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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
프레임 에코카보니스트 코스믹 오리가미 궁극의 답 악마와 함께 춤을 턴 스핏 도그 코리아 닉테이션 적정한 신뢰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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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돼서 그런 거예요. 만나서 무역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존재만 확인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예요? 발전된 기술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거길 점령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최는 말없이 피클만 씹어댈 뿐이었다. 희는 얼굴을 찡그렸다. 우적우적, 최의 피클 씹는 소리가 흉하다고 생각했다. 희는 소리가 나게 포크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돈 때문이에요? 그 시뮬레이션 기계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요? 예측해서 주가나 로또 번호, 뭐 그런 것도 맞힐 수 있어요?” “아뇨. 우리 미래는 못 맞혀요. 모니터에 나오는 미래는 무한에 가까운, 있을 수도 있는 무한의 세상 중 하나를 집어내는 것과 같아요. 확률적으로 우리 세상이랑 같을 수가 없어요.” “그럼, 대체 그런 걸 왜 하는 거예요? 누가 노벨상이라도 줘요?” “아뇨.” “그럼 뭔데요?” 최는 의자를 책상으로 밀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 p.25 누구에게 말하기 위해 저리 서 있던 걸까.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도 고객이 죽고 한동안 슬퍼했으며, 장례식에 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가 아내에게 다가가더니 어깨를 덥석 잡아챘다. 아내는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이렇게 해도 뭐, 뭐라도 해줄 것 같습니까? 그는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 저 새끼들이 더 빼먹었으면 빼먹었지, 더, 더 줄 놈들입니까? 아내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입이 떨어졌다. 그렇게 부서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는 순간적으로 맥없이 부서져버린 차의 프레임을 떠올렸다. 고객이 당한 사고처럼 그의 눈앞에 그가 판 차의 금속들이 다가오는 듯했다. --- p.47 그대로 끓는 물에 넣으려 했을 때, 새끼 문어는 말을 한 마디 더 얹었다. 살려주세요. 머리가 드디어 이상해진 것만 같았다. 나는 가만히 새끼 문어를 바라보았다. 입맛이 실시간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다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주먹을 불끈 거머쥐고는 작은 플라스틱 찜기에 문어를 넣고 수돗물을 틀어주었다. 문어가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퇴마라도 당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문어는 바다에서만 산다고 했다. 문득 속이 뒤집혔다. 냄비를 들고서 밖으로 나섰다. 새벽녘 바닷가는 한산했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파도가 닿는 곳에 쪼그려 앉아서는 바닷물을 펐다. “뭐 하십니까?” 해양경찰이었다. 순찰 중이었는지,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에게 냄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바닷물 뜨러 왔는데요.” --- p.174 MP3는 경매에서 행성 세 개 가격으로 팔렸다. MP3에는 소리바다를 통해 다운받은 음악 파일들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정식 음원 사이트에서는 ‘저장 공간 부족’으로 아주 오래 전에 사라진 것들로, 일부 음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 p.210 그래서 기업은 문체부와 협의해서 ‘인간 창작 확인 센터’를 개관했다. AI 기업의 지원으로 돌아가는 이 센터는 작품이 AI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과 함께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소를 제공했다. 입소 과정은 이렇다. 우선 해마에 전기 충격을 주어 참가자의 단기 기억을 제거한다. 원래는 이 과정이 없었지만, 얼마 전 어떤 작가가 AI로 쓴 것을 통째로 외워와서 이곳에서 글을 쓴 것이 들키는 바람에 추가된 과정이다. 단기 기억 제거가 끝나고 나면, 수도원 같은 이 작업실에서 깨어난다. 스피커의 구령에 맞춰 글을 쓰고, 또 쓴다. 모든 과정은 카메라에 의해 감시되며, 외부와의 접촉은 작품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불가하다. 방구석을 가까스로 벗어난 작가들은 다시 방구석으로 기어 들어가야만 했다. 작가들은 ‘인간 생산 증명’을 받기 위해 센터에 입소했다. --- p.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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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어도 죄가 되는 억울한 이 세상!
유머스럽고도 살벌한 인간 군상의 실태. ‘세상이 나를 억까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억울함’이라는 정념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억울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정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로 확대되었다. 이 울혈의 감정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각박해진 사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주적 사고에 우연히 휘말리는 바람에 마치 시시포스와 같은 형벌에 처해지는 주인공을 통해 이 사회의 자본과 노동에 대해 풀이하는 SF적 우화(「턴 스핀 도그」), 갑자기 줄어든 R&D 예산으로 벼랑에 내몰린 연구자들의 실태(「코리아 닉테이션」), AI가 모든 창작을 대체한 시대에 문체부가 만든 비좁은 방에서 감시받으면서 쓴 소설만이 '진짜'로 인정받는 세상(「적정한 신뢰」) 등 소설들은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반영한 촌철살인 풍자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 ‘억울함’은 종종 잘못된 대상을 향한 분노로 수렴되기도 한다. 김준녕 작가는 소설 속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인물들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재현하여 어떻게 그 억울함이 잘못된 대상에게 전가되는지까지 보여준다.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는 지역 공장의 허점을 찾아 구조 조정을 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말하는 돌연변이 문어 ‘옥토’를 만나는 탓에 자꾸만 일이 엇나간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부당행위를 하라고 명령하고 실적을 압박하는 본사가 아닌 ‘옥토’에게 상황의 책임을 돌린다. 한편으로 풍자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미학을 극대화할 때 배가된다. 과거에는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차를 팔아 고객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자동차 딜러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전염에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상황에 처해지며(「프레임」), 과거에는 식민지 행성의 외계인들의 편을 들며 착취에 반대했던 사람이 시스템의 힘에 의해 외계인 착취에 앞장서는 과정(「궁극의 답」)이 묘사된다. 스파게티, 문어, 맥주… 작가가 엄선한 색다른 맛의 코스 요리!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에는 SF 블랙코미디 소설들이 대다수 실려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맛을 자아낸다. 등장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저마다 다르며, 각 소설이 사고 실험을 통해 그려내는 세계 또한 다양하다. 무엇보다 단편소설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 중 하나는, 짧은 이야기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준녕 작가는 능숙한 함축의 힘을 발휘하여, 다른 위치에 놓인 인물 저마다의 서사를 전개하며 각 단편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작가의 특기는 표제작인 「피클보다 스파게티가 맛있는 천국」에서 감동적으로 발휘된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한 공간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다른 이유로 보편적인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고, 일반적인 이해의 범위에서 벗어난 이들인 동시에, 서로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외계 행성보다도 머나먼 거리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을 서로를 향해가는 결말은 그야말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