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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제1장 옹플뢰르
제2장 학생, 군인, 짐노페디스트
제3장 공동 상속자
제4장 벨벳 신사
제5장 학자
제6장 급진파 부르주아
제7장 발레 뤼스
제8장 ‘스모킹 재킷’을 입다
제9장 다다이스트
별사(別辭)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 음반 목록
참고문헌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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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2

메리 E.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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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E. Davis

예일 대학교 잭슨 국제문제연구원 캡스톤 교수진으로,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 대학원 학장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음악과 학장을 역임했다. 문화비평가이자 역사학자로서 특히 음악, 스포츠, 무용, 시각예술과 패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봄의 제전 100주년(음악적 의미와 해석)The Rite of Spring at 100(Musical Meaning and Interpretation)》(공저, 2017), 《발레 뤼스 양식: 댜길레프의 무용수들과 파리 패션Ballets Russes Style: Diaghilev’s Dancers and Paris
예일 대학교 잭슨 국제문제연구원 캡스톤 교수진으로,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 대학원 학장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음악과 학장을 역임했다. 문화비평가이자 역사학자로서 특히 음악, 스포츠, 무용, 시각예술과 패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봄의 제전 100주년(음악적 의미와 해석)The Rite of Spring at 100(Musical Meaning and Interpretation)》(공저, 2017), 《발레 뤼스 양식: 댜길레프의 무용수들과 파리 패션Ballets Russes Style: Diaghilev’s Dancers and Paris Fashion》(2010), 《기차를 기다리며: 지미 로저스의 아메리카Waiting for a Train: Jimmie Rodgers’s America》(공저, 2009), 《클래식 세련미: 음악, 패션 그리고 모더니즘Classic Chic: Music, Fashion, and Modernism》(2006) 등이 있다.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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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128*188*20mm
ISBN13
9791189716516

책 속으로

또 한 명의 확고한 찬미자였던 작곡가 존 케이지는 사티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자 “예술의 가장 진중한 하인”이라고 추어올렸다. 특히 케이지는 에세이와 연주회, 그리고 본인의 작품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아방가르드 예술계가 사티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했으며, 사티가 일반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주류 모더니즘의 강력한 대안이자 쇤베르크와 불레즈, 슈토크하우젠으로 대표되는 통제 지향적 접근법의 해독제로 기능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들어가며」중에서

지금의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셀러브리티 문화가 이제 막 태동하는 현상이던 시기에, 사티는 유일무이한 ─ 그리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 생김새를 가꾸는 것의 가치를 벌써 이해하고 있었다. 옷은 그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고, 사티가 예술에서 돌파구를 발견하는 데 틀림없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들어가며」중에서

사티는 파리 보헤미안의 유니폼을 자랑스레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두운색 바지와 길쭉한 프록코트 차림에 폭이 넓은 넥타이를 매고 실크해트를 빼놓지 않았다. 사티의 친구이자 장식 예술가요, 가구 제작자였던 프랑시스 주르댕은 작곡가가 “오로지 패션의 요구를 거스르기 위해 패션 동향을 파악하는 그런 종류의 멋쟁이”였다고 했다. 의상의 변화는 사티가 과격파 비주류들과 교류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사티는 평생에 걸쳐 몇 차례 패션에 변화를 꾀했는데, 이번이 그 첫 번째였던 셈이다. 드 라투르의 말마따나, 패션의 변화는 “스스로를 위해 개인적인 예술적 스타일을 빚어낸” 사티의 전형적 전략이었다.
---「제2장 학생, 군인, 짐노페디스트」중에서

사티는 제대로 한번 보여주마, 작정을 하고 초집중 상태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작품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때 드뷔시가 끼어들었다. “이보게, 자네 음악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내가 보여줌세.” 그의 기적과도 같은 손가락 아래에서 〈짐노페디〉의 심장이, 모든 색채와 뉘앙스까지 담아, 놀랍게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제2장 학생, 군인, 짐노페디스트」중에서

1920년 장 콕토의 전언에 따르면,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사티 덕분에 배태되었다고 한다. 드뷔시로부터 요즘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사티는 벨기에의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말렌 공주》를 원작으로 한 음악을 쓰고 싶은데 작가의 허락을 받을 길을 몰라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드뷔시는 마테를링크의 허락을 얻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쓰기 시작했다”고 콕토는 말한다.
---「제2장 학생, 군인, 짐노페디스트」중에서

드디어 명랑한 음악의 애호가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등장했다. 스핑크스와도 같은 사내, 나무로 된 머리를 가진 작곡가, 포기를 모르는 에리크 사티가 스스로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새로운 음악 작품의 등장을 알린다. 이 곡 은 그가 숭배하는 신비로운 전례적 장르로 배태되어 ‘첨두 아치들’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이 붙은 선율의 모음곡이다. 에리크 사티가, 지금 모든 피아노 아래에 깔려 있는 〈짐노페디 3번〉으로 거둔 바 있는 것과 유사한 성공을 거두길 바라는 바다. (작곡가 자신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첨두 아치들] 광고 문구)
---「제2장 학생, 군인, 짐노페디스트」중에서

사티와 발라동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두 편 있다. 발랄한 가곡 〈안녕, 비키, 안녕!〉 악보에는 발라동의 소녀 같은 모습을 사티가 즉석에서 그린 스케치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두 번째 작품은 두 사람이 헤어질 무렵에 쓰인 〈벡사시옹〉이다. 사티는 언제나 주장하길, 발라동과 헤어진 것이 자기 탓이라고 했다. 그가 들려주는 경위는 하나로 일정치 않고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데, 발라동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녀를 창문 밖으로 밀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벡사시옹〉은 고작 열세 마디면 끝나는 짧은 피아노곡이다. 그런데 사티는 이 곡을 자그마치 840회 되풀이하여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으로만 이루어지는 점도 그렇고 연주 시간도 어마어마하지만, 이명 동음과 무조에 가까운 화음, 비대칭 악절 구조 등 연주자를 성가시게 하는 요소가 붙박이처럼 들러붙어 있어서 음악을 기억 속에 붙들어두려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제3장 공동 상속자」중에서

그해 말에는 그의 모범에 감화받은 젊은 후배 작곡가들과 평론가들이 사티를 ‘음악가들의 대공大公’으로 높이자는 제안까지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제안에 난감해하던 사티는 ─ “이 멍청이들, 완전 일자무식이구먼”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음악에 대공이 필요하긴 하다”면서 “그렇다면 맹세코 대공이 되어주겠다”고 동의한 것이다.
---「제6장 급진파 부르주아」중에서

사티는 1890년대의 작품인 〈그노시엔느〉부터 텍스트를 활용한 가능성을 더듬는 실험을 시작했고, 이는 1911년의 〈승마 복장을 하고〉까지 이어졌다. 사티에게 영향을 미친 요소로서 반박의 여지없이 지목할 만한 것이 바로 세기 말 카바레의 환경이다. 당시 카바레에서는, 간단히 옮기기 어려운 단어인 ‘블라그blague’로 대표되는 반어적 유머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보헤미안 반문화의 표제어와도 같았던 블라그는 예리한 관찰과 장난기 가득한 희롱의 결합체로 설명된 바 있다.
---「제6장 급진파 부르주아」중에서

〈운동과 오락〉은 평론가들이 높게 치는 작품이 아니다. 아마도 패션이라는 소재를 하찮게 보는 자세 때문일 수도 있겠고, 혹은 곡의 길이가 워낙 짧고 코믹한 터치가 가미된 음악들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운동과 오락〉은 사티가 발표한 일련의 해학적 피아노 모음곡들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음악과 언어, 시각적 이미지의 급진적 혼융을 꾀함으로써 음악적 모더니즘을 성취한, 알려지지 않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6장 급진파 부르주아」중에서

〈파라드〉가 취한 대중화 노선은 극장에서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초야 공연을 찾은 일부 관객은 야유를 보내며 관계자들을 향해 “더러운 독일 놈들”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만큼 한층 더 모욕적인 비난이었을 테다. 그러나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은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은 〈파라드〉에서 모더니즘의 조짐을 읽었다. 사실 관객의 소동은 예술의 아방가르드성을 확인하는 즉각적이고 확실한 인장(印章)과도 같았다. 기성 예술에 역행하는 작품으로서 〈파라드〉의 가치는 단 한 차례의 공연으로 공고해졌고, 덕분에 사티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예술적 질서 속에 한 자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제7장 발레 뤼스」중에서

나는 너무도 고생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저주가 내린 것 같아요. 이 ‘거지같은’ 삶이 지긋지긋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예술에 똥을 갈깁니다. 나는 예술에 너무도 많은 ‘전환’을 빚지고 있습니다. (…) 그 어떤 하찮은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일자리를 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에 처해 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예술이라고요? 마지막으로 오선지에 음표를 적어넣은 것이 한 달도 더 되었습니다. 아무런 악상도 떠오르지 않고, 악상이 떠오르는 걸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쩌란 말입니까?
---「제8장 ‘스모킹 재킷’을 입다」중에서

작곡가는 육필 악보에 이들 작품을 “가구와도 같은 오락물”로서 기획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가구음악은 ‘왈츠’와 ‘오페라 환상곡’ 따위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헷갈리지 말지어다! 이 음악은 뭔가 다르다!! 더 이상 ‘가짜 음악’ 운운하지 말자. (…) 가구음악은 듣는 이의 부동산을 완결하는 존재다. (…) 새롭고, 관례를 뒤집지 않으며, 피곤하지도 않다. 프랑스적이며, 들어도 들어도 닳아 없어지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제8장 ‘스모킹 재킷’을 입다」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휴관〉을 통해 사티가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이름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가 배태된 시기에 시도된 여러 실험이 망라되어 있어 지금은 초창기 시네마의 아이콘처럼 인식되는 르네 클레르의 재미있는 〈막간극Entr’acte〉은 일관성 없는 이미지들을 이어 붙임으로써 발레의 우스꽝스러운 내러티브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제9장 다다이스트」중에서

세면대가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침실이 나왔다. 침실은 심지어 건물 관리인조차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사티만의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우리는 경외심과 비슷한 감정을 품고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의 그 충격이란! 사티가 그와 같은 가난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다녀서 마치 모범 공무원처럼 보였던 사내가 푼돈이라도 값을 매길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리우스 미요의 회상)
---「별사」중에서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며 늘 많이 배웁니다. 특히 전기(傳記)라는 책의 형식은 그간 듬성듬성 알았던 인물의 삶의 궤적을 종주함으로써 앎의 빈틈을 메우는 쾌감을 선사하기에 한층 각별합니다. 지금까지 열 권이 넘는 작곡가 전기를 우리말로 옮겨왔지만, 그중에서도 빈틈 메우기의 쾌감이 가장 컸던 책이 바로 이번 사티의 전기였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게 사티는 〈짐노페디〉, 〈그노시엔느〉, 〈피카딜리〉 같은 몇 편의 인기 작품과 카바레 피아니스트로서의 이미지 등으로만 간신히 이어진 누더기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의 본 모습을 충실히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디 독자들도 본서를 통해 그간 몰랐던 사티의 면모들을 넉넉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셀러브리티 문화를 활용한 벨벳 신사 사티,
추구하는 작품의 성격에 맞춰 옷차림과 태도를 바꾼 현대 예술가, 전위 예술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청각예술과 시각예술을 오가며 현대 예술가의 한 유형이 되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오십이 되어 봐라. 그럼 보일 테니”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오십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사티

사티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며 전통에 반기를 든 아방가르드 예술가였다. 음악가로 첫 발을 내디딘 때부터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 현악사중주, 대규모 건반 작품 등 주류 장르는 거들떠보지 않았고, 세상의 통념에 도전하는 소규모 악곡에 집중했다. 그의 음악에서는 고급 예술과 입말 어법이 서로 만났고, 말과 음악이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었으며, 시각적 표현과 음향적 표현이 충돌했다. 또한 “뼈대만 남긴 음악 스타일”로 미니멀리즘 미학을 보여줬고, 당시 신생매체인 영화에 음악을 붙임으로써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고대 세계가 신봉한 사상과 파리의 일상적 에너지에 동등하게 천착한 사티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세련되고 재치 있게 하나로 융합했다.

그는 세기말 몽마르트르 카바레 신에서건 양차 대전 후의 자극적인 아방가르드 신에서건 자신만의 관점을 추구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간을 헤쳐나갔다. 당시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음악가로 첫 발을 내디딘 때부터 전인미답의 영토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힘과 영감은 어디서 얻었을까?

이 책에서는 특히 음악가 경력 내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지향점에 부합하도록 외모를 연출한 사티에 주목한다. 이를 입증할 사례는 충분하다. 젊은 시절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일할 때는 보헤미안의 유니폼이라 할 벨벳 정장을 같은 것으로 일곱 벌 마련하여 매일 돌려 입었고, 유사 종교 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1890년대에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검은 사제복을 입고 거리를 누볐다. 아방가르드의 저명인사가 된 후에는 혁명가보다는 부르주아 공무원에게 어울릴 법한 어두운색 스리피스 정장을 착용했다. 간단히 말해 사티는 예술뿐만 아니라 용모를 통해 자신의 여러 정체성을 투영함으로써 성격과 직업이 서로 보강되는 관계를 구축했다.

저자 메리 E. 데이비스는 셀러브리티 문화가 막 태동하던 20세기 초 사티가 이를 활용한 패션과 음악 사이의 깊은 미적 연관성을 추적한다. 사티는 일상의 요소와 고원한 장르 및 형식 사이의 집요한 부딪힘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제안했다. 즉, 언어와 시각예술, 패션, 음악 등의 얽힘에 바탕을 둔 신선한 표현 기법을 고안함으로써 예술의 경계를 새로 그렸다. 상류층 패션계와 교류하며 얻은 다양한 미적 경험을 바탕으로 ‘가구음악’ 등 위트가 담긴 현대적 음악을 작곡했고, 생의 마지막까지 따라붙은 지독한 가난과 방황을 늘 말쑥한 차림으로 숨기고 웃음으로 견뎌냈다.

그렇게 사티는 세기말 파리 몽마르트의 보헤미안 ‘짐노페디스트’로 등장하여 ‘벨벳 신사’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다이즘과 조우할 때까지 패션을 통해 공적 페르소나를 다양하게 드러냈고, 바그너로 대표되는 독일 음악의 물결 속에서 독자적인 프랑스 음악의 길을 찾아내어 아방가르드 또는 신고전주의를 이끌었다. 따라서 이 책은 음악적 모더니즘의 부상에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고, 사티를 이 중요한 변화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적절히 위치시킨다.

사티가 남긴 독창적인 글과 악보들
쉬잔 발라동, 피카소, 만 레이 등이 포착한 사티의 모습들
풍부한 도판 및 사료로 만나는 사티의 인생과 음악 이야기

무의식적으로 예술가가 되어라. 사상은 예술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법이다. 예술을 불신하도록 하자. 예술은 종종 기껏해야 비르투오시티에 불과한 까닭이니. ― 사티

한편, 사티는 생전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간행된 음악 전문 저널이나 대중 잡지에 논평과 에세이 등 많은 글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사티가 스케치한 다양한 시점의 독창적인 글과 함께 그의 자필 악보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두 살 무렵부터 십 대 후반까지의 사티 모습과 당시 사티를 둘러싼 주변 풍경을 담은 사진들, 그리고 산티아고 루지놀이, 라몬 카자스, 앙투안 드 라로슈푸코, 연인 쉬잔 발라동, 파블로 피카소 등이 그린 사티의 초상화부터 사티가 떠나기 3년 전인 1922년 만 레이가 촬영한 모습까지 풍부한 시각 자료로 연령별 사티의 패션과 개성을 잡아낸다.

이 책은 대중적 이미지와 예술적 직업 사이에서 사티의 인생을 흥미롭게 살피면서, 그의 작품과 유산을 풍부한 시각자료와 함께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한마디로 《사티》는 무겁지 않지만, 사티에 관한 매우 강력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추천평

“지구의 음악, 일상의 음악… 단순성이라는 가장 큰 대담함… 사람들이 밟고 걷는 음악” - 장 콕토 (영화감독)
“사티에게 흥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사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요,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질서라는 신념, 감정의 표현,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실없는 소리를 내던져버려야 한다.” - John Cage (작곡가)
“20세기 서양 세계 미학의 유일한 창시자… 음악 역사를 전혀 몰라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쓴 오직 단 한 사람” - 버질 톰슨 (작곡가,평론가)
“급진적 사건들의 중추에 있었던 사티에 대한 반가운 재평가” - 클래식 FM 매거진
“이 매혹적인 전기 덕분에 우리는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중요한 모더니스트 음악가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모더니즘/모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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