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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호선

의정부│회룡│망월사│도봉산│방학│창동│녹천│월계│신이문│회기│청량리│제기동│신설동│동묘앞│동대문│종로5가│종각│용산│노량진│신길│영등포│신도림│구로│오류동│온수│송내│역곡│부평│주안│제물포│인천│독산│석수│안양│명학│금정│군포│수원│세류│병점│평택│두정│천안│온양온천

2호선

을지로입구│신당│왕십리│뚝섬│성수│구의│잠실│삼성│선릉│역삼│서초│방배│사당│낙성대│봉천│신림│신도림│문래│영등포구청│당산│합정│신촌│아현│충정로

3호선

대화│주엽│정발산│마두│백석│화정│원당│삼송│지축│구파발│연신내│불광│녹번│홍제│무악재│독립문│경복궁│안국│종로3가│을지로3가│충무로│약수│금호│옥수│압구정│신사│잠원│양재│도곡│대치│학여울│대청│일원│수서│가락시장│오금

4호선

당고개│노원│상계│창동│쌍문│수유│미아│길음│혜화│동대문│충무로│명동│회현│이촌│동작│사당│남태령│선바위│과천│인덕원│평촌│범계│금정│대야미│상록수│고잔│오이도

5호선

방화│개화산│송정│마곡│발산│우장산│화곡│까치산│목동│오목교│양평│영등포구청│신길│여의도│마포│공덕│애오개│충정로│서대문│광화문│종로3가│을지로4가│청구│신금호│왕십리│행당│마장│답십리│장한평│군자│아차산│광나루│천호│둔촌동│방이│오금│개롱│거여│마천│길동│굽은다리│명일│고덕│상일동│강일│미사│하남검단산

6호선

응암│역촌│불광│독바위│연신내│구산│새절│증산│마포구청│망원│합정│상수│광흥창│공덕│효창공원앞│녹사평│이태원│한강진│버티고개│약수│청구│신당│동묘앞│창신│보문│안암│월곡│돌곶이│태릉입구│화랑대│봉화산

7호선

도봉산│수락산│마들│노원│중계│하계│공릉│태릉입구│먹골│중화│상봉│면목│사가정│용마산│중곡│군자│청담│학동│논현│반포│남성│상도│장승배기│보라매│철산│광명사거리│온수│까치울│굴포천│부평구청

8호선

별내│다산│동구릉│구리│암사│천호│몽촌토성│잠실│석촌│송파│가락시장│문정│장지│복정│남위례│남한산성입구│수진

9호선

한성백제│석촌│석촌고분│삼전│봉은사│선정릉│신반포│동작│흑석│노들│노량진│샛강│여의도│당산│선유도│염창│등촌│증미│양천향교│마곡나루│개화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19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2.2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61쪽 ?
ISBN13
9791198721457

책 속으로

▶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샘이 있어 청량한 바람이 부는 시원한 곳이라 하여 ‘청량리’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피서를 떠나는 행렬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이곳에 ‘청량사’라는 절이 있어 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 p.17, 「1호선_청량리」 중에서

▶기록에 의하면 수원 지역의 최초 지명은 ‘모수국’으로, 삼한 시대(마한, 진한, 변한) 마한의 작은 나라였다. 모수란 벌물이란 뜻으로 현재 지명인 수원(水原)과 그 뜻이 같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매홀’이라 불렸는데, 매홀은 물이 많은 고을을 뜻하며 ‘물고을’을 발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수성’과 ‘수주’를 거쳐 지금과 같이 ‘수원’이라고 불린 것은 고려시대(1271년)부터다. 수성, 수주, 수원 모두 물이 많은 곳을 의미한다.
--- p.39, 「1호선_수원」 중에서

▶신당은 무속인이 신을 모신 집을 뜻하는 신당(神堂)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때 시신을 내보내는 시구문이었던 광희문 바깥에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무당이 모였고 신당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이곳을 신당(神堂)이라 했고, 갑오개혁 때 발음은 같지만 ‘새로운 집’이라는 뜻인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 p.49, 「2호선_신당」 중에서

▶서초는 ‘서리풀’에서 나온 말로, 이곳에 ‘서리풀’이 많다고 해서 ‘서리풀이’, ‘상초리(箱草里)’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는 쌀을 임금님께 바쳤다는 옛 기록으로 보아 ‘서초’란 상서로운 풀, 즉 벼를 뜻한다. 다른 설로는 우면산의 여러 골짜기 물이 이리저리 서리어 흐른다고 해서 ‘물이 서리어 흐르는 벌판’이라는 뜻의 ‘서릿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서리풀’로 바뀌고 ‘서초’가 되었다고 한다.
--- p.58, 「2호선_서초」 중에서

▶녹번은 녹번현(碌磻峴: 녹번이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시대 청렴한 관리들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나라에서 받은 녹의 일부를 이 고개에 놓고 갔다고 한다. 관리들이 녹을 버리고 가 이 고개의 이름을 ‘녹을 버린 고개’, 즉 ‘녹번이 고개’라고 부른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이 지역에 녹색을 띠는 광물질인 산골(山骨)이 많이 나와서 ‘녹번’이라 불렸다고 한다.
--- p.81, 「3호선_녹번」 중에서

▶조선 세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고위직을 지낸,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에서 유래되었다.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이기도 하다.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다는 의미로 속세의 욕심을 내려놓은 한적한 삶을 의미하지만, 정권의 실세로 권력을 휘두르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권신 한명회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다.
--- p.92, 「3호선_압구정」 중에서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라는 방범 초소가 있어 ‘쌍갈무늬’라고 부른 것이 ‘쌍문’이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또 다른 설로는 효자문과 열녀문에 관한 것인데, 효성이 지긋한 효자를 기리기 위해 효자문을 두 개 세웠다는 것과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p.113, 「4호선_쌍문」 중에서

▶이 일대에 ‘현명하고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을 비롯하여 정승을 여럿 배출한 곳으로 선비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 p.115, 「4호선_회현」 중에서

▶가뭄이 들면 이 산에서 세 번에 걸쳐 기우제를 올렸는데, 세 번째 기우제를 올리는 날에는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미리 비옷, 즉 우장(雨裝)을 준비해 올라갔다.
--- p.132, 「5호선_우장산」 중에서

▶옛날에 어느 왕과 왕비가 행차하던 도중 밤이 되어 이 지역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날 밤 왕비가 갑자기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왕의 아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이 부근을 군자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 p.151, 「5호선_군자」 중에서

▶망원이라는 지명은 망원정(望遠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망원정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이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정자’라는 뜻 그대로 한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 p.174, 「6호선_망원」 중에서

▶조선시대에 이 지역에서 먹(墨: 먹 묵)을 만들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인 묵동(墨洞)을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 봉화산의 소나무 참숯으로 만든 먹은 품질이 뛰어나 궁에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문방사우 중 하나인 먹을 지명으로 사용하면 이 마을의 학문이 높아진다 하여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p.203 7호선_먹골」 중에서

▶‘문정’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던 인조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피난 중에 이곳에서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좋아서 ‘문씨 마을의 우물’이라는 뜻의 ‘문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문씨(文氏)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 p.232, 「8호선_문정」 중에서

▶옛날, 산봉우리가 해발 50m 정도였던 작은 봉우리 섬인 ‘선유봉’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동여지도』에 ‘선유봉’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선유봉은 이름처럼 신선이 노닐 듯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선비나 중국에서 온 사신이 자주 찾아왔다. 또한, 선유봉의 돌은 숫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좋아 ‘지주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p.249, 「9호선_선유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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