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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첫 장. 읽는 용기 고전에 익숙해지기 : 인내 01. 진실되고 단호한 박치기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02. 안나를 대표하는 두 단어, simple과 spirit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03. 누구라도 어디든 갈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 :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04. 속내를 드러내지 말 것 : 『골짜기의 백합』 오노레 드 발자크 둘째 장. 읽는 힘 이야기의 세계관 : 관점 05. 독서하는 괴물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06. 인간의 심연을 관찰하다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 07. 위장과 역할놀이를 통해 사랑의 정의를 탐색하다 : 『좋을 대로 하시든지』 윌리엄 셰익스 피어 08.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 : 「참마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야기의 현대성 : 새로움 09. 소통을 말하다 : 「상자 속의 사나이」, 「산딸기」 안톤 체호프 10. 권력에 맞서는 카프카적 방식 : 「변신」 프란츠 카프카 11. 어느 계약직 직장인의 선언,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셋째 장. 읽는 습관 이야기의 가능성 : 발견 12. 독서를 통해 획득한 저항의 말들 :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13. 착한 딸들, 아버지의 질서에 반기를 들다 : 『작은 아씨들』(1) 루이자 메이 올콧 14. 글쓰기의 새로운 가능성 : 『작은 아씨들』(2) 루이자 메이 올콧 15. 삼년 만에 만난 구남친과 벌인 대결 : 『댈러웨이 부인』(1) 버지니아 울프 16.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걸까 : 『댈러웨이 부인』(2) 버지니아 울프 시대와 개인 : 인식 17. 혁명 속의 개인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18. 노동자의 생활상을 최초로 그리다 : 『목로주점』 에밀 졸라 19. 도움을 주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다 : 『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20. 극한 알바 :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 넷째 장. 읽는 행복 읽는다는 것 : 의미 21. 안나의 기차 안 책 읽기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22. 한 줄의 시구를 얻기까지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23. 책 읽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 『도련님』 『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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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읽히지 않는 책 앞에서 내가 택한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건 펼쳐진 페이지 앞에서 멍때리는 것이다. 릴케에게서 배운 독서 방법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다. 펼쳐진 두 페이지 앞에서 오래 머물기.
--- p.10 안나 카레니나는 “솔직하고 깔끔한 태도”를 지닌, “마음씨 착하고 쾌활하며 정력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지금 기분은 “발랄하고 쾌활하며 행복한 기분”이다. 아하 그렇구나 싶기보다는 대체 무슨 소리지 싶을 것이다. 안나를 설명하는 형용사들이 추상적이기에 당연하다. 번역이 좀 애매하다는 느낌도 든다. 지금까지 소설을 쭉 읽어온 독자 입장에서는 마음씨가 착하다거나 발랄하고 쾌활한 안나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게 쉽지는 않다. --- p.41 톨스토이는 안나의 성격 묘사를 위해 한 명의 단역을 불러들인다. 즉 안나를 처음 만나는 골리니쉬체프라는 인물을 통해 안나를 보게 하고 그의 눈에 안나가 어떻게 보였는지를 서술한 것이다. 현재 안나는 불륜 상대인 브론스키와 함께 러시아를 떠나 이탈리아에 와 있는 상태다. 그 후 러시아 사교계에는 안나에 대한 뒷담화가 돈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버린 여자라는 비난이다. 자연히 명예가 실추되고 사교계에서의 입지도 위태로워진다. --- p.42 이 첫 문장은 찬찬히 음미하면서 인물의 상황과 심정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이전 한 달 동안 주인공은 비좁은 골방에만 머물러 있었다. 지금 거리를 걷는 그의 머릿속은 골방에서 떠올린 ‘어떤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숙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억하자. 이 모습을 통해 작가는 소설의 전체 방향을 제시한다. 『죄와 벌』은 인물이 골방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이야기이다. --- p.55 체호프는 벨리코프를 통해 사회의 의무와 규칙을 자신의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만 머무르려는 인물을, 그러한 인물의 태도가 공동체 전체에 말 없는 강요와 억압이 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마지막엔 반전이 있다. 사사건건 마을 사람들의 언행에 간섭하고 엄격하게 굴었던 벨리코프는 모종의 사건을 겪은 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 죽는다. 그런데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삶은 ‘예전과 똑같이’ 흘러간다. 원래부터 모두 각자의 상자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135 “허약하고 하찮은 약골”은 영역본에서는 “flabby worm of the earth”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카프카는 스스로를 하찮고 작은 동물이나 벌레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를 두고 카네티는 “자기 자신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신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카프카의 가장 독특한 재능”이라고 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는 「변신」의 상상은 하루아침에 떠오른 착상이 아닌 셈이다. --- p.150 완벽한 안주인(the perfect hostess)으로 사는 삶. 즉 여성으로서의 삶. 문득 클라리사는 자신에게 남은 건 ‘그게 전부’라고 인식한다. 30 년 전 부어턴에서 피터, 샐리 같은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화창한 여름날에는 미래에 대한 찬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나갔고 그때 떠들어댔던 꿈들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상념 끝에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더 이상 클라리사조차 아니었다. 그저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이었다.” --- p.237 에밀 졸라는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았는데, 그의 관점은 어떤 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 전체라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 아래 졸라는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사회의 풍속, 가치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곧 시대상 전체를 상세히 묘사한다. 이런 면에서 졸라의 소설들은 ‘예술’보다는 ‘사회과학’에 더 가깝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 p.280 개인적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무슨 책을 어떤 태도로 읽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이 책을 읽는 대목이 나오면 꼭 표시해 둔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묘사된 가정교사의 독서 장면, 나쓰메 소세키가 『산시로』 첫머리에 제시해 둔 산시로의 독서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렇게 소설 속 책 읽는 장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평소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책은 꼭 읽어야 할까?” “책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될까?” “아니 그게 꼭 ‘도움’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책은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게 아닐까?” --- p.337 그러나 말테는 보는 자의 태도를 고수한다. 그러는 이유는 아마도 앞서 말한 ‘불안의 냄새’와 맞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책 속 곳곳에서 그는 보는 법을 배우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하며, 또한 밤새도록 앉아서 글을 쓴다. “많은 도시,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려고 하고 대화를 나누려 한다. 그는 도시의 뒷골목 과 다리와 공동묘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 예컨대 “거울이나 그림 또는 옷장 뒤쪽의 손이 덜 탄 곳”에 남아 있는, 또는 “찢긴 벽지 조각들 틈”에서 나부끼고 있는 삶이나 “오래전에 생긴 지저분한 얼룩들”에 배어 있는 삶을 알아보고 그것을 묘사한다. 그가 알아본 사물들과 거기에 남은 삶의 흔적들은 그의 내부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 p.353 책이 줄 수 있는 것을 책에게 요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개 우리는 흐릿하고 산만한 마음으로 책을 접하며, 소설이 진실하기를, 시는 거짓이기를 요구하고, 전기는 아첨이기를, 역사는 우리의 편견을 강화시키기를 요구하죠. 책을 읽을 때 이런 모든 선입견을 없앨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시작이 될 거예요. 작가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말고 그 자신이 되도록 노력해 보세요. 작가의 동료나 공모자가 되어보는 거죠. 처음부터 물러나 앉아 뒷짐지고 비판부터 한다면, 지금 읽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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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문학의 순간들을 포착하다
펼쳐진 페이지 앞에서 오래 머문 기록들 『막막한 독서』는 소설 읽기를 원하는 어른들을 위한 독서 노트다. 문학의 최고봉에 이른 스물 한편 소설의 빛나는 장면에 저자의 시각으로 다가선다. 이 책은 특히 명문장이 아닌 장면에 주목한다. 명문장은 독자에게 주입된 것인 반면 장면은 독자가 능동적으로 직접 발견하는 것이다. 누구든 책을 읽다 보면 확 끌리는 인상적인 장면을 만나게 된다. 그 장면은 각자가 오래 품고 다니면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러다 나만의 것이 되는 장면들이다. “나는 왜 이 장면에 끌렸을까?”를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의 의미와 즐거움을 만들어 낸다. 소설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돈키호테』의 '진실한 박치기' 장면에서 저자는 허구와 사실을 넘나들며 소설의 틀을 구성한 세르반테스의 의도를 읽어낸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최고의 예술적 성취로 꼽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저자가 마주친 빛나는 장면은 한 단역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안나의 모습이다. 저자는 여러 판본과 번역 비교를 통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심플simple하고도 활력 넘치는spiritual 안나의 모습을 제시한다. 체호프는 왜 ‘현대 소설’의 입구에 자리할까? 체호프 단편 연작 「상자 속의 사나이」와 「산딸기」를 다룬 글에서 저자는 인물 간 '소통'의 양상을 섬세히 읽으며 모호하게만 다가오는 '현대 문학'의 의미를 밝혀준다. 또한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계약직 노동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카프카의 「변신」에서 '권력에 맞서는 카프카적 방식'을 읽어내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참마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자연의 시선’을 발견한다. 로맨스 소설로 읽혀온 『제인 에어』에서는 ‘여성의 책 읽기와 노동’의 의미를 읽어내며, 청소년 문학으로 읽혀온 『작은 아씨들』에서는 ‘여성의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모더니즘 문학 최고의 성취로 꼽히지만 그만큼 난해한 소설로 여겨져온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구남친과의 대결’과 ‘꽃 선물’이란 일상적이고 친숙한 장면을 통해 접근하는 등 고전 읽기의 참신한 시각을 제시한다. 다양한 관점의 가치 15년 간의 독서모임 경험을 통해 저자는 같은 책을 읽고서도 각 독자가 서로 다르게 발견하는 "살피지 못한 소설의 디테일과 예상하지 못한 관점"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과 감상의 교류가 독서의 깊이를 더해주며, 책과 독자 사이의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막막한 독서』는 단순히 책을 잘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귀한 안내서이다. 천천히 읽기의 미학 저자가 제안하는 독서법의 핵심은 '펼쳐진 페이지 앞에 오래 머물기'이다. 릴케와 버지니아 울프,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배운 이 방법은 내용 습득보다는 자기만의 관점과 감상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멍하니 책을 바라보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막막한 독서』는 단순한 독서 안내서가 아니다.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책을 즐기는 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문학의 깊이 있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과 함께라면 독자들은 보다 느긋하고 풍요로운 독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