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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8
1장 농업의 기원으로 보는 자연과 문화19 에피소드 1 두초의 에덴동산 2장 고대 세계의 주요 제국들 45 에피소드 2 니시아카시에서 맛본 아카시야키 3장 중세의 맛 99 에피소드 3 커피와 후추 4장 콜럼버스의 교환인가, 세계의 재창조인가 143 에피소드 4 김치 이전 세상 5장 음료, 사교 모임, 그리고 근대 173 에피소드 5 스피릿 세이프 6장 식민지와 카레 211 에피소드 6 파나마에서 찾은 정통 커피 7장 음식 산업혁명 239 에피소드 7 아이스박스 8장 20세기 식습관, 또는 불만족스러운 대용량 식품 269 에피소드 8 브리콜라주 9장 다른 방식으로 먹기 301 에피소드 9 메뉴판에서 만난 넴 맺음말 326 감사의 글 333 주 335 참고문헌 347 |
Benjamin Aldes Wurg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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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몸이 느끼는 식욕이 짐승들이나 가지는 ‘하찮은’ 욕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식욕은 음식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이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식욕을 곱씹어 보고 마음껏 채워보면서 우리와 음식 간의 관계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음식을 연구하는 데 개인의 경험은 아주 중요한 도구다. 다른 욕구와 마찬가지로 배고픔과 목마름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맛만 보고서는 알아낼 수 없는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다. 설탕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만, 그 쾌감이 한때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사탕수수를 심고 수확했던 노예들의 이야기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 p.12 고대 제국의 일부 상류층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로마인은 정복한 지역의 식문화를 야만적이라 여겼지만, 연회석에서는 그 ‘야만적인’ 요리를 차려내 지배자의 힘을 과시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당연히 상류층은 소작 농보다 훨씬 다양한 요리를 접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연회를 열어 서로서로 대접했다. 페르시아의 상류층은 하인에게 저 멀리 하천까지 가서 귀한 허브를 구해 오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로마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예가 왕족이 즐기는 얼음 간식을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눈을 가져오기도 했다. --- p.55 유라시아의 온대 지역에 속했던 로마와 중국 제국에는 특유의 기후 덕분에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했다. 로마의 지중해는 서로 다른 정치 집단이나 문화 공동체가 끊임없이 정복, 이동, 융합, 통합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중국의 강, 협곡, 산맥은 모든 지역을 독립적으로 구분 지었다. 중국 북부와 남부의 기후는 아주 달랐다. 북부는 시원하고 건조한 반면에, 남부는 덥고 습했기에 하나의 작물이 중국 전역에 퍼져서 재배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제국은 여러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노력했다. 서양에서도 익숙한 광둥, 쓰촨, 후난, 산둥 등의 지역 공동체 명칭은 아직도 중국 요리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 p.84 우리가 먹는 음식은 변화하는 문화의 지표다. 동시에 지구의 동식물이 현대에 들어와 재분배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재분배는 유럽인이 부를 찾아 세계를 누비면서 시작됐고 그들의 탐험을 향한 욕구는 콜럼버스 이후 수 세기 동안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는 채로 지속됐다. 생물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무대를 마련하는 일은 사실상 생물학 전쟁과 다름없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생물들의 무차별적인 공격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자라기 시작한 달콤한 과일들을 맛볼 수 있는 원주민의 후손은 얼마 되지 않았다. --- p.172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 후반까지 유럽 사람들은 설탕을 약으로 여겼다. 아랍 약전에는 설탕을 탕약, 우려낸 차, 여러 약제와 함께 쓰라고 기록돼 있다. 아랍, 스페인, 페르시아 상인들은 설탕을 유럽으로 전파했다. 갈레노스의 의학은 체액 이론에 기초해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갈레노스파 의사들은 설탕을 ‘뜨거운’ 성질을 지닌 물질로 분류해 ‘차가운’ 성질을 지닌 물질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설탕은 뜨거운 성질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젊은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지만, 차가운 성질을 지닌 환자가 먹으면 여러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 p.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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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전쟁과 권력, 식민지와 향신료, 요리법과 도구, 소울푸드의 등장까지….
음식으로 다시 읽는 세계사 허쉬는 오늘날 어떻게 초콜릿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은 왜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맥주를 추천했을까? 일본 도쿄에서 요리를 할 때 절대 생선 배부터 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흥미로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생존 문제를 넘어 역사적으로 다양한 욕망과 이해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묘한 기싸움 또한 다름 아닌 음식에서 시작되고, 발현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비옥한 영토, 지리적인 이점, 목축의 발달 등으로 생태-문화적으로 풍부하고 균형 잡힌 요리가 발전했다. 그 시기는 당시 그리스 아테네 전성기와 겹쳤고, 페르시아는 그런 그리스인들을 초대해 코스별 고기와 설탕, 꿀로 범벅된 디저트를 대접하는 등 세련된 식문화를 보여주며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들의 식문화를 두고 그리스는 지나치게 화려하며 탐욕적인 것으로 평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페르시아에서 쓰였던 양념으로 만든 고상한 요리들이 그리스에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페르시아의 식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음식을 통해 고대 페르시아 왕국의 영토 장악력과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연회석에서 지배국의 음식을 전시한 로마 상류층, 산 정상으로 노예를 보내 얼음 간식을 가져오게 한 중국 왕족에 관한 이야기 또한 음식의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을 생각한다는 건 곧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같은 식재료를 두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추억이 다 다르다. 그 재료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음식은 더더욱 그렇다. 지역별로, 세대별로 경험한 식재료와 식문화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떡’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 누군가는 하굣길에 친구들과 함께 사서 나눠 먹던 떡꼬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먹던 새해의 떡국을 떠올릴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할머니 방앗간에서 갓 뽑아 꿀에 찍어 먹던 가래떡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은 어떤 것들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이는 결국 우리가 어떤 음식을 기억하는 데 단순히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닌 무엇을 ‘언제’ ‘누구’와 먹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음식은 그저 취향과 기호의 영역으로만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온 한 사람의 발자취다. 이러한 사실을, 음식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금세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어버리고 마는 오늘날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