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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트 탈리냐
늙은 순례자 탈영병 비자불의 무녀 가부아비 수도 미두불 세계수 여우의 조언 수다흐 멸망의 날 순례자들 남은 이야기 작가의 말 |
코라손Cora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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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
이곳에 전해지는 이야기 속 선녀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그는 생각했다. 분명히 살로만은 선녀를 본 적이 없었다. 이야기를 전해주던 사람들 중에도 실제로 선녀를 본 이는 없었다. 선녀는 오직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산마다 깃든 산신이나 수호령, 선녀 따위를 믿었다. 그중 선녀가 유독 그에게 인상 깊게 남은 이유는 그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 p. 13 “…믿음이 약해지면 무녀의 힘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무녀의 힘이 약해지면 다시 믿음도 약해지지요. 제가 순례길에 오른 건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어린 무녀의 순례 여행이 시작될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응원하고 무사한 여행을 기원해줬다는데, 저는 그 정도의 성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동네 꼬맹이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몇 명 배웅 나온 정도였지요. 어린 무녀의 순례 여행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알지 못하지요.” --- p. 34 순례길은 외롭다고 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수풀 속이나 산중, 깊은 동굴 속에는 기묘한 괴물과 밝혀지지 않은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어린 무녀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먼 길을 떠나야 했다. 한 번도 마을에서 내다 보이는 건넛 멧부리를 넘어본 적 없는 가솜은 처음 맞이하는 밤, 산속 으슥한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였다. 스산하게 들려오는 산짐승 소리에 잠들 수 없었다. 비자불에서는 늘 충만하게 느껴지던 영력도 약해지고 있었다. --- p. 35 이성계인으로서 살로만은 일종의 부채감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문명이든 지나가야 할 도정이 있다. 진보는 그저 젓가락으로 들어다 얹는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식은 점차 바뀌기 마련이고 그 과정을 강제로 부추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폭력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한 은하적인 합의가 되어 있었고 범은하적 규약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합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유동맹의 이번 작전이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했다. --- p. 98 “우주의 떠돌이 사이에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소문을 어릴 적부터 들었고 꿈을 키워 왔죠. 수다흐. 들어보셨습니까?” 가솜은 대답이 없었다. 가솜을 등지고 앉아 있는 살로만은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은하가 얼마나 큰지, 여기에 얼마나 많은 행성과 생태계와 문명이 있는지, 짐작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는 직접 발을 딛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 또한 각종 은하를 누비는 모험담을 읽으며 자랐지만 직접 바깥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그 크기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 p. 119 연기와 불꽃과 에너지의 충돌과 쏟아지는 파편으로 얼룩져 있던 하늘이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 대신 지상에서 우주로 올라가는 전투기와 수송선이 많아졌다. 한두 기가 아니었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솟아오르는 기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지상 위에 아무 희망도 남지 않은 듯이. 대기 바깥에서도 뭔가 벌어지고 있었다. 함선 그림자도 바삐 움직였다. 지상을 지켜주는, 지름이 족히 1킬로미터는 넘는 원형의 순양함들이 위치를 다시 잡아 정렬하고 있었다. (중략) “아아, 이제…. 시작입니다. 제국의 무서움은 이제부터입니다.” 살로만은 서성거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절망과 공포에 짓눌려 일그러져 있었다. --- p.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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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희망도 남지 않은 행성에서,
무녀는 왜 죽음을 앞두고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을까? 이들이 마주할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길의 끝에서 노래는 완성될 수 있을까?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 기록되지 않았으나 영원히 불릴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노래 우리 모두의 순례기 꼬리별은 혜성의 순우리말이다. 초현실적인 외계 행성의 풍경과 인물들의 내면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SF를 넘어 고전 비극과 환상문학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전쟁과 파괴가 일상이 된 우주적인 스케일 속에서 박하루 작가는 거대 전함과 레이저가 난무하는 우주 전쟁의 한복판에 비파를 연주하는 무녀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순례자를 배치한다. 이를 통해 SF의 차가운 상상력과 판타지의 따뜻한 서정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제국의 침략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다루면서도, 거대한 거북 ‘가부아비’를 만나고 무녀와 탈영병이 함께 나누는 정서적 교류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슬프지만 아름답게 묘사된다.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좌절과 포기 대신, 이들은 노래하기를 택한다. 그것이 비록 찰나에 사라질 꼬리별의 노래일지라도, 우주 저편 누군가에게 닿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작품 속에서 무녀 가솜의 순례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잇는 행위이다. 가솜은 파괴되어가는 아사트 탈리냐를 바라보며 찢겨 나간 과거의 파편을 매만지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파 연주를 통해 적대적인 제국의 탈영병 살로만과 만나고, 가솜의 노래는 고향과 가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연결한다. 작가는 이들의 대화와 연대가 절망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지성체를 구원하는지 집요하게 탐구한다. 박하루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전한다. “장르의 시조인 톨킨과 현대의 게이머가 비슷한 감수성을 공유하듯, 이 작품 또한 고대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작가는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고전 판타지의 장엄한 서사 구조에 현대의 감수성, 그리고 동양적인 무속과 영성 세계관을 절묘하게 결합하며 ‘환상 문학으로서의 SF’라는 새로운 변주를 제안한다. 『꼬리별의 노래』는 단순히 외계인과의 전쟁을 다룬 SF가 아니다. 이것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이야기의 힘’에 대한 소설이다. 이야기 자체에는 힘이 없을지라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순간 이야기는 생명력을 얻고 날아오른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 작가 특유의 치밀한 복선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고대적 숭고함을 우주라는 무대로 옮겨놓으며 이른바 ‘K-스페이스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꼬리별처럼, 인생이라는 짧은 궤적 위에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최선의 노래는 무엇일까? 『꼬리별의 노래』는 우주라는 거대한 암흑 속에 던지는 가장 뜨거운 헌사이자,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애틋하고도 장엄한 위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