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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며 004
제1부 사람이 사람에게로 가는 길 그때 우리는 잉크에도 취해 살았다나의 문청 시절 013 사람이 ‘사람’에게로 가는 길 032 귀명창이 있어야 소리명창도 뜬다 049 계란꽃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053 자원의 곳간, 혹은 머나먼 미지로의 길시에 나타난 바다의 두 얼굴 057 단장 선비와 완화삼시인 조지훈을 말한다 062 가을과 여름의 거리 066 놀미?근대화, 그리고 아파트촌이문구의 『우리 동네』 산실을 찾아서 072 자본과 토네이도 077 그래도 생강은 묵을수록 맵다 080 목불(木佛)을 태우고 사리를 찾네 088 잃어버린 시절과 절밥 090 씨름판, 문학판 094 꿈, 내 안의 휘황한 불꽃 096 삶이 꿈 아니던가 100 뜸부기와 농아이근삼 선생의 한 초상 103 한민족의 젖줄, 또는 문화의 현장 107 제2부 현대시와 불교적 상상력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현대 불교시의 과제와 전망 123 한국시의 불교적 상상력 139 계속 질문하는 존재, 또는 위험하게 살기황동규의 삶과 시 163 박한영 스님의 인물과 사상 177 ‘밥값’과 내 안의 ‘부처’ 202 ‘당신이야말로 달마이다’―최동호 시집 『공놀이 하는 달마』 212 이야기의 재미와 삶의 낌새―이시영 시집 『은빛 호각』을 읽고 219 왜 수필인가 224 누가 시의 얼굴을 보았는가 233 후일담 형식과 일상의 미시 담론 244 1990년대 여성시의 몸 담론 양상 250 현대시조의 서정성과 회화성 256 제3부 우리 시의 논리와 맥락 1 불같은 또는 묵혀서 향기로운김여정 시의 몇 가지 코드 269 부패의 상상력과 일상의 시학김화순 시집 『사랑은 바닥을 쳤다』 281 ‘상류’와 ‘길’의 상상력민병도 시조집 『슬픔의 상류』 293 길과 집, 자기 안으로 가는 길박순덕 시집 『자전거 안장을 누가 뽑아 갔나』 303 떠도는, 혹은 정들 세상이 없는박영민 시집 『해피버스데이투미』 318 꽃과 가을, 관조의 길―양채영의 시 세계 333 시의 일상, 시의 정체성―오문강 시집 『거북이와 산다』 346 절단된 몸, 혹은 병리학적 상상력―우희숙 시집 『도시의 쥐』 362 솔개와 어머니, 여성적 삶의 두 기표유현숙 시집 『서해와 동침하다』 384 청산옥, 혹은 천지팔황의 담론들―윤제림 시집 『사랑을 놓치다』 398 근대성 또는 도시적 풍물의 상상력―이귀영 시집 『달리의 눈물』 409 풍자인가 관조인가최금녀의 시 세계 420 혼미한, 그리고 난해한 마술의 춤하린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438 제4부 우리 시의 논리와 맥락 2 기억의 재현과 현실 비판김장산 시집 『찬물내기 봄 언덕』 457 방법론적 관조와 서정의 힘문정영 시집 『낯선 금요일』 467 감춤과 한의 미학박정희 시집 『박정희 시선집』 476 기억, 거대한 성곽의 고고학―박현솔 시집 『달의 영토』 490 나를 찾는 여행, 또는 교양의 시학―우호태 시집 『그대가 향기로울 때』 501 일탈과 탐색의 긴 도정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514 ‘등의 지도’, 혹은 므네모시네의 시학전정아 시집 『오렌지 나무를 오르다』 527 관조, 산과 물의 상상력정대구의 시 세계 543 일상과 탐석, 그리고 내향(內向)의 상상력정호 시집 『비닐꽃』 553 꽃의 상상력과 날체험의 결―천성우 시집 『까막딱따구리 공방에 들다』 568 ‘주소’와 ‘별’을 찾아 떠도는 길 위의 서정천외자 시집 『그리움을 놓아주다』 581 일상의 정서, 그리고 달관의 시학―최원 시선집 『푸른 노을』 597 ‘식혜’와 ‘빨래’, 여성성의 또 다른 전략한미영 시집 『물방울무늬 원피스에 관한 기억』 608 세계의 해체와 의미 만들기황인원 시조집 『생각의 뼈』 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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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스퍼트인가 혹은 까닭 없는 조바심인가. 지난번 산문집 『말의 결 삶의 결』(2005) 이후의 글들을 모아 엮는다. 대략 십 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계제가 있을 때마다, 비록 주문 생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마다하지 않고 글을 써 왔다. 이번에 그 글들을 묶으며 새삼 앞에 던진 물음 앞에 서야 했다. 곰곰 가늠컨대 앞으로 또 산문집을 엮으리란 자신도 그럴 기회도 없을 듯해서다. 나이 탓만은 아닌 것이 몇 해 전부터 나는 산문 쓰기를 접었다. 실제로 몇 군데선가 온 청탁도 거절했다. 그런 글쓰기에 필요한 집중력도 지구력도 현저히 떨어진 사실을 그 즈음 절감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십여 년 치 글들을 가급적 빠트리지 않고 한자리에 묶고자 힘썼다. 결국 책의 허우대만 그만큼 커져 버리고 말았다. 나로서는 과연 막바지 스퍼트인가 혹은 까닭 없는 조바심인가.
그때그때 생산된 글답게 한자리에 묶고 보니 품새가 예사 허술한 게 아니다. 이따금 비슷한 소리가 중복되기도 하고 나름 투식화(套式化)한 어사도 많이 눈에 띈다. 할 수 있는 한 외과적 수술 내지 성형을 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고민 끝에 그대로 넘어가기로 작심했다. 집필 시 생각의 미숙함이나 당시 주어진 글의 여건들을 고려할 때 어설피 가감 않는 것이 되레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그게 내 생각의 변모한 궤적을 뒤좇아 확인하는 데도 더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반면 일부 글들은 독자를 지나치게 염두에 두었거나 지면(誌面) 특성에 맞춰 썼던 탓에 그 굴곡이 큰 점, 많이 미흡하고 많이 아쉽기만 하다. 왜 시는 불교와 만나는가.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연작시 「마음經」을 써 나가며 나는 줄곧 이 물음을 안고 씨름을 했다. 주로 선불교를 공부하며 내 시와의 미학적?인식론적 친연성을 도모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연작 시편들을 만드는 틈틈이 시와 불교에 관련한 몇 편의 산문들을 써 왔다. 이번 책에도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2004) 이후 썼던 그 방면의 몇몇 글들을 묶었다. 그 글들을 묶으며 확인한 점은 내 공부의 무게중심은 어디까지나 불교보다는 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시인으로서 또 우리 근현대시를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의 당위이자 본래적인 한계였던 셈이다. 나는 짧지 않은 기간을 교직에 몸담았었다. 그 기간 함께 우리 근현대시를 공부한 학연으로 나는 여러 시인들을 만났다. 이들과의 학연이 꽤는 크고 엄중해서일까.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들의 시를 읽고 그 정신적 궤적을 부지런히 살펴 왔다. 이 책의 3부와 4부의 글 상당수는 나와 학연을 나눈 시인들의 작품에 관련한 것들이다. 나로서 다만 바라기는 이들 작품론들이 지난날 우리 시의 여러 쟁점이나 전개 양상과 함께 읽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홍신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