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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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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재선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코에서는 콧김이 연신 뿜어져 나왔고,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찔러봐. 찔러, 찔러! 이 한심한 년아, 몸이 얼어붙기라도 했냐? 한 번 시원하게 휘둘러보라고!” 재림이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렇게 밤이라도 샐 거야? 빨리 찔러보라고! 찔러! 찔러! 눈 딱 감고 휘둘러보란 말…” 재선이 휘두른 가위가 재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시스터즈」 중에서 나는 건물을 멀리 돌아 뒤편으로 향했다. 놈들이 패닉에 빠져 있는 틈을 타 기습하면 의외로 손쉽게 양키놈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우리 부류를 능멸하고 학대하고 업신여겨 온 노랑머리 코쟁이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다. --- 「바그다드」 중에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아내의 배를 걷어차게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아내를, 임신한 아내를, 믿을 수 없었다. 고백자가 그때 민희를 치고 달아났던 바로 그 뺑소니범이었다니. 1998년 4월 25일. 오후 4시경, 민희는 사당 사거리 먹자골목 입구에서 반짝거리는 흰색 쏘나타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민희는 임신 7개월이었다. 그녀의 뱃속엔 내 아이가 있었다. 굉음을 내며 달려온 그 차는 불과 1초 만에 사랑하는 내 여자와 세상 공기 한 번 쐬어보지 못한 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뺑소니 차의 번호판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아직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것은 ‘7’이라는 숫자 하나뿐이었다. 그 차 번호판의 마지막 자리. --- 「마지막 고해」 중에서 나는 더 이상 사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파렴치한이고, 살인자였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뭘 해야 모든 걸 원상태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시선이 서서히 활짝 열린 성당 정문으로 돌아갔다. 왠지 안에 들어가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단 앞에 엎드려 참회하면 위에서 무슨 말씀이라도 내려주실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여 계단을 올라갔다.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들어선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바닥에 큰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한쪽 구석에 자리한 고해실을 흘끔 돌아보았다. 순간 뒷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그 안에서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가기 시작했다. 정녕 시간을 돌릴 방법은 없는 걸까? --- 「고해실의 악마」 중에서 한수는 식탁 상석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가가 작가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한수가 들뜬 얼굴로 날씨와 집 주변 볼거리에 대해 신나게 주절대고 있을 때 얇은 여름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까 수영이 발코니에서 내려다봤던 바로 그 여자였다. --- 「작가의 여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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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향해 구원을 바라며 절규하는 당신의 모습 속에 악마를 보았다.
인간 본성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요동치는 감정의 파노라마를 느껴 보다. 나의 고백은 어쩌면 나만을 위한 사악하고 어리석은 악마의 탐욕이 아닌가. 내 눈에 비친 당신이 악마인가 당신 눈에 비친 내가 악마인가. 이 책 〈고해실의 악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죄악과 구원이다. 인간의 악은 저마다 개별적인 이유에서 각자만의 타당한 사연이 있고 그 이유에 의해 저마다 구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저마다 고해실의 문을 두드리며 자위한다. 타인의 죄는 한없이 무겁지만, 나의 죄는 복잡하고 섬세하며 그렇기에 무엇보다 타당하다. 인간이 저마다 고해실의 문을 두드리는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의 무거운 죄 안에서 저마다 절대자의 시선 아래 가볍게 구원을 청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인을 향해 한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그 타락한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관대한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하늘을 향해 애타는 고백을 토로하곤 하지만 그 답답한 심정의 뿌리를 거슬러 내려가다 보면 당신이 떠올리던 악마의 모습과 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죄를 저지르지만 신은 아무런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 〈고해실의 악마〉 속 수많은 악인이 저지르는 악행은 각자의 삶 안에서 용인할 수 있는 정당방위일 뿐이다. 그들의 죄는 사법제도의 판결을 떠나 하늘 아래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것이다. 그 죄를 통해 인간은 삶의 반경을 확장하여 더욱더 악의 합리화에 대한 여지를 넓혀나간다. 인간의 악은 자신의 이유 안에 용해되어 아무런 형체를 띠지 않는 삶 그 자체로 남을 뿐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아무런 슬픔도 없이 무자비하게 일으키는 살해는 인간이 악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 같은 구렁텅이를 한없이 깊게 파고 들어가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인간의 악이 당연한 게 될수록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안에 슬그머니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인다. 저마다의 고해실 안에서 각자의 이유로 절망하지만 사실 그 절망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오로지 자신만이 구원받겠다는 저마다의 이기심이 작용할 뿐이다. 그런 인간의 참혹한 악의 절규 가운데, 신은 아무런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 당신은 과연 악마의 그림자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존재인가. 〈고해실의 악마〉 속 끔찍한 살해 행위가 과연 당신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단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깨끗한 영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 고해실에서 마주했던 악마의 존재가 당신과 완전히 대척점을 이루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그것을 장담할 수 없다.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편 어디에도 확실히 설 수 없고 고통스러운 구원의 외침 가운데 홀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나그네일 뿐이다. 이 소설집 〈고해실의 악마〉는 바로 인간의 죄악에 대해 경중을 떠나 깊이 살펴봄으로써 악마의 모습이라고 당신이 쉽게 치부했던 그 면모가 어쩌면 당신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스산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절대적 구원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고 고해실이란 장소는 환상을 위한 자위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쓸쓸함이 이 소설집 전반을 드리우는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