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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설 - 약남산의 자연, 지리적 환경
2. 고구려 유민의 중국천사 3. 양경 도성 안의 해동삼국인 소유의 제택 4. 종남산 일대의 사찰과 신라승려 5. 장안 도성 안의 사찰과 신라승려 6. 종남산의 금하기 7. 신라사적의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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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악은 수 문제 이후 여러 제왕들이 예악의 진흥 차원에서 중요시되었다. 고구려 음악이 중국에 들어간 것은 송과 위때이다. 이후 수문제 7부악이 수 양제와 당 고종 때 9부악이 연주되었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고구려악, 백제악이 동이악에서 대표될 만큼 성황을 이룬 것은 장안에 그들의 교민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라악이 성행하지 못했던 이유는 장안에 교민단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태종 정관년에 신라로부터 여악 2인이 당에 보내졌으나 태종은 이를 불쌍히 여겨 다시 돌려보냈다. 고려악은 9부 가운데 3번째로 들어가 있다. ...........
또 다른 과제는 종남산에 모여든 우리의 입당구법승려가 마치 종남산의 주인마냥 우뚝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이방인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던 장안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대덕, 고승이 주지 등 많았던데서도 알 수 있다. --- p.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