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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외면하다
산티아고에서 사라진 집 : 우연히 한 사진 전시장에서 어느 집의 사진을 본 주인공. 그 집 주소까지 적힌 사진을 보고 황당함을 느끼며 아득한 옛 기억을 떠올린다.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눈 후 약속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을 거라 생각한 집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데…… 기차에서 잃어버린 뭔가에 대하여 : 아버지와 함께 기차 여행을 하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칸에 탄 밀수업자인 포로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 칠레 밀수업자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물건을 가로채려는 도둑들의 시점,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떠는 순진한 사람의 시점, 그리고 밀수업자의 시선에서 사물을 바라보기도 한다. 탈선 : 짙은 안개에 휘감겨 앞으로 가지 않는 기차 안에서 여덟 명의 승객들은, 정지된 시간에 갇힌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틀어 본 라디오에서는 그 기차의 운명을 언급하는데…… 마지막 회교승 : 세상을 하직한 회교승의 한 친구의 넋두리. 절친하다는 친구의 충고로, 자기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회교승 역을 맡았다가 검을 집어삼키지 못해 우스운 꼴로 세상을 하직하지만 그 절친하다는 친구의 독백은 자기 자랑과 원망에 불과하다. 롤랑 바 : 비밀이 없는 한 항구도시에서 일어난 일. 엉뚱하게 다른 사람의 사랑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는 과정. 하지만 이런 일은 이곳, 롤랑 바가 있는 항구의 별다르지 않은 일상일 뿐이다.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 :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으면 마마 안토니오의 집을 찾아가라고 권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질 상황을 자분자분 설명해 준다. 자동 응답기 : 현대 문명 사회를 잘 대변해 주는 기기인 자동 응답기의 독백. 자동 응답기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묻지 않은, 입에 발린 상냥함으로 상대방을 대하며, 상대방 역시 벽을 바라보는 듯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을 외면하다 추억을 버리는 방법 : 지난날의 추억이 묻은 사진을 찢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떠맡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 비 내리는 일요일 : 비 내리는 일요일,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한 사람의 울적한 상념.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셀로니어스 멍크의 테이프 「내가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s」를 오랜만에 찾아내어 먼지를 털어 내고 카세트에 넣는다. 하지만 그 테이프에서 울려 나오는 건 음악이 아니라 어머니의 흐느낌이나 동생, 삼촌, 먼 친척들의 목소리들이다. 흐르는 시간을 외면하다 어제 신문 : 신문에 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정정 기사에 대한 에피소드. 공원에서 사탕과자를 파는 남자 : 이 단편의 화자인 공원의 사탕과자 상인은 우리를 자신의 일터까지 데리고 가서 사탕을 어떻게 진열하는지 가르쳐 주며 자신의 일상적인 두려움을 말한다. 그는 평소 실제 삶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는 소시민을 대표하고 있다. 한밤중에 자동차가 멈춰 서다 : 한밤중에 집 앞에 정차한 차의 위협을 느끼고 창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기까지의 과정. 심리 묘사가 치밀하다. 이웃 나라 국가 부르기 : 한 남자가 아침 일곱시에 식구들을 모두 집 앞에 일렬종대로 세운 다음 이웃 나라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한 공무원이 그 광경을 보고 자신의 수첩을 찾아본다. 잊고 지나칠 뻔했던 역사적인 날임을 깨달은 공무원은 급히 조치를 취하는데…… 역사적인 날을 기억해 낸 공적은 공무원의 차지가 된다. 지키지 못한 약속 : 새벽녘 기차역에 나가서, 15년 전의 옛 연인을 기다리나 창에 비친 모습만 스쳐 볼 뿐인 한 남자 이야기. 이 세상 위대한 이의 작은 전기 : 한 군인이, 정부에서 보내는 공식 문서가 도착할 때까지 한 장군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이 단편은 그가 공식 문서를 실은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장군을 지키면서 하는 독백이다. 톨라의 기록 : 전쟁 작전회의 중 톨라라는 마을이 언급된다. 그 마을과 관련한 기록 열 편. 사서 : 추억, 질문, 변명, 의문을 관장하고 기억과 시간을 보존하는 이차우악사틴의 독백. 마지막 순간까지 종이에 기록을 남긴다. 목소소목의 하얀 미로들 : 황제들의 잃어버린 도시 목소소목에 관한 의문들을 풀어나간다. 챔피언 : 웰터급 팬암 경기 <챔피언>에 대한 이야기. 칠레 권투 협회의 지원으로 여행을 떠난 운동 선수 대표단에 소속되어 있던 그는, 사실 칠레 민족 해방군으로서 볼리비아 군과의 전투에서 사살된다. 사랑을 외면하다 커피 : 커피에서 실패의 맛이 느껴지던 날 여자는 마지막 키스를 남기고 남자를 떠나는데, 그 키스에도 실패의 느낌이 묻어 있다. 저 위에서 재스민꽃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 : 사랑하는 여인의 현관문 벨을 누르고 싶어도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한 연인의 이야기. 말 없는 사랑 : 벙어리 세 자매가 운영하는 의상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 주인공은 자매 중 막내 마벨에게 사랑을 느껴 온갖 넥타이를 구입하여 수선을 맡기는데…… 전장(戰場)에서의 밀회 : 전쟁 중 벨렌이라는 도시에 한 여자가 부대원들을 맞으면서, 주인공에게 자신을 기억하느랴고 묻는데…… 전쟁 때문에 희생된 그녀 남편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바다를 보는 방법들 : 그림 전시회를 앞둔 남자가 연인과 함께 바다다운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솔로르사노 부인에 대해 말해 주마 : 프라하의 한 헌책방에서 발견한 진홍색 표지의 책. <필라르 솔로르사노>가 <헤로나 블랑코>에게 선물한다고 적어 둔 글을 보고 주인공은 옛 추억 속 블랑코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들의 사랑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추억한다. 하늘의 또 다른 문 전설적인 식인귀인 오그로에 관한 이야기. 오그로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알고 보면 바로 우리 인간 자신이 될 수 있으며, 우리 모두 자기만의 바다를 보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그 바다가 뭔지도 모르기에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
Luis Sepulv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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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깨졌다. 뭔가 미묘하게 깨졌다. 보이지 않는 손 하나가 내 얼굴을 주물럭거리며 거울마다 죄다 비치는 결정적인 가면을 만들었다.
구두닦이가 다 닦았다며 구두 바닥을 때렸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아무 생각 없이 리칸텐 거리를 향해 걸었다. '바운티 호의 반란' 말론 브란도가 타리타의 사랑을 얻는 동안 나는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기 위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남자로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의구심, 좌절감, 순간적인 행복, 여러 재난 등으로 가득 찬 길이 내 앞으로 쫙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나약한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이기도 했다. 나는 부드럽게 흐느꼈다. 나는 하염없이 흐느끼며 깜짝깜짝 놀랄 만한 일들로 가득찼던 18년의 오솔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 오솔길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이룰 수 없는 불가능에 대해 처음으로 느꼈던 고통과 너무나도 아름답고 행복할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나는 향수 뿌린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중략) 그렇다. 바로 그 집이었다. 나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C.G 허드슨의 비참할 정도로 간략한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허드슨이 그 집을 처음으로 봤을 때 찍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우연히 만난 다음에 찍은 것일까? 티노와 베토는 파티 때 만난 여자들과 나중에 다시 만났을까? 집주인들은? 그리고 이사벨은? 모든 신들이 지겨워서 한 번 쳐본 장난이었을까? 허드슨이 뭔가 증거물을 남겨 놔야 할 것 같은 예감에 그 집에 두 번째 들어가기 전에 찍은 것일까? 내 마음대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진실을 이사벨이 가장 아름답게 부정한 것일까? 청소하는 여자가 깊디깊은 우물의 늪에서 나를 구해 주었다. 갤러리 주인이 그리 먼 곳에 살지 않는다며, 나한테 중요한 일이면 자기가 나를 데려다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며, 그냥 카탈로그의 내용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바바리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나는 어깨에 바바리를 걸친 후 거리로 나섰다. 이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취리히의 하늘이 맑고 투명했다. 허드슨의 사진에서처럼 청명했다. 하늘이 오랜 세월 끝에 나에게 사과를 건넨 것이다. 하늘이 나에게 너무나도 성급한 초대장을 보내 주어서, 아니면 수신인을 착각해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행복이나 불행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는지 모르겠다. --- pp. 4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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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면 내 말을 떠올리고 마마 안토니아의 집으로 가보십시오.
그곳을 찾기란 아주 쉽습니다. 부둣가에서 아무 남자나 붙잡고 물어보면 별다른 서론 없이 낡은 목재 건물까지 가는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어쩌면 입구에서 좀 놀라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착각해서 주교의 집에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벽면을 장식한 어린 천사들의 중성적인 얼굴은 무시하고, 문턱을 넘어 초인종을 딱 한 번만 누르십시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 당신을 맞이할 겁니다. 하여간 아주 이상하게 생긴 남자입니다. 항구 근처 술집들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그 남자는 질투심이 엄청난 한 남편한테서 도망치다가 전차에 치여 두 다리가 자렸으며 자신의 비극을 토해 내기 위해 기어서 마마 안토니아의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또 들리는 얘기로는 마마 안토니아가 몸이 반 토막이 나서 거의 죽어가는 남자를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마마 안토니아가 치료비까지 물어 절단된 부위를 불로 지진 다음, 초인종을 울리면 놀란 신학생처럼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용수철로 된 복잡한 시스템의 이동 장치를 만들도록 했다고 합니다. 항구의 술집들에서 떠도는 얘기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부두 노동자들의 입이 어떻다는 건 잘 아시겠지요. 반토막짜리 남자가 허술하게 생긴 방명록을 가져올 겁니다. 그는 거기에다가 당신의 이름, 나이, 직업을 적고 마지막으로 왜 울고 싶은지 물어볼 겁니다. 당신이 울고 싶은 이유를 정확히 모르거나,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성통곡하거나 조용히 울 수 있게 충분한 이유를 주는 것도 그 집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 pp. 9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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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가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적자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소설집 칠레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집 『외면』이 권미선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열린책들에서는 그의 장편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귀향』, 『지구 끝의 사람들』과 소설 형식의 산문집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번역 소개했다. 『외면』은 세풀베다가 데뷔 시절부터 원숙기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으로, 망각과 착각, 우연과 필연이 교묘히 교차되는 어긋난 만남에 관한 이야기 스물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풀베다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오늘날 전 세계,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다. 이 책은 그의 참신하고 현란한 문학적 재능을 또 한 번 유감없이 드러냄으로써 그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적자임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풀베다의 작품 세계와 소설집 『외면』에 대하여 루이스 세풀베다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인간 대 자연, 선과 악 등 극명하게 구분되는 대립 구조를 단순한 주제와 명쾌한 플롯 안에 녹여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를 길지 않은 분량에 다양한 에피소드를 삽입하지만, 산만하리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아울러 그는 소설 소재로 익숙지 않은 환경 문제나 생태계 문제를 다루면서도 경쾌하고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지구 끝의 사람들』이나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등이 이러한 작품 세계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외면』은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출간하기 이전에 쓴, 이미 절판된 작품집에 실렸거나 미발표된 중?단편 소설들을 한데 모은 책으로, 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면서 많은 독자들도 애타게 기다리고 바라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장르 문학적 성격을 지닌 다른 장편들과는 달리 문학적, 환상적 요소가 녹녹히 묻어 있는 작품으로, 보르헤스, 마르케스, 코르타사르, 바르가스 요사 같은 라틴아메리카 현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환상 문학이나 마술적 사실주의의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운명이 무정하게 빗겨 나간 모든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피할 줄 몰랐거나 피하고 싶지 않았던 실수와 파멸, 외면으로 점철된 상황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사람들과의 외면, 자신과의 외면, 흐르는 시간과의 외면, 사랑의 외면 등 모든 인간들이 세상을 배워 나가면서 숱하게 부딪치게 되는 망각과 착각, 우연과 필연이 교묘히 교차되는 어긋난 만남들에 관한 이야기 스물일곱 편을, 다양한 장소, 상황을 설정하여 한결같지 않은 시선과 섬려한 문체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소설집은 환경 문제나 생태계 문제에서부터 사회 비평까지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룬 세풀베다의 문학 세계를 전반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비참한 현실과 마술과 같은 환상을 농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세풀베다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적자임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