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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나의 기쁨을 발견하는 ‘욕망’의 훈련 [몸] 몸이 욕망하는 일을 하라 - 스피노자 [행복] 행복은 나를 아는 일이다 - 벤야민 [변화] 본질에 갇힐 것인가, 본질을 만들 것인가 - 사르트르 [욕망] 나의 진짜 욕망을 찾는 법 - 라캉 2장. 너와 감응하는 ‘사랑’의 훈련 [타자]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오직 타자를 통해 - 레비나스 [사랑] 사랑은, 끝끝내 ‘둘’로 존재하려는 일이다 - 바디우 [언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지 말라 - 비트겐슈타인 [외로움] 왜 함께 있어도 외로울까? - 드보르 3장.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성찰’의 훈련 [자아] 진정으로 합리적인 삶,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란 - 프로이트 [지성] 삶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 칸트 [사유] 사유는 인간다움의 전제조건이다 - 아렌트 [폭력] 더 작은 폭력, 인간적인 폭력을 위해 - 메를로퐁티 4장.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자유’의 훈련 [결단] 내가 걸어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다 - 장자 [행동]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하라 - 베르그손 [선악] 행복은 위험 속에 있다 - 니체 [광기] 광기를 존중하라! - 푸코 5장. 함께 기쁘게 살아가는 ‘공존’의 훈련 [부]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 마르크스 [자본주의] 돈의 사회에서 돈의 주인으로 사는 법 - 루소 [국가] 모든 경제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다 - 클라스트르 [정치] 모두의 친구가 되거나, 모두의 적이 되거나 - 슈미트 [선물]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살리는 유쾌한 파멸 - 바타유 에필로그 |
황진규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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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자연스러움이라면, 재능은 ‘정신’이 아니라 ‘신체’와 관련된 문제다.
--- p.19 ‘몰입’은 오직 ‘나’이기 때문에 빠져드는 일이다. ‘몰입’하는 이들은 좀처럼 ‘중독’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은 기쁨을 주는 대상에 ‘몰입’할 뿐, 슬픔을 초래하는 ‘중독’(예컨대 영상, 쇼핑, 술, 섹스, 마약, 도박 등)에 빠지지 않는다. 몰입할 만한 대상이 없는 이들도, 몰입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들도 결국 자신에 대해 충분히 모르는 이들일 뿐이다. --- p.37 언제나 작심삼일에 그친다면, 자신의 무기력과 절제력을 돌아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거워하고 근사하게 느끼는 대상이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다. ‘즐거움’, ‘좋음’, ‘근사함’을 따라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해나가는 실존적 존재! --- p.51 놀랍게도, 우리가 원한다고 믿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 인간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타자의 욕망이다. 이는 쉽게 말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 역시 좋아하게 된다’는 뜻이다. --- p.57 나의 진짜 욕망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사건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내 익숙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사건을 맞이할 용기가 있는가?” “교통사고 같은 사랑을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것이 타자의 욕망을 벗겨내고 진짜 욕망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르는 질문이다. 우리를 주체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 우리의 진짜 욕망을 찾게 해줄 ‘사건’을 긍정하라! --- p.63 사랑은 ‘하나’로 융합되지 않고 각자의 단독성을 지닌 ‘둘’이 경험하는 세계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각자의 단독성을 포기하고 ‘하나’가 되는 것도, 제삼자의 개입으로 ‘셋’이 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 p.88 사랑은 따뜻한 욕조에 몸 담그는 일이 아니다. 안온한 욕조 밖으로 나와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폭우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 p.92 아름다운 사람의 시작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의 완성은 그 침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p.105 구경꾼의 삶이 ‘시각’이며 ‘보는 것’이라면, 진짜 삶은 ‘촉각’이며 ‘하는 것’이다. (...) 연애를 하고 싶다면, 드라마 속 연애를 구경하는 대신 매혹적인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자. 연인이 생겼다면, 함께 영화를 구경하는 대신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를 하자. 어떤 식이든 좋다. 화면을 찢고 삶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 p.121 미성숙은 지식이나 지성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진실에 대해 과감하게 알려고 하는 용기와 결단력의 문제다.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p.151 우울증의 원인은 결단의 부재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내려야 할 결단을 외면하거나 유보할 때 우울증은 찾아온다. --- p.189 인간의 본성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 슬픔을 멀리하고 기쁨을 가까이하려는 자연스러운 ‘행동’ 말이다. 잘 산다는 것은 몸을 쓰며 산다는 것이다.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하라! --- p.211 행복을 원한다면 위험을 넘어야 한다. 그 위험을 지나올 때만 우리는 기존의 선악이라는 결박을 풀어내고 자신만의 기쁨과 슬픔에 따라 새로운 선악 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 그 지난한 과정을 지나야지만 비로소 당당한 주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당당한 주인의 삶은 극심한 위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삶보다 행복한 삶도 없다. --- p.230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광기를 치유하는 법은 광기를 마주하는 일이다. 인간은 “광기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 이것이 푸코가 “‘인간’에서 ‘참된 인간’으로 이르는 길은 ‘미친 인간’을 통과”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던 이유다. --- p.248 자본의 원동력은 생존의 공포와 소비의 욕망이다. 어떻게 이 공포와 욕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랑이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공포와 욕망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돈(자본)을 매개하지 않는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법은 간명하다. 사랑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일이 있으면 된다. --- p.276 원주민 사회의 “정치적 단절”은 경제적 작용을 만들어낸다. 어떤 경제적 작용인가? “좀 더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없게 하는 작용이다. 이 경제적 작용은 국가적 사회 구성원들의 뒤틀어진 욕망을 바로 세운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이웃보다 더 많이 일하거나 더 많이 갖거나 더 낫게 보이고자 하는 이상한 욕망”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 p.291 ‘정치’를 넘는 법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모두의 친구가 되거나! 모두의 적이 되거나! --- p.307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파괴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쾌한 파멸’을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 더불어 사는 것이 고결하고 훌륭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 것을 나누며 더불어 살지 않으면 그 끝에 ‘불유쾌한 파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p.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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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고 싶은데 변하지 않는 삶
삶이 관성에 휩쓸리고 있다면, 필요한 건 철학이다 ‘나 잘 살고 있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삶의 궤도를 바꾸어 만족스러운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여행, 취미, 자기계발 등 이것저것 시도해봐도 잠깐의 기분 전환만 될 뿐, 삶은 이내 원래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변하고 싶은데 변하지 않는 삶에 지친다. 마음 깊은 곳에 불안과 불만족을 안고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간다. 이것이 지금 우리네 삶의 민낯이다. “삶이 관성에 휩쓸리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앎입니다. 앎으로 기존의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다른 삶을 구축할 틈을 열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 황진규는 말한다. 저자는 한때 우울증을 앓던 직장인이었다. 숨 막히는 직장생활 중 그의 유일한 숨 쉴 틈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철학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정신 없이 돈 벌고 돈 쓰는 삶에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철학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나는 왜 돈을 벌고 싶은가?’ ‘나의 진짜 욕망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와 같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다. 삶이 단박에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쌓이고 깊어질수록, 지금과 다른 삶으로 나아갈 틈이 보였다. 어느 겨울 날, 그는 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상의 틈에 들어온 철학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셈이다. 21명의 번뜩이는 철학자들과 함께하는 삶의 궤도를 바꾸는 철학 훈련 삶의 궤도를 바꾸고 싶다면 철학을 만나볼 시간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켰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담고 있다. 번뜩이는 철학자들의 힘 있는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지?’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던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들에 균열이 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장 ‘욕망의 훈련’에서 스피노자는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는 우리에게, 재능은 ‘정신’이 아닌 ‘몸’에 있기에 ‘몸이 욕망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2장 ‘사랑의 훈련’에서 바디우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여기는 ‘서로의 반쪽을 찾아 하나가 되는 관계’나 ‘현실적 조건이 고려된 거래적 관계’는 결코 사랑이 아니라 단언하며, 사랑이란 끝끝내 ‘둘’로 존재하려는 고통스러운 기쁨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들을 남발하는 우리의 일상적 언어 습관을 문제 삼는다. 4장 ‘자유의 훈련’에서 니체는 진정한 행복이란, 사회가 정한 ‘옳고 그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정한 ‘좋고 싫음’에 따라 사는 지혜이며, “우리가 가장 심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더없는 행복 속에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푸코는 이유 모를 짜증이나 분노, 성적 취향, 폭력성 등 우리가 흔히 ‘비정상적’이라 여기고 쉬쉬하는 부분에 오히려 우리의 인간적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들의 말은 어렵진 않아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우리가 오랜 시간 옳다고 믿고 있던 앎에 균열이 갈 것 같은 불안감이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생을 바쳐, 때로는 세상의 비난과 겁박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을 조금 더 자유롭고 기쁘게 하는 앎을 보여주려고 누구보다 애썼던 이들이다. 그들의 앎에 귀기울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조금 용기 내어 마음의 틈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그 틈 사이로 새로운 앎이 들어올 때, 우리의 삶도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은 ‘앎’에 틈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삶’은 비로소 변화한다 저자의 삶은 그렇게 변했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 마음 속에 훅 들어올 때가 있었다. 그 말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었던 그의 일상에 틈을 내고 변화를 일으켰다. 스피노자가 만든 틈은, ‘난 뭘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고민이 들 때마다, 생각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무엇을 할 때 자신의 몸이 가장 기쁨을 느끼는지 온몸으로 찾게 만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만든 틈은,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게 만들었다. 니체가 만든 틈은, 행복은 안정감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 속에 있다는, 행복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구축해주었다. 철학이 만든 틈은 그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가 충분히 다져졌을 때 그의 삶은 비로소 다른 궤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삶 역시 그렇게 변할 수 있다. 저자는 인문 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철학책을 읽었던 것처럼, 그를 찾아온 이들도 퇴근 후 철학 수업을 들으며 각자의 삶에 틈을 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래도록 꿈꿨던 일을 용기 있게 시작한 이도 있고, 상처투성이였던 삶을 치유하고 방밖에 나와 온몸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이도 있으며, 소중한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고 있는 이도 있다. 언젠가 어느 철학책이 저자의 삶에 낸 틈이, 그가 가르치는 이들의 삶에 다시 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변화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틈에서 틈으로. 저자가 삶으로 써낸 이 ‘철학책’ 역시 독자들의 앎과 삶에 작은 틈을 낼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