제를 다룬 글을 활발하게 발표하기도
캐나다 토론토 태생의 피아니스트. 1955년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데뷔했다. 기존의 관습을 깨뜨리며 천재적인 기교로 독창적이고 담대한 곡 해석을 선보인 그의 연주들은 숱한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기이한 무대 매너와 은둔자 같은 삶 또한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1964년 서른둘의 나이에 공개 연주회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했으며, 이후에는 스튜디오 녹음과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전념했다. 재치 있고 도발적인 발언과 글쓰기로도 정평이 난 굴드는 자신의 음반에 붙일 라이너노트를 직접 집필하는가 하면, 여러 매체에 다양한 음악적 문제를 다룬 글을 활발하게 발표하기도 했다.

12세에 토론토 왕립음악원 졸업 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함으로써 유럽 악단에도 데뷔하였다. 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건반악기 음악에 대한 걸출한 해석자로서 유명하다. 글렌 굴드의 연주는 놀라운 기술적 능숙함과 함께 바흐 음악의 대위법적 텍스쳐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특징지어진다.

굴드는 대부분의 낭만주의 피아노를 거부했으며 사춘기 이후 리스트, 슈만, 쇼팽을 피했다. 그의 녹음 음반은 대부분 바흐로 채워져 있기는 했었지만,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브람스, 전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얀 피에테르존 스벨링크, 20세기 작곡가인 파울 힌데미트, 아르놀트 쇤베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포함하여 가지각색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굴드는 갖가지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비정통적인 음악 해석법, 악기를 연주할 때의 버릇에서부터 삶의 양상, 개인적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기인적인 면모를 보였다.

1964년, 그의 나이 31세 때 라이브 공연을 중단하고 스튜디오에서의 녹음과 다른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가, 작곡자, 지휘자, 방송인이기도 했다. 그는 음악 잡지에 음악 이론을 논하며 그의 음악 철학을 나타내는 수많은 기고를 했다. 작곡자로서의 면모는 눈에 덜 띄는 편인데, 수는 적었고 많은 작품들이 미완성인 채 남겨졌다. 그의 나이 50이 넘었을 때 그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지휘와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방송인으로서 굴드는 스튜디오 연주에 대한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에서부터 라디오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글렌 굴드는 1932년 토론토 동쪽 변두리, 나무가 우거진 평화로운 동네의 견실한 중간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글렌의 아버지 버트는 모피상으로, 젊은 시절에 바이올린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플로렌스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사였다. 또 두 사람 모두 노래를 잘했다.

음악 구조와 형식 이외의 외재적 요소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태도가 강하다. 예를 들어, 음색에 관심이 없고 색채감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을 경시하였고, 자신의 피아노 연주도 색채감을 연출하지 않았다.
악기의 특성과 음질에는 관심이 낮고, 오히려 구조적인 악곡은 악기를 가리지 않는 발상을 선전하고 특히 바흐의 건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유를 논거로 들었다. 악곡의 가사와 표제성에도 무관심하고, 그들을 연주 해석 문제에서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다.

명인기(名人技)는 음악의 구조와는 무관한 것으로, 그것을 피력하고 발휘하는 음악과 행위 자체를 싫어하였다.
연대기에 대한 반발이 있다. 즉, 예술 작품의 가치를 그 성립 연대에서 역사적으로 판단하는 견해와 작곡가의 창작 활동에 시대 구분을 실시하고 각 작품의 평가와 해석을 정하는 태도이다.

광범위하지만 매우 선택적 레퍼토리는 튜더 시대의 버지널 음악가들에서부터 생존하는 캐나다인까지이고 바흐와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다루었지만 초기 낭만주의 음악은 부족하였다. 소수만 즐기고 지적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현대 음악 표현 양식을 옹호하였으며 조르주 비제, 에드바르 그리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및 장 시벨리우스와 같은 작곡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지지하였다. 또한 편곡판으로 그 당시에는 드물었던 관현악과 오페라 곡 연주를 좋아하였다. 특히 바흐 공연에 20세기 중반의 '전성기 현대주의자' 접근 방식인 역동적이고 영향력 있는 예를 제시하였다.

독창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때로는 충격적인 음악 해석을 냈는데, 종종 극단적인 빠르기, 이상한 강약법에 더 묘한 악구도 썼다. 그는 피아노와 음악 해석에 대한 관습적인 발상을 무시함으로써 평생 논란에 휩싸였다. 아마도 선율의 음을 연결하지 않고 연주하는 분리된 분절법에 대한 선호가 그 예가 된다. 양식은 간결하고 정교하고 율동적으로 역동적이고 구조적으로 명백하고 집요하게 대위법적인 특징이 낭만적이라기보다 현대적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여전히 서정적이고 심오한 표현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해석자로서 궁극의 낭만주의자이었던 만큼 연주 기법에 때로는 음표까지 자주 손을 댔다. 극한의 템포, 기발한 표현과 장식, 그리고 다른 해석적인 실험을 통하여 작품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독창성에 대한 칭찬과 기행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작곡가가 쓴 소리를 완전히 다 듣는다는 행위는 축음기와 레코드를 거치지 않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음악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을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것이고 그것을 청중에게도 요구하였음을 뜻한다. 즉 음악을 분석하여 정밀하게 해부하고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레코드와 그 기술의 진보가 담당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진정한 녹음 철학을 가진 고전 음악 연주자 중 굴지의 주창자가 되어 기사와 방송에서 열정적으로 변호하였고 컬럼비아/CBS에서 수십 개의 앨범을 연습하여 녹음 기술에 대한 실천적인 전문성을 개발하였다. 마이크 배치, 스플라이싱, 오버 더빙, 리버브 등의 기술 자체가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많은 최종 해석 결정을 후반 제작 과정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작곡가, 연주자 및 청취자의 전통적인 관계를 바꾸었다. 이미 가능한 기존 해석에서 완전히 일탈하지 않고, 예를 들어, 황제 협주곡의 또 다른 녹음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실험적인 해석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기사, 연주회 프로그램 내용, 그의 음반 20장 이상에 대한 속지 해설, 강연, 평론,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및 유머와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수십 가지의 주제를 발표하였다. '힌데미트 : 피아노 소나타' 음반에 작성한 속지 해설로 1973년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 최우수 해설상을 수상하였다. 녹음과 대중 매체, 종종 친구인 마셜 매클루언과 의사소통을 하며 서로의 견해에 대하여 다작하였다. 전자 매체에 대한 저술은 관련성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 예지력이 있었다. 라디오, 텔레비전 및 영화 제작을 위하여 작성한 대본에서 판단할 때, 그 결과로 인상 깊은 내용은 고르지 않고 자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음악 및 기술 정보에 정통하고 대단히 독창적이며 도발적인 사상가로서 명성을 얻은 점이다.

"예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바는 예술은 사람들 마음 속에 타오르는 내적 연소이며, 그것을 천박하게 드러내어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일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술의 목적은, 신경을 흥분시키는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일생 동안 설레는 놀라움과 차분한 평온의 심적 상태를 구축하여 나가는 것이다."

조너선 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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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Cott

조너선 콧은 지금까지 열여섯 권의 책을 썼다. 대표적으로 《슈토크하우젠: 작곡가와의 대화》, 《밤의 그늘 속으로 돌아오다: 1968~2001년의 음악 저술과 인터뷰 모음집》, 《딜런》이 있고, 최근 집필작으로는 《기억의 바다 위에서: 망각에서 기억으로의 여행》, 《레니와의 저녁 식사: 레너드 번스타인과의 마지막 긴 인터뷰》가 있다. 『롤링 스톤』 창간호부터 객원 편집 위원으로 일했고, 『뉴욕 타임스』, 『파라볼라』, 『뉴요커』에 기고해왔다. 현재 뉴욕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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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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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74g | 125*191*19mm
ISBN13
9788986377651

책 속으로

내가 흥얼대는 소리를 지우는 일을 하는 이퀄라이제이션 시스템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 그 소리가 어느 특정 주파수에만 머물고 그 주파수를 지우는 것이 피아노 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당장에 그렇게 할 텐데 말입니다. 나는 그 소리가 자산이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게 그 소리는 늘 내 곁에 머물러온 불가피한 그 무엇일 뿐입니다. 사실 내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은 최근 내가 발매한 음반에 대해 하는 말과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는 셈이지요. 좀처럼 없앨 수 없는 버릇인 겁니다.
--- p.59~60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1번》부터 《4번》까지 담은 신보가 곧 발매 예정인데, 내가 지금껏 녹음한 그 어느 바흐 음반과 마찬가지로 건조한 음향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템포는 전에 비해 느려졌어요. 다소 두터워진 소리라는 제약 조건을 두고 방정식을 풀면 정답은 템포를 늦추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무시하고 평상시 선호대로 빠른 템포를 잡으면 아티큘레이션이 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악기가 템포를 좌지우지한 셈이지요.
--- p.91

원곡에 충실한 편곡 노선을 견지할 때, 특히 그 원곡이 [지크프리트 목가]처럼 현악 텍스처가 지배하는 곡이라면, 실수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가령 관현악곡 악보에서는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같은 음을 한 옥타브 차이로 겹쳐 연주하는 게 흔히 나타나는 관행입니다. 콘트라베이스 덕분에 오케스트라 음향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관행을 피아노 편곡판에서도 그대로 반영해야 할까요? 아니면 간헐적으로만 운용해야 할까요? 내가 내린 결론은 [지크프리트 목가] 전체에 걸쳐 음악이 가장 높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를 제외하고는 콘트라베이스의 음표를 언제나 엇박에 배치한다는 것입니다.
--- p.102~103

입체 음향을 무조건 선호한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그런 논리라면 흑백 영화를 감상하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할 테지요. 나는 오히려 어떤 특정한 종류의 음악은 모노 사운드를 더욱 선호합니다. 공연히 좌우 사운드를 구분하여 녹음해봤자 그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는 작품들도 있다는 뜻이지요. 4채널 방식은 바흐 트리오 소나타나 베토벤 교향곡에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기술입니다. 반면 가브리엘리의 작품 중에는 4채널이 통하는 곡이 있습니다. 네 개의 금관 합주단을 사방에 하나씩 배치하고 녹음하는 방식에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지요.
--- p.128

그러다 문득 조지 셀이 무대 쪽으로 걸어오더니 대뜸 “뭐 하는 건가?” 하고 묻더군요. 나는 의자를 더 이상 내렸다가는 다리 자세가 영 불편해질 것 같아 대신 피아노를 살짝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피아노를 올림으로써 의자를 내린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여기 아주 친절한 신사분께서 나무 조각을 특별 제작해주기로 하신 덕분에 저녁 공연 전까지는 문제없이 준비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마에스트로께서는 “허!” 하는 탄식을 내시더군요.

--- p.192~193

출판사 리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직접 밝히는 자신의 연주 철학과 음악적 견해

그 누구보다도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음악가이자 유별난 피아니스트였던 글렌 굴드는 톱으로 다리를 잘라낸 나무 의자에 앉아 잔뜩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서 날렵한 템포와 신선한 명쾌함으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을 해석해냈다.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괴짜 같은 행동으로도 이름을 얻은 굴드는 연주 도중 흥얼대는 소리를 내거나 구겨진 연미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곤 했다.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이상적인 인터뷰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 작가 조너선 콧은 굴드가 인터뷰를 허락한 극소수의 사람 가운데 하나다. 굴드의 연주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악적 주제를 놓고 오간 재치 있는 대화를 기록한 이 책은 최고의 굴드 대담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고의 인터뷰어와 피아니스트의 만남

유서 깊은 음악 잡지 『롤링 스톤』 창간호부터 객원 편집 위원으로 활동해온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조너선 콧은 글렌 굴드, 존 레넌, 밥 딜런, 레너드 번스타인 등의 인물을 인터뷰하고 이를 책으로도 출간하면서 최고의 인터뷰어로 꼽혀왔다. 콧은 글렌 굴드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열세 살 무렵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처음 접한 콧은 굴드가 뉴욕 지역의 무대에 오를 때면 어김없이 따라다니며 그의 연주에 푹 빠져들곤 했다.

1960년 어느 공연 실황을 촬영할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굴드와 처음 인사를 나눈 콧은 그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굴드의 음악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1974년에는 굴드와 여섯 시간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를 하고, 이 대담을 『롤링 스톤』지에 게재했다. 굴드가 세상을 떠난 뒤 콧은 당시의 인터뷰를 모아 여기에 서문을 붙이고 수십 장의 사진 자료와 디스코그래피, 필모그래피, 그리고 굴드가 출연한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목록을 더해 책으로 펴냈다.

굴드만의 독특한 무대 매너에 대하여

굴드는 데뷔 이래 전무후무한 독창적 해석을 선보이며 놀라운 연주로 관객과 평론가를 열광시키는 한편, 기이한 무대 매너나 생활 방식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뜨거운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굴드는 1964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돌연 콘서트 무대 일선에서 떠나 녹음과 집필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또 한 번 세상에 놀라움을 안겼다.

굴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콧노래를 흥얼대는 습관이 있었고, 음반에도 이런 목소리가 섞여 녹음되곤 했다. 콧은 굴드에게 만약 이 ‘시끄러운 유령’의 소리를 음반에서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할 의향이 있는지 질문한다. 그러자 굴드는 음악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그 소리만 골라 지울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겠다고 답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기를 따라다닌 버릇이기에 좀처럼 떨쳐내기가 어렵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반면에, 오른손이 연주할 때 왼손으로는 지휘 동작을 하고, 코가 건반 바로 위에 오거나, 황홀경에 빠져 까무러칠 듯한 동작을 하는 등의 제스처를 바꾸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힌다. 만약 그런 행위들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연주 수준은 급격히 떨어지고 말 거라며 “내 왼손과 오른손 사이의 관계는 단연코 개인적인 문제”임을 강조한다. 더욱이 바흐는 건반에 바짝 붙어서 연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소리를 깨끗하게 하고 통제력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기 넘치고 도발적인 굴드의 발언에 담긴 음악적 식견

콧과의 대담에서 굴드는 올랜도 기번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페툴라 클라크를 향한 편애, 그리고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와 비틀스에 대한 반감을 비롯한 음악적 견해를 솔직하게 밝힌다. 레퍼토리 선정, 피아노의 터치와 템포, 실험적인 녹음, 팝 음악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답하며 위트와 신랄함을 내뿜는 굴드의 발언을 읽노라면, 그의 특이해 보이는 행위와 결정이 단순히 괴짜 같은 성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이해와 숙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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