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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칼을 그녀에게로 가져갔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칼이 그녀의 목에 닿았을 때쯤 나는 병적인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여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여자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녀는 유대인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위험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내 집에 포로로 붙잡아둔 여자, 새장에 든 유대인. 사실 아슬아슬하지 않은가. 그와 동시에 임무에 실패한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왔다. 여자는 그 칼이 더 이상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에 틀림없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어리석게도 목줄기를 드러내며. 나는 판자를 닫고 방을 나왔다. (79p)
“검정은 색깔이 아니라고 나탄이 그랬어. 검정은 그냥 어떤 색도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색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야.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내게는 존재해.”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랑해.” 그녀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악무는 바람에 그녀의 치아에 입을 맞추고 말았다.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부모님이 들을까 봐 겁이 나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것이 내 행복했던 환상의 마지막 몇 초였다. (110p) “다들 유대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 넌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할 거야. 오래 기다릴수록 살 가능성은 높아져. 한 해만 더 참으면 안 돼?” 그녀의 풀죽은 얼굴에서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잡히면 죽는다고! 내가 지켜주고 있는 거야! 그녀 때문에 내 가족이 목숨을 잃었어! 내가 지금까지 살게 해주었는데,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는데, 도대체 왜! 그녀 때문에 그토록 애를 썼는데 결국 다 잃어야 한단 말이야? 그녀를 위해 나는 조국을 배반했어. 그런데 먹여주는 손가락을 깨무는 것으로 보답하다니! 그녀뿐 아니라 나 역시 내 거짓말 속에 갇혀 있었다. (223p) 그것은 정사라기보다 레슬링이나 격투, 치고받기와 더 비슷했다. 이 추악한 우위 다툼의 행위가 끝나갈 무렵 엘자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돌돌 말며 말했다.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거 알아, 요하네스. 하지만 내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난 나쁜 애야.” (중략) “만일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 속을 뒤집어 겉으로 보여준다면 그 커다란 진실은 아름다운 동시에 추악할 거야. 내가 살아갈 의지도, 이유도 모두 잃었을 때 네가 내게 했던 말 기억해? 진실은 위험한 것이라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다고.” 그녀는 ‘진실’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것이 고급 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r(역주-truth의 r) 발음을 굴리며 입천장으로 그 단어를 음미했다. (312p)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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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유겐트로 활동하는 소년 요하네스는 부모님이 엘자라는 이름의 유대인 소녀를 벽장 뒤에 숨겨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져가고 증오와 집착, 연민과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싹튼다. 요하네스의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은 채 전쟁과 나치 점령은 끝이 난다. 엘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그녀의 목숨을 쥐고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뿐이라고 굳게 믿는 요하네스. 서로의 존재를 이용하고 또 서로 이용당하는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치열한 생존, 공포와 애증, 집착과 열정, 의지와 무관심…… 복잡하게 얽힌 진실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탁월한 심리 묘사를 통해 드러난다.
이 매혹적인 소설은 기묘함과 권력에 대한 탁월한 감명을 남긴다. - 누벨 옵세르바퇴르 크리스틴 뢰넨스의 문장은 읽는 이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주는 동시에 아름답고 참신한 문체를 맘껏 뽐낸다. 『갇힌 하늘』은 ‘광기의 제국’에 관한 면밀한 분석이다. - 르 피가로 이 소설은 우리가 묵인하는 역사의 일부를 보여준다. 고통이 어떻게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며 또 어떤 이들을 잔인하게 만드는지, 전쟁이라는 잔학한 행위가 어떻게 승리자와 패배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지 말이다. - 엘르 “아주 작은 의심 하나가 내 심장을 향해 발사되었다” ‘지방시, 발망, 벤츠의 모델ㆍ하버드에서 영문학 수학’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작가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세 권의 소설을 발표하였다. 데뷔작인 『원시 수프Primordial Soup』는 1999년 영국에서 발표되어 2004년에는 영국 도서관협회에서 발표하는 꼭 읽어야 할 현대소설 목록에 꼽히기도 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갇힌 하늘』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메디치 상’ 외국문학 부문과 ‘프낙 상’ 그랑프리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르 몽드」,「르 피가로」,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의 작가 장 수블랭은 「르 몽드」의 기고에서 『갇힌 하늘』을 이렇게 극찬했다. “아름답고, 강렬하며, 색다르고, 야심차다. 이 작품은 어떤 믿음보다 드물지 않은 유형의 관계에 대해 탐색한다. 여기서 그려지는 사랑은 상대방을 파멸에 이를 때까지 가두고, 고립시키며, 식민지화한다. 바깥세상을 소멸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거짓을 품고 진실을 꾸며내고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벽을 쌓는다. 독자들이 『갇힌 하늘』을 읽으며 불안감 속에서 놀라운 힘을 발견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뿌리 깊은 불안감은 진정으로 좋은 책에서 나타나는 아주 드문 영향의 징후이며, 이는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 이야말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향력인 것이다. 크리스틴 뢰넨스에게는 독자를 놀라게 하고 매료시키는 거대한 재능이 있다. 『갇힌 하늘』은 잊혀서는 안 될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