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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고블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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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경매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블랙홀 뺑소니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맛과 맛 사이
빛보다 빠른 빚
뜨거운 얼음을 만드는 방법
브레인 크런치
사이버 피쉬 트럭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1996년 출생, 연세대학교 졸업.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 소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빛의 구역』 『붐뱁, 잉글리시, 트랩』 『텔 미 모어 마마』를 썼고 소설집으로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nyung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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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14g | 128*200*18mm
ISBN13
9791159258190

책 속으로

상아에게는 자신의 부모에 관한 기억이 없다. 상아의 부모가 일찍 죽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아의 기억을 내가 마주한 대머리 남자와 같은 기억 콜렉터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상아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기억일수록 기억의 가치는 올라간다. 기억 콜렉터들이 기억을 사들일 때 내세우는 주요 원칙 중 하나다. 상아의 기억이 팔렸을 때, 상아는 갓난아기였다.
--- p.12

둘의 직업적 특성도 둘의 거리감에 한몫했다. 준은 방호복 필터의 성능을 연구하는 기업의 외판원이었지만, 민은 방호복을 리폼하는 디자이너였다. 정부는 민의 활동을 불법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리 심하게 단속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관리 감독 할 공무원들도 바이러스로 모조리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이러스가 발병하기 전 타투처럼 어느 정도 용인가능한 선에서 방호복 리폼을 눈감아 주었다. 지하 클럽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민의 작품은 꽤 인기가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패션을 포기하지 않은 소위 ‘그루밍족’이라 불렀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그들을 볼 때면 준은 바이러스를 직접 눈으로 본 듯이 놀랐다. 그들의 몸통 부분에는 원이나 사각형이 이어지는 기하학적 무늬나 예수나 부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머리 부분에는 민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플라스틱 비즈나 수탉처럼 붉은 볏이 달려 있었다. 얼핏 보면 90년대 말 헤비메탈 그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말투로 민을 찾았고, 집을 나가면서도 준에게 부족한 민을 잘 부탁한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민은 자신의 방에서 날카로운 바늘로 외줄을 타듯이 그들의 방호복에 장식을 달거나, 그림을 그렸다.
--- p.32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진행했다. 사인은 거침없었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산 정상에 오른 만큼 약간의 반주와 함께 식사를 마친 그는 중개인과 함께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핍의 아버지는 만 킬로가 넘는 곳에서 떨어졌다. 중개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당신은 올림푸스산 한쪽 면을 거의 훑으며 내려갔다고 했다. 마치 19세기에 마차로 아메리카 대륙을 내달린 만큼의 땅을 받던 미국인들처럼 말이다. 슈트를 입고 있어 그런지 시신이 쪼개지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핍의 아버지는 지금 슈트를 입은 채로 화석처럼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장례를 치를 틈이 없었다. 화성이 태양에 먹히면 말 그대로 핍의 가족은 파산이었다.
--- p.61

그런데 처음 만나는 외계인이 험사 직원이라니. 나는 늘 처음 마주하는 외계인은 과학자나 기술자이기만을 바랐다. 정치인이나 군인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더한 놈을 만나게 되었다. 더군다나 동종업계라니. 나도 보험회사 직원이었지만, 정말이지 그와의 기 싸움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절로 몸이 긴장되더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최대한 얼굴을 펴야 했다. 인공적인 미소를 지어보였으나, 노이즈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얼마 전에 저희 고객에게 발생한 사고 때문에 왔습니다.여러분의 물건과 충돌했는데, 알고 있습니까?”
--- p.84

어쩌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우주와 다른 우주에서는 죽을 방법으로 지하철 대신 버스를 선택했을 것이고, 버스의 그 짧은 연착 시간 동안 이어진 생각에 바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다가온 버스에 자연스럽게 ―환승입니다. 하고 교통카드를 찍고 올라탈 수도 있었다. 혹여나 마음을 먹고 뛰어들었다 해도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0번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 p.110

그들은 그 과정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기술을 활용했다.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는 나노봇 , 목이 잘려도 뇌에 영양을 공급하는 생명유지장치 등 이 모든 첨단기술을 위원회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기술이든 최대한 활용했다. 채무자가 자살을 시도하면 할 수록 구조비라는 명목으로 갚아야 할 돈은 더욱 늘어났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빚을 갚거나, 다른 이에게 빚을 넘기거나.
--- p.143

핍은 우주선에 올라탄 순간부터, 수잔에게 세 번이나 자신이 받은 ‘뇌 가소화’ 시술에 관해 설명해야 했다. 뇌 가소화 시술을 설명하기 전에 뇌 가소성을 먼저 알아야 했다. 뇌 가소성이란 쉽게 말해서, 뇌의 특정 부위들은 역할이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시각을 담당하던 뇌 피질에 후각을 연결하면 그 부위가 냄새를 판별하도록 기능이 변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뇌 가소성의 대표적인 예다. 핍은 눈을 감고서 말했다. “그래,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에 전파를 볼 수 있는 장치를 연결했다니까.”

--- p.204

출판사 리뷰

전에 보지 못한 다채로운 감동
사회에 대한 통렬한 시선
그리고 경이로움….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가
김준녕 작가의 첫 SF 소설집


김준녕 작가가 이 소설집에서 빚어낸 SF적 사고들은 우리의 피부에 맞닿아 있듯이 통렬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독자를 깊은 경이감으로 매료시킨 그 모든 SF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와는 또 다른 지구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며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막 너머의 신이 있다면』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김준녕 작가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가 출간됐다. 일찍이 『막 너머의 신이 있다면』에서 인간의 생존 투쟁이 담긴 기나긴 역사를 SF라는 렌즈를 통해 절묘하게 묘사해냈다는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준녕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도 각종 스타일의 단편을 선보이며 서로 다른 인간군상이 다양하게 얽히는 지점과 사회의 다채로운 측면을 묘사한다.

“한 사람이 창조한 세계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필히 마주하게 될 질문이리라. 작가는 SF라는 장르적인 틀을 유지하는 동시에 문장의 톤, 이야기의 완급조절을 단편마다 변주하며 각기 다른 장르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 소설집에서는 블랙코미디와 사회풍자로 점철된 소설이 있는가 하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섬세히 살펴보는 소설, 관념과 사유를 중심으로 돌진하는 소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을 절묘하게 풍자한 코미디를 보며 웃음을 짓다가도, 운명적인 비극을 뼈저리게 묘사한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가슴을 칠 것이며, 인간 문명 이후의 세계를 통시하는 놀라운 광경까지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얽매는 굴레에서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까?
유머가 뒤섞인, 현대의 부조리가 극대화된 사고실험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의 수준도 그만큼 발전할까? 어쩌면 ‘맞다’고 할 수 있고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물음에서 말하는 ‘사회의 수준’이라는 것이 어떤 이념을 반영한 상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순수한 기술 발달만으로는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이룩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현대의 첨단 기술이란, 실제로 수많은 사람의 착취를 바탕으로 이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빛보다 빠른 빚」은 부채 사회가 최대한으로 발전한 세계를 그린다. 자본주의 시장은 곧 빚과 빚을 통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개개인의 채무에 대한 안전망이 제도적으로 아예 말소된 사회라면? 개개인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죽음을 선택할 자유마저 빼앗간다면? 심지어 그게 개인의 책임을 넘어 혈연으로 이어진다면? 미래의 첨단 기술이 부조리한 목적을 위해 개발될 시 도래할 사회풍경을 블랙 유머를 곁들여 의미심장하게 재현한다.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는 온갖 우주의 외계인들이 태양계에 모여 태양이 폭발하는 광경을, 마치 오늘날의 올림픽 개막식처럼 구경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거대한 스케일은 마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의 한 장면처럼 방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의 목적은 태양 폭발의 경이로운 풍경 묘사에 있지 않다. 바로 부동산 투기 경쟁이 전우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시대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핍과 핍의 오랜 조상들이 벌였던 땅 투기 경쟁, 그리고 핍이 살아가는 시대에 펼쳐지는 우주적 스케일의 투기를 보고 있자면 이 소설에 이런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부동산 스페이스 오페라’.

순수하게 과학적인 사고실험을 유머로 승화시킨 작품도 있다. 「블랙홀 뺑소니」는 어제까지 분명 존재했던 블랙홀이 사라지는 바람에 발생한 소동을 다룬다. 블랙홀을 관측하던 연구소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가 자신의 ‘고객’이 당신들의 ‘청소기’에 부딪치는 바람에 지구가 곧 멸망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블랙홀 뺑소니」는 양자역학과 관계된 유머 코드로 SF독자의 공감을 살 것이다.

기억과 관련된 미묘한 지점을 계급적 장벽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경매」 또한, 사회적 부조리가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기만한, 먼 미래의 어느 날에 대한 통렬한 이야기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 것인가.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오랜 역사적 노력.


인간이 기나긴 역사를 지나오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는 바로 ‘타인을 이해하기’다. 어쩌면 다음 세대에도, 다다음 세대에도, 인간이 멸종했을 그 언제에도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익히지 못할 수도 있다.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 은 전염병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한 이후의 세계에서 동거하던 두 인물을 다룬다. 비록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너무도 다른 두 인물의 행적을 통해 인간이란 과연 동일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준’은 ‘민’의 최후를 바라보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과거의 행적을 샅샅이 알게 되면서도 ‘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염병 창궐 이후 흔히 비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한 이들이 더 쉽게 이해될지도 모른다.

「사이버 피쉬 트럭」 는 오랜 기간 동안 서로만큼은 이해하려고 했던 두 인물을 다룬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는 인간의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 세계는 큰 판도로 뒤바뀐다. 이 모든 건 ‘그레이 구’라는 존재의 등장 때문이며, 이 그레이 구라는 존재로 인해 침식되어 가는 문명의 변화에 따라 두 사람이 처한 환경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주인공 둘 자신마저도.

어딘가에서는 우리를 이해해줄 존재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표제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나를 이해해줄 이가 없다면, 다른 지구에는 나를 이해해줄 누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주조된,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우리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김준녕 작가가 이 소설집에서 빚어낸 SF적 사고들은 우리의 피부에 맞닿아 있듯이 통렬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독자들을 깊은 경이감으로 매료시킨 그 모든 SF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와는 또 다른 지구에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며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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