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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녕
고블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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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경아
2. 무덤
3. 사랑 정의
4. 비슷한, 닮은
5. 아날로그
6. 새총
7. 종자보관소
8. 여정
9. 허수아비
10. 재와 씨앗
11. 발버둥
12. 폭풍우
13. 방백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1996년 출생, 연세대학교 졸업.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 소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빛의 구역』 『붐뱁, 잉글리시, 트랩』 『텔 미 모어 마마』를 썼고 소설집으로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nyung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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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98g | 115*185*12mm
ISBN13
9791159258442

책 속으로

“그러나 어느 날 행성 궤도가 바뀌면서 여기는 지옥이 됐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들이 엄청난 폭풍에 의해 터지면서 방사능이 유출됐고, 방사능 폭풍으로 저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죽었습니다. 지구에서 구조대를 보내는 것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저는 행성의 유일한 생존자로 연구소 내부에서 현재 3년째 살아남았습니다.”
김은 말을 꺼내기 극도로 망설이는 듯 보였습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연구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더니 화면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1년 전, 결국 방사능 폭풍우 때문에 지구와 연락까지 끊기면서 저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외로움을 이겨 내기 위해 제 구형 핸드폰에 내장된 초기 AI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대화는 저에게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저는 끝내 그 AI를 탐사용 안드로이드에 이식하기로 했습니다.”
김이 옅은 웃음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미친 짓이라 하시겠지요. 어쩌면 방사능에 머리가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좀처럼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그 안드로이드에 ‘저를 가장 사랑한다는’ 코드를 입력했습니다.”
창문이 깨지면서 와장창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돌멩이가 날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김은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경아입니다.”
--- pp.11~12

김이었습니다. 심장 박동이 멈춘 지 불과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영상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김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시선에서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게 사랑은 차가움과 뻣뻣함으로 시작됐습니다. 나는 사랑에서 가장 멀어 보이는 이 두 단어로부터 사랑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김을 향해 얼굴을 기울였습니다. 김의 얼굴에서 어떠한 표정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는 속삭였습니다.

--- p.14

출판사 리뷰

인간이 온 역사를 통틀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모든 게 멸망한 행성에서 로봇은 사랑 개념을 깨우칠 수 있을까?

내게 사랑은 차가움과 뻣뻣함으로 시작됐습니다. 나는 사랑에서 가장 멀어 보이는 이 두 단어로부터 사랑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14쪽

소설은 사랑 개념을 탐구하는 로봇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 이 행성에서 인류는 사라졌고, 다른 생물들도 멸종했다. 정작 사랑하라고 명령한 인간과 사랑해야만 하는 로봇 간의 사랑이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전제로 이야기는 시작하는 것이다. ‘경아’는 임무에 따라 다 무너져가는 연구소의 컴퓨터 속 데이터를 뒤져보기도 하고, 남아 있는 책들을 살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전부 ‘인간’을 주체로 설정되어 있을 뿐, 로봇을 주체로 설정된 것은 없다.

이내 ‘경아’는 자신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입력한 인간 ‘김’의 데이터베이스로 깡통 로봇 ‘김’을 직접 제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깡통 로봇 김은 깨어나자마자 지나간 과거의 사랑 노래만 불러대고, 정작 사랑에 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인간 김과 깡통 로봇 김은 전혀 다른 존재다.

경아는 데이터와 책을 통해 습득한 사랑에 대한 단서를 쫓아, 행성의 다른 장소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행성에는 온통 방사능 폭풍우가 몰아쳐, 경아와 김은 연구실의 방어막으로 겨우 버텨내는 수준이다. 생존하기조차 다급한 이 환경 속에서 경아는 사랑 개념을 온전히 습득할 수 있을까? 습득한다면 대체 어디서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소설에서는 사실상 단 두 인물, 최신형 로봇 경아와 깡통 로봇 김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낸 듯한-경아는 깡통로봇 김을 창조했고, 깡통로봇 김은 경아를 창조한 인간 김의 데이터로 제조됐다-두 사람 간의 특유 관계가 관건이다. 두 인물은 독자들에게 유머를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씁쓸한 감정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교적 짧은 시간을 다루는 소설 안에서, 독자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필적할만한 감동을 얻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총 열여섯 곡에 해당하는 사랑 노래 가사가 실렸다. 그것도 대부분 카세트 테이프를 듣던 시절의 노래들이다. 깡통 로봇 ‘김’은 이 노래들을 부르며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설파하는 듯하다. 심지어 노래 가사들은 문맥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노래들을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로 만든 뒤 『경아』를 감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추천평

놀라움 속에서 읽었다. 현대인에게서 보기 드문(현대인 폄하일 수 있지만) 생명력과 활기로 빛나는 소설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지면에 1980년대 노래 가사들이 들뜨지 않고 녹아든다. 좌절과 흥겨움 사이에서 신앙과도 같은 사랑을 노래한다. - 김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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