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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 5
옮긴이의 말 (낮고 고귀한 영혼에 부치는 시(詩) - 108 |
Andrei Mak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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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분명 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우리가 처한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명명할 수 있기에 그 조건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한 갈대일지언정 스스로 그렇다는 걸 알기에… ‘인텔리겐치아의 낡고 교활한 논리…’ 내 안에서 보다 명철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p.18 내 연주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작게 소리를 내질렀다. 뒷좌석 차창에 붙은 아름다운 밤나방 한 마리가 수수께끼 같은 작은 글자로 뒤덮인 날개를 파닥이며 창유리에 꽃가루 자국을 남겼다. 이 두꺼운 창유리를 통해 바라보듯 그는 연주 홀을,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 무대와 피아노를 향해 걸어가는 한 젊은이를 상상했다. 가슴 에이는 환영 속에 떠오른 이 삶을 그는 잠시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그 자신 없이 이어지고 있는 삶이었다. ---p.49 한밤중에 그는 은신처를 나와 일어서서 옷을 갈아입었으며 굳은 다리를 폈다. 평온한 들판과 하늘, 열기로 흐려진 별들, 이 모두가 신뢰와 삶의 환희를 일깨워 주었다. 이 모두가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p.51 알렉세이는 피아노 옆에 멈춰 서서 한 손을 내려 건반을 짚고 귀 기울인 뒤 뚜껑을 도로 닫았다. 음악에 홀딱 빠진 한 젊은이의 현존이 자신 안에서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자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자신의 손을, 긁힌 상처와 흉터로 뒤덮인 손가락들과 굳은살이 누렇게 박인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다른 남자의 손이었다. 책에서라면 그런 상황에서 남자는 피아노에 달려들어 모든 걸 잊고,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연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책에서 얻은 이 생각, 이 아이디어가 그를 여전히 과거와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인지도 몰랐다. ---p.63 그는 자신이 녹아들어 갈 뻔했던 바람과 흙과 추위가 점점 물러나고 있음을 놀라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더 놀라운 건, 이 소박한 행복이었다. 밤이면 그의 몸에 와 닿는 여자의 따듯한 몸. 세상 그 어떤 진실보다 더 견고한, 서로의 몸이 닿는 이 부드럽고 생생한 경계선. ---p.68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고, 군데군데 구릿빛 노을이 드리운 푸른 거리 속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이 삶에는 무슨 열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삶과 사랑의 이 모든 복잡한 시도들,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가혹하리만치 얽히고설킨 그것들을 단순명료한 언어로 설명해 줄 무슨 약호가 있을 거라고. ---p.92 그는 연주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밤을 가로질러 전진했다. 얼음과 나뭇잎과 바람의 무수한 단면들로 이루어진, 이 밤의 투명하고 불안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안에 불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도 후회도 없었다. 그가 헤치고 나아가는 이 밤은 불행과 공포와 만회할 수 없이 산산조각 나버린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p.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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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RTL-리르 대상Grand Prix RTL-Lire] 수상
낮고 고귀한 영혼에 부치는 시(詩) “잠에서 깨어난다. 무슨 음악이 들리는 꿈을 꾸었다.” 눈보라에 휩싸인 우랄 지방의 어느 기차역, 한없는 연착으로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기차를 기다리는 화자인 ‘나’는 자신을 둘러싼 무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안락한 생활에 대한 타고난 무관심과 체념, 부조리한 상황에 발휘하는 끈질긴 인내심’을 가진 ‘칙칙한 삶의 집적체’를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뮌헨의 한 철학자가 발명한 용어인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떠올리는 ‘나’는 자신 ‘역시 분명 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처한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명명할 수 있기에’ 그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왔다고 믿는다. 그렇게 기차를 기다리던 ‘나’는 문득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한 어두운 공간에 다다르고 피아노 앞에 앉은 노인을 보게 된다. 익명의 동질성에서 한 개인이 고개를 드는 예기치 못한 순간이다. 모스크바행 기차가 도착한 후, 두 사람은 허름한 객실에서 다시 마주한다. 그곳에서 노인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화자에게 들려준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는 이제 오래된 과거로 돌아가 ‘알렉세이 베르그’라는 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삶을 통과한다.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 무질서한 흐름엔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빛을 발하는 어떤 비극적 화음에 그것들을 담아 리듬을 부여했을 하나의 열쇠가 있을 거라는.” 때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 밀고와 잔인한 숙청이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던, 공산 체제가 절정에 달한 시기이다. 1941년 5월 24일 자신의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던 스물한 살의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베르그는 연주회가 열리기 이틀 전 부모가 체포되는 광경을 외부에서 목격한다. 그 길로 수용소를 피해 달아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장으로, 전쟁의 부조리한 상황 속으로 휩쓸려 들며, 죽은 군인에게서 훔친 가짜 신분으로 적과 싸우면서 지속적으로 죽음의 위험에 노출된다. 종내 장군의 운전기사가 되지만 그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면서 익명의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다 이 익명을 벗어던지는 순간 이제까지의 도주는 끝이 나고, 그는 수년의 세월을 거슬러 원점으로 돌아가 수용소로 보내진다. “…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안드레이 마킨은 부서지고 깨진 삶의 파편들과 그에 맞물리는 위대한 한 인간의 역사를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는 완벽한 스타일로 연주하며 소비에트 연방 역사에 묻힌 한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형상을 부여한다. 부조리를 넘어서서 삶이 음악으로 화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가의 치밀하고도 시적인 문장들 또한 한 편의 음악으로 읽힐 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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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킨은 문학의 언어를 마치 음악처럼 연주한다. 그의 문체는 톨스토이와 파스테르나크의 전통을 계승하며, 독자를 감동의 심연으로 이끈다.” - The Spect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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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눈송이처럼 섬세하지만 동시에 얼음처럼 날카롭다. 한 줄 한 줄이 시(詩)처럼 읽힌다.” -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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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마킨의 소설은 문학의 숭고함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 Figaro Litter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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