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Jerome David Salinger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다른 상품
|
네시 이십분이 되었을 때 - 좀더 냉혹하게 말한다면, 한 시간 이십 분이 지나 모든 합리적인 희망이 사라졌을 때 - 결혼하지 못한 신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쪽에서 부모의 부축을 받으며 건물을 나가, 곧 무너질 것 같은 모습으로 안내를 받으며 긴 돌계단을 걸어내려가 보도에 섰다. 그녀는 연석에 이중 주차한 채 대기하고 있던 늘씬한 검은 전세차들 가운데 첫째 차 안에 밀어 앉혀졌다. 마치 손에서 손으로 넘겨져 차 안으로 전달된 것 같았다. 아주 생생한 그림 같은 순간,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나온 사진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실리는 순간들이 그렇듯이 목격자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미 결혼식 하객들(나도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이 건물에서 쏟아져나와 인파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비록 점잖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눈을 희번덕거리지도 않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그나마 약간이라도 완화해주는 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날씨였다. 유월의 태양은 너무나 뜨겁고 눈부셔, 사진을 찍을 때 터뜨리는 여러 개의 플래시 전구처럼 중개자 역할을 해주었으며, 그래서 마치 병자처럼 돌계단을 내려오던 신부의 이미지는 가장 흐릿해져야 하는 순간에 다행히도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 p.21 |
|
그렇다면 왜 나는 그 차안에 계속 앉아 있었던가? 예를 들어 빨간 불 앞에서 멈추었을 때 왜 차에서 내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생각할수록 더욱 도드라지는 문제지만, 애당초 왜 내가 그 차에 뛰어들었던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여남은 가지 대답이 가능할 듯하며, 그 모든 답은 비록 애매하나마 그런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그런 답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그해가 1942년이었다는 것, 나는 스물세 살이었으며, 갓 징집되어 큰 무리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는 게 인생에 보탬이 된다는 충고를 듣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로웠다는 것만 되풀이하면 될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그냥 사람 많은 차 안에 뛰어들어, 그냥 그들 속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것뿐이다.
--- p.36 |
|
"대체 무슨 근거로 페더 부인은 시모어가 잠재적 동성애자고 분열적 성격이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모든 눈-모두 탐조등처럼 보였다-들러리의 눈, 실스번 부인의 눈, 심지어 중위의 눈까지도 갑자기 나를 향했다. "뭐라고요?" 들러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되물었다. 희마하게 적대감이 느껴졌다. 다시 언뜻, 내가 시모어와 형제라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며 짜증이 났다. "페더 부인이 무슨 근거로 시모어가 잠재적 동성애자고 분열적 성격이라고 생각하냐는 겁니다." 들러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큰 소리로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실스번 부인을 바라보더니 한껏 비꼬는 투로 호소했다. "오늘 같은 계책을 쓰는 인간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있겠어요?" 그녀는 조용히, 조용히 물었다.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난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이분을 위해서요." 실스번 부인은 아주 부드럽고, 아주 공정하게 대답했다. "아뇨,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겠죠."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려 어느 쪽으로든 달려가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그대로 보조좌석에 앉아 있었고, 들러리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 p.53 |
|
샐린저 평생의 프로젝트, '글래스 가족사'
샐린저가 평생 동안 펴낸 총 네 권의 작품(『호밀밭의 파수꾼』『아홉 가지 이야기』『프래니와 주이』『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중 홀든 콜필드가 등장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은 '글래스'라는 성(姓)을 지닌 뉴욕의 한 가족을 주인공들로 하고 있다. 샐린저는 글래스 가족사(史)에 일어난 사건과 그들의 심리를 그린 '글래스 가족 이야기'를 평생의 프로젝트로 삼았다. 이 글래스 집안을 살펴보면 특이하지 않은 인물이 없는데, 주인공인 버디 글래스 및 그의 일곱 형제자매는 보드빌 배우인 레스 글래스와 베스 글래스의 자식들로, 모두 영민하며 다재다능하다. 맏형인 시모어 글래스는 천재 시인으로, 1948년 아내와 함께 플로리다에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자살한다(그의 자살에 관한 에피소드는 『아홉 개의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 등장한다). 둘째이자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의 화자인 버디 글래스는 9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영문과 교수이다(샐린저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가 아니라 버디 글래스를 꼽은 바 있다). 셋째인 부 부 글래스는 해군에 입대한 씩씩한 여성으로, 훗날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된다. 넷째와 다섯째는 쌍둥이 월트와 웨이커로, 월트는 2차 대전 참전중 일본에서 사망하고, 웨이커는 종교에 귀의하여 수도사가 된다. 여섯째인 남동생 주이 글래스와 막내 여동생 프래니 글래스는 배우로, 이들의 이야기 역시 중편소설집인 『프래니와 주이』에 등장한다. 수많은 '바나나피시 중독자'를 만든 또 한 편의 걸작 『아홉 개의 이야기』 미국의 비평가와 독자들에게 샐린저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할 때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자웅을 겨루는 작품이 있다. 바로 단편소설집인 『아홉 개의 이야기』이다. 시모어의 자살 에피소드를 그린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을 포함한 아홉 편의 보석 같은 작품들은 열혈 샐린저 팬 집단인 '바나나피시 중독자'들을 양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이 소설집 역시 2004년 하반기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