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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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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샘이 있어 청량한 바람이 부는 시원한 곳이라 하여 ‘청량리’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 피서를 떠나는 행렬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이곳에 ‘청량사’라는 절이 있어 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 p.17, 「1호선_청량리」 중에서 ▶기록에 의하면 수원 지역의 최초 지명은 ‘모수국’으로, 삼한 시대(마한, 진한, 변한) 마한의 작은 나라였다. 모수란 벌물이란 뜻으로 현재 지명인 수원(水原)과 그 뜻이 같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매홀’이라 불렸는데, 매홀은 물이 많은 고을을 뜻하며 ‘물고을’을 발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수성’과 ‘수주’를 거쳐 지금과 같이 ‘수원’이라고 불린 것은 고려시대(1271년)부터다. 수성, 수주, 수원 모두 물이 많은 곳을 의미한다. --- p.39, 「1호선_수원」 중에서 ▶신당은 무속인이 신을 모신 집을 뜻하는 신당(神堂)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때 시신을 내보내는 시구문이었던 광희문 바깥에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무당이 모였고 신당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이곳을 신당(神堂)이라 했고, 갑오개혁 때 발음은 같지만 ‘새로운 집’이라는 뜻인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 p.49, 「2호선_신당」 중에서 ▶서초는 ‘서리풀’에서 나온 말로, 이곳에 ‘서리풀’이 많다고 해서 ‘서리풀이’, ‘상초리(箱草里)’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는 쌀을 임금님께 바쳤다는 옛 기록으로 보아 ‘서초’란 상서로운 풀, 즉 벼를 뜻한다. 다른 설로는 우면산의 여러 골짜기 물이 이리저리 서리어 흐른다고 해서 ‘물이 서리어 흐르는 벌판’이라는 뜻의 ‘서릿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서리풀’로 바뀌고 ‘서초’가 되었다고 한다. --- p.58, 「2호선_서초」 중에서 ▶녹번은 녹번현(碌磻峴: 녹번이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시대 청렴한 관리들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나라에서 받은 녹의 일부를 이 고개에 놓고 갔다고 한다. 관리들이 녹을 버리고 가 이 고개의 이름을 ‘녹을 버린 고개’, 즉 ‘녹번이 고개’라고 부른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이 지역에 녹색을 띠는 광물질인 산골(山骨)이 많이 나와서 ‘녹번’이라 불렸다고 한다. --- p.81, 「3호선_녹번」 중에서 ▶조선 세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고위직을 지낸,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에서 유래되었다.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이기도 하다.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다는 의미로 속세의 욕심을 내려놓은 한적한 삶을 의미하지만, 정권의 실세로 권력을 휘두르며 부귀영화를 누렸던 권신 한명회의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다. --- p.92, 「3호선_압구정」 중에서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라는 방범 초소가 있어 ‘쌍갈무늬’라고 부른 것이 ‘쌍문’이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또 다른 설로는 효자문과 열녀문에 관한 것인데, 효성이 지긋한 효자를 기리기 위해 효자문을 두 개 세웠다는 것과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p.113, 「4호선_쌍문」 중에서 ▶이 일대에 ‘현명하고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을 비롯하여 정승을 여럿 배출한 곳으로 선비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 p.115, 「4호선_회현」 중에서 ▶가뭄이 들면 이 산에서 세 번에 걸쳐 기우제를 올렸는데, 세 번째 기우제를 올리는 날에는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미리 비옷, 즉 우장(雨裝)을 준비해 올라갔다. --- p.132, 「5호선_우장산」 중에서 ▶옛날에 어느 왕과 왕비가 행차하던 도중 밤이 되어 이 지역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날 밤 왕비가 갑자기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왕의 아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이 부근을 군자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 p.151, 「5호선_군자」 중에서 ▶망원이라는 지명은 망원정(望遠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망원정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이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정자’라는 뜻 그대로 한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 p.174, 「6호선_망원」 중에서 ▶조선시대에 이 지역에서 먹(墨: 먹 묵)을 만들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인 묵동(墨洞)을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 봉화산의 소나무 참숯으로 만든 먹은 품질이 뛰어나 궁에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문방사우 중 하나인 먹을 지명으로 사용하면 이 마을의 학문이 높아진다 하여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p.203 7호선_먹골」 중에서 ▶‘문정’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던 인조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피난 중에 이곳에서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좋아서 ‘문씨 마을의 우물’이라는 뜻의 ‘문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문씨(文氏)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 p.232, 「8호선_문정」 중에서 ▶옛날, 산봉우리가 해발 50m 정도였던 작은 봉우리 섬인 ‘선유봉’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동여지도』에 ‘선유봉’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선유봉은 이름처럼 신선이 노닐 듯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선비나 중국에서 온 사신이 자주 찾아왔다. 또한, 선유봉의 돌은 숫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좋아 ‘지주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p.249, 「9호선_선유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