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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유진: 달면 삼키는 안다정
그린레보: 내 세상의 챔피언 김영민: 작당모의 카페 사진동아리의 육교 미스터리 박하루: 돌아다니는 남자 정마리: 둘리 음악 학원 신발 실종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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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정이 일을 그만둔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였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새벽, 안다정의 손이 몰더기에 빨려 들어갔다. 황급히 기계를 멈추고, 얼얼한 아픔을 견디며 굽던 빵을 마저 구웠다. 크리스마스 날도 너무 바빠서 대충 손에 드레싱을 하고 일을 했다. 26일 오후에 병원에 가니 인대가 파열되었으니, 적어도 6개월은 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안다정은 회사에 휴직하겠다고 통보한 뒤, 가게로 돌아가 점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점장은 안다정에게 욕을 했다. 그때 케이크 쇼케이스에는 안다정이 만든 케이크가 딱 한 개 남아 있었다. 안다정은 그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케이크를 먹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초코케이크임에도 그랬다. 안다정은 이 빠진 둥그런 케이크를 내려다보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 편의점에 갔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사탕을 잔뜩 사와 와구와구 먹었다.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힘이 나지도 않았다. 안다정은 다음날 회사에 연락을 해서 휴직이 아닌 퇴사를 하겠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여행을 떠났다. 6개월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명하다는 빵집의 빵을 먹었다. 역시나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 p.16 ─오만해도 된다. 무슨 소리냐는 언니의 질문에 그렇게 동문서답을 했다. ─오만해도 되는 동안엔 오만해도 된다. 그동안엔 세상 누구든 내려다볼 특권이 있어. 더 이상 오만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가 시작인 거야. ─뭐가 시작인가요? 그렇게 물은 건 언니가 아니었다. 언니 손을 잡은 나였다. 선생님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 이동했다. ─추락이지. 까마득한 바닥으로. --- p.105 “너는 2년 전 장례식에 참석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 “그러니까 가려 해도 갈 수 없었다고.”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야. 그때 도운이의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보지 못했다는 말이야. 2년이 지났어. 부모님은 도운이를 이제 가슴속에 묻어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겠다니. 게다가 살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할까? 다시 그때 그 슬펐던 때로 돌아가겠지? 거기다 범인도 반드시 잡으려 할테고.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현실적으로 범인을 잡긴 힘들어. 아보카도 키링? 그게 어쨌다는 거야. 그 아보카도 키링이 범인 거야?” 맞는 말이다. 아보카도 키링과 사건의 연관성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철로에 뜬금없이 아보카도 키링이 떨어져 있는 건 이상하잖아. 달리던 열차에서 승객이 떨어트린 것도 아닐 테고. 잠시만. 그럼 아보카도 키링이 도운이 형 거였나?” “걔 그런 거 다는 취향 아니야.” “그럼 범인 꺼 아니야? 도운이 형을 밀어트린 범인.” “그럼 그 범인의 키링이 왜 거기 있던 건데. 범인도 떨어져 죽었었나?” “그건….” --- p.149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남자에 대해서 떠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페이스북에 댓글이 꽤 달리기는 했지만 정보성 글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던 것 같다. 목격자가 많지 않더라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제법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됐는데! 직접 유튜브에 출연해 허전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소식지 제작자가 별도로 그 남자를 목격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방송에서 밝히기를 수요일 밤 우리 중학교 근처였다고. 이것은 흥미로운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페이스북 게시자 허희수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소정의 취재비를 대가로 두 사람은 협력해 남자를 찾기로 한다. --- p.254 “안 보이네요.” 다시 원점이다. 쉽게 해결되나 했는데 살짝 맥이 빠졌다. “혹시 모르니까 금요일 것도 틀어볼까요?” “아냐, 쌤은 퇴근해. 내가 한번 돌려볼게.” 원장님이 나보다 더 실망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애들이 학원에서 신발을 잃어버렸으면 원장님이나 저한테 말을 했을 텐데.” 흘러가듯 한 말에 원장님이 고갤 끄덕였다. “맞아. 그러네. 엄마들이 다들 학원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았대서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지.” 원장님이 내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다섯 시 십 분이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에코백을 메고 인사를 하는 나를 원장님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잠깐만! 네? 원장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이거 자기가 해결해볼래?” “예?” “이 소문 말이야.” “그걸 제가 어떻게….” “눈썰미도 좋은 것 같고, 봐봐. 내가 놓친 것들도 찾았잖아.” --- p.303 |
우리 동네에는 종종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국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일상 속 소소하지만 기묘한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하드보일드한 형사나 전문 탐정이 아닌 훨씬 친숙한 이웃 같은 존재들이 여러 소동을 해결하는 ‘코지 미스터리’. 여기, 다섯 작가가 모여 ‘허실시’라는 가상의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한 미스터리 소설집을 창조해냈다. 『허실시 일상신비 미스터리』는 말 그대로 우리 이웃들 사이에서 주변에서 충분히 벌어진 수도 있을 법한, 동시에 일상의 틈을 꿰뚫고 들어오는 기묘한 미스터리의 베일에 쌓인 사건들을 다루는 ‘일상 미스터리’ 앤솔로지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이나 하드보일드, 사회파 추리극에서 다루는 살인 · 강도. 나아가 범죄 세계를 둘러싼 어두운 이야기들과 비교하자면 소소한 소재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각 등장인물이 가진 고민은 일상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훨씬 더 깊게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지방 소도시를 이루는 ‘어딘가 있을 법한’ 군상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의 유명 빵집에서부터 대학교 사진동아리, 피아노 학원까지. 조용한 것 같지만 어딘가에서는 좌충우돌 소동이 생기는 이 도시, ‘허실시’! 다섯 작가가 합심하여 창조해낸 도시 허실시는, 평화로운 소도시처럼 보이지만 어디선가에는 항상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달면 삼키는 안다정」의 경우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하실시 간판 빵집인 ‘허실당’은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면서도, 일부 주민들에게는 프렌차이즈 빵집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 젊은이들의 취업을 제한한다는 미운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와중 허실당의 맛있는 빵을 죄다 개발한 ‘김 명장’이 음료에 메탄올을 탔다는 의혹을 받는데…. 엉뚱하게도 말단 직원에 불과한 ‘안다정’이 이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안다정은 빵집을 조사하면서 ‘김 명장’이 성격 때문에 직원들과 기묘한 감정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 사람이라면 세상 어느 지역에 가든 존재하는 ‘평판’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 소설도 있다. 「둘리 음악 학원 신발 실종 사건」은 피아노 학원에서 자꾸 사라지는 아이들의 신발에 관한 미스터리를 다룬다. 이에 따라 피아노 학원은 지역 주민들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 부풀리기에 의해 평판이 추락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알바생에 불과했던 ‘오둥희’는 아이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기성의 이익 우선주의적 관점으로는 볼 수 없었던 시선에 눈을 뜨게 된다. 소문의 무서움을 더 확장해서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돌아다니는 남자」는 어느 날 나타난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에 대한 루머가 어떻게 전파되고,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보다는 ‘대안 서사’에 주목하고 싶어하는지, 그 면면을 파헤친다. 두 중학생 청소년은 남자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를 해나가지만, 취재가 진행될수록 난립하는 대안 서사들에 의해 더더욱 헷갈려하기만 한다. 「내 세상의 챔피언」 좌절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챔피언이었던 똑똑한 언니는 자신 있게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갔고, 서울에 올라가서도 언제나 승승장구하면서 살 줄 알았으나, 모종의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허실시로 내려온다. 그 후 ‘홍만석’이라는 노인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기충격을 당해 실신하는데… 홍만석은 동네에서 가장 명석하다고 소문났던 ‘언니’에게 자신을 해하려던 사람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언니’가 또다시 명석함으로 범인을 색출하고 사건이 일단락될 줄 알았던 이 소설은, 예상치 않은 전개로 흐르며 그 누구도 단독적인 개체로 살아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작당모의 카페 사진동아리의 육교 미스터리」는 연속된 오해에 대한 이야기다. 수년 전 육교에서 추락사한 한 동아리 선배의 사건을 다시 추적하는 이 소설은, 등장인물 각자가 어떠한 사실을 그동안 ‘은폐’함으로써 생기는 오류에 대해 입체적으로 다룬다. 어떠한 사실을 은폐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을 가진 당사자가 왜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었는지, 단지 ‘선의의 거짓’이라는 단순한 명제로만 파악할 수 없는 거짓과 은폐에 얽힌 사연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실수투성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와 인간군상들. 다섯 작가의 개성이 담긴 인물들과 친구 혹은 이웃이 되기를! 이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의 공통점은, 정말로 주변에 있는 친구가 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작당모의 카페 사진동아리의 육교 미스터리」은 동아리 구성원의 저마다 뚜렷한 캐릭터 특징과 자연스러운 대화 구사를 통해 독자들이 어느 대학교의 동아리실로 초대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뿐인가, 「달면 삼키는 안다정」의 ‘단맛 매니아’ 안다정의 전말과 동창 김성진의 관계 등에서 특유 인간관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돌아다니는 남자」에서는 둘도 없는 우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세상의 챔피언」은 단순히 나와 언니의 관계에만 천착하지 않고 동네 주민들 하나하나와의 관계성을 구축함으로 이 자매의 역사를 피부로 와닿게 한다. 「둘리 음악 학원 신발 실종 사건」에서는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 또한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허실시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이 속에 구축된 배경과 인물 각자 사연을 듣고 있자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이라는 감각을 전달해준다. 독자들은 이 앤솔로지를 통해 가상의 인물들이 친숙한 이웃이자 친구처럼 다가오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