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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모래
고블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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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1화. 나를 달로 날아가게 해줘

인산의 장사 잘 안되는 옷 가게에서 손님을 구함. 식물형 괴물, 동물형 괴물, 심해에서 온 괴물, 우주에서 온 괴물, 다른 차원에서 온 괴물 모두 다 앗싸리 대환영!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2화. 내가 별들 사이에서 춤추게 해줘

나는 숲의 꿈을 꾸고, 나무에는 괴물들이 영글어간다. 그 괴물들은 이 우주의 좆 같은 신들이 아니다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3화. 목성과 화성의 봄이 어떤지 내게 보여줘

천국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는 이제 돈은 좀 벌었니?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4화. 그러니까, 내 손을 잡아달라는 말이야

이 이야기를 펼친 모든 손에 축복 있으라, 괴물들이 노래한다

작가의 말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

환생 보험 사업이 활개를 치는 근미래 사회를 그린 블랙 코미디 단편 「우리의 오리와 그를 찾는 모험」(『우리한텐 미래가 없어』 수록)으로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사학과 여성학을 공부했고, 석사 논문으로 『성적 환상으로서의 야오이와 여성의 문화능력에 관한 연구』를 썼다. 인도에서 명상을 하며 사 년을 보냈다. 단체 활동가, 국책 연구소 연구원, 전시관 교육 기획자, 대학 교직원, 요가 선생, 가게 점원, 쇼핑몰 사장,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기억, 영성, 젠더, 동물에 대해 질문, 혹은 농담을 던지는 글을 쓰고자 한다. 사이보그 보모 할머니에 대한
환생 보험 사업이 활개를 치는 근미래 사회를 그린 블랙 코미디 단편 「우리의 오리와 그를 찾는 모험」(『우리한텐 미래가 없어』 수록)으로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사학과 여성학을 공부했고, 석사 논문으로 『성적 환상으로서의 야오이와 여성의 문화능력에 관한 연구』를 썼다. 인도에서 명상을 하며 사 년을 보냈다. 단체 활동가, 국책 연구소 연구원, 전시관 교육 기획자, 대학 교직원, 요가 선생, 가게 점원, 쇼핑몰 사장,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기억, 영성, 젠더, 동물에 대해 질문, 혹은 농담을 던지는 글을 쓰고자 한다.

사이보그 보모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그린 SF 단편 「로바」(『글리치 엑스 마키나』 수록), 갱년기가 닥친 촉수괴물 외계공주 이야기 「변신」(『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수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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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15*185*20mm
ISBN13
9791176100236

책 속으로

초록빛 모자를 눌러쓴 낯선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자는 아주 여위었고 키가 컸다. 제 옷 같지 않은 크고 더러운 옷을 입고 그 위에 침대 시트 같은 흰 천을 감고 있었다. 옷과 흰 천에는 검붉은 피 얼룩이 엉겨 있었다. 여자가 모자를 벗자, 잔뜩 엉킨 검은색 억센 머리카락이 보였다.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1화. 나를 달로 날아가게 해줘」 중에서

“자매, 나야. 셋째야.”
셋째가 말했다.
“내가 돌아왔어.”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1화. 나를 달로 날아가게 해줘」 중에서

문을 잠그고 하늘을 쳐다보니, 노을이 난리가 났더라. 오렌지색, 살구색,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켜켜이 쌓이고 섞여서, 하늘이 미쳐서 춤을 추는 거야. 꼭 불타는 것처럼, 세계가 멸망할 것처럼. 나는 지금도 저런 걸 보면 네가 생각나. 쩌는 거, 끝내주는 거, 그래서 죽고 싶게 만드는 그런 거.
--- 「인산의 장사 잘 안되는 옷 가게에서 손님을 구함. 식물형 괴물, 동물형 괴물, 심해에서 온 괴물, 우주에서 온 괴물, 다른 차원에서 온 괴물 모두 다 앗싸리 대환영!」 중에서

마을 애들은 익숙해졌어. 넘어지지 않으려고 넝쿨을 피해서 다니는 것에도, 갑자기 풀이 다리를 감아 올라오는 것에도, 아줌마들이 밤마다 그 넝쿨 사이를 홀린 듯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에도 익숙해졌지. 우리 엄마는 특히 더했어. 엄마는 밤마다 온 마을을 헤매 다니고, 사람들과 정신없이 얘기했어. 자매들, 자매들이 오면… 군벌들이 쫓겨난다, 우리는 해방이다!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2화. 내가 별들 사이에서 춤추게 해줘」 중에서

“그럼. 자매들은 지금도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자매들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에 왔지. 자매들은 실험대에서 메스에 잘려 죽었고, 뒷골목에서 건달들에게 맞아 죽었고, 사막으로 달아나서 헤매다가 죽었어. 하지만 그 몸을 뒷골목의 지구인들과 작은 동물들, 벌레들이 배부르게 먹었는걸. 바닥에 흐른 피는 땅속으로 깊이 번져갔지. 지구인들은 실험실에서 죽은 자매들의 몸을 모두 태웠지만, 불탄 자매들이 연기가 되어 지구의 대기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지.”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2화. 내가 별들 사이에서 춤추게 해줘」 중에서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괴물이었다. 중학교 때 별명은 거인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육상을 했는데, 중학생 때 집이 망하고 기록도 안 나와서 그만뒀다. 그만둔 뒤에 알게 됐는데, 나는 그거 말고는 잘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이 내게 관심 둘 거리도 없고, 나도 관심 둘 것이 세상에 달리 없었다. 단순히 공부를 못하고 친구가 적은 그런 차원을 넘어, 나는 뭔가 글러먹은 애였다. 공부하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 다른 여자애들처럼 말하고 웃는 법. 남들이 다 아는 그걸, 남들이 다 엄마 뱃속에서 배워 나오는 그걸 나만 못 배우고 나온 것 같았다.
--- 「나는 숲의 꿈을 꾸고, 나무에는 괴물들이 영글어간다. 그 괴물들은 이 우주의 좆 같은 신들이 아니다」 중에서

그거 알아?
식물은 여자도 남자도 없대.
어떤 나무들은 양성이고, 또 다른 나무들은 살아 있는 동안 성을 바꿔.
모두 같이 성을 한꺼번에 바꾸는 나무들, 순서대로 번갈아가면서 바꾸는 나무들….
옛날 사람들은 이 우주가 거꾸로 자라는 나무라고 생각했대.
나무는 이 세계의 축이야.
--- 「나는 숲의 꿈을 꾸고, 나무에는 괴물들이 영글어간다. 그 괴물들은 이 우주의 좆 같은 신들이 아니다」 중에서

“바이라마가 어떻게 사람을 홀리는데?”
“우리가 자유롭다는 환상,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환상으로.”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3화. 목성과 화성의 봄이 어떤지 내게 보여줘」 중에서

나는 네게 말했다.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똑똑한 애가 왜 이러냐, 수능을 쳐라. 네 엄마와 새아버지가 아무리 싫어도 사 년만 참고, 대학 등록금을 받아라. 차라리 군대라도 가라. 군대를 갔다 오면, 모든 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 군대 갔다 와서 생각해라.
너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인생을 선택할 자유가 없니?”
--- 「천국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는 이제 돈은 좀 벌었니?」 중에서

나는 괴물이다. 그게 전부다. 슬프고 부끄럽다. 하지만 한 여자가 괴물이 되는 일은 내가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아프다. 그렇지만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자살은 안 할 테니까. 나는 영영 삶 속에 내동댕이쳐진 채 이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네가 보고 싶다. 그래도 나는 네게 물어보고 싶다.
미용 일은 여전히 재밌니?
돈은 좀 벌었니?
이 미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찾았니?
아직도 괴물을 좋아하니?
--- 「천국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는 이제 돈은 좀 벌었니?」 중에서

지구인들이 바이라마 바이러스라고 불렀던 생명체가 자매였다. 자매들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진화했다. 그들은 지구의 생명체와 완전히 달랐다. 식물, 동물, 세균 중 어느 것도 아니면서, 이 셋을 나름대로 닮기도 했다. 자매들은 그들의 행성에서 세균처럼 동물에 침투해서 동물을 숙주 삼아서 성장했다. 성장기의 자매는 숙주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숙주에 동화되어 그 동물이 된 양 살았다. 숙주와 자매는 서로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자매는 그 행성의 다른 동물들과 함께 공진화했다. 자매들은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지구에 도달했지만, 지구 생명체들은 자매들과 너무 달랐다. 소수의 자매만이 살아남았다. 지구 생명체에 동화된 자매들은 지구 생명체의 경험과 기억을 아우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자매들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4화. 그러니까, 내 손을 잡아달라는 말이야」 중에서

나를 달로 날아가게 해줘, 나를 다른 세계로 가게 해줘, 그곳은 네가 있는 세계지.
네 사랑이 있는 곳은 다른 우주니까.

---「이 이야기를 펼친 모든 손에 축복 있으라, 괴물들이 노래한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이야기를 펼친 모든 손에 축복 있으라
이 이야기를 보는 모든 눈에 축복 있으라.”

우리의 자매 됨을 자각케 하는
괴물들의 노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유나를 “자매”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어느 날 석희의 옷 가게에 찾아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 석희는 여자가 이만 가주었으면 하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유나는 여자가 낯설고 불편하지만 어쩐지 자꾸만 그리운 느낌이 든다. “여자를 따라가 그 눈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작가는 인도에서의 수행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2020년경에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군대가 변희수 하사를 거부하고 트랜스여성인 A 씨의 여대 입학이 좌절되었던” 때, “트랜스여성인 지인이 끝내 다른 일을 찾지 못하고 성매매 산업에 유입되는 걸 봤던 때이기도 하다.” 가난,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젠더 디스포리아 등으로 소외되었거나 도무지 세상에 발붙일 수 없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 ‘괴물’로 표상된다. 그리고 작품은 ‘자매’라는 호명을 통하여 우리를 정상과 비정상, 괴물과 비괴물로 구분 짓는 경계를 허문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이 땅 위에 단단히 붙들어놓는다.

그렇다. 우리는 언젠가 구원자처럼 찾아올 초록빛 모자를 쓴 여자를 기다릴 수 있다. 혹은 스스로 초록빛 모자를 쓰고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누군가를 향하여 찾아갈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반란의 씨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고, 서로에게 구원자”이며, “나에 대한 사랑을 품고, 나를 찾아올 너”이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 앞에 선 사람들, 상처받았거나 외로운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애정과 소망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자매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자매들은 떠나지 않는다. 늘 여기에 있다. 이 세상이 늘 망할 듯 말 듯하면서도 결코 망하지 않고 이제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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