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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1부 빈민가 소년의 꿈 1장 친구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2장 독재자, 비행소년, 핏자국 3장 카유가호수를 굽어보는 그곳 4장 유별난 브랜드매니저 5장 한 브랜드를 위기로 몰다 6장 지나친 낙관 7장 음악의 뒤편에서 2부 위기에 빠진 닌텐도를 구해라 8장 닌텐도의 부름 9장 교토의 장인정신 10장 박살내고 끝장내는 자 11장 새로운 지향점 12장 전화위복 13장 용감한 결단 14장 돌고 돌아서 마침내 15장 전환의 기술 16장 다음 세대 끝맺으며 감사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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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타씨의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제는 정말 내 친구이자 멘토이며 닌텐도에서 나를 인도해주었던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그렇게 이와타씨에게 작별 인
사를 보내고 내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닌텐도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지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의 삶까지도. --- p.30 투지를 내보여야 한다. 인생에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은 사람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든다. 나는 강해졌다. 원하는 것을 구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서 배운 이 가르침을 여전히 유념하며 살고 있다. --- p.39 그렇게 우리는 훌륭한 광고 영상과 빈틈없는 광고 전략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을 더욱 확대하여 책자에 더 많은 요리법을 싣고 연말연시용 쿠키 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 p.72 성공적인 혁신은 언제나 핵심적인 부분, 바로 현존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의 주된 가치 혹은 해결이 필요한 주요 문제들로부터 시작된다. --- p.102 당시 닌텐도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2001년 연말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라는 가정용 게임기로 비디오게임 시장에 뛰어드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닌텐도는 신형 게임기인 게임큐브를 출시했다. --- p.141 이와타씨와의 화상 면접 시간은 30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초 계획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처음에 나는 당연히 통역사가 함께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화면 속에는 이와타씨밖에 없었다. --- p.150 이후 나는 함께 아침을 먹자는 구실로 그를 종종 내 방으로 초대했고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나는 일본에서 온 수석 개발자들과 우리 팀원들을 방으로 불러 같이 저녁을 들기도 했다. 놀랍게도 내가 오기 전까지 닌텐도에서는 동료들끼리 그런 식으로 친분을 쌓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 p.183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자는 말에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우선 나는 처음부터 〈황혼의 공주〉로 행사의 끝을 장식하는 것이 소매업체들 에서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리라고 믿었다. --- p.219 나는 영업·마케팅부를 관리하면서 일찌감치 성과관리체계를 도입했다. 우리 부서의 모든 직원에게 반년에 한 번씩 자체 성과보고서를 내게 하고 팀장들에게 검토를 맡긴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실적이 부족한 직원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방안을 강구하고 정 여의치 않으면 퇴사를 제안했다. --- p.235 닌텐도 3DS는 일본에서 2011년 2월 하순에, 서양 시장에서는 같은 해 3월 하순에 출시되었다. 사전 주문량이 굉장히 많았고 처음 몇 주간은 이례적인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 p.265 파괴적 혁신의 가치를 생각해보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비즈니스, 기후, 정치, 사회정의 등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 p.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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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에서 닌텐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배우다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게임업계에서 닌텐도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게임업계에 빠진 것은 아니였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P&G(Proctor&Gamble)의 브랜드 매니지먼트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그는 한 회사를 종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단순히 광고와 홍보뿐만 아니라 가격 책정, 제품 개발등 사업 경영의 모든 측면을 배울 수 있었던 그는 이후 피자헛, 판다익스프레스에서 유별나면서도, 효과적인 마케팅을 발휘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온 그는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시야의 폭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업종과 해당 분야에서 수익을 내는 주요 방편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어떤 의미로 와닿는지 파악하는 것이 혁신의 시작임을 지적한다. 그는 단순히 푸드코트 브랜드였던 판다익스프레스에 새로운 모습의 매장을 도입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폭발적인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위기에 빠진 닌텐도를 구해라 조직부터 제품까지, 닌텐도의 모든 것을 바꾸다 P&G, 피자헛, 판다익스프레스, 더비사이클 등에서 일하던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어쩌다 닌텐도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사실 레지널드는 닌텐도의 월간지 「닌텐도 파워」에 사진을 보낼 만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닌텐도가 영업?마케팅 최고 책임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자 주변의 게임매장을 방문해 게임업계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했다. 당시 닌텐도는 난관에 봉착해있었다. 비디오게임 업계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막강한 제품이 지배하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엑스박스라는 게임기로 시장에 들어오게 되면서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지널드는 닌텐도가 이렇게 위기에 빠졌을 때 영업?마케팅 최고 책임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닌텐도는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같이 일을 하는 부서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거나, 필요한 정보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레지널드는 우선 이 부분부터 해결했다. 그는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렸고 이와타 사토루를 비롯한 경영진들에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정보도 열람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닌텐도는 올바른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레지널드는 닌텐도 DS를 비롯해 스위치까지 여러 제품들이 성공하는데 기여했으며, 특히 세계 최대의 게임쇼라 일컫는 E3에서의 프레젠테이션에서 혁신적인 모습들을 보여줬고 닌텐도의 제품 홍보 영상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위기였던 닌텐도를 구해냈다. 그는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갔으며 그만큼 많은 사랑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2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닌텐도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제 몸은 여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My Body is Still Ready).”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은퇴 후 자신의 모교인 코넬대학교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했다. 그는 더 좋은 마케터가, 더 좋은 혁신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멘토들에게 받았던 관심과 교훈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또한 게임업계와도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며 수많은 팬들에게도 이전 못지않은 웃음과 사랑을 주고 있다. 다양한 업계에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레지널드 피서메이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일으켜야 하는지 알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