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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
나의 가족 비밀의 언어 미처 하지 못한 말 기억의 주인 제3의 언어 기나긴 꿈을 접고 소피아 이야기 과도기 수업 아주 특별한 축복 두 가족 사이에서 빛의 뗏목을 타고 제임스 이야기 백마 탄 왕자님 소리의 바나나 기차, 떠나다, 미안 그리고 졸업 오스카 이야기 바벨탑 거대한 침묵 갈채의 바다 작별을 예감하며 감사의 말 옮기고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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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숨죽인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얘기 했다. 처음으로 진실되지만 쓰라린 그 얘기의 결론으 드러났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게 귀머거리 아이를 갖는 것보다 낫다"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얘기를 다 들은 소피아가 마음을 추스려서 한 말이었다.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걸 아니까요. 나도 그래요.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제 그걸 받아들이셔야 해요." ---p. 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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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에 처져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서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할아버지의 손은 따뜻하고 건조했다. 그때 이미 할아버지의 걸음걸이는 고르지 못해서, 오른발이 느리게 걸음을 떼어놓으면, 왼발이 끌리듯이 쫓아오는 식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 걸음을 맞췄다. 분홍빛 어스름한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 주변은 깜깜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리듬을 찾아냈고,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우리가 나눈 가장 긴 대화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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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장애”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피상적인 지식일 뿐이다. 저자는 태어나서 자란 집이 바로 청각장애인 학교였다. 아버지는 그 학교 선생님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청각장애인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남다른 인연으로 이 독특한 문화를 접했다. 특이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때부터 청각장애를 동경했다는 것. 또래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듯이 수화를 하며 놀았고, 친구들처럼 보청기가 끼고 싶어 작은 돌멩이를 귀에 집어넣었다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그녀는 낮고 쌕쌕거리는 주위 아이들의 기식음을 “바람이나 물소리” 같다고 부러워했으며, 오히려 귀가 정상이라 소외감을 느끼며 자랐을 정도. 이런 각별한 애정을 바탕으로 담담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보여준다. 듣지 못하는 것은 가장 경미한 장애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말은 보다 높은 계급과 지성의 수단이며, 수화는 열등하다는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손으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리가 없는 세계, 하지만 그 안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더 격렬하고 힘차다. 장애는 하나의 문화다. 팔을 높이 들고 손가락을 펼친 채 소리 없이 흔드는 동작, 이는 청각장애인들이 치는 박수다. 이 반짝이는 박수가 모여 갈채의 바다가 되고, 최초의 청각장애인 총장을 탄생시켰다. 갤로뎃 대학은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 인문대학이다. 청각장애인들은 이 소리 없는 박수로 추진운동을 벌여 최초로 자신들과 같은 청각장애인을 총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뱀도 우리처럼 소리를 듣지 못해? 아이들이 구화(口話)수업을 받으면서 무심코 한 이 말은 함께 이야기하는 즐거움, 살아갈 때 그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깨치게 한다. 장애인들이 가장 예민한 부분은 자신들의 장애가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임을 알아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건청인(建廳人)”, 즉 hear people이라고 칭한다. 그렇다고 소리 높여 장애인 권리나 복지를 주장한다고 짐작하면 오산. 저자는 실존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임에도 읽는 이들은 느낄 수 있다. 장애가 불편하다는 걸. 말을 못한다는 게 택시를 타거나 신문을 살 때, 하다못해 우유 하나를 사는 것도 큰일이 되는 불편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들에게 수화는 빠르고, 맛깔스럽고, 육체적인 언어이다. 훨씬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몇 세기 동안 정상인처럼 구화(口話)를 강요당했다. 수화는 하나의 언어 헬렌 켈러를 비롯하여 농아들에게 강요된 구화주의는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 16세기 중반 한 수도사가 귀족의 자제에게 말을 가르쳤는데, 이는 당시 소리내어 고백성사를 하지 못하면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통은 그 뒤 자식의 결함을 감추고 정상인처럼 살기 원한 부유층이나 특권들이 이어온 것. 이 책의 무대가 된 청각장애학교 렉싱턴도 자녀가 농아인 렉싱턴 부부가 설립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청각장애인들은 지능이 떨어지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멀쩡한 것과 누군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오히려 정상인들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더 없지 않은가. 간간이 나오는 저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지금보다 훨씬 각박하던 옛날은 어디나 그랬으니까. 하지만 거칠게 살라고 강요하는 환경이라도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더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